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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x9999-12화 (12/176)

12화 : 던전 생존기 (3)

“크하하하! 빨간 망토가 농담도 할 줄 알았어?”

심윤성 아저씨가 웃음을 터뜨리며 말했다.

빨간 망토.

차윤지의 이명이었다.

화려하게 전장을 휩쓰는 그녀가 매일 붉은 망토를 입고 있다는 것에서 유래된 별명이다.

소문에 의하면 원래 망토의 색깔이 흰색이었는데, 전장에서 붉은 피를 뒤집어쓴 탓에 빨갛게 변했다고 한다.

“아무나 초월 헌터가 되는 줄 알아? 그리고 초월 헌터가 되면 협회에서 발표했을 텐데, 처음 보는 얼굴이라고.”

심윤성 아저씨의 말에 최민혁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 보니 최근에는 새롭게 초월 헌터가 나타났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없네. 이제 나오지 않는 건가.”

“…….”

여전히 나를 보고 있는 그녀의 시선이 새삼 부담스럽게 느껴졌다.

초월 헌터라는 걸 숨길 필요는 없지만, 초월 헌터가 되면 헌터 협회에서 공식적으로 발표를 하게 되고, 그럼 날 찔렀던 범인도 나에 대해 알게 될 것이다.

기왕이면 굳이 밝힐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복수가 끝날 때까진 아무도 모르게 얌전히 지내고 싶다.

“자자! 그보다 대장도 한 잔 받으라고!”

“어제도 마셨잖아. 오늘은 좀…….”

“여기선 술 없이 도저히 버틸 수 없다니까.”

심윤성 아저씨랑 유지한 아저씨가 술을 가운데 두고 밀당을 하고 있는 사이 내 옆으로 최민혁이 다가왔다.

“헌터라고 했죠? 게이트 공략은 할 만해요?”

처음에 내가 그를 무례하게 대했지만, 그는 친절하게 웃으며 말을 걸어 줬다.

“정찰팀이라 몬스터랑 직접 싸우는 일도 적고, 크게 힘들지도 않아요. 던전 최상층을 공략하는 분들에 비하면 말하는 것도 민망할 정도죠.”

“그럴 리가요. 아래층 게이트를 다른 헌터분들이 잘 공략해 주기 때문에 저희도 걱정 없이 여기서 싸울 수 있는 거라 생각해요.”

외모만 잘생긴 게 아니라 마음씨까지…….

“조금 잘난 척하는 걸지도 모르지만, 이쪽에 대해 궁금한 게 있으면 알려 드릴게요.”

“아…. 정말요?!”

헌터 협회에서 제공하는 정보들을 보는 것과 실제로 전장에서 활동하는 헌터의 얘기를 듣는 건 차원이 달랐다.

심지어 13층에서 싸우는 S급 헌터에게 질문할 기회라니……!

“저는 3층까지밖에 가 본 적이 없어서…. 10층은 던전이라곤 믿기지 않을 정도라던데…….”

“맞아요. 알고 계시듯 10층은 몬스터가 나오는 곳이 아니라 마치 지상 낙원을 옮겨 놓은 듯한 풍경이거든요. 아름다운 꽃과 얌전한 동물들이 잔뜩 있고, 깨끗한 물이 흘러요. 덕분에 지금은 10층을 공략 중간 거점으로 쓰고 있죠.”

“오…. 그렇구나. 민혁 씨는…….”

내가 어색하게 그의 이름을 부르자, 그가 피식 웃으며 물었다.

“저랑 비슷한 또래 같은데…. 나이가 어떻게 되세요?”

“아…. 동갑이에요. 25살.”

“제 나이도 알고 계셨군요. 그럼 편하게 말 놓을까요?”

“저… 정말……?”

뻘쭘하게 말을 더듬자,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나 따위 허접 헌터가 S급 최민혁이랑 말을 놓을 정도의 친구가 되다니……!

