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 : 내 목숨 9999(3)
꿀꺽.
죽고 부활한 뒤, 내 시야에 보이는 아이콘이 하나 더 늘어났다.
번개 모양의 그림이 그려진 아이콘을 누르자, Skill이라는 글자와 함께 목록 창이 떠올랐다.
드디어 나한테도 스킬이 생긴 건가?!
[Passive - 긴급 회피 Lv.1
1%의 확률로 적의 공격을 반드시 회피할 수 있다.]
뭐야…. 이게 끝?
액티브 메뉴에는 아예 아무것도 없었고, 패시브에도 이 스킬 하나뿐이었다.
손에서 파이어볼을 쏜다던가, 검에 전격을 두르는 걸 상상했는데…. 쳇.
물론 1%라는 극악의 확률이긴 하나, 한 방에 죽는 내게 있어선 라이프를 1개 더 얻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없는 것보다 낫지.
어쨌든 이번 일로 알 수 있는 건 특정한 상황을 통해 스킬을 얻을 수 있다는 사실이었다.
레벨이 있는 걸 보면 나중에 스킬을 강화하는 것도 가능하다는 건가.
정말 여느 RPG랑 똑같은 시스템이군.
스킬은 둘째치고 이번엔 놈에게 무려 6의 대미지를 입힐 수 있었다.
두 번째 공격은 대미지를 1밖에 넣지 못했지만, 보너스라고 생각하면 썩 나쁘지 않다.
이제부터다.
철컥…. 철컥…….
다시 모습을 드러낸 데스나이트를 보고 씨익 웃음을 지었다.
반드시 저 망할 자식을 죽이고 이곳에서 빠져나가고 말 테니까.
“덤벼, 이 새끼야!”
***
[최현 Lv.1
체력: 150/150 마나: 10/10 기력: 30/30
힘: 10 민첩: 10 지능: 10
(사용 가능 포인트: 0)
라이프 : 4415개]
게이트에 들어온 지 정확히 300일째다.
그동안 나는 대략 5500번이라는 죽음을 경험했고, 그중 몇 번은 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런 끔찍한 나날을 버틴 덕분에 드디어 저놈을 죽일 수 있는 날이 되었다.
“힘내라고! 형씨! 내가 지켜보고 있을 테니까.”
뒤에서 들려온 익숙한 목소리에 빙긋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나무 몽둥이
오크가 주름 나무로 만든 몽둥이.
단단하고 가벼워서 무기로 쓰기 편리하다.
공격력+1 내구도 7/15]
원래 가지고 있던 검은 진작 내구도가 떨어져서 망가져 버렸고, 그 후로는 오크가 만들어 준 몽둥이로 싸우고 있다.
내구도나 공격력은 암울하지만, 게이트 안에서 계속 구할 수 있는 무기는 이것뿐이었다.
내가 죽는 모습은 도저히 볼 수가 없다며 낮엔 자리를 비우던 오크도, 오늘만큼은 내 싸움을 두 눈으로 똑똑히 봐 주겠다고 따라왔다.
나무 몽둥이를 꽉 움켜쥐며 숨을 들이마셨다.
어차피 검을 들었을 때도 놈을 베진 못했기에, 검이나 몽둥이나 대미지 차이가 크진 않았다.
물론 전혀 차이가 없는 건 아니라서 시간도, 라이프도 예상보다 좀 더 소모됐지만.
“보여 주라고!”
오크의 응원에 엄지를 세워 빙긋 미소를 지었다.
저 녀석이 없었더라면 중간에 모든 걸 포기 했을지도 모른다.
날 이곳에 버리고 간 배신자 놈들보다 저 녀석이 훨씬 좋은 녀석이라는 건 확실하다.
철컥… 철컥…….
듣기만 해도 심장이 쿵쾅거렸던 금속음은 더 이상 아무런 감흥도 느껴지지 않았다.
오히려 놈을 쓰러뜨릴 생각에 흥분을 감출 수 없었다.
[3/7189]
나를 발견한 데스나이트는 지난 5585번 반복했던 것처럼 공격 자세를 취했다.
꽈악-
몽둥이를 움켜쥔 뒤, 놈이 달려드는 순간 몸을 옆으로 굴렸다.
쌔엥!
데스나이트의 첫 번째 공격은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허공을 갈랐고, 놈의 머리통을 향해 힘껏 몽둥이를 휘둘렀다.
뻐억!
[-3]
희열.
그 형용할 수 없는 희열과 함께 전율이 온몸을 뒤덮었다.
“으아아아아아!”
300일이 넘는 시간 동안 끝없이 반복해 왔던 것이 끝이 났다.
여러 데스나이트들 중에서 한 마리를 죽인 것뿐이지만, 내 하찮았던 인생에서 이보다 벅찬 날은 없었다고 감히 말할 수 있다.
기분이 진정되지 않았고, 주변을 펄쩍펄쩍 뛰어다니며 온몸으로 기쁨을 표현했다.
그때 내 눈앞에 시스템 창이 떠올랐다.
[Level Up!]
