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화 : 던전 생존기 (4)
더 이상 유지한 아저씨에게는 숨길 수 없었다.
게이트에서 있었던 일을 하나씩 아저씨에게 말해줄 때마다, 아저씨는 놀란 표정으로 멍하니 나를 바라봤다.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나라도 믿기 힘들 것이다.
웬만하면 숨기고 싶었지만, 몬스터에게 베이스캠프까지 기습을 받은 상황에서 의심스러운 나를 데리고 있는 건 힘들 것이다.
나 역시 도와준 사람들에게 불편함을 주고 싶지 않았기에, 다른 사람에게 말하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이야기했다.
“하아…. 좋아. 네 말이 모두 사실이라고 치자. 하지만 적어도 믿을 수 있는 근거는 보여 줘야지.”
“제 초월 능력 중 ‘인벤토리’라는 게 있어요. 말 그대로 게임 속에서 가방으로 쓰는 거죠.”
그렇게 말한 나는 인벤토리에서 블루 스톤과 네이비 스톤을 모두 꺼냈다.
“……!”
아무것도 없던 곳에 갑자기 물건들이 튀어나오자 깜짝 놀란 유지한 아저씨는 나와 스톤들을 번갈아 봤다.
이런 허름한 차림의 내가 블루 스톤과 네이비 스톤을 가지고 있다는 건 아무래도 내 이야기에 큰 힘을 실어줄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믿기 힘드시다면 저를 한번 죽여 보시는 것도 괜찮아요.”
“아… 아니, 진정해. 믿을 테니까.”
그렇게 말했지만, 그는 여전히 이 상황이 좀처럼 와닿지 않는 모양이었다.
초월 헌터들의 능력은 모두 겹치지 않고 개성 있었지만, 내 능력이 독특한 건 사실이다.
아이템을 다시 인벤토리에 집어넣은 뒤 아저씨에게 말했다.
“아까도 말했지만, 게이트에서 절 죽이고 검을 훔쳐 간 놈을 잡기 전까진 제가 살아 있다는 게 알려지는 걸 원치 않아요. 그러니까…….”
“비밀로 해 달라는 거지? 내가 굳이 떠들고 다니진 않겠지만, 내일 보급팀이랑 같이 내려가면 어떻게든 협회에 알려지긴 할 거야. 1년 반이나 지나서 실종됐던 헌터가 살아서 돌아온다면 보통 일이 아니니까.”
확실히 유지한 아저씨의 말처럼 그냥 넘어가긴 힘들 것이다.
“그리고 그때 일이라면 나도 기억하고 있어.”
아저씨는 품에서 담배를 꺼내 입에 물었다.
라이터로 담배에 불을 붙인 그는 씁쓸한 표정을 짓곤 말을 이어 갔다.
“워낙 오래된 일이라 머릿속에서 희미해졌지만, 그때 당시에 이쪽 업계에선 엄청난 파장이 있었지. 후우…….”
아저씨가 담배 연기를 허공에 뱉어내자, 연기는 천천히 주변으로 흩어져 갔다.
“2층 게이트에서 데스나이트가 나와서 다수의 헌터가 목숨을 잃은 사건. 심지어 그 후엔 게이트 입구가 온데간데없이 사라져서 더 논란이 됐던 거로 기억한다. 살아서 나온 사람들이 게이트를 공략해 놓곤 거짓말을 한다는 얘기들이 나왔거든.”
“그래서 어떻게 됐나요?”
“서로 증거가 없었으니 루머나 도시 괴담처럼 끝났지. 그곳에서 실종된 헌터들은 공략하다 사망한 거로 처리됐고.”
아저씨는 다시 담배 연기를 길게 빨곤 손가락을 튕겨서 재를 털어 냈다.
“그럼 역시 어쩔 수 없겠네요. 돌아가면 제 이름을 그쪽에서 확인할 거고, 제가 그때 사라졌던 사람이라는 걸 알게 될 테니까요.”
물론 과거 정보를 뒤져 보면 그때 누가 내 검을 갖고 갔는지 알아내는 건 그리 어렵지 않을 것이다.
문제는 놈이 나를 피해 도망치면 찾기 힘들어진다는 점이었다.
나도 증거는 없고 내 기억만 남아 있는 상태라 공식적으로 죄를 추궁할 수 없었다.
“…뭐, 전혀 방법이 없는 건 아니야.”
“네?”
“우리 팀은 일주일 뒤에 잠시 던전을 나갈 거야. 우린 ‘신월(新月)’ 길드 소속 헌터라서 굳이 헌터 협회에 보고할 필요가 없거든. 만약 우리랑 같이 나가면 너도 협회에 보고하지 않고 나갈 수 있다는 거지.”
신월이라는 말에 흠칫 놀랄 수밖에 없었다.
길드 중에서는 손에 꼽을 정도로 유명한 네임드 길드였으니까.
확실히 여기 있는 멤버들만 봐도 평범한 길드 소속으로는 보이지 않았다.
“그게 정말인가요?!”
“그래. 하지만 일단 넌 협회 소속이니까 나중에 정식으로 다시 헌터 일을 하려면 생존 보고는 해야 해.”