내 헌터 인생에서 가장 영광스러운 순간이다.

“13층에선 어떤 몬스터들이 나와?”

“블루 라벨이나 그린 라벨 몬스터들이 나오는데, 대부분 언데드 몬스터라서 상대하기 까다로워.”

그는 한숨을 내쉬곤 말을 이어 갔다.

“하아…. 언데드 몬스터한테 공격을 당해 자칫 감염이라도 되면 치유계 헌터들이라 해도 치료가 힘들거든.”

“그렇구나. 확실히 그건 힘들겠네.”

“그치? 전장에는 병균도 많은 편이라 조그만 상처가 큰 질병이 되기도 하니까. 다른 곳보다 더 신경 쓰이는 거 같아.”

확실히 이건 실제 전장에서 싸우는 헌터에게서만 들을 수 있는 이야기였다.

전장은 게임이 아니다.

그곳에서 싸우는 헌터들도 게임 캐릭터가 아니다.

살아남기 위해, 죽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해 생각하고 행동한다.

“13층은 여러 팀이 공략하고 있지?”

“맞아. 우리는 일반 길드 소속이지만, 헌터 협회 소속의 팀들이 대부분이지. 각자 구역을 맡아서 전투를 하는데, 지금 13층에 있는 팀만 해도 10개가 넘을 거야.”

“그렇게 많구나……”

“몬스터가 늘어나는 속도를 따라가려면 그 정도는 필요하거든. 우리는 A-5 구역부터 B-10 구역까지 몬스터들을 처리하고 있어.”

게이트에서만 싸워 왔던 내가 보기에 이곳은, 말 그대로 전장이었다.

아까 유지한 아저씨가 말했던 것처럼 언제 어디서 몬스터가 튀어나와도 이상하지 않은 곳이었다.

딸랑-!

“……!”

멀리서 들려온 방울 소리에 나를 제외한 모든 사람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무… 무슨 일이죠?”

“몬스터가 가까이에 왔다는 신호야. 민혁이는 여기서 신예랑 현이 지켜. 우리가 간다.”

유지한 아저씨의 말에 심윤성 아저씨와 차윤지가 바로 그를 따라갔다.

“이런 일은 자주 있는 거야?”

내 물음에 굳은 표정의 민혁이 고개를 저었다.

“우리는 이곳, 베이스캠프랑 제법 떨어진 곳까지 몬스터들을 처리해 둬서 근처까지 오는 경우는 거의 없어. 놓친 몬스터거나, 속도가 빠른 몬스터일 거야. 걱정하진 않아도 돼.”

그렇게 말하는 것치곤 민혁의 표정이 썩 좋지 않았다.

딸랑- 딸랑-

방울 소리가 어디선가 계속 들려왔지만, 나는 가만히 앉아서 애써 들리지 않는 척 얌전히 기다렸다.

마음 같아서는 민혁도 유지한 아저씨가 있는 곳에 보내고 싶었고, 그 역시 가고 싶어 하는 눈치였다.

“…내 뒤로 물러서.”

“어……?”

민혁이 인상을 찌푸리며 앞으로 나섰고, 그의 어깨너머로 ‘구울’이 보였다.

흔히 말하는 좀비와 비슷한 형태로, 반쯤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었지만, 기괴하게 꺾인 팔다리는 인간의 것이라 보기 힘들었다.

날카로운 손톱을 길게 기르고 있는 구울은 우리를 보고 걸쭉한 침을 뚝뚝 흘리며 걸어왔다.

트듯.

민혁은 어느새 활을 꺼내서 시위를 당기고 있었다.

구울은 ‘그린 라벨’ 몬스터 중에서도 가장 약한 축에 속하는 녀석이다.

S급 헌터인 민혁에겐 쉬운 상대일 것이다.

물론 한 마리만 있을 때라면.

“형씨!”

“알고 있어.”

