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화 : 헌터와 라이프 (4)
[최현 Lv.23
체력: 2350/2350 마나: 230/230 기력: 30/30
힘: 76 민첩: 32 지능: 32
(사용 가능 포인트: 0)
라이프 : 811개]
100번이 넘게 리치왕에게 도전하며 꾸준히 놈에 대한 정보를 모았다.
마법을 쓰기 전에 하는 행동, 마법의 종류, 마법을 쓰는 순서나 규칙을 기록했다.
“일단 밥부터 먹자고.”
“하아…….”
그렇게 해서 나온 결론은 ‘답이 없다’였다.
깊게 한숨을 내쉰 나는, 발렌이 만든 생선구이를 한 입 크게 베어 물었다.
“이제 어떻게 할 생각이야?”
발렌은 걱정스럽게 날 바라보며 물었다.
“벌써 라이프를 100개도 더 썼는데 제대로 된 공격 한번 못 했잖아.”
“그렇게 정곡을 찌르면 좋냐?”
정확히는 112번의 전투 동안 내가 리치왕에게 입힌 대미지가 0이었다.
그야말로 최악의 상황이었지만, 그렇다고 얻은 게 없는 건 아니다.
“리치왕이 지금까지 보여준 마법은 총 10가지, 모두 빙결 마법이었어. 마법은 주문이나 예비 동작 없이 바로 발동할 수 있다는 것도 알게 됐고.”
“그게 문제잖아? 그런 사기적인 능력을 가지고 있는데 대체 어떻게 이기냐고.”
“잠깐! 너 그거 몇 마리째야!? 너 방금 한 마리 더 먹었지?”
생선구이 숫자를 세어 보다가 벌떡 일어나 발렌에게 따지자, 흠칫 놀란 발렌이 인상을 찌푸리며 나를 노려봤다.
“내가 잡은 물고기거든?! 한 마리 더 먹으면 안 되냐?!”
“먹을 거로 쩨쩨하게 굴래?”
“시끄러! 누가 먼저 쩨쩨하게 굴었는데.”
발렌을 노려보다가 이내 한숨을 내뱉으며 다시 자리에 앉았다.
“사기적인 능력이라…….”
굳이 따지자면 내 쪽이 더 사기적인 능력이라 불평을 할 수도 없었다.
“그런데 정말 저렇게 마법을 계속 쓸 수 있다면 어떻게 이기라는 거지? 인간 중에서도 마법을 쓸 수 있는 인간이 있다고 했지?”
발렌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마력계 능력을 가진 헌터들은 마법을 쓸 수 있어. 리치왕처럼 주문도 없이 바로 쓸 수 있는 건 아니지만, 실력이 좋은 상위 헌터들은 저것보다 강한 마법도 쓰니까.”
잠깐…….
마법이라는 건 확실히 일반적인 공격에 비하면 큰 파괴력과 뛰어난 효율을 자랑한다.
하지만 마력계 헌터들에게 약점이 있었다.
쿨타임이나 마나 때문에 마법을 쓰지 못할 땐 일반적인 사람이랑 다를 게 없다는 점이었다.
만약 리치왕도 마나가 존재하고 마법의 쿨타임이 있다면…….
다급히 생선구이를 내려놓은 뒤 리치왕이 쓴 마법의 순서를 확인했다.
매번 전투 후에 대략적으로 기록해 둔 게 다행이었다.
“처음엔 범위도 넓고 파괴력도 강한 마법 위주였지만, 그 뒤엔 반대야. 나 하나만 공격할 수 있고 파괴력도 전에 썼던 마법에 비하면 약해.”
“그게 무슨 말이야?”
“마나 관리를 하고 있다는 거지. 내가 부활하자마자 달려들면 리치왕은 마나를 완전히 회복하지 못한 상태에서 다시 마법을 써야 하니까. 그게 계속 반복되면 분명 마나가 바닥나는 시점이 올 거야. 그러지 않으려고 일부러 약한 마법을 써서 마나 소모를 줄였다고 볼 수 있어.”
물론 이건 어디까지나 가설일 뿐이다.
하지만 100번이나 반복된 전투 규칙을 보면 확실히 근거 없는 얘기는 아니었다.
그리고 직전에 썼던 마법을 연속으로 쓰지 않은 건 아마 쿨타임 때문이다.
심지어 쓰고 나면 한참 동안 다시 쓰지 않은 마법도 있다.
“규칙만 잘 찾으면 될지도 모르겠어.”
어차피 나는 리치왕의 마법 중 어떤 걸 맞아도 한 방에 목숨을 잃었다.
리치왕은 굳이 나를 상대로 마나 소모가 큰 마법을 써서 자신의 약점을 만들 필요가 없다는 의미다.
“좋아. 다시 가 보자.”
마치 거래를 하러 온 히어로처럼 아무리 죽임을 당해도 다시 리치왕을 찾아간다.
