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로드 오브 머니-311화 (311/315)

# 311

311. 목줄을 완전히 물 때까지 기다려! (1)

그래도 밤 10시 전에 삼성동 빌라에 도착했으니 오늘은 퇴근이 이른 편이었다.

“어쩐 일이에요?”

실제로 천중명을 맞아준 허선영의 반응도 그랬다.

“간식 좀 할래요? 과일 있어요. 어? 왜 이래요?”

“가만있어! 왜 이렇게 앙탈을 부려?”

“하여간!”

장난처럼 허선영을 안았던 천중명은 방으로 움직였다. 간단하게 씻은 뒤에 편한 옷으로 갈아입고 나왔을 때 허선영은 멜론을 잘라 놓고 있었다.

“표정이 왜 그래?”

“낮에 화영이라고 백화점에서 봤던 친구가 또 왔었어요. 오늘은 울며 매달리던데 미운 건 미운 거고, 안됐다는 생각이 들어서요.”

멜론 조각을 입에 넣으며 천중명은 고개만 끄덕여주었다. 지녔던 것을 잃는 것은 누구에게나 아프다. 그게 사치스러운 삶을 보장했던 기업이든, 하나뿐인 작은 집이든 간에 말이다.

“언제쯤 안정될까요?”

“안성 어머님은 어떠셔?”

“이사 준비하셨다가 지금은 조용하게 지내시나 봐요. 집이 팔리지도 않고, 또 너무 헐값에 넘기기도 그렇고요.”

허선영이 먼저 질문을 던지긴 했지만, 천중명의 말에 답하느라 화제가 바뀌었다.

“찾아오던 사람들 때문에 불편하고 하셨잖아?”

“아직도 그런가 봐요. 요즘은 울며 매달린다고 하던데요. 생활이 안되는 분들에게 몇백만 원씩 건네주신 눈치예요.”

“조만간 끝날 것 같아.”

허선영이 고개를 갸웃하며 천중명을 보았다.

“내일 아침이면 분위기가 확실히 바뀔 테니까 조금만 더 참으시라고 말씀드려. 그렇더라도 이번에 도움 청했다가 거절당한 분들은 앙심을 품을 수 있으니까 당분간 불편하실 수는 있을 테고.”

“정말 이번 일이 안정돼요? 내일 아침부터요?”

“설거지 내가 할게.”

주방에 선 허선영이 물끄러미 포크와 칼, 접시를 씻는 천중명을 보았다.

“왜?”

“아까 이번 사태가 조만간 끝날 것 같다고 할 때랑 엄마에게 말씀 전하라고 할 때 중명 씨 섹시했던 거 알아요?”

“내일 끝날 거야. 어때? 지금도 그래? 한 번 더 해볼까? 내일 끝날 거야.”

기가 막힌 얼굴로 허선영이 웃었다.

접시를 살균기에 넣은 천중명이 수건에 손을 닦고 몸을 돌렸다.

“아버지가 주신 약이 힘을 발휘하는 모양인데?”

“정말 짓궂어! 어어? 나 양치도 해야 하고…….”

천중명은 허선영을 향해 팔을 뻗어 옆으로 들었다. 그리고 방으로 향했다.

**

양서평은 조양회와 건물 바깥에서 진광효의 호출을 기다렸다. 그는 뭐래도 삼합회의 2인자였다. 총재인 진광효의 호위 조직원 몇을 제외하면 삼합회의 일원은 누구나 그에게 고개를 조아려야 한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찰칵.

양서평은 커다란 손을 들어 입에 문 담배에 불을 붙였다.

“후우-.”

화려하게 꾸며놓은 정원이었다.

한쪽의 정자에 앉은 양서평의 앞으로 인공호수가 펼쳐져 있었고, 이따금 작은 고기들이 수면을 찍고 내려가는 바람에 생긴 물결이 조명을 받으며 어둠을 즐기고 있었다.

뭔가 이상한데?

양서평은 슬쩍 시선을 돌려 진광효의 건물을 보았다.

삼합회의 2인자인 양서평을 조양회와 함께 불러 이렇게 오래 기다리게 한다고?

정부의 고위직이 왔다면 정문의 경계가 달랐을 테니 그건 분명히 아니고, 그렇다면 남은 것은 양서평을 죽일 계획이거나 진광효에게 안 좋은 일이 생겼거나 둘 중 하나였다.