나를 죽이고 도망친 놈만 찾아서 복수하고 나면 굳이 숨길 필요도 없다.
그때까지만 숨길 수 있다면…….
“좋아. 그럼 일단 다른 녀석들한테는 내가 돌려서 잘 말해둘 테니까, 걱정 안 해도 돼.”
“죄송해요. 계속 폐만 끼치는 거 같아서…….”
“뭐, 네 말대로 죽어도 다시 살아나는 능력이라면 최전방에 있어도 크게 문제가 되진 않을 거다. 그리고 초월 헌터라면 언젠가 너도 강한 몬스터들과 싸우게 될 테니, 좋은 경험이 되겠지.”
씨익, 미소를 지어 보이는 그를 보고 다시 한번 고개를 숙였다.
“감사합니다.”
“여기서 이렇게 만난 것도 운명이겠지. 일주일뿐이지만, 잘 부탁한다.”
대충 내 머리를 쓰다듬고 멀어지는 그를 보며 문득 민웅이 형이 떠올랐다.
민웅이 형도 아저씨처럼 팀을 잘 이끌어 주는 리더였고, 나도 형에게 기댔던 적이 많았으니까.
***
그 이후로 다행히 몬스터가 기습해 오는 일은 없었다.
통신계는 능력을 사용할 때마다 정신력의 소모가 컸다.
그래서 이신예라는 사람은 막사에 들어간 이후로 본 적이 없었다.
그렇게 나를 제외한 다른 네 사람이 돌아가면서 불침번을 섰다.
그리고 덕분에 나는 마음 편히 잠을 잘 수 있었다.
“일어났냐?”
눈을 뜨자 막사 앞에서 검을 품에 안고 앉아 있는 유지한 아저씨가 보였다.
그는 조금 피곤해 보이는 얼굴로 하품을 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죄송해요. 저도 같이 불침번 섰으면 좋았을 텐데.”
“그런 거로 일일이 미안해하지 않아도 돼. 어차피 네가 없었어도 우리 넷이 했을 테니까.”
“주변 정찰 마치고 왔습니다.”
“오. 수고했다.”
아침 일찍 주변을 둘러보러 갔던 민혁이 돌아왔고, 이내 차윤지와 심윤성 아저씨도 잠에서 깨어났다.
아침 식사는 간단한 인스턴트 수프를 데워서 먹었다.
게이트 안에서 자연인처럼 과일이나 동물을 사냥해 먹었기에 내게는 수프조차도 끝장나게 맛있었다.
“어제 말했던 것처럼 오늘은 베이스캠프를 뒤로 옮길 생각이다. 식사를 마치고 나면 다들 막사 정리하고 민혁이는 아까처럼 주변에 몬스터가 있는지 계속 확인해 줘. 나는 그사이에 주변에 있는 다른 팀에게 가 볼 생각이야.”
“헌터 협회 쪽에 물어보는 게 빠르지 않을까요?”
민혁의 물음에 아저씨는 고개를 저었다.
“길드 소속팀이거나, 보고하기도 전에 전멸했다면 협회에서도 모를 가능성이 커. 그리고 직접 가서 상황을 확인하는 게 나중에 대처하기도 좋고.”
“그렇군요. 알겠습니다.”
“아쉽지만 B-10 구역까지 공략하는 건 다음으로 미룬다. 어떤 상황이든 안전하게 전투를 이어 가는 게 가장 중요하니까.”
“네!”
아침 식사를 정리하고 나서 바로 다들 분주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막사를 접기 위해 안에 있던 이신예라는 사람을 깨울 수밖에 없었고, 그녀는 눈을 비비며 밖으로 나왔다.
“으응…? 누구야?”
“어제 말했던 던전 미아라는 녀석. 뭐, 사정이 있어서 다음 주까지 우리랑 같이 있을 거라던데.”
막 잠에서 깬 그녀는 휘청거리며 제대로 서 있지도 못했지만, 노골적으로 나를 노려봤다.
그녀의 헝클어진 머리카락은 놀라울 정도로 새하얬고, 피부 역시 그와 비슷하게 하얬다.
최전선에서 싸우는 헌터라는 이미지와는 전혀 딴판이었다.
심지어 키도 작고 마른 체형이라 이곳과 이질감이 느껴졌다.
“아무리 봐도 헌터 같진 않은데…. 대장이 결정한 일이라면 딱히 반대할 생각은 없지만.”
“하하…….”
멋쩍게 웃은 나는 고개를 돌렸다.
그런 뒤 심윤성 아저씨를 도와서 막사를 하나씩 접기 시작했다.
내심 다른 팀원들이 나를 이상하게 볼 것 같아 걱정했는데, 아저씨가 말한 것처럼 크게 문제는 없었다.
다른 팀원들은 대장인 유지한 아저씨에 대한 신뢰 덕분인지 그의 결정에 토를 달지 않았다.
“그보다 몬스터가 베이스캠프까지 기습해 오다니…. 하여간 이래서 다른 팀들이랑 같이 일하기 싫다니까. 배려가 없어, 배려가.”
