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 : 배신과 감금(1)
“이번 게이트는 수당 얼마래?”
“15. 2층 게이트인데 많이 주겠냐?”
던전 1층에 있는 헌터 협회 사무소에 제법 많은 사람이 모여 있었다.
헌터는 반드시 국가에서 운영하는 ‘헌터 협회’에 속하거나, 사설 ‘길드’에 속해야만 한다.
헌터 협회에서는 체계적인 구조로 헌터들의 일거리를 확보해 주고, 정보를 쉽게 얻을 수 있지만, 그만큼 수수료를 떼어 가는 단점이 있다.
반대로 길드는 수수료가 거의 없는 대신, 일거리가 규칙적이지 않으며 정보에 둔감했다.
“오! 오늘은 안 도망치고 왔네?”
중년의 헌터가 최현을 보고 히죽거리며 말을 걸었다.
그러자 주변에 있는 다른 헌터들도 비웃으며 그를 위아래로 훑어봤다.
방어구 하나 제대로 갖추지 못한 허름한 옷차림과 비실비실한 몸은 헌터라고 하기엔 민망할 정도였다.
E급 헌터라고 모두 그처럼 놀림감이 되는 건 아니었지만, 그는 E급 헌터 중에서도 최악의 실력을 가진 헌터였다.
현이 품에 안고 있는 대검을 꽉 움켜쥐는 걸 보고 ‘박민웅’이 다가왔다.
“좀 괜찮아졌어?”
“아…. 네.”
민웅의 말에 현이 급히 고개를 숙이며 인사했다.
저번 게이트 정찰에서 같은 팀원 하나가 목숨을 잃었고, 그로 인해 현은 한동안 일을 쉴 정도로 트라우마가 심했다.
동생의 병원비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다시 이곳에 나왔지만, 그는 헌터 일이 끔찍하게 싫었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자면 무섭고 두려웠다.
다른 헌터들보다 실력도, 장비도, 재능도 없는 자신이 무참하게 죽는 게 겁났던 것이다.
“걱정하지 마. 어차피 오늘은 2층에 생긴 게이트고, 크게 위험한 일은 없을 테니까.”
“네. 감사합니다.”
민웅을 보고 현은 조금이라도 미소를 짓기 위해 입꼬리를 움찔거렸다.
실력은 없었지만, 다행히 현의 주변에는 좋은 사람들이 많았다.
같은 팀을 이루고 있는 사람들은 모두 현에게 따듯하게 대해 줬으니까.
“하하하하! 강한 몬스터가 나오면 이 몸이 처리해 줄 테니까 내 뒤로 숨으라고.”
어느새 옆으로 다가온 ‘이석준’이 현의 어깨에 팔을 걸치며 말했다.
나이는 현과 동갑이었지만, 석준은 D급 헌터로 제법 실력도 인정받고 있었다.
헌터 랭크는 한 단계 올라갈수록 형용할 수 없을 정도의 큰 실력 차이가 존재했다.
그렇기에 석준은 현에게 동경의 대상이었다.
“아침부터 다들 기운이 넘치시네. 왔냐?”
검은색 뿔테 안경을 쓰고 있는 젊은 남자가 현에게 캔커피를 던져 줬다.
따듯한 캔커피를 받은 현이 빙긋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숙였다.
“가… 감사합니다.”
“형! 내 건?!”
“시끄러. 넌 돈 잘 벌잖아. 알아서 사 마시던가.”
“와…. 진짜 치사하다.”
그중에서도 현이 가장 잘 따르는 사람은 바로 이 사람, ‘강하성’이었다.
C급 헌터인 그는 항상 현을 옆에서 챙겨 주며 헌터에 대해 많은 것을 가르쳐 주는, 좋은 형이었다.
현과 나이 차이도 4살밖에 나지 않았기에 현은 친형처럼 그를 잘 따랐다.
“자, 오늘도 힘내서 일해 보자고.”
민웅이 그렇게 말하며 사무소 밖으로 나갔고, 다른 세 사람이 그의 뒤를 따라 나왔다.
