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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x9999-27화 (27/176)

27화 : 승급 시험 (2)

“지원은 정보팀에서 바로 가능하지만, 제가 알아본 최현 씨의 스펙으로는 절대 D급으로 승급할 수 없을 거예요.”

너무나 단호한 그녀의 말에 던전에서보다 더 큰 정신적 대미지를 입었다.

마음의 눈물을 흘리며 고개를 저었다.

“괜찮습니다. 밑져야 본전이니까요.”

유지연 대리의 말은 내 가슴을 후벼 팠지만, 객관적으로 정확히 짚어 내고 있었다.

나는 E급 헌터들 중에서도 바닥이었으니 D급으로 올라가는 건 거의 불가능했다.

과거의 나는 뛰어난 전투 능력을 가지고 있던 것도 아니었고, 게이트 정찰에서도 특출난 활약을 보인 적이 없었다.

남들보다 내세울 것도 없으니 당연히 등급도 낮을 수밖에.

“경험은 좋은 거니까요. 제가 지원하는 걸 도와 드릴게요. 일단 지금 일이 정리된다면 말이죠.”

그렇게 말한 유지연 대리는 옆에 있는 문을 열고 정보팀 안으로 들어갔다.

내가 자초한 일이니까 어쩔 수 없지.

한껏 귀찮아 죽겠다는 표정을 지으며 나도 그녀 뒤를 따라갔다.

***

정보팀은 심심하면 한 번씩 나를 불러냈다.

일주일 동안 무려 6번.

하루 빼고는 매일같이 나를 불렀고, 그들의 질문은 딱히 복잡하거나 어렵지 않았다.

게이트 내부의 환경이나 그곳에서 내가 살아남았던 것, 그리고 다른 몬스터에 관한 것들을 물어봤다.

나는 데스나이트를 피해서 숨어 살았다고 말해 뒀으니 딱히 몬스터에 관해 어려운 질문을 받진 않았다.

대부분 게이트 환경에 관한 질문이었고, 정글 필드였던 게이트 내부에 대해서도 쉽게 대답할 수 있었다.

“드디어 끝났네요.”

“하아…. 그러게요.”

자연스럽게 유지연 대리를 만나는 일도 많았고, 그녀와도 조금 친해진 느낌이었다.

“시험 준비는 잘되어 가나요?”

“아…. 네. 덕분에 열심히 준비하고 있습니다.”

유지연 대리는 생각보다 좋은 사람이었다.

그녀는 날 위해서 필기시험 문제집과 실기시험 영상을 잔뜩 빌려줬다.

그저 순수한 동정에 불과할지 모르지만, 그녀의 배려 덕분에 편하게 준비하고 있는 건 사실이었다.

“잘되면 좋겠네요. 공략 쪽으로 승급하는 건 어렵겠지만, 정찰 쪽은 열심히 하시면 될 수도 있어요.”

“감사합니다.”

나는 그녀를 보고 빙긋 미소를 지었다.

공략 쪽은 다른 팀원과의 소통, 호흡, 전투에 대한 여러 가지 평가 요소가 있지만, 정찰은 대부분 정해진 가이드가 존재한다.

상황에 따른 판단과 주변 환경에서 정확한 정보만 얻어낼 수 있다면 높은 점수를 받을 수 있다는 의미다.

“고생하셨어요. 합격자 명단에서 뵐 수 있으면 좋겠네요.”

유지연 대리가 내미는 손을 잡고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그녀와의 짧은 인사를 뒤로하고 협회 밖으로 나왔다.

최근에는 필기시험 공부를 하느라 집에만 있었고, 간만에 석준이에게 연락이 와서 만나기로 했다.

“뭐야, 기다리고 있었어?”

“어차피 나도 지원서 작성하려면 와야 하니까.”

석준의 말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지원서?”

“나도 다시 헌터 일 해 보려고.”

“뭐……?!”

멋쩍게 웃으며 쑥스러워하는 석준을 보고 나는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지 몰랐다.

내심 석준이와 다시 일할 수 있다는 게 기뻤지만, 그와 동시에 걱정도 됐다.

마음이 여린 석준이는 그때 있었던 일이 상당히 큰 트라우마였는지,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몸이 벌벌 떨리는 걸 봤으니까.

“괜찮아? 할 수 있어?”

“해 보려고. 공장에서 매일 같은 일 하면서 시간 버리는 것보다는 이쪽이 좀 더 나은 거 같으니까.”

석준의 말에 나는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나와 달리 ‘통신계’라는 재능을 갖고 있었다.

