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화 : 도심 속 헌터 (2)
“최현? 진짜 최현이야?”
“이석준?!”
아무리 감정을 지우려고 해도 석준이의 얼굴을 보는 순간,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나왔다.
반가움과 기쁨, 그리고 안도감.
세 사람 중에서 범인이 없길 바랐지만, 그보다도 세 사람이 죽지 않고 살아 있기를 가장 바랐다.
우리는 한동안 서로를 껴안은 채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눈물을 흘렸다.
“너… 너 이 자식! 어떻게 된 거야?! 살아 있었으면 연락을 했어야지!”
눈물 콧물 범벅이 된 석준이는 내 얼굴을 손으로 감싸며 믿기지 않는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이내 주변 다른 환자들의 시선이 느껴졌고, 하는 수 없이 우린 병원 밖으로 장소를 옮겼다.
차가운 바람을 쐬니까 아까보다 기분이 나아졌다.
“게이트에 갇혔었어. 어떻게 된 건지 모르겠는데, 게이트 안에 갇혀서 출구로도 도저히 나올 수 없는 상황이었어.”
“안에서 살아 있었구나. 우리가 나오고 나서 입구가 사라졌는데 아마 그때 출구도 없어진 게 아닐까.”
석준이는 내 말에 조금도 의심하지 않았다.
그에겐 미안하지만, 지금 당장 모든 걸 말할 수는 없었다.
“잠깐만! 민웅이 형한테도 연락하자.”
석준이가 폰을 꺼내서 번호를 누르려는 걸 손으로 막았다.
“…? 왜?”
“아직은 말할 때가 아니야. 미안. 개인적인 사정이 있어서 나중에 내가 따로 연락할게.”
석준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이었지만, 순순히 폰을 집어넣었다.
“뭐, 네가 그렇다면 뭔가 이유가 있겠지만, 다른 사람도 아니고 민웅이 형이야. 꼭 연락해라. 네 걱정을 얼마나 많이 하셨는데.”
“알았어. 정리되면 직접 찾아가 봐야지. 그런데 하성이 형은?”
사실 세 사람 중 가장 궁금했던 사람은 하성이 형이었다.
나를 제일 많이 챙겨 줬고, 내가 가장 의지했던 사람이기에 던전 안에서도 궁금했었다.
그런데 내 물음에도 석준이는 고개를 떨군 채 가만히 있을 뿐이었다.
“뭐야? 설마… 아니지? 아니잖아.”
“…….”
“아니잖아! 거짓말하지 마!”
소리를 버럭 지른 나는 주먹을 꽉 움켜쥐고 다시 자리에 주저앉았다.
“그날 실종된 사람도 모두 사망 처리됐으니 총 5명이 죽었어. 우리가 흩어지고 나서 다시 출구로 모이는데, 마지막에 달려오던 하성이 형이 몬스터한테…….”
“…….”
난 석준이의 말에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도저히 믿을 수 없었다.
왜 하필 다른 사람도 아닌, 하성이 형이 그렇게 돼야 했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럼… 형수님은? 아이는?”
잔뜩 표정을 찡그린 석준은 자기 입으로 말하기 힘들어 보였다.
꾸역꾸역 한숨을 토해 내며 그는 조심스럽게 다시 말했다.
“하성이 형 그렇게 된 거 듣고 아이 유산됐어.”
“씨발…! 으아아악! 씨바아알!”
누구를 향한 욕은 아니었다.
그저 욕이라도 하지 않으면 참을 수 없을 정도로 속이 답답했다.
매일 초음파 사진을 보여 주면서 자랑했던 사람인데…….
그렇게 기대하고 있었는데…. 왜…. 왜…. 왜…….
한동안 석준이와 나는 아무런 대화도 하지 않고 가만히 앉아 있었다.
“그래도 네가 살아 있어서 다행이야. 진짜로…. 네 기분은 그렇지 않겠지만, 나는 지금 너무나 감사하고 고마워.”
“…미안해.”
“네가 미안할 게 뭐가 있냐?!”
나도 내가 왜 미안하다는 말을 했는지 잘 모르겠다.
하지만 뭔가 그 말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다행이다…. 진짜로 다행이다.”
그렇게 되뇌는 석준의 모습에 머리를 쓸어 올렸다.
“넌 어떻게 지냈어?”
“아…. 그때 이후로 헌터는 때려치웠다. 아무래도 나랑 잘 안 맞는 거 같아. 공장에 취직해서 생산직으로 일하고 있어. 많이 벌지는 못해.”
“그런데 매달 율이한테 돈까지 보내 준 거냐?”
내 말에 석준이는 깜짝 놀라서 나를 바라봤다.
“어떻게 알았어?!”
“그럼 모르겠냐? 율이가 다 말해 줬어.”
