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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x9999-21화 (21/176)

21화 : 도심 속 헌터 (1)

던전이 워낙 높아서 계단을 통해 내려가려면 굉장히 오랜 시간이 필요했다.

다행히 10층에 외부로 나가는 출입구가 있어서, 거기서부턴 1층까지 연결된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는 게 가능했다.

“으으…. 진짜 지쳤다.”

“몸에 피 냄새랑 땀 냄새가 배 버린 거 같아.”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곡소리는 우리 팀만의 것이 아니었다.

다른 팀도 상황은 비슷했고, 다들 죽다 살아온 표정으로 계단을 내려가고 있었다.

13층에서 10층까지 가려면 상당히 많은 계단을 내려가야만 했다.

“이제 같은 팀으로서는 이별이네.”

“…그렇네요.”

“던전에서 얻은 아이템은 제대로 정산해서 보내줄 테니까, 내가 알려준 번호로 연락해.”

“감사합니다.”

이곳에서만 잡은 몬스터의 수가 어마어마했기 때문에 여럿이서 나눈다고 해도 제법 기대가 되는 액수였다.

그러곤 이내 유지한 아저씨가 내 어깨에 손을 올리며 말했다.

“팀은 팀이고, 언제든지 필요하면 연락해. 저번에 내가 제안한 것도 고민해 보고. 부담은 갖지 말고 편하게 생각해 봐.”

“네. 정말 감사해요. 이미 너무 많은 도움을 받은걸요.”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게이트에 갇혀 있었던 시간은 내게 너무나 괴로운 시간이었지만, 13층에서 나온 것에 대해선 정말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이곳에서 유지한 아저씨를 만나고, 이 팀원들을 만난 덕분에 전과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성장했으니까.

말로 전하기엔 턱없이 부족할 정도로 감사한 일이었다.

“아마 금방 다시 보게 될걸요?”

“그게 무슨 소리야?”

옆으로 다가온 민혁의 말에 아저씨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현이는 실력도 좋고 초월 헌터니까 마음만 먹으면 금방 여기까지 올라올 거예요.”

“하긴…. 그건 그렇네.”

두 사람의 말에 멋쩍게 웃으며 머리를 긁적였다.

“저를 너무 과대평가해 주시는데… 그렇지 않아요.”

“아니, 그건 민혁이 말이 맞아. 너 생각보다 재능 있으니까.”

이신예가 옆으로 지나가며 중얼거리듯 말했다.

다른 사람이 아닌, 그녀가 말해 주는 것은 조금 다르게 와닿았다.

절대 빈말을 못 하는 사람이라는 걸 알기에 더 기분이 좋았다.

“그렇게 생각하는 것도 사실이고, 개인적으로는 정말 그렇게 됐으면 좋겠군.”

심윤성 아저씨가 빙긋 웃으며 말했다.

사실 아직 전혀 실감이 나질 않았다.

마치 처음부터 내가 있어야 할 곳은 여기인 것 같고, 이곳을 벗어나는 게 불안하게만 느껴졌다.

“아니, 아직 약해.”

“…….”

뒤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시선을 옮기자, 여느 때와 같은 표정이 차윤지가 보였다.

하여간 여기 여자들은 하나도 귀엽지가 않다니까.

“그러니까 다시 찾아와. 더 강해질 수 있게 도와줄게.”

“윤지 씨…….”

취소다. 엄청 귀여운 것 같다.

10층으로 내려오자 계단 옆쪽으로 외부와 이어진 길이 보였다.

길게 뻗어 있는 커다란 다리를 이동하면 엘리베이터를 탈 수 있었다.

“드디어…. 던전 밖……!”

던전의 기분 나쁜 바람이 아닌, 상쾌한 바람이 내 몸을 힘껏 씻고 지나갔다.

던전과 조금 떨어진 곳에 커다란 도시가 보였고, 높은 빌딩들과 자동차들이 움직이는 걸 보고 나서야 내가 비로소 밖에 나왔다는 걸 실감했다.

커다란 엘리베이터엔 최대 20명까지 탑승할 수 있었지만, 우리는 팀원끼리만 내려갔다.

“정말…. 고생했어.”

내 머리를 헝클어뜨리는 유지한 아저씨의 손이 어느 때보다 따듯하게 느껴졌다.

“꼭 다시 보자.”

“네. 꼭이요.”

***

아래로 내려와선 유지한 아저씨가 뭔가 간단한 것들을 적은 뒤 금방 밖으로 나올 수 있었다.

짧은 인사를 나누고 큰길로 걸음을 옮기던 나는 멍하니 자리에 멈춰 섰다.

뭐부터 해야 할지 도저히 감이 오질 않았다.

일단 자취방으로 걸음을 옮겼다.

폰은 진작 방전돼서 제대로 작동도 하지 않고 있으니 집에 가서 씻고 폰도 충전한 뒤에 천천히 생각하는 게 좋…….