정찰팀은 말 그대로 게이트를 공략하기 전, 먼저 게이트 내부를 살피고 정보를 전달해 공략팀이 좀 더 쉽고 안전하게 싸울 수 있도록 보조하는 역할이었다.
적과 직접적인 전투가 벌어지는 경우가 드물기에 어떻게 보면 공략팀보다 안전하다고 할 수도 있지만, 아무런 정보도 없이 게이트에 들어가는 것부터 위험한 일이었다.
“C-8 구역에 있는 게이트를 정찰하는 게 오늘 임무야.”
“하아…. 왜 하필 C구역이야? 입구에서 제일 먼 곳이잖아.”
민웅의 말에 석준이 한숨을 푹 내쉬며 고개를 떨궜다.
“왜? 끝나고 데이트라도 있냐?”
“…나 지금 놀리는 거지?”
석준이 현을 살짝 노려봤고, 다른 두 사람이 웃음을 터뜨렸다.
항상 좋은 분위기와 활기찬 느낌, 그리고 자신보다 뛰어난 실력의 헌터들과 함께 일한다는 것에 현은 자부심을 느꼈다.
다른 헌터들은 무시하고 비웃었지만, 적어도 여기 있는 세 사람은 자신을 진심으로 대해 줬으니까.
***
던전은 층마다 전혀 다른 분위기를 하고 있는데, 낮은 층은 마치 폐허가 된 미로처럼 음침한 분위기의 벽들이 이어지는 풍경이었다.
불그스름한 배경 사이에 덩그러니 놓여 있는 게이트는 그리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었다.
푸른색으로 일렁거리는 균열을 보고 현은 표정을 찌푸렸다.
언제나 가만히 게이트를 보고 있으면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최현, 듣고 있는 거지?”
“아…. 네! 죄송합니다.”
“일할 땐 정신 차리자. 현이 너는 우리 중에서 던전에 대한 이론이나 지식은 가장 뛰어나잖아. 실전에서 그걸 제대로만 쓸 수 있으면 훨씬 좋은 헌터가 될 거라니까.”
“네!”
자주 듣는 이야기였다.
게이트만 들어가면 긴장해서 머릿속이 하얘지는 바람에 제 실력의 반도 보여 주지 못했다.
그걸 알고 있는 민웅은 현을 안쓰럽게 바라보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방금 말한 것처럼 우리는 게이트 입구부터 총 3km를 이동해서 몬스터, 주변 지형, 얻을 수 있는 자원 등에 대해 정보를 수집할 거야. 평소처럼 나랑 석준이가 움직이고, 하성이는 현이를 데리고 가고.”
“알겠습니다!”
팀의 리더인 민웅의 말에 다른 세 사람이 고개를 끄덕였다.
중심에서 팀을 잘 이끌고, 이 중 가장 경력이 많은 민웅이 리더를 하는 건 누구도 불만이 없었다.
그렇게 민웅을 중심으로 모두가 게이트 안으로 걸음을 옮겼다.
잠깐의 어지러움이 지나가고 나자, 칙칙했던 던전과는 전혀 다른 풍경이 펼쳐졌다.
녹음이 넘쳐나고 새가 지저귀는 소리에 귀가 황홀했으며, 맑은 공기가 머릿속을 깨끗하게 씻어 주는 듯한 느낌이었다.
“매번 말하는 거지만 안전이 최우선이야. 퀘스트는 다시 받아 오면 되지만, 너희 목숨은 하나뿐이라는 걸 명심해라.”
“네!”
현은 항상 부드럽게 챙겨 주다가도, 던전에 들어오면 진지해지는 민웅의 모습을 동경했다.
허벅지까지 오는 높은 풀과 사방에 뒤엉킨 덩굴 때문에 전진하는 게 쉽지 않았다.
무엇보다 주변의 몬스터나 위험 요소들을 경계하며 천천히 이동해야 해서 속도가 느려질 수밖에 없었다.
“여기서 잠깐 쉴까?”
“아…. 네!”