“하하…. 푼돈이야. 공장일 해서 얼마나 벌겠냐. 그냥 나 스스로 내가 편해지고 싶어서 한 거니까 고마워하거나 미안해하지 않아도 돼.”
“그런 게 어딨어.”
벤치에서 일어난 나는 석준이를 향해 고개를 푹 숙였다.
“진짜…. 진짜로 고맙다. 덕분에 율이가 지금까지 잘 버텨준 거 같아.”
“야, 왜 그래! 그런 거 하지 마. 율이 녀석은 원래 강한 애잖아. 나중에 밥이나 한 끼 사면 돼.”
“그래, 내가 끝내주는 거로 사 줄게.”
석준이는 품에서 봉투 하나를 꺼냈고, 나는 급히 고개를 저었다.
“진짜 이제 괜찮아. 안 줘도 돼.”
“네가 없었어도 어차피 율이 주려고 했던 돈이야. 이제 막 던전에서 나와서 돈도 없잖아. 필요한 곳에 써.”
석준이는 억지로 내 주머니에 돈을 넣어 주려고 했지만, 이번만큼은 한사코 거절했다.
정말로 그 돈은 받을 게 아니었으니까.
내가 돈이 없었어도 거절했겠지만, 지금은 충분히 돈이 있다.
“나 더 미안하게 만들지 마. 이미 너한테 너무나 고맙고 미안해서 죽을 지경이거든.”
“야, 그런 무서운 소리 하지 마. 죽는다는 말 금지다.”
“그게 뭐야.”
우린 동시에 웃음 터뜨렸다.
아주 오래전에 느껴 봤던 편안한 웃음이었다.
이런 석준이가 나를 배신했다고 생각하고 싶진 않지만, 세상은 항상 그렇게 뒤통수를 친다.
그저 진심으로 석준이가 아니길 기도할 뿐이었다.
***
다시 폰을 개통하고 먼저 유지한 아저씨에게 통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아…. 아저씨! 저예요.”
“현이? 현이구나! 동생은 잘 지내?”
아저씨의 입에서 동생 안부부터 나와서 조금 놀랐다.
잠깐 흘러가듯 말했는데 아저씨는 다 기억하고 있었구나.
“네, 다행히 잘 지내고 있었어요. 뭐, 쪽팔리게 울고불고하면서 난리였죠.”
“하하하하! 진짜 다행이네. 전화로 얘기하는 건 길어지니까, 이참에 우리 길드에 와 볼래?”
“네? 그래도 되나요?”
“당연히 되지! 주소 보내 줄게. 이쪽으로 와.”
솔직하게 아저씨의 초대는 매우 반가웠다.
그저께 헤어지고 얼굴을 못 본 건 어제뿐인데 어쩐지 너무나 그립게 느껴졌다.
다행히 아저씨가 보내 준 위치는 율이 병원과 그리 멀지 않았다.
택시를 타고 10분 정도 이동하자, 고급스러운 빌딩이 나를 반겨 주었다.
신월 길드의 아이콘인 초승달 모양이 입구에 크게 그려져 있었고, 한자로 ‘新月’이라고 적혀 있었다.
안으로 들어가자 정장을 입고 있던 여자가 나를 보고 빙긋 미소를 지었다.
“어서 오세요. 어떻게 오셨나요?”
“아…. 유지한 씨랑 약속이 있어서 찾아왔는데…….”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그녀는 어딘가에 전화를 걸더니 잠시 무언가 대화를 나눴다.
로비는 아이보리색의 벽과 하얀색 타일로 상당히 비싸 보이는 느낌을 풍기고 있었다.
하긴, 명색이 3위 길드인데 이 정도는 당연한가.
새삼 내가 얼마나 굉장한 사람들이랑 있었는지 느껴졌다.
“현아!”
옆쪽 엘리베이터에서 내린, 유지한 아저씨가 나를 보자마자 환하게 웃으며 손을 들어 보였다.
멀끔하게 정장을 차려입고 수염도 깔끔하게 정리한 아저씨는 마치 다른 사람처럼 보였다.
“아저씨! 오랜만이네요.”
“우리 그저께 헤어졌거든? 그래도 반갑네. 여기까지 오느라 고생했어.”
아저씨는 자연스럽게 내 어깨에 팔을 올리고 엘리베이터로 나를 이끌었다.
“2년 만에 나와 본 바깥은 어때?”
“글쎄요. 군대 다시 갔다 온 기분이네요.”
내 말에 웃음을 터트린 아저씨는 고개를 저었다.
“그건 정말 잔인한 표현이군.”
“다른 사람들도 여기 있나요?”
“나는 길드 간부라 여기가 내 직장이지만, 다른 녀석들은 그렇지 않거든. 지금 있는 건 신예뿐인가.”