발렌의 말에 고개를 뒤로 돌렸고, 두 마리의 구울이 우리와 거리를 좁혀 오고 있었다.

“키엑…. 키에엑.”

“……!”

뒤쪽에서 보인 다른 두 마리의 구울을 발견하고 민혁의 표정이 찌푸려졌다.

“내 뒤에서 떨어지면…….”

민혁이 고개를 돌려 내게 말하려다가 내가 들고 있는 커다란 검을 보고 눈이 커졌다.

“뭐야…! 원래 그런 무기를 갖고 있었어?”

“뭐, 그렇지. 어떻게든 내 몸은 지켜볼게.”

한 번쯤 죽는 건 내게 크게 의미 없지만, 아직 내 능력이 알려지는 건 썩 내키지 않았다.

그럼 어디 힘 좀 내볼까.

[Active - 라이프 파워 Lv.1

10개의 라이프를 제물로 바친다. 1시간 동안 모든 능력치가 1.5배로 상승한다.

쿨타임 - 10시간

Lv.2(최대 5Lv)

9개의 라이프를 제물로 바친다. 1시간 10분 동안 모든 능력치가 1.6배로 상승한다.

쿨타임 - 10시간]

별로 찍고 싶지 않았지만, 지금 같은 상황에선 라이프 룰렛보다 라이프 파워가 유용했다.

앞으로도 계속 쓸 걸 생각하면 미리 스킬을 올려 두는 게 효율적이다.

Lv.5(최대 5Lv)

5개의 라이프를 제물로 바친다. 1시간 40분 동안 모든 능력치가 2배로 상승한다.

쿨타임 - 5시간 마나 70 소모]

최대 레벨까지 찍으니 추가로 더 많은 부분이 강화됐다.

라이프도 6개가 아닌 5개만 소모했고, 능력치도 1.9배가 아닌 2배가 상승했다.

좋아, 능력치 2배나 뻥튀기됐으니 어느 정도 구울에게 반응할 수 있을 것이다.

구울은 그린 라벨 중에서도 바닥이었고, 데스나이트는 블루 라벨에서도 중간쯤이었다.

이런 부분을 생각해 보면 구울은 내게 그다지 무서운 적이 아니었다.

“라이프 파워.”

“키엑!”

스킬을 쓰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구울들이 달려들기 시작했다.

민혁은 당기고 있던 활시위를 놓았고, 그의 화살이 정면에 있던 구울의 팔을 단숨에 날려 버렸다.

팔 한쪽 날아가 버린 구울은 미친 것처럼 주변을 빙글빙글 돌았다.

민혁이 다시 활시위에 화살을 먹이고 있는 사이에, 다른 두 마리의 구울들이 내 쪽으로 접근했다.

“현아……!”

카가각!

“한 마리 정도는 어떻게든 버텨 볼게.”

검으로 구울의 날카로운 손톱을 막아 내며 말했고, 민혁이 화들짝 놀라는 게 보였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얌전히 방어만 하고 싶진 않았다.

두 마리의 구울이 민혁 쪽으로 붙었지만, 저쪽은 크게 걱정되지 않았다.

그 역시 두 마리를 상대하면서 이쪽에 시선을 둘 정도로 여유를 보였으니까.

카앙-! 캉!

예전의 나였다면 구울과 마주하는 것부터 두려워서 제대로 움직이지도 못했겠지만, 괴물 같은 데스나이트와 수도 없이 싸운 경험 덕분에 담력 하나는 누구보다 강했다.

파앙-!

옆에서 민혁이 쏜 화살이 구울의 머리통을 날려 버리는 게 보였다.

역시 S급인가.

괜히 나도 지고 싶지 않다는 생각에 손잡이를 꽉 움켜쥐었다.

구울도 이성이 없는 몬스터라 패턴이 복잡하거나 페이크를 주는 일은 없다.

그렇다면 저쪽에서 큰 움직임을 보이면 나도 반격을 하는 게 가능하다.