양서평은 담배를 입으로 가져갔다.

그의 담배 끝에서 불꽃이 피어오를 때였다.

정문이 열리며 10억 원을 호가한다는 진광효의 리무진이 급하게 빠져나가는 것이 보였다. 그 뒤로 진광효의 호위 조직원이 이용하는 벤츠도 있었다.

양서평은 힐끔 조양회를 보았다.

그런 뒤에 담배 연기를 길게 내뿜었다.

준비는 했다. 밖에 심복들도 깔아 놓았고, 여차하면 조양회만은 빼돌릴 생각도 해 놓았다. 재떨이가 옆에 있는데도 양서평은 담배를 다리 사이로 떨어트리고 발로 밟았다.

위험하니까 준비해.

조양회가 퍼뜩 놀란 눈으로 바라본 직후였다.

우우우웅. 우우우웅. 우우우웅.

그의 품에서 휴대 전화기가 요란하게 울었다.

“여보세요?”

- 총재께서 급하게 나갔습니다. 공항으로 향하는 것만 확인했습니다. 호위 조직원은 벤츠 두 대에 여덟 명입니다.

“조용하게 목적지를 알아봐.”

만약 진광효가 홍콩을 통해 마카오로 향한다면 그가 위기를 맞았을 때 몸을 숨기는 저택으로 향했을 확률이 높았다.

- 부총재님. 분위기가 아무래도 수상합니다. 들어가겠습니다.

양서평은 옆에 서 있는 저택의 조직원들을 돌아보았다.

결정해야 할 때였다.

“조양회를 내보내겠다.”

- 알겠습니다.

통화를 마친 양서평은 조양회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밖에 나가서 내가 가져온 선물을 들고 와.”

“예, 부총재님.”

양서평의 날카로운 눈초리 앞에서 조직원들은 눈치만 살폈고, 조양회는 바로 정문을 향해 움직였다.

뭔가 일이 생겼구나.

양서평은 확실하게 알 수 있었다.

자신을 불러들였던 진광효가 그 흔한 지시 한 마디 못 남기고 몸을 감출 정도로 급한 상황인 게 확실했다.

‘회장님이시겠지.’

진광효가 죽을 거라던 천중명의 말을 떠올린 양서평은 숨을 천천히 들이마셨다. 그리고 어쩌면 주인을 잃게 될지 모를 정원과 건물을 돌아보았다.

**

외환 시장에서 중국은 어마어마한 거인이라고 보면 된다.

3조가 넘는 달러를 보유한 그 시장을 어떻게 때릴까?

구완섭은 먼저 위안화 약세에 베팅했다.

부채를 이용해 급성장한 내수시장, 주식시장을 동원한 규모 확대, 마지막으로 정부가 인위적으로 정한 위안화 달러 환율이 거인의 약점이었다.

모니터 네 개를 바라보던 구완섭이 가볍게 웃었다.

“슬슬 발동이 걸리나?”

그는 야간 선물시장을 보며 기가 막힌 웃음을 쏟아냈다.

“선물팀에도 마법사가 있는 거야, 뭐야? 어떻게 저렇게까지 찍어내지?”

웃음을 지운 구완섭은 모니터를 노려보며 입술을 깨물었다. 마법사 구완섭이 실력을 보일 거라는 의미였다.

**

엄청난 수익을 올렸던 선물팀은 피곤한 줄 모른 채 야간 거래에 달려들었다.

중국이 한국을 공격했던 것과 똑같은 방식이었다.

선물지수를 주저앉혀서 실물 주가를 내려놓는다.

그런 뒤에 달러 대비 위안화가 치솟으면 지켜보던 헤지 펀드들이 쓰러진 물소에게 달려든 하이에나 떼처럼 일제히 물어뜯는 방식이었다.

“좋은데?”

전지곤은 여유 있는 태도로 주문을 넣었다.

“대비가 전혀 없어요.”

“그렇지? 어디까지 밀까?”

“3,700까지 밀어내면 반응이 있을 것 같아요.”

이명선의 답을 들은 전지곤은 잠시 CSI300 차트를 살폈다. 그런 뒤에 그는 힐끔 이명선을 보았다. 필드에서 익힌 감각은 정말 무섭다. 어디가 적의 급소인지를 이명선은 차트보다 거래 상대방의 반응을 통해 감각적으로 알아차리는 눈치였다.