“어……?”

원래 내가 살고 있었던 허름한 원룸은 온데간데없었고, 그곳에는 커다란 빌딩이 들어서 있었다.

아니…! 내 짐들은?! 다 어디로 간 거야?!

한숨을 푹 내쉬곤 걸음을 돌려 병원으로 향했다.

안내 데스크로 향한 나는, 그곳에 있는 간호사에게 물었다.

“혹시 최율이라는 환자 몇 호실인가요. 아…. 여기 병원에 입원하고 있는 건 맞죠?”

머리를 하나로 묶고 있는 간호사는 내 끔찍한 차림을 훑어보더니 인상을 팍 구기며 물었다.

“환자분이랑 어떤 관계죠? 죄송한데 환자에 대한 정보는 저희가 말씀드릴 수가 없거든요.”

“제가 오빤데…. 신분증 여기…….”

“아뇨. 환자분이 직접 말해 둔 게 아니라면 저희가 말씀드릴 수 없어요.”

단호한 그녀의 말에 발걸음을 돌렸다.

미치겠군.

집은 없어지고 동생 병실이 어디인지도 모르는 상황이라니.

그때 내 눈에 공중전화가 보였다.

제발… 제발…….

찰각- 찰각-!

동전을 넣고 천천히 동생의 번호를 눌렀다.

다행히도 여동생의 번호는 아직 까먹지 않고 확실하게 외우고 있었다.

“여보세요?”

“아…. 혹시 최율 전화 맞나요?”

“네? 제가 최율인데.”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긴장이 풀렸다.

“혹시…. 오빠?”

“하하, 잘 지냈어? 지금 어디야? 나 디이엔티 병원 로비인데. 아직도 여기 병원에…….”

뚝-

어……?

뭐야…. 잠깐!

동전은 충분히 넣었는데… 설마 율이가 날 보기 싫어서 끊어 버린 건가.

그런 헛된 생각을 하고 있을 때쯤 뒤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오빠!”

허겁지겁 달려온 율이는 내 지저분한 차림은 신경도 쓰지 않고 내 품에 안겨 들었다.

“흐아아아앙! 바보야 뭐야! 왜 이제 와! 진짜 죽은 줄 알았단 말이야. 흐윽…. 흑…. 이제 혼자인 줄 알고 얼마나 무서웠는데…….”

그녀의 울음소리가 로비를 가득 채웠지만 아무도 우리에게 뭐라고 하는 사람은 없었다.

“…나 더러워. 너까지 더러워지겠다.”

“몰라! 흐극…. 흑!”

“미안…. 미안해. 정말…. 미안.”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달래줬다.

내게 딱 붙어서 연신 눈물을 흘리는 그녀를 보고 나까지 울음이 나올 것만 같았다.

품에서 한참을 울고 나서야 그녀는 조금씩 진정이 된 모양이었다.

“오빠…. 냄새나.”

“…시끄러. 그보다 우리 집은 어디 간 거야?”

“오빠가 실종됐다고 처리된 다음에 헌터 협회에서 보상금이랑 보험금이 나왔어. 그런데… 내가… 병원비로…….”

다시 울먹거리는 율이를 보고 황급히 손을 내저었다.

“아냐, 아냐! 괜찮아. 율이 잘못 아니니까 울지 마.”

힘겹게 눈물을 참아 낸 그녀가 고개를 끄덕이며 소매로 눈가를 닦아 냈다.

“원래 집주인 아줌마가 오빠 없다고 이제 방 빼라고 해서…. 짐은 내 병실에 있어.”

하긴, 어차피 짐이라고 해 봐야 우리 옷가지가 전부였다.

나머지는 옵션이었으니 병실에만 둬도 충분히 다 들어갈 것이다.

“오빠는 어떻게 된 거야?! 정말 죽은 줄 알았잖아!”

“하하…. 나도 내가 죽을 줄 알았어. 어떻게든 살아서 왔지만.”

“…오빠.”

“응?”

“일단 씻고 오는 게 좋겠어.”

코를 손으로 막는 율이를 보며 씁쓸하게 웃어 보였다.

“심각해?”

“많이…….”

율이는 품에서 통장과 카드를 내게 건네주었다.

“내가 거의 다 써서 얼마 남지 않았지만… 이거라도 오빠에게 돌려줄게. 석준 오빠가 조금씩 매달 돈을 보태 줬어.”

“뭐? 석준이가?”

“응…. 가끔 찾아와서 나 잘 지내는지도 봐주고…….”

“…그랬구나. 일단 씻고 정신 좀 차리고 올 테니까, 병실에서 기다리고 있어.”

율이와 대화를 마치고 밖으로 나왔다.

석준이 녀석이 그 후로 계속 돈을 보내왔다는 것에 놀랄 수밖에 없었다.

하긴… 원래 그런 좋은 녀석이었으니까.

