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화 : 헌터와 라이프 (2)
“쿨럭… 쿨럭!”
가끔은 이런 식으로 한 방에 죽는 게 낫다는 생각이 든다.
일반적인 타격에 맞으면 죽지 않고 모든 고통을 견뎌야 해서 엄청나게 괴로우니까.
두 마리에게 나눠서 들어갔지만, 결과적으로 총 250 정도의 대미지를 입히는 데 성공했다.
라이프 하나로 넣은 대미지 중 신기록인가.
이론상으로 이렇게 꾸준히 할 수만 있다면 30개의 라이프로 1마리의 데스나이트를 잡을 수 있다.
이론은 어디까지나 이론일 뿐이지만.
스킬창을 열어서 ‘데이터’ 스킬의 목록을 확인했다.
[데스나이트 Lv.62
-블루 라벨
-키 230cm 체중 170kg
-체력 7189
-언데드
-드랍 아이템 : 블루 스톤, 오래된 녹슨 검, 차가운 심장, 오래된 흑갑]
데스나이트를 잡을 때마다 갱신된 데이터 정보는 상당히 유용했다.
아니, 사실 이 녀석은 원래 알고 있던 게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나중에 다른 몬스터들과 싸운다면 이 능력을 유용하게 쓸 수 있을 것 같다.
원래 몬스터에게는 레벨이라는 개념이 없어서 같은 놈이어도 간혹 힘의 차이가 나는 경우가 있다.
그래서 좀 더 세부적으로 몬스터의 강함을 판단할 수 있는 레벨 수치가 마음에 들었다.
이런 놈한테 방어구조차 착용하지 않았으니 한 방에 죽었지.
나는 이렇게 생각하며 잠시 고개를 들고 주변을 둘러봤다.
아까 쓰러졌던 곳과 제법 거리가 있는 장소였다.
놈들이 다시 나를 찾아올 때까지는 조금 시간이 걸릴 거다.
“오! 뭐야? 여기 있었구나!”
오크가 나를 발견하고 깜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오크는 한 손에 돌을 갈아서 만든 창을 든 채 나를 훑어봤다.
“확실히 검을 들고 있으니 그럴듯한데? 헌터 같아.”
“같은 게 아니라 헌터거든? 그보다 그 창은 뭐야?”
“이쪽 냇가에서 물고기 좀 잡으려고. 넌 아무것도 안 먹어도 되지만, 난 먹어야 사니까.”
오크가 가리킨 쪽으로 고개를 돌리자, 맑은 물이 흐르는 시냇가가 보였다.
“아, 전부터 궁금했던 게 있는데, 다른 헌터들은 이곳에 다시 들어오지 않는 거야?”
이곳에 처음 갇혔을 때부터 생각했다.
공략팀이 다시 이곳에 와서 날 도와줄지도 모른다고.
하지만 일주일 뒤 뭔가 잘못됐다는 걸 느꼈다.
위험한 몬스터가 출현하는 게이트가 2층 던전에 나타났다는 건 상당히 큰 문제였다.
협회에서 그런 위험 요소를 일주일이나 방치할 리 없었다.
그때 상황을 되돌려 보면 상당수의 헌터들이 이곳에서 살아서 나갔을 가능성이 크다.
내가 정신을 차렸을 땐 누구의 시체도 보이지 않아 얼마나 많은 헌터가 죽었는지 알 수 없지만, 누군가는 반드시 이곳에서 나갔을 거다.
그러니 아무리 이곳이 위험하다고 해도 상위 헌터들이 다시 공략하러 오는 게 당연했다.
“게이트는 공략하기 전까지 사라지지 않아. 원래는 그런데… 여긴 아닐지도 몰라.”
‘굳이’ 게이트를 공략하는 이유는, 가만히 두면 몬스터들이 출구를 통해서 던전을 나가 버리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몬스터들이 바깥세상까지 나가면 당연히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었다.
이런 상황을 미연에 방지하고자 게이트를 공략하는 것이다.
그런 까닭에 어째서 이곳에 다시 공략팀이 오지 않는지 사실 나도 잘 모르겠다.
어디까지나 내 예상일 뿐이지만, 2층에 C-8 구역에 있던 입구가 사라졌을 가능성이 컸다.
즉, 저쪽에서 여기로 들어오는 길이 없어져서 오지 못한다는 것.
그렇게 생각하면 출구를 통해 밖으로 나갈 수 없게 된 것도 이해가 됐다.
“그럼 우리도 여기서 못 나가는 거 아니야?!”
오크는 내가 걱정하는 부분을 콕 집어서 말했다.
일반적으로는 게이트 공략이 끝나면 입구가 있던 곳으로 이동됐지만, 지금은 그럴 거라 장담할 수 없었다.