하성은 잠시 주변을 둘러보고 나무 그늘에 자리를 잡았다.
현은 등에 메고 있던 대검을 잠시 옆에 내려놓고, 나무에 기대앉았다.
던전에선 스마트폰이 터지지 않았지만, 이동한 거리나 방향을 확인하는 건 가능했다.
“이제 겨우 500미터인가.”
하성이 한숨을 내쉬자, 현이 피식 웃음을 흘렸다.
“그래도 역시 2층 게이트라서 그런지, 보이는 건 오크밖에 없네. 오크 궁사랑 주술사도 보였고….”
“그러게요. 다행이네요.”
현의 말에 하성이 고개를 들어 유독 새파란 하늘을 올려다봤다.
“하루 종일 이렇게 목숨 걸고 고생해서 겨우 15만 원인가.”
사실 헌터라는 직업에 특별한 조건은 없었다.
누구나 원하면 헌터가 될 수 있었고, 능력에 따라 돈을 벌 수 있는 이상적인 직업이었다.
하지만 오히려 헌터의 수는 점점 줄어드는 추세였다.
발 한 번 잘못 내디디면 목숨을 잃는 곳이었으니, 아무나 지원하지 않았다.
“나도 공략팀으로 옮길까?”
“네?! 누나가 들으면 큰일 나요!”
“하하하. 알고 있다고. 그냥 해 본 말이야.”
하성이 웃으면서 손을 내저었지만, 현은 그가 괜히 하는 말이 아니라는 걸 알고 있었다.
이른 나이에 결혼한 하성은 반년 뒤에 예비 아빠가 된다.
아이를 키우려면 돈이 많이 필요했고, 정찰팀의 수입으론 불안한 게 당연했다.
일이 있는 날보다 없는 날이 많았으니까.
“공략팀은 낮은 층에서도 잘 벌면 하루에 50만 원도 벌 수 있다던데….”
“병원비가 더 나올걸요?! 며칠 일 못 하면 그게 더 손해라니까.”
현의 말에 하성이 멋쩍게 웃음을 지었다.
몬스터를 쓰러뜨리면 보석을 주는데, 그 보석은 현대에 새로운 에너지원이나 여러 헌터 아이템을 만들 때 쓰인다.
그 색이 너무 아름다워서 일반적인 장신구 보석으로도 쓰이기에 공략팀은 몬스터를 사냥한 만큼 수익이 늘어난다.
“그러는 너도 요새 공략팀 쪽 공부하고 있던 거 아니야?”
“…어떻게 아셨어요?”
“저번에 율이한테 들었다고. 매일 밤에 검을 휘두르는 걸 봤다고.”
하성의 말에 입을 꾹 다문 현이 분한 표정을 지었다.
전투 경험도, 실력도 없는 현이었지만, 굳이 강점을 꼽는다면 ‘에렌 셀’이라는 대검이었다.
아버지 유품인 이 검은 무려 4성이나 되는 고급 무기였다.
흔히 말하는 ‘템빨’이라는 걸 가진 것이다.
팔면 최소 3천만 원은 받을 수 있는 검이었지만, 아버지의 유품이었기에 정말 위급한 상황이 아니라면 팔 생각은 없었다.
“뭐, 너도 그런 상황이니까 고민되겠지.”
율이 병원비나 생활비를 모두 책임지고 있는 현의 상황을 알고 있는 하성은 굳이 그를 말릴 생각은 없었다.
결국 현이나 하성, 둘 다 비슷한 상황이었으니까.
“자, 그럼 다시 이동해 볼까?! 얼른 끝내면 한 번 더 임무 받을 수 있을지도 몰라.”
“네!”
오크는 후각이 예민한 몬스터였기에 미리 체취를 숨길 수 있는 향수를 뿌려 뒀다.
덕분에 시야에 발각되지만 않으면 크게 위험할 일은 없었다.
3km를 이동한 뒤 하성이 스마트폰을 보며 인상을 찌푸렸다.
“조금 이상한데?”
“…그러게요. 몬스터의 수가 너무 적어요.”
