소설리스트

라이프x9999-28화 (28/176)

28화 : 승급 시험 (3)

“…하필…….”

“사막 필드인가.”

들어오자마자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우리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정찰팀에게 있어서 최악의 필드가 있다면, 그게 바로 이 사막 필드니까.

어디가 앞이고 어디가 뒤인지 알 수 없는 사막 필드는 정찰하기에 최악의 조건이었다.

심지어 모래바람이 불면 시야까지 가려져서 정찰에 실패하는 경우도 다반사였다.

“조장은 미리 나눠 준 시험용 스마트폰을 이용해서 임무를 확인하고 진행해 주시기 바랍니다.”

후우…. 정신 차리자.

사막 필드 게이트가 처음은 아니었다.

예전 팀에서 활동할 때 몇 번쯤 해 본 기억이 있다.

너무 오래돼서 정확하게는 아니더라도, 그때의 기억을 잘 따라가면 충분히 할 수 있을 것이다.

[임무 : 게이트 입구에서 5km 지점까지 정찰 후, 지형과 몬스터에 대해 보고하시오.]

5km라면 그리 먼 거리는 아니다.

사막이라는 걸 감안하면 왕복 3시간이 조금 더 걸리는 시간.

지금 가지고 있는 물과 식량으로도 무난하게 가능하다.

“일단 물을 나누죠. 저는 3병 가지고 있어요.”

“저는 2병…….”

물의 양을 서로 정확히 맞춘 뒤, 2인 1개 조로 움직이기로 했다.

“저는 최연환 씨와 함께 움직이겠습니다. 저희가 있는 곳이 필드의 동쪽 끝이니까, 강주성 씨와 이유리 씨는 북서쪽으로, 저희는 남서쪽으로 이동할게요.”

“알겠습니다.”

다들 침착하게 내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 줬다.

통신계인 최연환이 내 옆에 있으면 다른 두 사람과도 통신할 수 있기에 이렇게 나누는 게 가장 이상적이라고 생각했다.

두 사람은 이미 팀으로 활동한 이력도 있으니 호흡을 맞추기도 편할 것이다.

“15분 간격으로 한 번씩 통신을 보내겠습니다. 뭔가 이상이 발생하거나 문제가 생기면 그때마다 보고해 주세요.”

“넵!”

통신계 헌터는 모든 사람에게 발신할 수 있다.

일종의 텔레파시 같은 느낌인데, 통신계 헌터가 먼저 연락을 보내면 능력을 쓰고 있는 동안은 서로 대화가 가능하다.

하지만, 저쪽에선 먼저 연락을 할 수 없으니 시간을 정해 두는 게 서로에게 편하다.

“그럼 다들 이곳에서 다시 뵙겠습니다.”

“네!”

우린 서둘러서 남서쪽으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

이렇게 넓은 공간을 시험장으로 쓸 수 있다는 것부터 놀라웠고, 게이트 내부와 동일하게 꾸며져 있다는 것도 믿기지 않았다.

헌터 협회의 능력이 얼마나 뛰어난지 알 수 있는 부분이었다.

하늘에 보이는 수많은 조명이 뜨거운 빛을 내리쬐고 있었고, 덕분에 숨이 턱턱 막힐 정도로 공기가 달아올라 있었다.

“하아…. 하아…. 일단 여기서 잠깐 쉴까요?”

내 말에 최연환이 고개를 끄덕이곤 바로 자리에 주저앉았다.

왕복 3시간이면 충분히 가능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2시간이 지나도 아직 전환점에 도착하지 못했다.

모래에 발이 푹푹 빠져서 이동하기 힘들었고, 공기가 너무 뜨거워서 빠른 속도로 체력을 빼앗기고 있다.

커다란 바위의 그늘에 앉아서 잠시 숨을 돌리며 물을 한 모금 삼켜 냈다.

“저쪽 조에 연락해 주실 수 있나요?”

“아…! 네.”

옆에서 물을 마시고 있던 최연환이 입가를 닦아 내곤 눈을 감았다.

통신계 능력자가 어떻게 다른 사람에게 연락하는지는 잘 모르지만,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엄청난 정신력이 소모된다는 건 알고 있다.

그렇기에 특수계가 다른 헌터들에 비해서 좋은 대우를 받는 거겠지.

인터넷도, 통신망도 터지지 않는 던전 안에서 통신계 능력자는 반드시 필요한 존재였다.

15분마다 연락을 하려고 했지만, 예상보다 큰 체력 소모에 30분으로 시간을 늘렸다.

그런데도 그에게 연락을 해 달라고 부탁하는 건 언제나 미안하게 느껴졌다.

“저희는 현재 4.5km 이동했습니다. 이상 없나요? 아…. 네. 그렇군요. 알겠습니다. 네. 이따가 다시 연락드리죠. 네.”

