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로드 오브 머니-312화 (312/315)

# 312

312. 목줄을 완전히 물 때까지 기다려! (2)

천중명은 새벽 4시쯤 조용하게 침대에서 내려와 서재로 향했다. 그런 뒤에 노트북을 펼쳐 밤사이에 벌어졌던 상황을 차트와 수치를 통해 확인했다.

[5대 헤지펀드가 모두 참여했습니다. 바닥 2백조 원이 우리 수익입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규모가 작은 헤지펀드들이 계속 시장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천중명은 송문철이 보낸 메모를 보며 옅게 웃었다.

세계에서 가장 잔인하다는 하이에나 다섯 마리가 중국의 목을 물었으며, 그 아래에서 피라냐 떼들이 살점을 뜯어먹느라 정신이 없는 상태였다.

살아있는 먹이의 살점을 뜯어먹는 형국이었다. 누가 뭐래도 저 수치가 힘겨운 이들의 숨통을 조를 테니까 당장 눈에 보이고, 귀에 들리지는 않지만, 비명은 분명하게 울린다.

실직, 수직으로 올라서는 금리, 말라버린 현금까지, 죄 없는 중국의 서민이 가장 큰 충격을 받게 된다.

그러나 말이다.

중국이 시작한 싸움이었다.

거대자본과 진광효가 손잡았다는 사실을 중국 정부가 몰랐다는 말은 멍청하다고 욕을 들어도 변명의 여지가 없는 주장이었다. 더구나 이대로 얻어맞고 있으면 조만간 총칼로 일으키는 전쟁만큼 끔찍한 결과를 한국이 받아들여야 해서 다른 선택은 없었다.

도의적인 책임?

돈을 무기로 우리를 죽이려고 달려든 인간들이 뭐 그런 걸 따져? 안 그러면 일자리를 잃고, 생계가 막막해진 우리 편이 최악의 선택을 떠올려야 하는데?

도깨비 회장은 말이지, 이곳의 죄 없는 이들이 당하는 고통을 막기 위해서라면 이보다 더한 반격도 선택할 마음이 있거든.

천중명이 깍지 낀 손을 세운 채로 모니터에 집중할 때였다.

“커피 가져다줄까요?”

카디건을 걸친 허선영이 서재로 들어와서 천중명의 뒤로 다가왔다.

“좀 더 자도 돼.”

“아까 침대에서 나갈 때 알고 있었어요. 방해하기 싫어서 그대로 있었던 거예요. 커피 어때요?”

“선영 씨도 마실 거면 함께 가.”

천중명은 의자에서 일어나 허선영과 함께 주방으로 움직였다. 커피메이커에 허선영이 준비한 원두를 담고 스위치를 누르는 것이 전부라 딱히 힘들 일도 없었다.

“아침에 나올 결과는 어떨 것 같아요?”

“생각보다 잘 된 것 같아.”

“정말이요?”

“수치가 그렇게 나왔어. 짧은 보고도 받았고.”

천중명이 커피가 담긴 머그잔을 허선영 앞의 홈바에 올려주었을 때였다.

지이이잉. 지이이잉. 지이이잉.

서재에 두었던 휴대 전화기가 요란하게 울었다.

“잠시만.”

빠르게 서재로 움직인 천중명은 통화 버튼을 눌렀다.

“여보세요?”

- 민세조입니다, 회장님. 새벽 일찍 전화 드렸습니다.

“일어나 있던 참입니다.”

천중명은 노트북 화면에 올라온 수치를 확인하며 의자에 앉았다. 그 뒤에 허선영이 들어와 책상에 머그잔을 놓아주고는 밖으로 나섰다.

- 중국 외교부와 특별하게 정보국에서 연락이 있었습니다. 이번 사태를 우리나라에서 주도했다는 점을 알고 있으니 원 상태로 돌려놓으라는 요청이었습니다.

어제는 삼합회 총재란 인간이 협박을 하더니 오늘 새벽엔 정보국 소속이란 놈이 비슷한 짓거리를 해온 모양이었다.