[System : 블루스톤x2, 차가운 심장x1, 오래된 녹슨 검x1을 획득했습니다!]
[System : 새로운 스킬 ‘라이프 흡수’를 획득하셨습니다!]
[System : 새로운 스킬 ‘라이프 파워’를 획득하셨습니다!]
[System : 새로운 스킬 ‘데이터’를 획득하셨습니다!]
[System : 사용할 수 있는 스킬 포인트가 있습니다!]
[System : 사용할 수 있는 스텟 포인트가 있습니다!]
같은 내용의 창이 겹쳐서 잔뜩 뜨는 걸 보고 침을 꿀꺽 삼켜냈다.
그래, 끝난 게 아니다.
이제부터 진짜 시작이다.
남은 데스나이트들을 모두 죽이려면 ‘조금’ 강해지는 정도로는 어림도 없다.
라이프는 한정적이기 때문에 이번에 얻은 것들로 다른 데스나이트들을 모두 쓰러뜨릴 수 있어야 한다.
마침 해가 지기 시작했고, 찬찬히 훑어볼 수 있는 시간을 얻었다.
“형씨 진짜 최고라고! 젠장…! 그 데스나이트를 혼자서 쓰러뜨렸어!”
“왜 네가 더 기뻐하는 거냐? 덩치는 우락부락한 게, 울지 마.”
내 말에 오크는 고개를 힘차게 끄덕이며 눈물을 닦아 냈다.
“이제 전보다 훨씬 강해지는 거야?”
“아직 모르겠어. 이제 확인해 봐야지.”
오크에겐 내 능력에 대해 말해 줬다.
라이프 외에도 게임 캐릭터 같은 능력을 얻었다고 어느 정도 설명해 줬지만, 게임 자체를 모르는 오크는 생각보다 잘 이해가 되지 않는 모양이었다.
[최현 Lv.15
체력: 1550/1550 마나: 150/150 기력: 30/30
힘: 24 민첩: 24 지능: 24
(사용 가능 포인트: 28)
라이프 : 4416개]
한 마리를 잡고 14레벨이나 오른 건가.
일단 체력은 레벨당 100씩, 마나는 10씩, 그리고 모든 능력치가 레벨이 오를 때마다 1씩 증가한 걸 알 수 있었다.
아직 제대로 스킬을 쓴 적이 없어 마나량이 얼마나 늘어난 건지 모르겠지만, 체력은 무려 10배나 뛰었으니 적지 않은 수치였다.
능력치는 전보다 무려 2.5배나 됐다.
그럼 평범한 수준이었던 내 힘이 지금은 2.5배나 강해졌다는 뜻이었지만, 정말 능력치대로 따라갈지 미지수였다.
“흐음…. 널 때려 보면 가장 확실할 텐데.”
“뭐?! 와 진짜 인성 심각한데?”
“농담이야! 농담!”
오크가 진심으로 서운해하는 표정을 지은 걸 보고 다급히 손을 내저었다.
데스나이트와 싸워 보는 게 수치상으로 쉽게 알 수 있을 텐데…. 일단 패스.
“나무라도 쳐 보는 게 어때?”
“뭐, 어차피 내일부터 또 지겹게 싸울 텐데 급할 필요 없지.”
투자할 수 있는 포인트는 1레벨이 오를 때마다 2씩 주는 건가? 야박하네…….
사용 가능 포인트를 가만히 바라보자, 도움말 창이 떠올랐다.
[체력은 1포인트당 100을, 마나는 10을, 기력은 2를 올려줍니다.]
아래 능력치가 아니라 체력이나 마나에도 투자할 수 있는 거였나?
아직 능력치의 효율이 어느 정도인지 알 수 없으니 포인트를 막 사용할 수는 없었다.
고개를 내리자 능력치 아래로 긴 막대가 보였다.
이건 경험치바인가?
대략 10분의 1 정도 차 있는 경험치바를 보고 인상을 찌푸렸다.
1레벨이었고, 잡은 몬스터가 무려 데스나이트라 한 번에 폭업하긴 했지만, 레벨업은 점점 힘들어질 것이다.
즉, 심사숙고해서 포인트를 투자해야 한다는 의미였다.
능력치는 이만하면 됐고, 스킬을 살펴볼까?
“여기 와서 쉬면서 해!”
오크가 모닥불을 가리키며 말했다.
스킬창을 열어 보며 모닥불 앞에 앉았고, 오크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어때? 강해진 거 같아?”
“당연하지. 강해진 건 확실해. 문제는 얼마나 강해졌느냐야.”
그는 내가 허공에 손가락을 휘휘 젓는 걸 가만히 지켜보다가 나를 살짝 노려보며 말했다.
“…강해졌다고 갑자기 나를 죽이거나 하면 안 된다?”
“푸흡…….”
예상치도 못한 말에 웃음을 터뜨리자, 그가 멋쩍게 머리를 긁적였다.
“진심이라고!”
“알았어. 미안해. 물론 나쁜 인간도 많지만, 적어도 난 친구를 배신하고 죽일 만큼 막돼먹은 놈은 아니거든. 걱정하지 마.”
