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로드 오브 머니-304화 (304/315)

# 304

304. 쇼미더머니(Show Me The Money!) (3)

마음을 정한 천중명은 황성규를 향해 입을 열었다.

“상황은 짐작하실 겁니다. 우리 거래팀이 환율과 선물지수를 일정 구간에 가둬두고 급격하게 못 움직이게 붙들었습니다. 그런데 조금 전부터 우리 정부 외에 누군가 더 붙은 눈치입니다.”

- 저희 팀원인 제임스 김의 판단도 같았습니다, 회장님.

황성규의 의견이 건너온 다음이었다.

“사설 거래소에 있는 진광효의 계좌에서 현금과 비트코인을 빼내세요. 무리하더라도 그 계좌와 연결된 자금이 요란하게 드러났으면 싶습니다.”

- 그렇게 하면 서정그룹 양진섭 계좌가 완벽하게 드러나게 됩니다.

“굳이 숨겨줄 필요는 없죠. 진광효와 양진섭이 우선 드러나는 것을 목표로 진행해 주세요.”

천중명은 단호하게 이행해야 할 일을 지시했다.

“통화 마치면 바로 시작하세요. 그리고 홍콩에 있는 현금 계좌에 현재 잔액도 알려주시고요.”

- 처리된 후에 바로 보고 드리겠습니다.

통화를 마친 천중명은 책상으로 움직여 인터폰에 손을 뻗었다.

[네, 회장님.]

“커피 부탁해.”

결과를 기다리는 동안, 커피를 마시며 숨을 고를 시간이 필요했다.

필리핀이나 태국, 인도네시아를 제물 삼아 경제 위기를 벗어날 생각은 없었다. 그러나 그 방법이 가장 현명하고 빠르다는 것도 인정해야 한다. 그렇다면 아예 목표를 바꾸는 것이 정답이었다.

똑똑똑.

노크와 함께 부속실 직원이 가져다준 커피를 마시며 천중명은 모니터에 시선을 주었다. 고개가 끄덕여질 정도로 외환거래팀과 파생거래팀은 잘 버텨주고 있었다.

한 방이다. 한 방.

중국이 살 오른 먹잇감으로 느껴지는 그 한 방이면 상황은 뒤집힌다. 그때까지 천중명은 어지간히 두들겨도 한국이 쉽게 무너지지 않으리라는 모습도 보여주어야 했다.

부동산 매입, 임시직 고용, 환율 고정, 선물지수를 통한 주가 안정까지, 천중명이 내렸던 결정들이 서서히 효과를 발휘하고 있었다.

**

통화를 마친 황성규는 문상훈의 책상으로 움직였다.

팀원들이 긴장한 눈으로 바라보는 앞이었다.

“시작해.”

“예, 팀장님.”

황성규의 지시를 받은 문상훈이 키보드에 손을 올렸다.

“우선 거래소에 있는 진광효의 비트코인을 빼내겠습니다.”

달각.

문상훈이 마우스 화살표로 화면 구석의 버튼을 누르자 모니터가 검은색으로 바뀌고, 그 위에 파란색으로 그려진 아이디와 패스워드 입력란이 떠올랐다.

타다다다다닥. 타다다닥. 타닥.

문상훈이 알파벳과 숫자, 그리고 엔터 키를 연속해서 누른 다음이었다. 화면이 다시 바뀌고 이번엔 텔레뱅킹할 때와 비슷한 그림이 모니터에 올라왔다.

“우선 일본의 거래소에 있는 진광효의 비트코인을 제3의 계좌로 넘기겠습니다.”

타다닥. 타닥.

상훈이 키보드를 누른 직후에 기다란 막대가 떠올랐고, 왼쪽부터 오른쪽을 향해 색을 메워가기 시작했다.

“됐습니다. 다음은 홍콩의 거래소에 있는 현금입니다.”

“요란하게 할 필요가 있으니까 그중에서 1백억 원만 서정그룹 양진섭 계좌에 넣어. 그 송금으로 우리가 드러날 확률이 있나?”

“사설 거래소에서 직접 송금하는 방식입니다. 제가 사이버 수사대에 나가서 자수하더라도 증거를 찾을 수 없습니다.”