여기까지 오면서 발견한 몬스터의 수는 겨우 5마리밖에 되지 않았다.
물론 게이트마다 내부의 크기도, 환경도, 출현하는 몬스터의 종류도 달랐다.
하지만 약한 몬스터일수록 그 수가 많이 발견되는 게 정상이었다.
그런데 이만큼이나 왔는데도 겨우 오크 5마리라니…. 지금까지 한 번도 이런 적이 없었다.
“얼른 다시 대장이랑 합류하자.”
“그게 좋겠어요.”
왔던 길을 따라서 안전하게 이동한 두 사람은 미리 와 있는 민웅과 석준을 발견했다.
혹여나 몬스터가 그쪽에 몰려 있던 게 아닌가 생각했지만, 민웅 쪽도 상황은 마찬가지였다.
“흐음…. 지금까지 없었던 일이라고 해서 불가능한 건 아니지만…. 아무래도 찝찝하단 말이지.”
“일단 협회 쪽에 임무 보고할게요.”
헌터 중에선 특별한 능력을 가진 헌터들이 존재했다.
다른 사람을 치료할 수 있는 ‘치유계’, 자연 속성의 마법을 다룰 수 있는 ‘마력계’, 그리고 다른 사람과 텔레파시를 할 수 있는 ‘통신계’가 있었다.
석준은 통신계 능력을 쓰는 헌터였고, 통신 기기가 되지 않는 던전에선 그들의 능력이 꼭 필요했다.
“어차피 우리가 판단할 수 있는 건 없으니까, 저쪽에서 답이 오는 걸 기다리자.”
잠시 뒤 석준이 잠시 통신으로 대화를 나눈 뒤, 민웅에게 말했다.
“공략팀 파견한대요. 협회에선 별로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거 같은데요?”
“그쪽 결정이 그렇다면 어쩔 수 없지. 알았어.”
보고를 마친 후엔 정찰팀의 역할이 끝난다.
정찰을 끝내자마자 공략팀으로 들어가서 바로 공략까지 하는 멀티 헌터도 있지만, 이 네 사람 중에선 없었다.
“아, 수고하셨습니다.”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아서 공략팀이 모습을 드러냈다.
대략 10명 정도의 헌터가 마치 소풍이라도 온 것처럼 껄렁거리며 다가왔다.
“듣자 하니 오크들뿐이고 심지어 그 수도 적다면서요? 보나 마나 게이트 보스도 오렌지 라벨 정도밖에 안 되겠네.”
“몸풀기 정도로 용돈 벌어 가는 거니까 뭐, 나쁘지 않지.”
공략팀을 보고 민웅이 한 걸음 나와서 조심스럽게 입을 뗐다.
“저희가 확인한 건 게이트 전체 크기에 비하면 좁은 구역입니다. 혹시라도 뒤쪽에 다른 몬스터들이…….”
“크하하핫! 걱정도 많으시네. 우리도 나름 여기 잔뼈 굵은 사람들이요. 그래 봤자 2층 게이트인데…. 걱정하지 마시고 퇴근하시죠.”
확실히 이들은 오크 정도는 간단히 제압할 수 있는 숙련된 헌터들이었다.
위험한 상위층에서 목숨을 담보로 큰 성과를 올리는 헌터가 있지만, 이렇게 저층에서 안전하고 확실한 수익만 추구하는 헌터들도 있었다.
지금은 이곳에 있지만, 실력만 놓고 보면 더 높은 곳에서도 전투가 가능한 헌터들이라는 뜻이다.
“어, 뭐야?”
“…왜?”
누군가의 당혹스러운 목소리에 공략팀의 고개가 그쪽으로 돌아갔다.
가장 선두에 있던 한 남자가 눈을 가늘게 뜨며 먼 곳을 바라봤다.
“저건…. 뭐지? 기사…?”
“기사라니?”
이내 다른 헌터들의 시선이 그의 시선을 따라 이동했고, 저만치에서 걸어오는 검은 갑옷의 무리가 보였다.
철컥… 철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