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로드 오브 머니-303화 (303/315)

# 303

303. 쇼미더머니(Show Me The Money!) (2)

박피를 위한 팩을 사용하던 직원들 사이에서 먼저 말이 돌았고, 결국 손도운이 무려 1백억 원이라는 어마어마한 돈을 기부했다는 소식이 언론에 올라왔다.

[정말 큰돈인데요. 임시직 직원 고용에 사용해달라는 말을 들으니까 20년 전에 있었던 외환위기를 떠올리게 합니다. 손도운 씨가 원래 재력가였나요?]

[아닙니다. 손도운 씨는 원래 화장품을 개발하던 개발자로…….]

지경화장품 공장 앞에 선 기자는 손도운의 불행했던 과거와 미라클이라는 제품을 통해 천중명과 인연을 맺은 이야기, 그리고 현재 새로운 제품을 테스트 중이라는 내용을 전했다.

[손도운 씨는 천중명 지경그룹 회장을 돕고 싶은 마음에서 나섰을 뿐이라는 말과 함께 자랑하기 위한 것이 아니란 이유로 인터뷰를 거절했습니다.]

[지경그룹은 참 대단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앵커의 한 마디를 끝으로 손도운의 미담에 대한 보도는 끝났다.

다들 놀라고 적당히 감동하는 분위기로 끝날 미담이었다. 그런데 인터넷 동영상 사이트에 올라온 영상 하나가 손도운의 보도에 불을 질렀고, 폭발적인 반응을 끌어냈다.

영상은 화장품 매장에서 촬영한 것이었다.

[안녕하세요? 저는 지경화장품 강남스퀘어점 매니저 김민희입니다.]

스마트폰으로 촬영한 게 분명한 영상에서 김민희는 먼저 고개 숙여 인사했다.

[회장님과 사모님 덕분에 오늘까지 이 자리를 지킬 수 있었습니다. 힘들지만, 지금까지 우리 매장은 함께해준 우리 아르바이트 직원 세 명과 이 어려움을 견디겠습니다. 회장님! 제가 할 수 있는 건 이것밖에 없습니다.]

화면을 향해 말을 하던 김민희가 갑자기 울컥했는지 눈시울을 붉힌 채 어색하게 웃었다.

[이 영상이 회장님께 힘이 됐으면 싶습니다. 회장님, 사모님. 사랑합니다!]

스마트폰이 옆으로 돌아갔다.

[안녕하세요, 회장님? 저희도 조금씩 모았습니다. 지금 힘겨우신 분들! 우리 함께 견뎌요! 절대로 포기하지 마세요! 그리고 기운 내세요! 사랑합니다!]

아르바이트 학생 세 명이 양팔을 위로 들어 커다란 하트를 그려내는 것으로 동영상은 끝났다.

이 정도로 폭발적이라고 이야기하기는 그렇다.

그런데 그 뒤로 줄줄이 비슷한 영상이 올라왔다.

[용인의 현장에서 회장님이 구해주신 타워크레인 기사입니다. 저는 그날 이후로 두 번째 인생을 사는 느낌입니다. 비록 지금 일이 없어 쉬고 있지만, 그 감사함을 전하고 싶습니다. 여러분! 기운 잃지 마세요. 우리 함께 견딥시다.]

타워크레인 기사와 아내가 왼팔과 오른팔을 겹쳐서 하트를 그려냈고, 그 앞에서 두 명의 아이들이 똑같은 모습으로 하트를 만들었다.

[저희는 지경화재보험에서 청소를 합니다.]

촬영이 어색한지 할머니는 옆에 서 있는 나이 많은 주임을 손으로 쿡 찔렀다.

[회장님! 저희가요. 청소하기 전에 기도를 합니다. 여기가 하나님, 이쪽이 부처님, 또 저기는 성당 다닙니다.]

[뭔 쓸데없는 말을 그렇게 해요!]

[아이, 참! 가만있어 봐요, 좀. 그래서 부족하지만, 저희도 조금 거뒀습니다. 참! 어렵고 힘들 때! 국가적으로다가!]