황성규는 만족한 얼굴이었다.

“처리해.”

“예.”

타다다다닥. 타다닥. 타다다닥.

다시 기다란 막대가 화면에 올라온 뒤에 왼쪽부터 색을 채워나갔다.

“끝났습니다. 사설 거래소 계좌에 있던 현금이 40조 원, 비트코인 평가금액은…….”

수시로 변하는 비트코인 시세를 본 문상훈이 기가 막힌 얼굴로 입을 열었다.

“대강 15조 원, 아니 16조 원, 지금은 14조 원입니다.”

시세가 얼마나 빠르게 변하는지 고작 그 보고를 하는 동안 비트코인의 가격이 세 번이나 크게 흔들렸다.

문상훈의 어깨를 툭 쳐준 황성규는 자리로 돌아와 휴대전화기를 들었다.

- 여보세요?

“지시하신 일을 마쳤습니다. 진광효가 가진 현금 중 1백억 원을 양진섭 서정그룹 중국 총괄 본부장 계좌로 송금해 두었습니다. 그리고 홍콩의 계좌가 현재 파생과 환율거래에 투입되었는데 어제 4조 원의 손실이 있어서 현재 잔액 16조 원입니다.”

천중명 특유의 웃음이 먼저 들렸다.

- 고생했습니다.

“감사합니다, 회장님.”

황성규는 오랜만에 뿌듯한 얼굴로 답을 건넸다.

**

확실히 평소보다 많은 숫자의 사람들이 보도 뉴스에 집중하며 불안한 정국을 확인하려 애썼다.

[저축은행 중앙회와 대부업계가 오늘 성명을 냈다가 급하게 취소하는 헤프닝이 있었습니다.]

마이크를 든 기자는 사람들이 길게 줄 서 있는 지경저축은행을 배경으로 서 있었다.

[저축은행 중앙회는 지경그룹에 속한 저축은행들이 지경리츠에 부동산 매각을 권하는 행위가 불공정 거래에 해당한다며 정부의 제재를 촉구했으며, 역시나 지경에 속한 대부업체들이 낮은 이율로 대출해주는 행위가 업계를 장악하려는 악랄한 수법이라고 비난했습니다.]

[낮은 이율이면 현재 힘겨운 서민들에게 도움이 되지 않나요?]

[그렇습니다. 그러나 대부업계는 전국민이 고통에 빠져 있는 위기를 이용해 지경그룹이 대부업계까지 손아귀에 넣으려 한다며 주장했고, 또 낮은 이자로 대출을 쉽게 접하게 유혹한다며 비난했습니다.]

[철회했다는데 그건 또 왜 그런 건가요?]

앵커의 질문에 집중하던 기자가 반 박자 늦게 입을 열었다.

[이런 보도가 전해진 직후에 엄청난 비난이 저축은행 중앙회와 대부업체에 쏟아졌습니다.]

손에 든 메모를 들춰본 기자가 재빨리 말을 이었다.

[시민들은 연리 24퍼센트의 이율에 하루라도 이자를 연체하면 36퍼센트라는 고금리를 적용하는 일반 저축은행이 대부업체와 다를 바 없다며 힘겨운 시민을 볼모로 펼치는 헛된 주장을 그치라고 항의했습니다.]

화면이 앵커에게 돌아왔다.

[오늘부터 13개 그룹이 대대적인 구조조정에 들어갑니다. 이미 명예퇴직을 신청받았던 13개 그룹에서 직장을 떠나는 숫자가 16만 명을 넘어섰습니다.]

앵커의 오른쪽 위에 떠오른 사진에는 고개를 떨군 채 걸어가는 사람들의 뒷모습이 담겨 있었다.

**

환율 변동을 지켜보던 강다희가 심통 난 얼굴로 화면을 노려보았다.

“이 미꾸라지들은 뭐야?”

정부의 환율 개입과 전혀 상관없는 주문이었다. 강다희가 잘 가둬놓았던 최고와 최저의 양쪽 선을 미친놈처럼 들이받는 꼴이 그랬다.

이런 미꾸라지? 단숨에 목을 조를 수도 있다.