“좋아. 이 과장. 밀어. 오늘 먹은 거 다 털리는 한이 있더라도 제대로 한 방 날려주자고.”

“예, 과장님.”

이명선이 자신 있게 주문을 찍어 넣었다. 뒤에서 지켜보던 박대교는 손안에 쥐고 있던 1백억짜리 복권이 구석에서부터 찢겨나가는 심정이었다.

**

강다희는 이어셋을 귀에 건 채로 주문을 입력했다.

“가는 거 같은데?”

그녀는 여전히 깜찍한 음성이었다.

“위안화는 밴드 안에 갇힌 환율이잖아. 이대로 밀면 배 터지겠는데 뭐! 선물지수 차트 봤어? 우리는 풀베팅.”

그녀의 지시를 받은 팀원들이 위안화 약세에 계속해서 베팅을 이어가고 있었다.

“마진 거래 들어오잖아. 안 할 거면 끊어. 우리 그룹이 투자받은 240조 원 붓기 전에 앞에 세워주려고 전화한 거지, 내가 아쉬울 게 뭐가 있어?”

상대가 다급하게 매달리는지 날카롭게 변했던 강다희의 음성이 다시 바뀌었다.

“그럼 얼른 주문 넣어.”

그녀가 전화를 마친 직후였다.

아예 무음으로 바꿔놓은 휴대 전화기가 어둑한 실내에서 빨간 불빛을 반짝이며 빛났다.

“여보세요? 미안! 내가 연락한다고 하고서! 중국 위안화! 차트하고 주문 보이지? 이미 두 곳 들어갔어. 우리 그룹 자금을 바닥에 깔면서 참고 있거든. 먼저 들어가.”

오늘 낮에 보였던 엄청난 실적을 알아서 그런 모양이었다. 통화하는 중에 상대방이 찍어 넣은 주문이 불쑥 떠올랐다.

“너무 그렇게 혼자 먹으려고 하지 말고! 나 잊으면 안 돼.”

마지막에 건넨 깜찍한 말투에 앞에 있는 직원이 몸을 떨었고, 그걸 강다희가 매섭게 노려보았다.

“응! 끊어.”

통화가 끝났다. 그리고 기다렸다는 것처럼 또 다른 전화가 들어와 그녀의 휴대 전화기에 불을 반짝였다.

강다희는 이어셋을 눌렀다.

“여보세요? 봤어?”

- 중국 시장 시작했지! 알려준다면서! 어떻게 할 거야?

상대의 음성이 얼마나 컸는지 이어셋이 꽂힌 고개를 비틀며 강다희가 인상을 찌푸렸다.

“선물지수 하락, 주가 하락, 위안화 폭등, 마진 풀. 더 뭐가 필요해?”

통화는 그 짧은 말로 끝이었다. 그 와중에도 강다희는 지켜보는 이들을 약 올리는 주문을 분명하고 확실하게 찍어 넣고 있었다.

강다희가 차트를 파악하는 순간이었다.

“어? 팀장님? 루머 확인하세요!”

팀원의 말에 그녀는 딜러들만이 사용하는 SNS를 화면 한쪽에 올렸다.

[홍콩의 인베스트 뱅크 해킹 발각. 현재 서버 다운. 한국의 환율시장을 공격했던 계좌 확인. 비트코인 사기. 계좌 주인 중국인 망진광효. 삼합회 총재 진광효 계좌라는 말 있음.]

루머를 확인한 강다희는 소름이 쭉 끼쳤다.

마법사 구완섭 팀장이 그렇게 미친 듯이 승부를 내더니 혹시 이걸 알고 있었던 거야?

화면 아래에서 새로운 창이 부드럽게 올라왔다.

[5대 헤지펀드 위안화 공략. 최소 40퍼센트 하락 예상. 선물지수 폭락 중.]

“들어가! 가진 거 다 밀어 넣어! 무자비하게 눌러!”

강다희의 음성이 날카롭게 터져 나왔다.

그도 그럴 것이 세계 5대 헤지펀드가 동시에 달려든 것은 1997년 아시아 시장을 휩쓴 외환 작전 이후에 처음 있는 일이었다.

**

구완섭은 30조 원의 레버리지를 무려 10배나 사용했다.