뭔가를 원해서 가는 게 아니라 리치왕을 쓰러뜨리는 게 목적이지만.
“지겹군. 지겨워…. 언제까지 이런 바보 같은 짓을 반복할 셈이지?”
리치왕은 날 보자마자 속 깊은 곳에서 올라온 한숨을 토해 냈다.
뭐, 내가 리치왕이었어도 끔찍한 상황이긴 했다.
죽여도 죽여도 계속 부활해서 다시 날 죽이겠다고 찾아오다니…. 이보다 공포스러운 일이 있을까.
“그러니까 그냥 얌전히 죽어 주면 안 될까? 서로 힘 빼지 말자고. 어차피 나는 네가 죽을 때까지 영원히 반복할 거거든.”
“그렇다면 영원히 죽음을 반복할 뿐이다.”
리치왕의 마법 규칙을 보면, 지금 쓸 수 있는 마법은 4가지.
저번 전투에서 단숨에 나를 빙결시키는 마법을 사용했으니, 이번엔 큰 마법을 쓰지 못할 것이다.
그렇다면 얼음 창을 날리는 마법이 나올 가능성이 가장 크다.
타닷!
리치왕을 중심으로 옆으로 크게 돌며 천천히 놈과 거리를 좁혔다.
“라이프 룰렛!”
내가 쓸 수 있는 액티브 스킬은 두 개뿐이었고, 그중 라이프 룰렛은 나의 유일한 원거리 공격 수단이었다.
예상대로 리치왕의 머리 위에 커다란 얼음 창이 만들어졌다.
라이프 룰렛을 사용하면 손에 번쩍이는 일회용 활과 화살이 생긴다.
평생 활을 써 본 적이 없던 나는 라이프 룰렛을 제대로 쓰기 위해 며칠 전부터 발렌이 만들어 준 활로 연습을 시작했다.
트드듯!
활시위를 당기면서도 계속 다리를 움직였다.
물론 뛰어다니면서 정확히 적을 조준할 정도의 능력은 없다.
리치왕이 지팡이로 나를 겨누는 순간, 그의 머리 위에 있던 얼음 창이 나를 향해 날아왔다.
그걸 보고 나 역시 다리를 멈추고 리치왕을 향해 빛나는 화살을 쐈다.
파앙-!
얼음 창이 내 가슴에 꽂히는 것과 동시에 내가 쏜 화살도 리치왕의 어깨에 명중했다.
[-661]
열심히 뛰어다닌 덕분에 리치왕과 거리를 최대한 좁힐 수 있었고, 가슴이 찢어지는 듯한 통증 속에서도 놈의 체력에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18290/18951]
체력을 확인하자마자 그대로 정신을 잃었다.
[Game Over
System : 체력이 0이 되었습니다.]
젠장.
예상은 했지만, 무슨 체력이 저렇게 많은 거야?!
숲속에서 다시 눈을 떴지만, 가슴의 통증이 그대로 남아 있는 듯한 감각 때문에 일어날 수 없었다.
실제로는 통증이 없어도 여전히 가슴에 커다란 창이 박혀 있는 듯한 역겨운 이질감이었다.
“혀… 형씨?! 정신 차려! 진짜 죽은 거 아니지?!”
머릿속에서 들려오는 발렌의 목소리에 몸을 살짝 움직이며 대답했다.
“걱정하지 마. 죽고 싶어도 못 죽는 몸이거든.”
그래도 이번엔 얻은 게 많다.
내가 예상한 것처럼 리치왕은 마나와 스킬 쿨타임에 맞춰서 스킬을 쓰고 있었다.
그리고 드디어 리치왕의 체력을 확인한 것도 큰 성과였다.
운이 좋게도 라이프 룰렛이 높은 숫자가 걸려서 대미지를 무려 661이나 넣었다.
그렇다고 앞으로도 라이프 룰렛에 의존하면서 싸우는 건 무리였다.
만약 낮은 수치가 나오면 라이프 11개를 날리는 것과 같으니, 그런 도박을 하고 싶진 않다.
“직접 공격할 수 있으면 좋겠는데…….”
“내가 놈의 시선을 끌어 볼까?”
발렌의 말에 상체를 벌떡 일으킨 난, 인상을 잔뜩 찌푸렸다.
“안 돼! 절대 안 돼.”
물론 나 혼자 싸우는 것보다 발렌이 도와주면 훨씬 쉽게 전투를 할 수 있겠지만, 발렌은 나처럼 라이프가 많은 게 아니다.
한 번의 실수로 발렌을 잃게 되는 일이 생긴다면 상상하기도 싫다.
라이프 룰렛은 내 라이프 수에 비례해서 평균적으로 높은 수치의 대미지를 입히는 게 가능하다.
하지만 한 번 쓸 때마다 10개의 라이프를 소모하니, 많이 쓸수록 평균 대미지는 약해지는 결과가 된다.
결국, 어떻게든 리치왕에게 접근해서 직접 검으로 싸워야 한다는 소린데…….