“치… 친구?”
오크는 작게 되뇌더니 시선을 다른 쪽으로 돌려 버렸다.
귀여운 자식.
이번에 얻은 스킬은 총 4가지.
‘라이프 흡수’, ‘라이프 제물’, ‘데이터’.
들어온 지 얼마 안 돼서 얻은 ‘둔기 숙련’을 합치면 지금까지 내 스킬은 총 5개다.
[Passive - 둔기 숙련 Lv.1
둔기를 무기로 사용 시, 대미지가 3% 증가한다.]
3%의 추가 대미지는 그다지 크지 않지만, 포인트를 찍어서 더 올리면 분명 꽤 쓸 만한 스킬이었다.
지금까진 대미지 수치가 너무 낮아서 신경도 쓰지 않았다.
[Passive - 라이프 흡수 Lv.Max
자신보다 레벨이 높은 적을 죽이면 라이프 1개가 늘어난다.]
이 스킬은 얻자마자 레벨이 최대치였다.
워낙 많은 라이프를 가지고 있었기에, 1개라는 숫자는 썩 와닿지 않았다.
물론 데스나이트와 나는 압도적인 힘의 차이가 있어서 그렇게 느껴지는 거지, 비슷한 수준의 몬스터를 잡으면 내 라이프를 다시 9999개로 복구하는 것도 가능하다는 의미였다.
어디까지나 여기서 나갈 수 있을 때 얘기지만.
문제는 설명에 적혀 있는 ‘레벨’이었다.
내 레벨은 알지만, 데스나이트에게 레벨이 있다는 얘기는 들은 적이 없다.
[Active - 라이프 파워 Lv.1
10개의 라이프를 제물로 바친다. 1시간 동안 모든 능력치가 1.5배로 상승한다.
쿨타임 - 10시간 마나 50 소모]
처음으로 얻은 액티브 스킬이었다.
음…. 이건 아무래도 버프형 스킬인 것 같은데, 약간 애매한걸.
10개의 라이프를 제물로 쓰는 건 상당히 리스크가 컸다.
1.5배 능력치가 상승하는 건 확실히 좋은 버프지만, 지속 시간이 정해져 있으니…….
아직 능력치의 효율을 모르니까 내일 확인한 뒤에 이 스킬을 어떻게 사용할지 고민하는 게 좋겠다.
[Passive – 데이터 Lv.Max
쓰러뜨린 적의 데이터를 획득할 수 있다. 쓰러뜨린 횟수가 많을수록 정확한 데이터를 얻을 수 있다.]
마지막은 ‘데이터’라는 이름의 스킬이다.
이 스킬은 옆에 작은 화살표가 그려져 있었고, 손가락으로 화살표를 클릭하자 커다란 창이 떠올랐다.
데스나이트의 이미지와 함께 옆에 ‘블루 라벨’, ‘Lv.62’라는 문구가 보였다.
몬스터에 대한 정보는 헌터 협회에서 누구에게나 공개되어 있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일반적인 시각에서 본 정보였고, 내게 필요한 건 시스템적인 정보였다.
예를 들면, 내가 입힌 대미지와 적의 체력을 수치로 보는 건 전투에서 굉장히 큰 영향을 미친다.
데이터라는 스킬을 잘 활용하면 전투에서 전략을 짜는 데 분명 도움이 될 것이다.
라이프 흡수의 레벨 차이도 확인할 수 있다.
이번에 얻은 스킬들은 제법 만족스러웠다.
사용 가능한 스킬 포인트는 14포인트.
1레벨에 1씩 주나 보군.
당장 올리고 싶은 스킬은 ‘라이프 파워’지만, 스킬 포인트 역시 좀 더 고민해 보는 게 좋겠다.
나중에 정말 좋은 스킬을 얻을지도 모르니, 일단은 아껴 두기로 했다.
마지막으로 획득한 아이템을 보기 위해 인벤토리를 열었다.
어디 보자…. 차가운 심장이랑 블루 스톤, 그리고 오래된 녹슨 검이었나?
“근데 형씨, 뭐 하나 물어봐도 돼?”
인벤토리에 시선을 고정한 채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뭔데?”
“형씨는 어쩌다가 여기에 혼자 남게 된 거야?”
“…….”
오크의 물음에 나는 그제야 시선을 그에게로 돌리며 인벤토리 창을 닫았다.
내가 인간에게 배신당했다는 건 말한 적이 있지만, 그 이야기를 할 때마다 슬픈 표정을 지어서인지 자세한 내용에 관해서 물어본 적은 없었다.
그래도 이젠 그에게 말할 수 있을 거 같았다.
“나는 ‘게이트 정찰팀’이라는 곳에 소속되어 있던 헌터였어. 게이트가 발생하면 먼저 안으로 들어와서 정보를 수집하고 보고하는 역할이었지. 그날도 평소처럼 게이트를 정찰하러 들어왔어.”
300일이 훌쩍 지난 일이었지만, 아직도 내 머릿속엔 생생하게 남아 있었다.
“그리고…. 몬스터가 아닌, 인간의 손에 죽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