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로드 오브 머니-308화 (308/315)

# 308

308. 늦었어. 진광효. (2)

천중명은 홍콩물고기 황채산을 날려버린 거래 경험이 있어서 모니터를 보며 단숨에 상황을 파악했다.

‘멋진데?’

물론 주문을 내는 당사자들의 심정을 1백 퍼센트 안다고 하기는 어려웠다. 그렇더라도 긴박했던 상황과 분위기는 충분히 파악했다.

‘진광효. 이제 두 번째 방아쇠를 당길 텐데 준비됐어?’

천중명이 모니터를 보며 픽 웃었을 때였다.

지이이잉. 지이이잉.

책상에 둔 휴대 전화기가 울었다.

“여보세요?”

- 회장님. 마타르 청장님의 통역입니다.

“무슨 일이야? 청장님께 문제라도 생겼나?”

통상 마타르의 음성이 먼저 들리고, 그 아래에서 통역이 우리말을 전한다. 그런데 앞서 나왔어야 할 마타르의 음성이 들리지 않아서 천중명은 먼저 그 이유를 물었다.

- 아닙니다, 회장님. 청장님과 우즈만 왕세자께서 화상회의가 가능하신지를 확인해보라는 지시를 수행하기 위해 전화 드렸습니다.

“화상회의? 언제?”

- 두 분이 지금 청장님의 회의실에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5분 뒤면 적당할 것 같은데? 부속실에 전화해서 라인을 연결해.”

- 그렇게 준비하겠습니다.

통화를 마친 천중명은 바로 인터폰을 눌렀다.

“아랍에미리트에서 화상회의 신청이 있을 테니까 준비하고 알려줘.”

[네, 회장님.]

인터폰에서 손을 뗀 천중명이 상체를 세웠을 때였다.

지이이잉. 지이이잉. 지이이잉.

또다시 휴대 전화기가 울었다.

“여보세요?”

- 안녕하십니까, 회장님? 민세조입니다. 통화가 잠깐 가능하실까요?

“5분 정도 여유 있습니다.”

- 정부가 준비했던 환율안정 자금이 오늘 바닥났습니다. 아직 외부에 발표하지 않았지만, 회장님께는 알려드려야 할 것 같아서 말씀드립니다.

짐작했던 일이었다. 그리고 이렇게 전화를 걸어 무언가 반가운 소식을 듣고자 하는 민세조의 안타까운 바람을 천중명은 충분히 짐작했다.

“환율이 1,525에 고정되었습니다. 선물지수는 225까지 상승했다가 222.50선에서 안정되었고요. 조만간 환율이 제자리를 찾아갈 것으로 봅니다. 금리는 그다음 순서로 보시면 될 것 같습니다.”

민세조가 VIP에게 보고할 수 있도록 천중명은 현재 상황을 요약해서 전해주었다.

- 오늘 치열한 공방이 있었습니다. 알고 계십니까?

“홍콩의 헤지펀드라고 짐작하시면 적당할 것 같습니다. 조만간 재미있는 보도를 보실 수 있을 텐데 그 일이 있고 난 뒤에 우리 환율과 이자율이 안정될 거로 예상하고 있습니다.”

- 그 기간을 얼마로 보십니까?

부속실 직원이 들어온 것을 본 천중명은 책상에서 몸을 일으켜 회의실로 향했다.

“빠르면 일주일, 늦어도 1개월을 넘기지 않을 겁니다. 제게 혹시 조언을 구하신다면 소외된 계층을 위한 지원을 좀 더 과감하게 시행하시라는 말씀을 드립니다.”

- 그렇게 보고드리겠습니다.

회의실에 천중명이 앉으며 통화가 끝났다.

“오른쪽 버튼을 누르시면 화상이 연결됩니다.”

물과 커피, 필기도구와 노트를 준비해 놓은 부속실 직원이 나가는 것과 동시에 천중명은 설명 들었던 버튼을 눌렀다.

커다란 모니터에 전원이 들어오면서 마타르와 우즈만의 모습이 보였다.

“안녕하십니까?”

- 천 회장님! 이렇게라도 뵙게 되어서 기쁩니다.

아랍어의 뒤에서 우리말이 들렸는데 한쪽으로 비켜나 있는 모양인지 통역의 모습은 화면에 잡히지 않았다.

- 우즈만 왕세자께서 방문하신 핑계로 오늘 있었던 환율 거래와 선물 거래를 함께 보았습니다. 그리고 우리 천 회장님이 대단하다는 의견을 나누다가 문득 보고 싶다는 생각에 시간을 청했습니다.