이내 통신을 끝내고 눈을 뜬 그는 숨을 크게 내뱉었다.

전에 석준이에게 물어보니, 통신을 끝내면 순간적으로 어지러움이 몰려와서 정신을 놓지 않기 위해 고생해야 한다고 들었다.

잠시 숨을 고른 최연환은 지친 표정으로 내게 말했다.

“저쪽도 저희와 비슷한 거리를 이동한 거 같아요. 곧 반환점에 도착한다고 합니다. 샌드맨 2마리와 스콜피온 3마리를 추가로 발견했다고 합니다.”

“그렇군요. 알겠습니다.”

그에게 보고 받은 것을 스마트폰에 기록한 뒤 땀을 닦아 냈다.

실제로 몬스터가 존재하는 건 아니고, 몬스터와 같은 크기의 입간판이 세워져 있었다.

수험생들은 그 간판을 몬스터로 인지하고 보고할 때를 위해 기록하는 것이다.

“그럼 다시 이동하도록 하죠.”

쿠웅!

“……!”

자리에서 일어나던 차에 우리가 등을 기대고 있던 바위가 부서졌다.

화들짝 놀란 나와 최연환은 앞으로 몸을 굴렸고, 누군가 우리를 향해 걸어오는 게 보였다.

“두 분은 지금 몬스터에게 기습을 당했습니다. 저는 대략 스콜피온의 전투력을 갖고 있습니다. 자, 어떻게 행동하시겠습니까?”

검은 양복을 입고 있는 남자는 선글라스를 쓰고 한 손에 검을 들고 있었다.

이런 곳에서 양복을 입고 있다는 것부터 숨이 턱 막힐 지경이었다.

생각해라…! 머리를 굴려!

물론 현실에서 실제로 이런 상황을 마주했다면 망설이지 않고 인벤토리에서 무기를 꺼냈을 것이다.

옐로우 라벨인 스콜피온 정도는 혼자서도 상대할 수 있을 테니까.

하지만 지금 나는 초월 헌터라는 정체를 숨기고 시험에 임하고 있다.

이 상황에서 나는 그저 정찰팀의 팀장에 불과하다.

“다른 조에 연락해서 게이트 쪽으로 복귀하라고 해 주세요!”

“…네?!”

내 말에 최연환은 적잖게 당황한 반응을 보였다.

시선을 시험관에게서 떼지 않은 채 말을 이어갔다.

“저희 전투력으로는 스콜피온과 싸울 수 없습니다. 임무를 포기하고 복귀합니다.”

“하지만…….”

당연히 그가 망설이는 이유는 알고 있다.

이건 시험이고 정찰 지점까지 도착해서 임무를 보고해야만 한다.

그런데 나는 중간에 포기하고 돌아가자고 하니, 그의 입장에선 당혹스러운 게 당연하다.

“지금 팀장은 누구죠?”

나는 망설이고 있는 최연환을 쏘아봤고, 그는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타앗!

여유롭게 떠드는 걸 기다려 주지 않겠다는 듯이 시험관의 날카로운 검이 나를 향해 쏘아졌다.

얼핏 보기에 그가 들고 있는 검은 가짜 검이지만, 실제로 내게 대미지를 입히는 것보다 명중한다는 게 감점으로 들어가겠지.

시험관은 실제로 스콜피온의 독침처럼 찌르기로만 나를 공격해 오고 있었다.

오랜 시간 스콜피온의 움직임을 연구한 것처럼 비슷한 속도로만 움직였다.

최연환이 있는 쪽과 반대로 몸을 굴려 시험관의 시선을 붙잡았다.

아마 이쪽에 기습이 있었다는 건, 저쪽 조도 똑같은 테스트를 받고 있을 가능성이 컸다.

“팀장님! 저쪽도 몬스터에게 기습을 받았다고 합니다! 현재 이유리 씨가 몬스터와 전투 중, 쓰러뜨리고 목적지까지 이동하겠다고 합니다.”

최연환의 보고에 인상을 찌푸렸다.

싸우면 안 된다.

“몬스터가 싸우는 소리가 들리면 주변에 다른 몬스터들이 모여들 가능성이 커요! 스콜피온은 자신의 영역에서 벗어나지 않는 몬스터니까 빨리 도망쳐서 출구로 향하라고 하세요! 빨리!”

내가 소리를 지르자 최연환은 조금 놀란 듯한 표정과 함께 다시 연락하기 시작했다.

최연환이 연락을 마친 걸 보고 그에게 눈으로 신호를 보냈고, 반대쪽으로 내달렸다.

타다닷!

모래 때문에 빠르게 달릴 수 없는 게 답답하게 느껴졌다.

가방에서 물통을 꺼낸 뒤, 뚜껑을 열었다.

촤악!