그러나 국제적인 헤지펀드들이 지켜보는 와중에 오늘 자금을 모조리 써 버렸다가 내일 무방비로 당하게 되면 한국은 정말 초토화된다.

이것들을 어떻게 해야 하지?

“아! 짜증 나! 추어탕 감도 안 되는 것들이 왜 이렇게 설쳐!”

이어셋을 들었던 강다희가 인상을 찌푸린 뒤에 다시 내려놓았다. 먼저 전화하면 약세를 보인다. 이럴 때는 상대가…….

우우우웅. 우우우웅.

휴대 전화기가 몸을 떨어대자 강다희는 여유 있게 전화를 받았다.

“지금 까부는 놈들 때문에 전화한 거야?”

신경질적으로 추어탕을 외치다가 저토록 세상 깜찍한 말투를 내놓는 것도 기술이라면 기술이겠다.

“털어먹을 준비 중이니까 보고 있어. 아니면 오늘 하는 거 봐서 내일까지 기다렸다가 털든가. 그러-엄.”

통화를 마친 강다희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녀가 독한 눈으로 모니터를 노려볼 때였다.

우우우웅. 우우우웅.

모르는 번호가 액정에 올라왔다.

“여보세요?”

깜찍함 2탄이 그녀의 입에서 나왔고,

- 강다희 팀장. 나 천중명입니다.

생각지도 못했던 대꾸가 수화기 너머에서 건너왔다.

“예, 회장님!”

상체를 세우며 외친 그녀의 한 마디에 팀원들의 시선이 일제히 달려들었다.

- 지금 들어온 주문은 홍콩에서 나온 걸 겁니다. 그 계좌가 어제 4조 원을 손실 봐서 현재 16조 원이 남았어.

그랬구나. 그런데 회장님이 이걸 어떻게 아시지?

모니터를 보던 강다희가 고개를 갸웃하는 순간이었다.

- 저쪽은 오늘 오후나 내일 추가로 자금이 생길 거라 믿지만, 그걸 막아놨거든. 오늘 중으로 지금 주문 내는 계좌를 무력하게 만들어 주었으면 하는데 가능할까?

강다희의 입 끝에 야릇한 미소가 걸렸다.

“멋진 그림을 보여드리겠습니다.”

- 기대하지.

통화는 그렇게 끝났다.

번호를 확인하기 위해 휴대 전화기를 들여다보던 강다희가 퍼뜩 생각난 게 있는 사람처럼 고개를 들었다.

“주문 들어갈 준비해! 오늘 저녁은 추어탕이야!”

그녀가 통쾌하게 말을 건네고는 책상에 앉았다.

‘구 팀장님. 잘 봐요! 강다희 주문 들어가요!’

지금 그녀의 눈빛은 어쩐지 구완섭과 닮아 있었다.

**

구완섭은 얼굴을 길게 쓸어내렸다.

‘어쩌자고, 강다희? 어떻게 할 건데?’

구완섭이 주문을 넣어도 된다. 그 정도로 당장은 충분히 대응할 수 있다. 그러나 지금 주문을 내지 않고 침묵하는 이유를 강다희만은 알아줄 거다. 환율 마진 계획을 먼저 보여서는 곤란하기 때문이었다.

시장에 정체를 알 수 없는 주문이 들어온 거야 전 세계 딜러들이 모두 알 테고, 이제 구완섭과 강다희 팀이 이들을 어떻게 상대하는지가 관건이었다.

외환딜러?

말이 좋아 그렇지 대세를 거스를 힘은 없다.

대신 엉뚱한 방향으로 움직이던 거래를 대세로 돌릴 정도의 능력쯤 구완섭과 강다희 팀에 있었다.

‘강다희 팀장. 내가 침묵하는 이유를 정말 몰라?’

모니터를 노려보던 구완섭이 간절한 바람을 떠올린 직후였다.

모니터 한쪽에 [913]이란 주문이 떠올랐다.

‘시작이냐?’

갑자기 눈빛이 변한 구완섭이 고개를 돌리자 팀원들이 긴장한 얼굴로 모니터에 더욱 집중했다.

“가자. 가자, 강다희. 실력을 보여 봐.”

9월 13일은 강다희의 생일이었다.