“이번 일을 일으킨 것은 쇼더앤톨먼, 그리고 그 앞에서 직접 움직인 사람이 진광효 삼합회 총재입니다. 필요하다면 오늘 오전 중에 증거가 드러날 테니 그때 다시 의논하시죠.”

- 그 점에 대해서는 이미 의견을 전했고, 중국 측도 짐작하는 눈치였습니다. 그렇더라도 중국의 반응이 심상치 않습니다. 회장님께 무언가 해법이 없겠습니까?

“수석님. 불편하시면 모르겠다고 한 걸음 물러나세요.”

- 그런 뜻은 아니었습니다.

“진광효가 범인인 걸 알고도 우리 정부가 한 일은 없었습니다. 이제 와서 그들의 눈치를 봐야 한다면 차라리 내가 알아서 끝까지 처리하겠습니다.”

- 회장님?

뭔가 억울한 기색이 묻은 민세조의 반응이었다. 교역이나 외교를 고민해야 하는 정부의 핵심 관계자가 가졌을 부담 정도로 이해할 수준이었다.

“이번 사태는 전쟁과 같습니다. 나도 어디에 있는지 아는 진광효를 체포하지 않은 상태에서 윽박지르는 중국에 고개 숙이지 마십시오. 표현하기는 미안하지만, 이번 환율 공격을 방어하지 못해 우리나라가 파산을 앞두었다면 중국에 뭐라고 항의하셨을 것 같습니까?”

- 말씀하신 내용은 충분히 알겠습니다, 회장님.

이번에 들린 민세조의 음색은 참담하고 부끄러운 것이었다.

“당장 두 시간 안에 중국은 위안화 밴드를 상향 조정해야 합니다. 그때면 나와 헤지펀드들의 수익이 지금보다 최소 두 배 정도 늘어납니다.”

- 중국 당국도 그 점을 가장 염려하고 있었습니다.

“지금이 5시 10분이니까 두 시간 정도 남았습니다.”

- 그래서 회장님께 해법을 여쭤보려고 전화 드렸습니다.

천중명은 민세조가 들을 정도로 나직한 한숨을 먼저 내쉬었다.

“가능할지는 모르겠지만, 중국이 가진 미국 국채를 받는 선에서 조절해 보겠습니다.”

- 금액은 어느 정도 선으로 예상하십니까?

“1조5천억 달러 정도가 최소한의 수준입니다. 그 정도라면 헤지펀드들과 조율해보겠습니다.”

1,500선의 환율로 따지면 우리 돈으로 2천조 원에 가까운 금액이었다. 놀란 모양인지 “어우.”하는 민세조의 탄성이 달려왔다.

“그 채권을 받아도 작은 헤지펀드들과 개인 투자자는 중국이 위안화 조절을 통해 해결해야 합니다.”

천중명의 말이 건너가기 무섭게 이번엔 민세조의 나직한 숨소리가 건너왔다. 아무래도 무리한 조건이라고 여긴 눈치였다.

“수석님. 중국은 환율 제도가 우리와 다릅니다. 이대로 사흘이면 그들은 파산을 각오해야 합니다. 나중에 있을 경제보복이 두려워 물러나라고 한다면 나는 차라리 지금의 수익을 극대화하겠습니다.”

- 흐음.

“이번에 벌어들인 수익으로 실직한 이들을 고용하고, 계속해서 폭락하는 부동산을 매입해 견디겠습니다. 내가 지금 포지션을 청산해도 얻는 수익이 200조 원에 달합니다. 왜 겨우 뺏어낸 칼자루를 그냥 넘기려 하십니까? 파산은 중국이 당하는 거지, 우리가 아닙니다.”

- 알겠습니다, 회장님.

각오한 민세조의 답을 들은 천중명은 책상에 기댔던 상체를 세웠다.

- 말씀하신 내용을 확인하겠습니다. 중국이 미국 국채 1조5천억 달러어치를……. 그걸 제공한다면 중재가 가능하십니까?

“시간이 촉박해서 어떨지는 모르겠지만,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6시 전에 답을 주셨으면 하고 조건이 하나 있습니다. 진광효의 처벌, 이 단서를 꼭 붙여주세요.”

- 그렇게 전하겠습니다.