잠시 고민하던 난 스킬창을 열어 스킬을 확인했다.
[사용 가능 스킬 포인트 : 22]
레벨업도 점점 힘들어지고, 아직 가지고 있는 스킬의 개수도 많지 않다.
웬만하면 스킬 포인트는 신중하게 쓰고 싶었지만, 지금은 그런 걸 따지고 있을 때가 아니다.
[Active - 라이프 파워 Lv.1
10개의 라이프를 제물로 바친다. 1시간 동안 모든 능력치가 1.5배로 상승한다.
쿨타임 - 10시간
Lv.2(최대 5Lv)
9개의 라이프를 제물로 바친다. 1시간 10분 동안 모든 능력치가 1.6배로 상승한다.
쿨타임 - 9시간 마나 55소모]
어라…? 가만히 보고 있으면 스킬의 다음 레벨 효과도 확인할 수 있는 건가?!
스킬을 찍지 못하고 망설이던 이유 중에선 스킬 레벨을 올렸을 때 어떤 효과가 있는지 알 수 없었던 것도 있었다.
하지만 그런 걱정과 달리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효율이 나쁘지 않았다.
라이프를 소모하는 것도, 스킬이 지속하는 시간도, 능력치의 상승까지 모두 업그레이드된다.
그렇다면 라이프 파워를 최대치까지 찍었을 때 라이프 소모는 6개, 1시간 40분 동안, 1.9배나 상승한다.
흐음…. 하지만 굳이 지금 라이프 파워가 필요하진 않으니까.
[Active - 라이프 룰렛 Lv.1
남아 있는 라이프의 개수 중 랜덤 수치만큼 적에게 대미지를 준다.
라이프 10개를 소모한다.
능력치에 비례하여 높은 대미지를 입힐 수 있다.
마나-50 쿨타임-1시간
Lv.2(최대 5Lv)
남아 있는 라이프의 개수 중 랜덤 수치만큼 적에게 대미지를 준다.
라이프를 8개 소모한다.
능력치에 비례하여 높은 대미지를 입힐 수 있다.
마나-50 쿨타임-55분]
라이프 룰렛은 다른 건 그대로인 대신, 소모하는 라이프의 개수가 2개나 줄어든다.
그렇다면 5레벨을 만들면 라이프 소모는 겨우 2개밖에 안 된다는 것.
심지어 쿨타임도 5분씩이나 줄어든다니…. 굉장히 구미가 당기는 조건이었다.
그럼 계산해 볼까.
현재 남아 있는 내 라이프 수는 정확히 800개.
라이프 룰렛의 평균값은 400 정도.
리치왕의 남은 체력은 18300 정도니까 45번 정도면 죽이는 게 가능하다.
물론 라이프 개수가 점점 줄어서 평균 대미지 값도 줄어드는 것까지 계산해야 하지만, 그걸 감안하더라도 무난하게 쓰러뜨릴 수 있다.
라이프 룰렛으로 90개 정도 소모, 내가 죽는 것까지 포함하면 135개.
대미지가 줄어드는 것, 그리고 운이 나빠서 룰렛이 제대로 터지지 않아도 200개 내외면 리치왕을 쓰러뜨릴 수 있을 거다.
“흐… 흐흐흐…. 됐어! 됐다고!”
“뭐야? 형씨 정신이 나간 거 아니지?”
발렌의 말을 무시한 채 라이프 룰렛에 스킬 포인트를 사용했다.
Lv.5(최대 5Lv)
남아 있는 라이프의 개수 중 랜덤 수치만큼 적에게 대미지를 준다.
라이프를 2개 소모한다.
능력치에 비례하여 높은 대미지를 입힐 수 있다.
마나-50 쿨타임-40분]
룰렛을 쓰지도 못하고 리치왕에게 죽는다는 최악의 상황을 가정해도 리치왕을 안정적으로 쓰러뜨릴 수 있다는 결론이 나왔다.
다른 스킬은 당장 필요한 게 아니니, 일단은 라이프 룰렛에만 스킬 포인트를 사용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어이없을 정도로 사기적인 효과군.
라이프가 만약 9999개였다면 대미지 평균값은 5천 정도.
후우…. 언젠가 라이프를 다시 복구해 놓고 말겠어.
“다시 도전할 생각이야?”
발렌의 물음에 나는 고개를 저었다.
확실한 승리를 위해서는 좀 더 준비가 필요하다.
숲 중앙에 있는 우리의 임시 생활 공간에 가서 발렌이 만들어 준 나무 활을 들었다.
[나무 활
오크가 만든 조잡한 활.
공격력+1]
뭐…. 어차피 연습용으로 쓸 생각이니까.
최대한 화살 명중률을 높여야만 리치왕에게 라이프 룰렛을 맞출 수 있는 확률도 올라간다.
철저하게 준비하면 그만큼 라이프를 적게 소모하고 이곳에서 나갈 수 있으니까.
기다려라……! 리치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