구완섭의 주문을 강다희는 완벽하게 알아차린다. 대신 그녀가 구완섭에게 의도를 알리고 싶을 때 저 숫자를 신호로 사용했다.

절대 놓쳐서는 안 되는 기회, 강다희가 모든 걸 걸고 달려들 때면 저 숫자를 넣는다.

다음이 문제였다.

[1008]이면 구완섭에게 털고 빠지라는 의미였고,

“와하하하하하!”

구완섭이 미친 사람처럼 웃었다. 그런 뒤에 그의 눈에 광기가 서리기 시작했다.

[1004]

모든 걸 걸고 달려들어요!

이 시장에서 배 터져야 해요!

모니터에 올라온 숫자를 통해 강다희가 외치고 있었다.

**

전지곤과 이명선으로 모자라 김서언과 안민근 대리까지 달려들었다. 얌전하던 환율이 비 오는 날 머리에 꽃 꽂은 사람처럼 널뛰기 시작하더니 지금은 걷잡을 수 없이 주문이 쏟아지고 있었다.

“김 대리님! 옵션이요! 빨리!”

“예!”

이명선의 지시를 김서언은 그동안 익혔던 솜씨를 젖 먹던 힘까지 모두 쏟아내며 따랐다.

타다다닥! 타닥! 타다다다닥!

“풋 포지션 전부 털어요! 콜옵션으로! 포지션 확인하세요!”

이명선의 숨 가쁜 지시에 따르느라 김서언은 대꾸조차 꺼내지 못했다.

“멋지네!”

위에서 누르는 주문을 담당했던 전지곤 과장과 안민근 대리는 그나마 좀 여유가 생겼다. 조금 전까지 숨이 턱턱 막힐 정도로 달려들었던 두 사람이 그렇다고 아예 놀고 있는 건 아니어서 모니터에 쏟아지는 주문을 날카롭게 살폈다.

“작전 같습니다.”

“당연하지. 여기 외국인 주문 수량 봐. 한 시간 만에 이렇게 쏟아지는 걸 보면 아예 오늘 제대로 눌러놓겠다는 거지. 하방에 이미 5조 원 이상 베팅했는데?”

걱정스러운 얼굴의 안민근 대리를 향해 전지곤 과장이 고갯짓을 했다. 이명선을 보라는 의미였다.

“독거미가 하방 주문을 모두 잡아먹고 있거든. 219.00을 지키다가 223.00까지 가면 저 5조 원 우리 손에 들어온다.”

생각만으로도 소름이 끼쳤는지 안민근 대리가 팔뚝을 쓸고 난 다음이었다.

“후-.”

그 직후에 이명선이 상체를 세웠다.

“고생했어요, 김 대리님. 도와줘서 고마워요.”

“아닙니다. 많이 배웠습니다.”

대화의 끝에서 물을 마시려던 이명선이 병이 빈 것을 보고는 몸을 일으키려 하는 순간이었다.

“제가 가져다 드리겠습니다.”

자존심 강하던 메이저 증권사의 대리 김서언이 재빨리 움직여 물병과 커피를 준비해서 이명선 앞에 놓아주었다.

미안했던 모양이었다.

고개를 숙여 감사함을 전한 이명선은 혹시 전지곤이 언짢지 않을까 싶어 조심스럽게 고개를 돌렸다.

‘인정!’

전지곤은 모두가 보는 앞에서 오른손 엄지를 세웠다.

이런 팀 작업 처음 해본다.

그런데 정말 믿음직하다. 든든하다.

물을 마시며 이명선은 또 천중명을 떠올렸다.

“대량 주문입니다!”

그리고 그 직후에 안민근 대리의 급한 외침이 들렸다.

전쟁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어서 일진일퇴의 공방이 계속 이어지고 있었다.

“절대 밀리지 마! 오늘만 5조 원 싸움이다!”

전투에 나선 전지곤의 고함이 스위트룸 거실을 가득 메웠다.

“내일 저거 다 털어먹는다! 5조 원! 이거 우리 총알로 담을 거니까 다들 정신 바짝 차려!”

전지곤이 연달아 이명선과 대리 둘을 독려했고, 그 네 사람을 박대교가 부럽기 그지없는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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