[에이! 뭔 말이 그리 많소! 어려운 양반들 기운 내소! 우리도 살다 보니까 이렇게 정규직 되고 하지 않소? 힘내시오. 얼른 손 들어요!]

강단 있는 할머니의 요구에 청소직원들이 어색하게 팔을 들어 하트를 그려냈다.

영상은 이렇게 끝없이 퍼져나갔다.

[안녕하세요? 지경리온자동차 총괄사장 신상훈입니다.]

신상훈이 연구소장 파크 피터슨, 연구원들과 영상을 올렸고,

[안녕하세요? 지경건설 아랍에미리트 현장입니다.]

멀리 중동에서도 영상이 올라왔다.

**

컴퓨터 앞에 앉은 직원이 영상에 올라온 우리말을 진광효에게 전해주었고,

콰다당! 콰당!

자리에서 일어선 진광효가 의자를 집어 앞에 놓인 테이블에 거칠게 던졌다.

“어제는 홍콩에서 4조 원을 날리더니! 저거! 강제로 시킨 거 아냐? 지경의 그 젊은 회장 놈이 지시한 거 아니냐고!”

어지간한 조직이 대들어도 눈 하나 깜짝 안 하던 진광효가 지켜보기 곤란할 정도로 분노를 쏟아내고 있었다.

“후아! 후!”

그는 거친 숨을 쏟아낸 뒤에 창으로 움직였다.

불안해서 이런다.

환율이 1,500을 넘어가고 금리가 10퍼센트 위로 올라섰는데도 한국인들이 저렇게 견디는 것과 지경이 그 모든 충격을 감당하고 있는 것이 진광효는 못내 불안했다.

어제 홍콩의 조직을 이용해 돈을 먹었어야 하는데!

그렇게 달러를 움켜쥐어서 원·달러 환율을 1,600까지 단숨에 밀어붙였어야 하는데, 어제 이후로 못을 박아놓은 것처럼 원·달러 환율이 1,525에서 꿈쩍을 하지 않으니 사람이 미칠 일이었다.

진광효는 홍콩물고기 황채산과 다카르 랠리에서 죽은 가등섭을 떠올리며 정원을 매섭게 노려보았다.

“흠.”

테드 케블린이란 교활한 놈만 믿고 있다가는 영락없이 황채산 꼴이 되게 생겼다. 아니, 그보다 한국 시장의 영향을 받아 중국의 물가가 치솟기라도 하면…….

심오한 표정으로 창밖을 내다보던 진광효가 휴대 전화기를 들었고, 번호를 눌렀다.

- 예, 총재님.

“어제 털린 게 4조 원이 맞아? 혹시 손해가 더 있다면 지금 말해.”

- 그게 전부입니다.

“오늘은?”

- 달러가 움직이지 않고 있어서 지켜보고 있습니다. 한국의 선물지수 역시 219.20에서 움직임이 없습니다.

바닥에 처박힐 줄 알았던 선물지수가 저토록 올랐으니 돈을 날리는 게 당연한 일이기는 하겠다.

신음 같은 숨을 길게 뱉어낸 진광효가 결심한 눈을 하고서 입을 열었다.

“한국의 반응이 심상치 않아. 기대했던 대로라면 우리가 부동산을 매입했어야 하고, 선물시장을 장악해서 마음대로 주물러야 했는데 이건 오히려 우리 중국 시장의 물가가 오르는 걸 걱정해야 하니까.”

옆에서 듣고 있던 직원과 조직원들이 무거운 눈으로 창을 향해 서 있는 진광효의 뒷모습을 보고 있었다.

“내가 궁금한 건 한국의 환율과 선물시장을 장악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 이거지. 테드라는 인간에게 맡기지 말고 우리 힘으로 할 수 있는 일!”

- 총재님. 달러를 매입하고, 오늘부터 선물시장을 하방으로 계속 누르는 게 가장 효과적입니다. 한국 정부가 나섰다고 하지만, 외평채 자금은 한계가 있고, 지경이 버틴다고 해도 선물시장에서 사용할 자금이 넉넉하지 않을 겁니다.