어째서인지 항상 짜증 나 있는 이신예는 대하기 껄끄러운 스타일이었다.
괜히 그녀 눈 밖에 나서 미움을 받고 싶지 않은 나는, 열심히 막사만 정리하고 있었다.
“일단 A-2 구역으로 이동한다. 그 후에 주변 팀의 상황을 봐서 다시 전진할지 결정하겠어.”
“알겠습니다.”
“그리고 윤지는 B-5 구역으로 가서 그쪽 팀과 합류해. 오늘은 그 팀을 지원해 줘.”
유지한 아저씨의 말에 차윤지가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SS급 헌터라는 존재는 내게 너무나 멀기 때문에 지금까지 머릿속으로만 어떤 이미지일지 상상해 왔다.
헌터라는 존재 중에서 최강으로 군림하는 네 사람.
독단적이고 자신감 넘치며, 항상 화려한 사람들일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녀는 얌전하고 조용했으며, 리더의 어떤 오더도 수용하고 있었다.
“왜? 신기하냐?”
피식, 웃음을 흘린 유지한 아저씨가 나를 보고 물었다.
그제야 멍하니 차윤지만 보고 있던 내 시선이 머쓱해져서 서둘러 눈을 돌렸다.
“보기에는 평범한 여자애 같지만, 막상 몬스터랑 싸우는 걸 보면 나도 매번 놀란단 말이지. 본인이 들으면 기분이 나쁠지 몰라도 사람인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강해. 만약 저런 녀석이 적이라면 난 헌터를 그만뒀을 거다.”
“그… 그 정도인가요?”
“자신의 목숨을 걸고 몬스터와 싸우는 직업이 헌터다. 그 헌터 세계에서 최정상에 군림하는 녀석이야. 육체도 정신도 강하지 않으면 안 되지.”
물론 SS급 헌터라고 해서 반드시 상위층 공략에 오진 않았다.
길드를 운영하는 길드 마스터가 되어서 직접적인 전투는 하지 않는 사람도 있었고, 상위층 게이트만 공략하는 사람도 있었다.
아직 제대로 된 정보가 없는, 미지의 던전을 공략하는 것이기에 상당한 위험이 따를 수 있었던 것이다.
물론 새로운 층을 공략하는 데 성공하면 그만큼 큰 보상을 얻을 수 있지만, SS급 헌터라고 해도 목숨이 하나라는 건 다르지 않다.
그렇게 유지한 아저씨는 다른 팀 상황을 보기 위해 이동했다.
그리고 민혁은 우리가 캠프를 안전하게 옮길 수 있도록 주변을 정찰하러 갔다.
다른 팀의 공략에 지원을 간 차윤지까지 제외하면, 결국 이곳에 남은 것은 나와 심윤성 아저씨, 그리고 이신예뿐이었다.
“무거우면 무리하지 않아도 돼. 다시 와서 가져가면 되니까.”
“아니에요. 이 정도는 들 수 있어요.”
막사를 접어서 어깨에 걸치고 움직이기 시작했다.
아저씨는 큰 덩치만큼 힘이 세서 양어깨에 하나씩 올렸고, 다른 하나는 내가 힘겹게 들고 이동했다.
나머지 짐은 이신예가 챙겨서 우리 뒤를 따라왔다.
“B 구역은 여기보다 더 강한 몬스터들이 나오나요?”
“뭐, 그렇지. 하지만 그보다 수가 많다는 게 힘들어. 아직 B 구역은 한 번도 공략된 적이 없어서 우글거리거든.”
“…정말 끔찍하군요.”
“아저씨, 무거워. 잠깐만 쉬었다 가자.”
뒤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나와 심윤성 아저씨의 걸음이 멈췄다.
“…그러니까 내가 들고 간다니까.”
“이 정도는 나도 들어야지. 잠깐만 쉬면 돼.”
까칠하다고 생각했던 이신예는 생각보다 자기 일은 척척 해내고 있었다.
자세히는 모르지만, 꾸준히 던전 아래에 있는 길드와도 연락을 주고받는 듯했다.
“그런데… 이신예 씨도 S급 헌터인가요?”
보통 통신계 헌터들은 A급 이상으로 올라가기 힘들어서, 조심스럽게 심윤성 아저씨에게 물었다.
그러나 뒤에 있던 그녀의 귀가 밝았는지 내게 얼굴을 들이밀며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내가 S급 헌터로는 보이지 않나 보네……!”
“그게 아니라…. 죄… 죄송합니다.”
“이래 봬도 S급 헌터거든.”
입술을 삐죽 내민 그녀는 짐을 다시 들고 앞으로 성큼성큼 걸어 나갔다.
“하하하. 보통 통신계 헌터는 S급까지 올라오는 일이 드물긴 하지. 하지만 저 녀석은 그보다 더 드문 케이스거든.”
심윤성 아저씨의 말에 고개를 갸웃거리자, 그가 다시 입을 열었다.
“신예는 ‘통신계’와 ‘치유계’를 둘 다 가지고 있는 특이 케이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