통화를 마친 천중명은 곧바로 송문철의 번호를 눌렀다.

- 송문철입니다, 회장님.

밤을 꼬박 새운 모양으로 꽉 잠긴 그의 음성이 건너왔다.

“훌륭하게 해냈습니다. 곧 좋은 소식이 있을지 모릅니다. 거래팀에 중국과 협의 중이라는 말을 전해주세요.”

- 중국과 협의라고 하셨습니까?

“중국이 지닌 미국 국채를 받아낼 생각입니다. 우리가 바닥을 다졌습니다. 지금 우리가 지닌 수익 2백조 원이 빠지면 헤지펀드들도 곤란할 테니 적당한 선에서 합의될 겁니다.”

증권사 회장답게 송문철은 내용을 바로 알아들었다.

- 회장님. 그런데 지금 말씀하신 제안이 중국에서 직접 온 것입니까?

“자세한 내용은 우리 둘만 알고 있는 것으로 하죠. 중국 외교부와 정보국에서 우리 정부 관계자에게 연락한 모양입니다. 우선 급한 지시가 내려갈 때 움직일 수 있도록 내용만 알려주세요.”

- 바로 전달하겠습니다.

통화는 그렇게 끝났다. 휴대 전화기와 머그잔을 든 천중명은 홈바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

“끝났어요?”

주방에서 아침을 준비하던 허선영이 고개를 돌렸다.

원·달러 환율이 1,500선이라 1조5천억 달러의 채권을 우리 돈으로 따지면 목이 아플 정도로 고개를 끄덕이며 동그라미를 세야 한다.

“좋은 방향인데 결과는 아무래도 오늘 저녁이나 내일쯤 나올 것 같아.”

“중명 씨가 이렇게 애쓴 덕분에 지금 힘겨운 분들이 다시 편안해졌으면 싶어요.”

“금방 그렇게 될 거야.”

걱정 가득한 허선영을 천중명은 부드럽게 다독였다.

**

구완섭은 송문철의 전화를 받았다. 그런 뒤에 천중명의 지시를 전해 들었다.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라 좀 당황스럽기는 합니다.”

- 중국이 발 빠르게 움직이는 모양이다.

“오전 7시 전에 해결해야 하는데 시간이 촉박해 보입니다.”

- 회장님께서도 그렇게 예상하시는데 일단 저쪽이 결정할 일이니까 지켜보며 대응하자. 다른 문제는 없지?

“주포인 우리가 씩씩하게 버티는 동안은 절대 무너지지 않습니다. 헤지펀드들도 우리의 2백조 원을 지켜보며 움직이는 눈치입니다.”

- 피라냐 떼들이 축제를 벌인 모양이다.

“덩치가 워낙 큰 먹잇감을 붙들었으니까 그 정도는 눈감아 주셔야 하지 않겠습니까? 덕분에 우리 수익이 계속 불어나고 있습니다. 10분에 1조 원 정도 됩니다.”

구완섭의 능청스러운 대꾸에 송문철은 듣기 좋은 웃음을 들려주었다.

- 두 시간만 지켜보자.

“아니어도 괜찮습니다. 만약 수익을 극대화하라고 지시하시면 며칠 물고 늘어져서 아예 바닥까지 긁어오고 싶은 정도입니다.”

- 그래. 연락하마.

통화는 그렇게 끝났다.

모니터를 향해 시선을 돌린 구완섭이 휴대 전화기를 든 채로 커다랗게 기지개를 켰다.

먼저 들어가 손에 쥔 이익이 2백조 원이었다. 구완섭이 버티는 동안, 중국이 택할 방법은 하나밖에 없다. 위안화를 지키기 위해 돈을 퍼붓는 일이었다.

제발 그래라.

마법사 구완섭은 재미있다는 듯 웃었다.

중국이 위안화를 지키기 위해 돈을 풀수록 하이에나와 피라냐 떼들은 더 흥분해 달려들 테고, 막차를 타는 게 아닌가 하고 눈치 보던 다른 떼거리들이 연이어 달려든다.

그건 그거고.

“결국, 스토리가 이렇게 되는 거였나?”