아니, 그 외에도 기본적인 헌터의 능력도 나보다 뛰어났다.

2년이나 쉬었기 때문에 석준이 다시 헌터 일을 하려면 시험을 통과해야만 했고, 나와 같은 시험에 지원한 것이다.

“네가 승급 시험에 지원한다는 얘기를 듣고 나니까 기분이 묘하더라. 항상 겁 많고 움츠려 있던 네가 꾸준히 나아가고 있다는 게 기쁘기도 하고, 너보다 좋은 조건을 갖고 있으면서도 숨어서 피하려고만 하는 나 자신이 한심하기도 하고…….”

“야, 그건…….”

“솔직하게 말해서 도망치고 싶지 않았어. 너한테 지고 싶지 않았어.”

석준은 내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말하고 있었다.

그 눈에는 나를 제대로 봐 주고 있다는 믿음이 담겨 있었다.

그는 내게 소중한 친구이면서도 언제나 강하게 등을 떠미는 라이벌이다.

“좋아. 누가 높은 점수로 통과하는지 내기다.”

“진 사람은 술 사기?”

“적금 깨 놔라. 양주 마실 거니까.”

***

승급 시험은 크게 필기와 실기로 나누어진다.

필기를 통과해야만 실기를 볼 수 있는 구조였고, 다행히 나와 석준은 무난하게 필기시험을 통과할 수 있었다.

애초에 필기시험은 암기만 하면 대부분 맞출 수 있는 문제니까.

“후우…. 떨지 마라, 최현.”

“…폰 진동 오는 줄 알았거든? 너야말로 그만 좀 떨어.”

“추… 추워서 그래!”

실기 시험은 게이트 내부의 모습을 그대로 옮겨 둔 시험장에서 진행한다.

몬스터의 역할을 시험관들이 하며 헌터들의 모습을 관찰해서 점수를 매긴다.

참고로 저번 D급 승급 시험에 지원한 헌터는 1000명이 넘었지만, 통과한 사람은 10명도 되지 않았다고 한다.

낮은 등급일수록 시험이 까다롭고 통과하기 어려운데, 그건 목숨과 직관 되기 때문이다.

아직 미숙한 헌터가 대부분이니 무턱대고 D급이 되어 버리면 던전에서 목숨을 잃는 경우가 허다했다.

그러니 승급 시험이 더욱 까다로울 수밖에.

“그럼 정해진 팀으로 이동해서 각자 팀원들을 확인할 수 있도록.”

시험관의 말에 따라 내가 배정된 13조로 이동했고, 그곳에 있는 다른 세 사람을 발견했다.

살짝 고개를 숙여서 인사를 건넸다.

어색한 분위기 속에서 다들 고개만 숙이고 있었다.

나는 정찰팀으로 지원했기에 여기 있는 세 사람도 정찰팀으로 시험을 보는 사람들이었다.

나이는 나랑 비슷하거나 조금 어려 보였다.

“안녕하세요. 저는 ‘최연환’이라고 합니다. 통신계 헌터고, E급이 된 지 1년 정도 됐어요.”

“아…. 저는 최현이에요. 헌터 경력은 제법 되지만, 실력이 없어서…. 하하.”

멋쩍게 웃으며 머리를 긁적이자, 옆에 있던 다른 사람도 입을 열었다.

“전 ‘강주성’입니다.”

무뚝뚝한 표정의 그는 간단하게 이름만 말하고 한 걸음 물러났다.

“하여간 붙임성 없긴. 안녕하세요! 저는 ‘이유리’라고 해요. 주성이랑은 어렸을 때부터 친구인데 같은 조가 됐네요.”

“두 사람은 원래 친구였군요.”

나도 기왕이면 석준이랑 같은 팀이 되길 바랐지만, 사람이 많다 보니 확률이 낮았다.

그래서 같은 조가 된 두 사람이 썩 부러웠다.

“일단 조장을 뽑아야 하는데…. 가장 연상이신 현이 형이 하시는 게 어떨까요?”

최연환의 말에 내가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자… 잠깐만요. 어째서 제가 형이라고 단정 지으시는 거죠?”

“저는 24살, 이 두 사람은 23살이라는데… 형 아니신가요?”

젠장…. 내가 가장 연상이잖아.

물론 그럴 수 있지만, 조금의 의심도 없이 형일 거라고 단정 짓는 것부터 슬픈 일이었다.

내 얼굴이 그렇게 삭았나.

“…그럼 일단 제가 조장을 맡도록 하겠습니다.”

강주성과 이유리도 딱히 이견은 없어 보였다.