현재 내 능력치는 평소보다 2배.

라이프 파워가 어느 정도의 스킬인지 테스트해 보기엔 딱 좋은 상황이다.

손에 들고 있는 ‘오래된 녹슨 검’도 훨씬 가볍게 느껴졌다.

“온다!”

발렌의 목소리와 동시에 구울이 위로 도약해서 나를 덮쳐 왔다.

몸을 옆으로 돌려서 그대로 구울을 흘려보냈고, 놈의 뒤를 노렸다.

쌔엥-!

등에 검을 그었지만, 생각보다 깊지 않았다.

아까 민혁이 해 줬던 얘기 때문에 놈의 공격을 너무 신경 쓰고 있는 탓이었다.

[-512]

등에 검흔이 남은 구울은 보랏빛 피를 줄줄 흘리며 바닥에 쓰러져 발버둥 쳤다.

“키에엑! 키엑!”

고통을 느낄 수 있는 건가.

구울의 체력은 ‘4192’.

이런 단순한 움직임이라면 혼자서도 충분히 제압할 수 있다.

구울은 잔뜩 살기를 흘리며 고개를 돌려 나를 노려봤다.

타악!

구울이 다시 내게로 달려들려는 순간, 멀리서 거대한 도끼가 날아왔다.

정확히 구울의 다리를 뜯어내 버렸고, 깜짝 놀란 나는 도끼가 날아온 쪽으로 시선을 옮겼다.

“마무리 지어!”

쌔엥!

제대로 서지도 못하는 구울의 머리통을 향해 수직으로 힘껏 내리치자, 놈은 더 이상 움직이지 않게 되었다.

[-1815]

“……!”

심윤성 아저씨는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다급히 내 쪽으로 달려왔다.

“괜찮냐, 애송이?”

“아…. 네. 감사합니다.”

“현이 너… 정찰팀 헌터라고 하지 않았어?”

다른 한 마리의 구울도 깔끔하게 정리한 민혁이 우리 쪽으로 달려왔다.

그는 이상한 눈으로 나를 가만히 바라보고 있었다.

“너 랭크가 어떻게 돼?”

“…E급.”

내 말에 그제야 심윤성 아저씨도 화들짝 놀랐다.

“거짓말하지 마! 방금 그 움직임이나 파괴력은 E급 헌터가 절대 아니었다.”

“…….”

“너 정체가 뭐야?”

현이가 나를 묘하게 노려보며 한 걸음씩 다가올 때 뒤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다들 무사한 것 같네.”

유지한 아저씨와 차윤지가 전투를 마치고 돌아오는 게 보였다.

난 어색하게 웃으며 한 걸음 물러났고, 유지한 아저씨는 우리에게 합류해서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다.

“…베이스캠프까지 몬스터가 기습해 오다니. 아무래도 다른 구역에 있는 팀에게 무슨 일이 생겼을 가능성이 커.”

“어딘가 구멍이 생겨서 몬스터가 새고 있다는 건가요?”

내게서 시선을 돌린 민혁이 유지한 아저씨에게 물었다.

“일단 오늘은 돌아가면서 불침번을 서고, 내일은 베이스캠프를 뒤로 옮기는 게 좋겠어.”

민혁과 심윤성 아저씨가 주변을 정리하고 간단한 바리케이드를 세우는 동안, 유지한 아저씨가 내게 다가왔다.

“너… 대체 뭐야?”

“네? 그게 무슨…….”

그는 차가운 표정으로 나를 내려다보며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아까 들고 있던 검은 데스나이트의 검이었어. 그리고 그렇게 큰 검을 어디에 숨기고 있었던 거야? 무엇보다… 2층 게이트 정찰 팀에서 활동하는 녀석이 그린 라벨 몬스터를 제압할 수 있을 정도의 실력을 가졌다고?”

유지한 아저씨의 살기가 내 피부를 뚫고 들어오고 있었다.

“…말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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