물을 옆에 있는 바위에 뿌리고 있는 힘껏 다리를 움직였다.

“죽을힘을 다해 달려요!”

“네에!”

한참을 달리고 나서야 시험관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허억…. 허억…. 컥……!”

“쿨럭쿨럭…….”

건조하고 뜨거운 공기 때문에 목이 찢어질 것처럼 아팠다.

어쨌거나 벗어나는 데 성공했고, 잠시 숨을 돌릴 수 있었다.

“후우…. 아까 물은 왜 뿌린 건가요?”

“스콜피온은 비가 온 후에 바위에 있는 물을 마시는 거로 수분을 보충하거든요. 저희에게서 시선을 돌릴 수 있으니까요.”

내 말에 최연환은 놀란 표정을 짓고 있었다.

“대단하시네요. 저는 정말 아무 생각도 없이 시험에 지원했는데…….”

그의 말에 나는 손을 내저었다.

“전혀 그렇지 않아요. 정말 대단한 사람들이랑 같은 팀으로 활동하다 보니 폐가 되고 싶지 않아서 열심히 공부했을 뿐이에요. 약자는 약자대로 살아남는 방법이 필요하니까요.”

우리는 게이트 쪽으로 걸음을 옮기며 대화를 이어갔다.

“저는 사실 헌터라는 일을 얕보고 있었을지도 몰라요. 통신계라는 재능을 갖고 시작했으니 노력하지 않아도 남들보다 좋은 출발선에 설 수 있다고 생각했죠.”

물론 그의 생각은 정답이었다.

특수계 능력은 어떤 이유도 없이 갑자기 생겨나는 것이므로 재능이라고 말하는 게 맞았다.

실제로 특수계는 일반적인 헌터보다 좋은 대우를 받을 수 있었으며, 노력 없이도 높은 등급을 받는 게 가능했다.

“그런데 팀장님을 보고 생각이 바뀌었어요. 이건 시험일 뿐인데 정말 목숨을 걸고 있다는 느낌이었거든요.”

“하…. 그렇게 칭찬받을 건 아닌데…….”

멋쩍게 웃어 보이자, 최연환은 고개를 저었다.

“아뇨. 정말 멋있었어요. 팀장님은 시험이 아니라, 진짜 던전인 것처럼 행동했어요. 시험에 떨어진다고 해도 팀장님을 탓하진 않을 겁니다.”

“아…….”

이제야 머릿속에 시험이라는 단어가 요동치기 시작했다.

젠장…. 결국, 목표 지점까지 가지도 못하고 돌아왔으니 일단 시험은 실격 처리되는 건가?

애초에 조를 이렇게 나누면 안 되는 거였나?

아니면 이유리가 했던 것처럼 몬스터를 쓰러뜨리는 게 맞는 걸까.

나 때문에 다른 조원들까지 시험에 떨어질 수 있다는 죄책감에 머리가 지끈거렸다.

누군가는 최선을 다해서 준비했을 시험을 내가 망쳤을지도 모른다.

“무사하셨군요!”

멀리 보이는 두 사람을 발견한 최연환이 그쪽으로 손을 흔들었다.

다행히 강주성과 이유리도 무사히 게이트로 복귀한 듯했다.

내 쪽으로 성큼성큼 다가온 이유리는 내 눈을 똑바로 올려다보며 물었다.

“정말 그 오더가 맞았나요? 거기서 스콜피온과 싸우는 걸 포기하고 돌아오는 오더가 맞냐고요.”

그녀는 애써 화를 숨기는 듯한 말투였다.

공략팀에서도 활동하고 있다는 걸 보면 어쩌면 스콜피온을 혼자서 쓰러뜨릴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게 아니더라도 쫓아내는 것 정도는 가능했을지도…….

일단은 내가 팀장이라는 포지션에 있으니 내 오더를 듣지 않는 것도 시험 점수에 영향을 미칠 건 불 보듯 뻔한 일이었다.

그러니 이유리도 어쩔 수 없이 내 말을 따른 거겠지.

“네. 만약 어느 누군가와 이런 게이트에 들어왔더라도 저는 같은 오더를 내렸을 겁니다. 제가 한 판단은 정확했다고 생각합니다. 거기서 스콜피온과 전투가 길어지면 다른 몬스터들이 모여들었을 테니까요.”

“후우…. 알겠습니다.”

그녀는 그다지 납득한 것처럼 보이지 않았지만, 물러나는 쪽을 선택했다.

우리는 시험장 밖으로 나갔고, 보고를 위해 작은 대기실로 이동했다.

보고서를 작성하고 있는 동안, 시험장 안에서 만났던 시험관이 대기실로 들어왔다.

검은색 정장을 입고 있는 그는 차가운 눈으로 우리를 훑어보더니 입을 열었다.

“지금부터 자네들에게 몇 가지 질문을 하도록 하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