하얀 두건과 검은 머리띠, 그리고 아랍 특유의 하얀 원피스를 입은 마타르와 우즈만이 넉넉한 모습으로 웃었다.

- 보도를 모두 보았습니다. 대단하다는 말을 먼저 전하고, 더불어 우리 천 회장과 같은 편에 섰다는 것에 감사합니다.

내용이야 통역을 통해 이해한다. 그렇더라도 우즈만이 그의 차분한 음성에 담아 전하는 묘한 위로를 천중명은 분명하게 느낄 수 있었다.

“계획대로 진행되고 있습니다. 조만간 기쁜 소식을 가지고 두 분을 뵐 수 있을 거라 기대합니다.”

- 쇼더앤톨먼이 나서지 못하도록 중국과의 싸움으로 방향을 바꾼 천 회장의 방식에 감탄하고 있습니다. 혹시 도움이 될까 해서 우리는 긴급 산유국 회의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유대 자본이 함부로 나서지 못하게 하는 확실한 경고군요.”

- 하하하. 우리 천 회장님이 오늘 주도한 거래만 하겠습니까?

240조 원이라는 엄청난 자금을 투자한 사람들답지 않게 마타르와 우즈만 모두 여유로운 느낌이었다.

- 바쁘실 테니 이만 줄이겠습니다. 일을 마치면 꼭 한 번 다시 보고 싶습니다.

“저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우즈만 왕세자님.”

- 나를 빼놓는 분위기는 절대 찬성할 수 없습니다.

마타르의 농담에 또다시 세 사람이 함께 웃었다. 그리고 이어서 신의 가호를 기원하는 두 사람의 축복을 끝으로 화상회의가 끝났다.

화면이 꺼지며 천중명을 둘러싼 현실은 곧바로 급한 한국의 삶을 펼쳐놓았다.

“자, 그럼 두 번째 방아쇠를 당겨볼까?”

혼잣말을 뱉은 천중명은 먼저 테이블에 놓인 인터폰을 눌렀다.

[네, 회장님.]

“중국어 통역을 불러줘.”

지시를 내린 천중명은 몸을 일으켜 집무실로 향했다.

**

거래를 마친 구완섭은 굵직한 금융사의 펀드매니저들과 통화하며 그들의 타켓이 중국으로 향하도록 열심히 떠들었다.

오늘 거래에서 보인 모습이 워낙 대단해서 구완섭의 말에는 힘이 담겨 있었다. 그렇게 통화하던 그가 상대의 말을 듣고는 눈을 껌벅였다.

“모상굉? 처음 들어. 어디 있는 인간인데?”

- 홍콩에서 거래하는데 아무래도 한국을 노리는 눈치였어. 마법사를 잡고서 이름을 알리겠다고 떠들었고. 전에는 하베스 아이비에 있었고.

상대가 좀 더 정확한 내용을 전해주는데도 구완섭은 모상굉에 대해 아는 바가 전혀 없었다.

“나를 노리는 멍청이들이 한둘이어야지. 그러지 말고 다음번에 신호 주면 달려들 건지나 정확하게 말해. 생각 없는데 굳이 연락할 필요 없잖아.”

- 무슨 소리야? 나는 무조건 콜!

“좋아!”

통화를 마친 구완섭은 휴대 전화기를 내려다보며 고개를 갸웃했다.

“모상굉? 누군지는 몰라도 더럽게 멍청한 인간인가 보네. 내가 모를 정도로 어쭙잖은 게 어딜 회장님께 덤벼?”

솔직히 구완섭은 오늘 원 없이 베팅해 보았다.

천중명이 알려준 40조 원짜리 계좌, 소유자의 이름이 망진광효라는 독특한 계좌 덕분이었다. 하루에 모두 소진해도 상관없으니 상대방의 기를 다부지게 꺾으라는 지시라니.

살면서 그런 지시를 또 받을 수 있을까?

“아! 모상굉이고 모과고 나는 모르겠고! 회장님 지시 덕분에 마법사는 오늘 풀 충천이다! 모상굉? 아까 하는 주문으로 봐선 아직 멀었다!”

혼잣말을 뱉고 나서 소파에 털썩 주저앉는 구완섭을 팀원들이 자부심 넘치는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마법사 구완섭은 업계에서 그 정도 위치에 있는 인물이었다.

**

거래는 중국에 있는 진광효도 보았다.

이건 뭐, 바보도 바로 알아볼 정도로 한국의 위대한 승리여서 그는 곧바로 모상굉에게 전화를 걸었고, 보고를 들었다.

“그래서 손해가 얼마나 났다고?”