띠잉-
4층에서 엘리베이터가 멈췄고, 아저씨는 나를 이끌고 밖으로 나왔다.
“…정말 여기 길드 맞아요?”
“뭐, 보통 처음 온 사람들은 그런 반응이야. 아무래도 정상적인 곳은 아니지.”
넓은 공간 가운데엔 큰 바가 놓여 있었고, 정말 술집처럼 여러 개의 테이블과 다트 게임기, 오락기 등이 보였다.
헌터 일을 하는 길드라곤 도저히 믿기지 않을 풍경이었다.
소파에 누워서 자는 사람도 보였고, 큼지막한 티브이로 영화를 감상하는 사람도 있었다.
“정상적인 분위기가 아니긴 하지만, 난 이런 분위기도 제법 좋거든.”
“저도 딱딱한 분위기보단 이쪽이 취향이네요.”
잠시 주변을 둘러보며 안쪽으로 걸어가다가 낯익은 얼굴이 보였다.
“뭐야! 웬일이야?!”
반색하며 자리에서 일어난 이신예가 나를 보고 환하게 미소를 지었다.
“우리 길드 들어오기로 한 거야?”
“아…. 그거 아니고…….”
“자, 일단 앉아.”
그녀의 입에서 나는 술 냄새에 흠칫 놀라서 물었다.
“지금 아직 오후 1시밖에 안 됐는데 술을 얼마나…….”
“자! 마시자!”
“우웁!”
강제로 입에 맥주잔을 들이부었고 반은 옆으로 흘러서 옷이 젖었다.
“아…. 말 안 했던가. 신예는 우리 길드에서 가장 술을 좋아하는 녀석이야.”
“쿨럭쿨럭…….”
오자마자 맥주를 원샷한 나는 다급히 그녀에게서 벗어나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났다.
하지만 평소보다 몇 배는 강한 그녀의 힘이 나를 다시 자리에 앉혔고, 어느새 다시 따라져 있는 맥주잔이 입으로 돌진해 오는 게 보였다.
“도… 도와……!”
“미안. 3잔 정도 더 마시면 보내 줄 거야.”
나는 처음으로 던전이 아닌 곳에선 아저씨가 평범한 사람이 된다는 걸 깨달았다.
정확하게 아저씨의 말처럼 3잔을 더 마시고 나서 이신예는 나를 놓아줬다.
“괜찮아? 던전 밖에선 내가 이렇게 힘이 없거든.”
“후우…. 안 그래도 전 술 많이 못 마시는데… 빈속에…….”
“하하하. 맥주는 곡물이잖아. 밥 먹은 셈 쳐.”
하마터면 욱해서 아저씨를 때릴 뻔했다.
확실히 길드 분위기는 내가 생각한 것과 많이 달랐다.
헌터 협회는 그저 사무적인 대화와 간단한 인사만이 오고 갔기 때문에 더욱 대조적인 느낌이었다.
아저씨는 이내 나를 데리고 다시 엘리베이터에 올라탔다.
“어…. 어디 가는 거예요?”
“1층은 아까 봤듯이 로비고, 2층은 길드 사무실, 그리고 3층, 4층은 길드원 편의시설, 그리고 5층은…….”
띵-
5층에 도착하자 아저씨가 먼저 내렸고, 그를 따라서 내리자 ‘길드 마스터’라는 글자가 보였다.
“아까 봤듯이 3, 4층은 술집이라서 미성년자가 들어오는 건 좀 그렇거든. 그래서 길드 마스터 녀석은 여기 유배…. 아니, 여기서 업무를 보고 있지.”
“방금…. 유배라고…….”
“자잘한 건 잊어버리자.”
삑-
아저씨가 카드를 보안 패드에 갖다 대자, 문이 자동으로 열렸다.
길드 마스터 방이라고 해도 커다란 테이블과 의자만이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마스터, 손님 데리고 왔어.”
“…….”
“마스터?”
의자를 돌려서 앉아 있는 그녀가 흠칫 놀라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래, 업무 보고해.”
“아니…. 손님 데리고 왔다고! 또 졸고 있었지?!”
아저씨의 말에 그녀가 몸을 휙 돌려 책상 밖으로 걸어 나왔다.
“졸린 걸 어떡하라고! 할 것도 없고! 나는 4층도 못 가게 하고! 이럴 거면 집에 가게 해 줘!”
“길드 마스터면 길드를 지켜야지!”
잠깐의 대화만으로 이 길드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금방 파악할 수 있었다.
이내 그녀의 시선이 내 쪽으로 돌아왔다.
“아하. 당신이 최현이라는 사람이군요.”
그녀는 묘하게 음흉한 미소로 나를 훑어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