조금 전 송문철에게서 미국 국채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어려운 조건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한 걸음 떨어져서 생각하자 중국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도대체 우리 돈으로 얼마야?”

금액을 환산하던 구완섭이 실성한 사람처럼 웃었고,

“난 정말 절대 우리 그룹 회장님 아래 있을 거다. 나 같은 마법사의 소원이 대마법사 밑에 있는 거거든.”

이해하지 못할 혼잣말을 쏟아내는 그를 팀원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눈으로 바라보았다.

**

진광효는 지난밤을 달려서 마카오의 주택에 몸을 숨겼다.

데려온 조직원이 여덟 명, 원래 이곳을 지키던 심복 여덟 명, 모두 16명이 유럽식으로 지어진 저택을 철통같이 지켰다.

잠시 피한다. 이렇게 몸을 감추고 사태가 진정되길 기다렸다가 다른 인간은 몰라도 천중명, 그 인간만은 직접 갈아서 고기밥으로 뿌려준다.

2층의 거실이었다.

세련된 인테리어에 중국식 소품이 가득한 그 거실에서 진광효는 중국과 유럽의 건축문화가 공존하는 도시를 바라보며 이를 갈았다.

천중명? 너는 몸뚱이에 총알이 안 박혀?

칼이 튀어?

자고로 머리가 좋은 인간은 그걸 믿다가 죽음에 이르는 법이 아니던가. 삼합회 조직원을 때려눕힌 실력쯤 있는 모양이다만, 그거야 어설픈 조직원을 상대해서 그런 거고.

진광효의 한 마디면 한국의 한복판에서 천중명에게 칼질해댈 조직원이 백 명은 나온다. 그것도 실력을 갖춘 놈들로 말이다.

“아후-!”

급하게 달려와 신경이 날카롭던 진광효가 고개를 털었다. 아침이 밝아오자 잠을 이루지 못해 저 아래로 밀어놓았던 피로가 한 번에 올라와서 그랬다.

“경계는?”

“대문 안쪽에 네 명, 현관과 거실에 또 네 명을 두었습니다.”

“흠! 그럼 나는 한숨 잘 테니까…….”

침실로 자리를 옮기려는 진광효가 1인용 소파에서 몸을 일으킨 직후였다. 승용차와 승합차들이 줄줄이 달려오는 것이 보였다.

“뭐야?”

숫자가 엄청나서 놀랐고, 그 차량들이 주택 앞을 메우듯 서는 것에 또 놀랐다.

‘공안이 아닌데?’

진광효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실제로 승용차에서 내리는 이들은 권총을, 승합차에서 내리는 이들은 소총을 들고 있었다. 마카오니 뭐니 신경 쓰지 않은 채 죽여서라도 진광효를 데려가겠다는 의미였다.

공안이라면 절대 저렇게 나오지 않는다.

‘정보국?’

진광효는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뭐야?”

푸슝! 카캉! 푸슝! 카강! 푸슈슝! 카가강!

문을 열라는 말도 안 했다.

아예 총으로 자물쇠를 부순 뒤에 달려들고 있었다.

“물러나!”

경고는 단 한 번이었다.

푸슝!

“끄윽!”

앞을 막아서는 조직원은 심지어 가슴을 얻어맞고 뒤로 자빠지고 있었다. 놀란 조직원들이 손을 들고 한쪽으로 밀려났고,

콰아-앙!

현관을 여는 소리와 함께 연달아 총소리가 들렸다.

철컥! 철컥!

방 안에 있던 조직원들이 권총을 뽑는 순간, 진광효는 소파에 다시 털썩 소리가 나도록 주저앉았다.

콰앙!

2층 거실문이 열렸다.

철컥! 철컥! 철커덕!

권총을 든 조직원 둘을 못 본 것처럼 듯 권총과 소총을 마주 겨눈 남자들이 줄줄이 들어섰다.

“진광효.”

진광효는 바닥을 향했던 고개를 천천히 들었다.

“4시간 안에 북경에 도착해야 한다. 얼른 일어나.”

진광효를 향한 남자의 눈빛과 음성에 감정은 전혀 담겨 있지 않았다. 마치 죽은 사람을 대하는 것처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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