- 환율에서 25조 원, 선물 거래에서 11조 원입니다.

“허어. 허어어.”

기가 막힌 보고에 진광효는 해괴한 웃음을 터트리며 자리에서 일어서서 정원을 향해 섰다.

“옆에 있는 놈을 바꿔.”

창에 비친 진광효는 앞니가 드러나는 멍청한 표정을 지우지 않았는데 그게 화를 내는 것보다 훨씬 잔인하게 느껴졌다.

- 전화 바꿨습니다, 총재님.

“그 방에 있는 놈들을 전부 데려와. 모두 갈아서 고기밥으로 던져.”

- 예, 총재님.

통화를 마친 진광효가 숨을 천천히 들이마셨다가 다시 길게 뱉었다.

젊은 회장에게 자금이 그렇게 여유 있었다고?

오늘 강하게 버텼지만, 실제로는 자금이 바닥나 지금 속이 까맣게 타 있는 게 아닐까?

진광효는 얼른 휴대 전화기를 내려다보았다.

그렇다면 모상굉을 고기밥으로 주기 전에 내일 한 번 더 기회를 주는 게 현명한 일이 아닐까 하는 생각 때문이었다.

어떻게 하지?

그가 눈살을 좁히며 고민할 때였다.

우우우웅. 우우우웅. 우우우웅.

그의 휴대 전화기가 손안에서 울었다.

어제 계좌를 찾아오라고 지시했던 변호사였다.

진광효는 통화 버튼을 빠르게 눌렀다.

“말해.”

- 총재님께서 말씀하셨던 계좌에 문제가 생겼습니다.

“문제? 무슨 문제?”

- 그 계좌가 오늘 환율 거래에 이용됐습니다. 25조 원이나 차익이 생겨서 당장 해킹으로 가져오기가 어렵습니다.

“푸후-.”

진광효는 먼저 뜨거운 숨을 길게 토해냈다.

“은행 계좌로 어떻게 거래를 할 수 있지?”

- 증권 연결계좌였습니다.

“기가 막히는군.”

이제 확실히 알았다.

천중명은 뺏어간 진광효의 계좌에 담긴 40조 원으로 오늘 모상굉을 짓눌렀던 모양이었다. 자존심 꺾어가며 테트 케블린에게 40조 원을 빌렸는데, 젊은 회장은 그걸 장난질 치듯 여유롭게 상대했던 게 분명했다.

오늘이 한국을 꺾는 결정적인 날이라 기대했었던 진광효를 천중명은 어떻게 생각했을까?

바보? 멍청이?

멍하니 정원을 바라보던 진광효의 볼이 수치심을 이기지 못해 삽시간에 붉게 물들었고,

“날 가지고 놀았어. 이 삼합회의 총재인 진광효를.”

휘이익! 와장차-앙!

결국, 의자를 들어 창을 부수고 말았다.

“이 삼합회의 총재인 진광효를 비웃고 있었던 거야! 나를!”

와락! 콰다다-당!

분통이 터져버린 진광효가 다시 테이블을 잡아채 바닥에 내던지면서 그의 방이 처참하게 변했다.

조직원들은 말할 것도 없고, 한국의 포털에 올라온 기사를 읽어주던 직원은 아예 고개를 처박은 채 떨고 있었다.

“내게서 가져간 계좌를 이용해 내 돈을 처먹다니! 그러면서 킬킬거렸을 텐데! 아무것도 모르고 매달리는 거래를 보면서 무슨 생각을 했겠냐고! 으아-아!”

콰악! 콰다다당!

진광효가 컴퓨터 테이블까지 바닥에 처박는 바람에 유일하게 의자에 앉아 있던 직원이 쭈뼛거리며 구석으로 물러났다.

“변호사 놈과 해킹을 맡은 놈도 갈아서 물고기 밥으로 뿌려! 이 멍청한 것들이 시간을 끌어서 이렇게 만들었다고! 당장 잡아다가 갈아버리라고!”

진광효가 악을 버럭버럭 쓰는 순간이었다.

우우우웅. 우우우웅. 우우우웅.

바닥에 널브러졌는데도 아직 부서지지 않은 그의 휴대 전화기가, ‘뭘 그리 화를 내시나?’하는 투로 당차게 울었다. 조직원이 얼른 집어다 준 휴대전화기의 액정을 확인한 진광효가 고개를 갸웃했다.

“이건 또 뭐야?”

모르는 번호였다.

정말 모르는 번호였는데 이상하게 그걸 본 진광효는 머리칼이 쭈뼛 섰다.

“여보세요?”

그가 경계하는 음성으로 전화를 받은 직후였다.