이익도 10배, 손실도 10배.

당장 모니터에 찍힌 이익을 지켜보는 팀원들은 아예 숨을 못 쉴 지경이었는데 그는 미친 사람처럼 히죽대며 웃고 있었다.

“잘한다, 강다희! 이대로 밀어!”

자정 근처였다.

쓰나미처럼 주문이 쏟아지면서 당장 중국의 위안화는 대응조차 못 한 상태로 눌리고 눌렸다.

띠링.

그때 구완섭의 모니터에 SNS 루머란이 올라왔고,

“히익!”

곧바로 팀원 한 명이 목을 졸린 듯한 비명을 토해냈다.

쓰나미가 덮친 위안화 시장에 이번엔 태풍이 몰아치듯 주문이 끝없이 쏟아지고 있었다.

“끅.”

팀원 한 명은 아예 숨이 막힌 것처럼 가슴을 두드렸다.

“이익이 110조 원을 넘었습니다!”

“놔둬!”

혹시나 포지션을 손댈까 봐 버럭 지른 구완섭의 고함이 스위트룸의 거실을 덮쳤다.

“여기에서 손 빼면 우리 작전에 이용당했다고 생각해서 다들 물러나! 헤지펀드들이 목줄을 완전히 물 때까지 기다려!”

이렇게 먹었는데 더 뭘 기다려?

팀원들은 구완섭의 지시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사실 살면서 몇백조 원이 달려드는 환율 작전을 상상할 사람이 몇이나 되겠나. 그것도 거인 중국을 상대로 말이다.

게다가 수익이 110조 원을 넘었다.

여기에서 포지션을 정리해서 수익을 챙기면, 지금 스위트룸에 있는 팀원 중 막내가 받는 인센티브가 1천억 원쯤 된다.

구완섭은 대략 1조 원을 받고.

생각이 멈춘 팀원들이 멍한 눈으로 마법사를 바라볼 때였다.

“헤지펀드가 완전히 물릴 때까지 이대로 간다. 저 다섯 개 헤지펀드가 목까지 베팅하면 둘 중 하나야. 중국이 고개 숙이든가, 헤지펀드가 완전히 망하든가.”

“중국에는 3조 달러가 넘는 외환이 있습니다.”

“그거 다 털면 중국은 내일 파산 나. 지켜봐. 게다가 중국인 삼합회 총재가 환율 전쟁을 일으킨 주범이라고 밝혀지면 중국은 명분도 없어.”

구완섭이 말하는 동안 수익은 170조 원을 넘어서고 있었다.

‘회장님. 도대체 어떤 마법을 쓰신 겁니까?’

망진광효의 계좌를 운영했던 장본인, 마법사 구완섭은 진정한 대마법사를 본 느낌이었다.

**

11조 원의 수익에 비명을 질렀던 김서언 대리였다.

“으아아아-아!”

중국의 선물지수를 공략한 금액이 총 20조 원, 3,700까지 주저앉혀 보자며 주문을 넣은 상황에 느닷없이 폭포수처럼 추가 주문이 쏟아져서 지금 지수는 3,450선까지 단숨에 밀렸다.

20분간 거래가 정지된다는 알림이 뜨는 순간에 선물팀이 기록한 수익은 59조 원이었다. 거래정지가 걸렸다. 그런데 이 시간에도 환율 쪽에서 미친듯한 위안화 약세 주문이 쏟아지고 있어서 15분 뒤에 예상 선물지수는 3,200 수준이었다.

1백조 원이 넘는 수익이라니?

거대한 중국 시장을 완전히 거덜 내다시피 하는 수익이었고, 장이 시작되는 것과 동시에 중국의 주식시장이 완전히 무너질 게 분명한 이익이었다.

“과장님…….”

커피를 놓아주는 막내 박대교의 손이 얼마나 떨리는지 전지곤이 얼른 잔을 붙들었다. 그런 뒤에 그는 이명선을 힐끔 보았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그녀는 모니터를 똑바로 보고 있었다.

엄청난 인센티브를 계산하고 있을까?

그럴 친구는 아닌 것 같은데?

‘회장님. 최선을 다했습니다. 이 수익이 회장님께 꼭 힘이 되었으면 싶습니다. 은혜를 갚을 기회를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사실 누구도 이명선의 심정을 짐작하기는 어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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