“보스 몬스터를 잡아서 공략에 성공할 수만 있다면 꼭 나갈 수 있을 거야.”
게이트는 보스 몬스터를 쓰러뜨리는 순간 공간 자체가 사라져 버린다.
그렇다면 어떻게든 밖으로 나가는 건 가능할 것이다.
“흐음…. 알겠어.”
오크는 못 미더운 눈으로 나를 가만히 보다가 고개를 휙 돌렸다.
‘나간다’라…….
500일이나 지났으니 밖은 많이 바뀌어 있겠지?
형들은 잘 지내려나?
그러고 보니 하성이 형의 아이는 돌도 지났겠는데?
갑자기 친했던 사람들의 얼굴을 떠오르자 목이 메어왔다.
“크흠.”
하지만 아직 감성에 젖어 있기엔 이르다.
철컥…. 철컥…….
그런 날 다그치기라도 하듯 적당한 타이밍에 데스나이트가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오크 녀석은 어느 틈에 사라졌는지 보이지도 않았다.
처음 데스나이트를 잡을 땐 레벨을 올리는 게 목적이었기 때문에 반드시 같은 놈과 싸웠다.
하지만 이제는 아무나 먼저 나타난 놈과 싸우고 있었다.
어차피 데스나이트는 스스로 체력을 회복하지 못하는 몬스터였다.
그러니 번거롭게 움직일 필요가 없었다.
“빨리 끝내자. 오늘 저녁은 생선구이거든.”
터엉-!
이내 데스나이트가 내 말을 알아듣기라도 하듯 달려들었다.
***
[Level Up!]
[System : 블루스톤x2, 차가운 심장x1, 오래된 녹슨 검x1을 획득했습니다!]
간만에 레벨업인가.
[최현 Lv.23
체력: 2350/2350 마나: 230/230 기력: 23/30
힘: 76 민첩: 32 지능: 32
(사용 가능 포인트: 0)
라이프 : 923개]
3마리나 잡았는데 1레벨밖에 오르지 않았다.
확실히 필요 경험치의 양이 전보다 훨씬 많아진 걸 느낀다.
이 정도로 레벨업이 힘들면 아무래도 한동안 고생하겠는걸.
애초에 한 마리 잡을 때마다 레벨업을 하는 게 비정상이지.
그때 눈앞에 다른 창이 하나 더 떠올랐다.
[System : 펫 시스템을 사용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펫 시스템?
일반적으로 펫이라고 하면 플레이어 따라다니며 버프를 주거나 함께 싸우고, 혹은 타고 다닐 수 있는 사역마 같은 존재다.
초월 능력으로 그런 것도 가능한가?
그렇다면 펫은 어떻게 구하지?
아래에 새로 생긴 강아지 모양의 아이콘을 누르자, 창이 떠올랐다.
[아직 펫이 없습니다. 몬스터를 포획하세요.]
이런 문구와 함께 인벤토리에 ‘포획망’이라는 아이템이 생겼다.
[포획망
친밀도가 1000 이상인 몬스터를 포획하여 펫으로 만들 수 있습니다.]
새로운 시스템이 열려서인지 오크의 체력바 위에 노란색으로 처음 보는 숫자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설마 저게 친밀도라면… 게이트에 있는 몬스터를 펫으로 포획하는 거야?!
그리고 무려 오크와 내 친밀도는 ‘8102’.
딱 봐도 적지 않은 수치였다.
뭐, 매일 같이 밥 먹고 놀고 자는데 친밀도가 낮다면 그게 이상하지.
아무튼, 이 시스템은 내게 굉장히 반가운 소식이었다.
오크와 함께 여기서 나갈 수 있는 길이 열린 거니까.
“왜 그렇게 뚫어지라 쳐다봐?”
오크의 물음에 내가 멋쩍게 머리를 긁적이다가 어색하게 웃으며 말했다.
“혹시… 내 펫 할래?”
“…….”
정적.
오크가 내게서 천천히 뒷걸음질 치기 시작했다.
“자… 잠깐만. 미안한데, 난 그런 취향이 아니라서.”
“뭐? 그게 무슨…….”
오크에게 한 걸음 다가가자 그는 흠칫 놀라며 더욱 빠르게 뒷걸음질 쳤다.
“……?”
“아니, 형씨는 내게 소중한 친구지만, 난 역시 좀 힘들 거 같다.”
“뭔 개소리야?!”
더 깊은 오해가 생기기 전에 오크에게 펫 시스템에 대해 차근차근 설명해 줬다.
“그럼 나도 같이 나갈 수 있는 걸까?”
“해 보지 않아서 잘 모르겠어.”
펫 시스템이 어떤 시스템인지 아직 알 수 없다.
만약 그를 펫으로 삼는다고 해도 후에 다른 헌터들과 팀을 짜면 오크를 꺼내긴 힘들 거다.