- 진광효 총재? 천중명입니다.

한국말 아래에서 조심스러운 중국어가 넘어왔다.

진광효는 대꾸조차 못 했다.

- 내가 이상한 계좌를 하나 알게 되어서 연락했습니다. 일본의 사설거래소에서 비트코인 수량을 속였고, 홍콩에서는 환율을 조작하는 데 사용했더군요.

이게 뭐라는 거야?

고개를 짧게 털어낸 진광효는 초인적인 의지로 통화에 집중했다.

“천 회장이라고 했지? 삼합회를 어떻게 알고 있는지 몰라도 함부로 설치다간 내일 아침에 너는 잘린 머리만 침대에 남아.”

삼합회 총재인 진광효의 진면목이 확실히 드러나는 경고였다. 그런데, 건너온 것은 어처구니없게도 진광효의 자존심 짓밟는 듯한 가벼운 웃음이었다.

- 이놈이고, 저놈이고 툭하면 그놈의 협박이라니. 그러게 잘하는 짓 하면서 살지, 왜 남의 식탁에 허락 없이 숟가락을 올려?

통역을 통해야 말뜻을 이해한다.

그러나 천중명의 음성에 담긴 당당함만은 진광효도 충분히 알 수 있었다.

“배짱이 대단하군.”

- 이봐, 진광효. 좋게 해결할까 했는데 너는 기회를 잃었어. 내일 오전에 공식적으로 그 계좌의 주인을 찾을 테니까 지켜봐. 일본의 거래소에서 어떤 발표를 하게 될지 기대되는데?

아차차!

그런 약점이 있었는데!

진광효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 중국 정부가 일본 거래소에서 사기행각을 벌인 것으로도 모자라 한국의 환율을 조작한 너를 어떻게 처리할까? 국제적인 망신이 될 텐데?

상황이 묘하게 돌아가는 것 같아서 진광효는 이를 굳게 깨물었다.

“이봐, 천 회장! 나와 거래하지. 원하는 걸 말해.”

진광효의 말이 통역된 직후였다.

이번엔 재미있다는 듯한 천중명의 웃음이 들렸다.

- 늦었어. 진광효.

“내 계좌인 것을 증명하려면 천 회장이 해킹한 것도 밝혀야 할 텐데? 오늘 그 계좌를 통해 거래한 것도 있고. 그러니 나와 거래를 하는 게 어때?”

- 그건 내일 발표를 봐.

“거래하자고! 그 계좌가 내 것이라는 증거가 없잖아!”

- 그렇다면 내가 인출해도 괜찮겠어?

“그건…….”

진광효는 말을 잇지 못했다. 그러면서 어쩐지 옴짝달싹할 수 없도록 거대한 거미줄에 칭칭 감겨드는 심정이었다.

- 웃기는군. 나는 그런 더러운 자금에 욕심 없으니까 그렇게 걱정할 거 없어, 진광효. 내가 전화한 이유는 그게 아니고.

뭐가 또 있다고?

천중명의 말에 귀를 기울이면서 진광효는 느닷없이 지금 중국어를 전하는 통역의 입을 찢어버리고 싶다는 강렬한 욕구를 느꼈다.

- 지금부터 중국이 타깃이 된다. 중국 정부에 꽤 힘을 쓰는 모양이던데 최선을 다해 오래 살기를 바라.

말이 없는 진광효를 이해한다는 것처럼 천중명의 웃음이 중간에 있었다.

- 이만 끊는다, 진광효. 아! 오늘 거래 즐거웠어.

통화는 그렇게 끝났다.

얼이 빠진 진광효가 잠시 멍했다가 급하게 휴대 전화기에서 변호사의 번호를 찾아 눌렀다.

“나다! 내가 찾아오라던 계좌! 내 것이면 안 돼!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나와의 연관성을 지워!”

통화를 마친 진광효가 조직원에게 급히 고개를 돌렸다.

“양서평과 조양회를 데려와! 아니, 공손하게 모셔와! 서둘러!”

뭔가 이상하게 꼬였다.

테드 케블린에게서 40조 원을 빌리면서부터?

아니! 계좌가 망진광효로 바뀐 이후로!

죽은 진광효?

그 계좌 이름이 그런 뜻이었다고?

도대체 천중명이 어디서부터 계획을 세웠던 건지 가늠조차 되지 않았고, 그 직후에 진광효는 온몸의 힘이 쭉 빠졌다.

“하아.”

앉고 싶은 진광효가 고개를 돌렸는데 멀쩡한 의자는 하나도 없었다. 그래서 그는 뒤로 물러나 창가에 기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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