애초에 조장이라는 건 귀찮고 번거로운 직책이었으며, 문제가 발생하면 더 큰 타격을 입는 자리니 당연히 피하고 싶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진급 시험에서 조장을 맡는 것도 썩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실수하면 큰 점수를 깎이지만, 잘해내면 그만큼 가산점이 존재하니까.

“1조부터 시험을 시작하겠습니다. 다른 조들은 시험장 밖에서 대기해 주세요.”

시험장 안에 들어가기 전까지는 어떤 환경인지 알 수 없다.

시험장에 발을 들여놓는 순간부터 우리는 시험관들에게 테스트받게 된다.

“미리 역할을 나눠 놓는 게 좋을 거 같아요.”

내 말에 다른 세 사람의 시선이 내게로 집중됐다.

“혹시 정찰팀으로 활동하신 분 계신가요?”

질문에 손을 든 건 이유리와 강주성이었다.

“저희는 같은 팀에 속해 있었어요. 저는 후방이었고, 주성이는 선봉.”

반가운 얘기였다.

이미 같이 활동을 한 사람이 있으면 서로 호흡을 맞추기도 좋으니까.

정찰팀 모두가 포지션이나 역할을 정해 두는 건 아니었지만, 암묵적으로 활동을 할 때 존재하는 건 사실이었다.

시야가 넓고 발이 빠른 사람은 정찰팀의 안전을 위해 조금 더 빨리 움직여서 주변을 살핀다.

감각이 예민하고 감이 좋을수록 선봉의 역할에 걸맞다.

“그럼 강주성 씨에게 선봉을 부탁드려도 될까요?”

그는 대답하지 않은 채 고개만 끄덕였다.

일단 어떤 의뢰를 목적으로 하는지에 따라 움직이는 방향도 달라질 테니, 선봉과 조장만 정해 두는 게 나았다.

두 역할은 언제나 필요한 역할이니까.

“…그건……?”

허리에 차고 있는 검을 보고 고개를 갸웃거리자, 그녀가 대답했다.

“아. 저는 공략팀에서도 활동하고 있거든요.”

그녀처럼 정찰팀과 공략팀 양쪽에서 활동하는 헌터도 적지 않다.

하지만 그건 상당히 고된 일이라서 다른 헌터들은 그다지 반기지 않는다.

체력이 떨어진 헌터는 팀 전체에 피해를 줄 수 있으니까.

물론 완벽하게 양쪽을 해낸다면 그만큼 좋은 일은 없지만.

“아, 여기 있었네.”

멀리서 날 발견하고 다가오는 석준이 보였다.

잠시 조원들에게서 멀어진 나는 석준이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난 20조. 아직 한참 남았지.”

“내가 먼저네.”

“그런데, 너희 조는 나이가 어려 보이는데?”

석준이의 말대로였다.

20대 초반은 거의 경험이 없는 헌터가 많아서 한참 동안 E급 헌터로 활동하다가 20대 중후반에 D급 진급 시험을 보는 게 일반적이니까.

주변에 있는 다른 헌터들만 봐도 우리 조가 어리다는 건 알 수 있었다.

“뭐, 괜찮겠지. 나이랑 경력만 많아서 꼰대처럼 자존심 센 사람이랑 하는 것보다 나을지도 몰라.”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적어도 지금까지 다른 조원들과 얘기해 봤을 때 이상한 느낌은 받지 못했다.

실력도 중요하지만, 다른 조원과 어울리는 것도 시험 평가의 일부였다.

“너는 어차피 통신계라서 큰 문제 없으면 합격 아니야?”

“하아…. 그랬으면 좋겠네.”

23살 때 D급 헌터가 된 석준이는 항상 내 동경의 대상이었다.

그런 석준이가 이렇게 떨고 있는 걸 보니 어쩐지 씁쓸한 기분이었다.

2년이라는 시간은 그렇게 길었다.

“아무튼, 꼭 둘 다 합격하자.”

“당연하지. 힘내자!”

석준이랑 이야기하는 중에 시험장에서 나온 시험관이 주변을 둘러보곤 소리쳤다.

“13조는 준비해 주세요! 바로 다음에 시작합니다!”

“아. 나 가봐야겠다.”

석준이는 내 어깨를 툭툭 두들겨 줬고 나는 그에게 빙긋 웃어 보였다.

첫 진급 시험은 묵직한 긴장감으로 나를 짓누르고 있었다.

다른 조원들도 내 뒤쪽으로 모였고, 이내 시험관이 안쪽에서 문을 열었다.

“13조 들어오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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