지금까지 어떤 헌터도 몬스터를 펫으로 데리고 다닌 적이 없었으니까.
하지만 그런 것보다 지금은 일단 오크를 데리고 이곳에서 나가는 게 가장 중요했다.
“좋아. 그럼 해 보자.”
“정말?!”
“어차피 그 외엔 다른 방법도 없잖아.”
씨익, 웃으며 엄지를 세우는 오크에게 고개를 끄덕인 뒤 바로 포획망을 꺼냈다.
커다란 그물같이 생긴 포획망을 보고 오크도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다.
망설이지 않고 오크 위에 포획망을 씌우자 시스템창이 나타났다.
[System : 오크를(을) 펫으로 삼겠습니까? YES . NO ]
침을 꿀꺽 삼키고 [YES]로 손가락을 가져가자 포획망과 오크가 빛에 휘감겨 사라졌다.
놀란 나는 황급히 펫 시스템창을 다시 열었다.
[오크 Lv.1
힘 : 5 민첩 : 5 지능 : 5
-스킬-장비-]
간단한 능력치와 함께 스킬창과 장비창이 있었는데, 열어 봐도 아무것도 없었다.
옆에 있는 ‘소환’ 버튼을 누르자 내 앞에 마법진이 그려지고 오크가 다시 나타났다.
“오…! 나왔다.”
“괜찮아?!”
내 물음에 그는 고개를 여러 번 끄덕였다.
“음…. 뭐랄까 엄청 편안한 공간에서 쉬는 기분이랄까? 나쁘지 않아. 형씨의 눈으로 밖을 볼 수 있는 것 같고.”
“후우…. 다행이다.”
오크를 펫으로 데리고 다니면서 앞으로 함께 싸울 수 있게 된 건 기쁜 일이지만, 일반적인 펫처럼 대하는 건 절대 사양이다.
내 동료니까.
우리는 근처에 있는 커다란 나무 아래에 자리를 잡고 누웠다.
“드디어 자유의 몸이구만?”
“그러게. 낮에 이렇게 한가롭게 누워 있다니…. 믿기지 않는걸.”
해만 뜨면 귀신같이 나를 찾아왔던 데스나이트가 이제 한 마리도 남아 있지 않다.
오크의 말처럼 난 자유다.
자유라고!
“그런데 그 표정은 뭐냐?”
떨떠름한 내 표정을 보고 오크도 비슷한 표정을 지었다.
“미리 말해 두겠지만, 난 같이 못 싸운다.”
“알고 있거든?”
오크의 말에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저 녀석은 나처럼 라이프가 잔뜩 있는 게 아니라 보스 몬스터랑 싸울 수 없었다.
사실 어떻게든 이길 수만 있으면 되는데, 900개 정도의 라이프로도 잡을 수 없는 강한 놈이 나오는 게 최악의 시나리오다.
내가 아직 섣불리 오크들을 처리하지 못하는 이유이기도 했다.
“결국, 놈이랑 싸우는 건 피할 수 없는 일인가.”
분명 이곳에서 있었던 시간은 끔찍하기 그지없었지만, 어떻게 보면 헌터로서 좋은 기회였다.
데스나이트와 이렇게 많이 싸웠으니, 웬만한 몬스터한테는 쫄지도 않을 것 같았다.
내가 상체를 벌떡 일으켰다.
“맞다! 너 이참에 이름을 짓자.”
“뭐어?!”
그는 노골적으로 싫다는 표정을 지었지만, 여기서 포기할 내가 아니었다.
오히려 그 표정을 보니 더 괴롭히고 싶어졌다.
“앞으로 같이 지낼 텐데 계속 오크라고 부르는 건 좀 그렇잖아. 조나단이라든가, 키안이라든가 멋진 이름 많잖아.”
“…그게 나한테 어울린다고 생각하냐?”
“별로 상관없지. 부르기 좋은 게 좋은 이름이니까.”
내 말에 오크는 한숨을 푹 내뱉었다.
“맘대로 해.”
사실 전부터 이름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오크와 계속 함께할 수 있다는 보장이 없어서 망설이고 있었다.
“흐음…. ‘발렌’ 어때?”
“그게 뭔데?”
“스페인어로 ‘지키다’라는 의미가 있는 단어야.”
물론 내가 스페인어를 할 줄 아는 건 아니었다.
그냥 우연히 주워들은 그럴듯한 말 중 하나일 뿐이었다.
판타지 소설에서 읽었던가…….
“뭐…. 나쁘지 않네.”
그는 중얼거리듯 그렇게 말했다.
내심 마음에 든 모양이군.
그때 내 앞으로 시스템창이 튀어나왔다.
[System : 펫의 이름이 변경되었습니다. 펫과 시스템이 동조되었습니다.]
시스템… 동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