통장에 얼마가 남았는지는 크게 중요하지 않았다.

내 인벤토리에 있는 것들을 팔고 유지한 아저씨가 정산을 해 주는 걸 합치면 상당히 큰 금액이 될 테니까.

뭐, 일단은 당장 쓸 돈만 있으면 되지.

대충 눈에 보이는 옷가게에 들어가서 편한 옷을 두 벌 정도 사고 바로 근처 목욕탕으로 향했다.

아무래도 원래 입고 있던 옷은 버리는 게 좋겠지……?

아주아주 오래간만에 뜨거운 물로 샤워를 하고 탕에 몸을 눕혔다.

“하아…….”

절로 신음이 나올 정도로 몸의 근육들이 풀어지는 느낌이었다.

구석구석까지 밴 냄새들이 조금씩 씻겨 나가는 듯한 감각은 형용할 수 없을 정도로 상쾌했다.

먼저 정산을 하고 아이템을 판 뒤에 작은 집이라도 구하는 게 좋겠다.

제대로 정리를 하고 나면 나중에 이사한다고 해도, 당장 지낼 곳이 필요했으니까.

그보다…. 진짜로…. 좋네…. 목욕탕…….

온몸이 물에 녹아서 퍼져 나가는 듯했다.

지금만큼은 내게 칭찬해도 되겠지.

고생했다, 최현. 정말…. 정말 고생했다.

눈물이 흘러나와서 서둘러 탕의 물로 세수를 했다.

***

“음…. 좋아. 이제 좀 사람 같다.”

“…너 오빠한테 말이 조금 심한 거 같은데.”

“심했던 건 아까 오빠 모습이었지. 거지도 그 정도는 아니겠다.”

율이의 말에 나는 반박하지 못하고 입을 다물었다.

“그래서, 오빠는 지금까지 어디 있었는데?”

율이에게는 내가 겪은 일에 대해 사실대로 얘기해 줘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굳이 내가 겪었던 안 좋은 일들까지 율이가 알게 할 필요는 없었다.

아마 착해 빠진 이 녀석은 내가 복수하겠다고 나서면 죽어도 막을 테니까.

“게이트 공략 중에 그곳에 갇혀 버렸어. 운이 좋아서 숨어 지내다가 출구가 열려서 이제야 나온 거야.”

“그랬구나…. 다행이다. 난 진짜로 오빠가 잘못된 줄 알아서 얼마나 무서웠는지 알아?! 나 혼자 남은 줄 알았다고.”

훌쩍거리는 율이를 보고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어 줬다.

율이는 강하다.

자신과 비슷한 또래들에 비해선 강하지만, 결국, 율이는 평범한 여자애다.

아마 반대로 율이가 갑자기 사라졌다고 해도 나 역시 무너지고 말았을 것이다.

“이제 괜찮아. 이번에 던전에서 돈도 잔뜩 벌어 왔어.”

“정말?!”

“그래. 율이 병원도 큰 데로 옮기자. 집도 둘이 살기 괜찮은 곳으로 구하고.”

율이의 눈이 다시 반짝이는 걸 보고 피식 웃음이 나왔다.

율이가 강하다고 생각했던 건 어쩌면 내 자기 위안일 뿐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녀를 두고 혼자서 던전에서 2년이란 시간을 보냈다는 죄악감을 씻기 위한 변명.

“오빠.”

율이의 차가운 손이 내 손 위를 감쌌다.

“고마워. 돌아와 줘서…. 진짜로 고마워.”

“응…. 나도…. 기다리고 있어 줘서 고마워.”

우린 부모님 없이 둘이서 자라 왔다.

그렇기에 서로를 이해할 수 있는 건 오직 서로뿐이다.

내가 율이를 지켜 주고 싶은 만큼, 율이도 나를 지켜 주고 싶을 거다.

그러니까 나는 더 강해지고 싶다.

“아, 폰 충전해 뒀어. 그런데 이 폰 2년이나 지난 건데…. 유행 너무 못 타는 거 아니야?”

“시비 거는 거냐?”

스마트폰을 켜자 한동안 톡이 계속 와서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대부분 광고였지만…….

“아…. 요금을 안 내서 끊겨 버린 건가. 잠깐 전화 좀 하고 올게.”

폰을 들고 1층으로 내려가서 다시 공중전화로 향했다.

동전을 넣고 폰에 있는 연락처에서 민웅이 형 번호를 찾았다.

번호를 하나씩 누르다가 이내 수화기를 내려놓았다.

딸랑-딸랑.

그래, 아직 아무것도 알 수 없다.

정말 낮은 가능성이라고 해도 같은 팀원 중에서 나를 찌른 범인이 있을지도 모른다.

섣불리 움직이는 건 좋지 않다.

“어…? 최… 현?”

뒤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침을 꿀꺽 삼키며 고개를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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