“확실해?”

- 환율 시장에 투입한 자금이 1백조 원, 부동산 매입에 80조 원, 파생시장에 40조 원, 그리고 임시직 고용에 20조 원, 이렇게 단순 계산해도 이미 끝입니다. 금융시장은 불안감만 조성하면 끝입니다.

“그렇지. 조직 간의 싸움도 마찬가지고. 지역을 잡아먹을 때도 그래. 조직이고, 상인이고, 먼저 겁을 먹는 놈이 고개를 떨구게 되어 있지.”

그사이 화가 풀렸는지 진광효는 심지어 고개까지 끄덕이고 있었다.

- 지경그룹의 직원들이 돈을 거두어도 소용없다는 것을 알려주면 어떨까 싶습니다.

“16조 원 가지고는 어려울 테고 얼마나 더 있으면 되겠나?”

- 오늘은 우선 이 정도로 충분합니다. 다만, 한국을 제게 맡겨주신다면 대략 40조 원이 필요합니다.

“자신이 있으니까 내게 그런 말을 하는 거겠지?”

- 이미 환율이 1,500을 넘었습니다. 1,800까지 기다릴 줄 알았는데 앞을 막아섰다는 것은 그만큼 급하다는 의미가 아니겠습니까? 1,600을 넘기는 순간, 한국은 무너집니다.

“흐음. 그렇게 된다면 예상 이익은?”

- 지경그룹이 동원한 2백조 원입니다.

“크하…! 크허흠!”

습관처럼 웃음을 터트리던 진광효가 묘한 소리와 함께 표정을 무겁게 가라앉혔다. 그러나 그의 입술이 삐죽삐죽 움직이며 그려낸 것은 분명 웃음이었다.

“좋아. 그럼 내일까지 내가 40조 원을 보내주지.”

-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총재님.

통화를 마친 진광효가 고개를 돌려 컴퓨터 앞에 앉아있던 직원을 노려보았다.

“다른 소식이 있는지 계속 찾아. 지경에 관한 소식은 하나도 놓쳐서는 안 돼.”

“예, 총재님.”

지시를 마친 진광효가 정원을 바라보았다.

창에 비친 그가 히죽 웃으면서 틈이 벌어진 그의 앞니가 선명하게 유리에 올라왔다.

**

구완섭은 기가 막힌 얼굴로 히죽 웃었다.

정부의 개입 지시에 따라 국책 은행에서 달러 매입이 시작되었기 때문이었다.

레버리지 5배를 이용해 달러 상승에 베팅했던 그의 팀은 가만히 앉아만 있어도 정말이지 배가 터지게 생겼다. 그런데 결정적인 순간마다 달러가 풀려나오면서 가격 상승을 막아내고 있었다.

“강다희가 독 좀 오르겠는데?”

주문 수량과 차트, 움직임만 봐도 짐작한다.

지금 나오는 달러 물량은 어제 강다희 팀이 혼을 팔다시피 매달려 사놓은 물량이었다.

“잘한다, 강다희!”

소매를 접은 셔츠 차림의 구완섭이 응원을 쏟아냈다.

화가 났을까?

강다희가 물량을 풀지 않았으면 먹었을 천문학적 이익이 아쉬워서? 그러나 팀원들이 보기에 구완섭은 진심으로 만족한 얼굴이었다.

“한 방이다, 한 방! 두 방도 필요 없다, 강다희. 한 방에 털어먹자! 지금처럼 버텨라.”

혼잣말을 실컷 떠들던 구완섭이 전화기를 들어 번호를 눌렀다.

“야! 한국 대단하지? 그나저나 이 달러 어디에서 나온 물량이야? 어디? 우리 지경증권은 아냐. 누가 달러 가격을 고정하려고 하나 본데?”

강다희가 지경증권 소속이 아니라는 것처럼 구완섭은 태연하고 능청맞게 거짓말을 쏟아냈다.

“중국 쪽을 알아봐. 홍콩 라인이나. 분명 우리 정부가 지정한 거래 창구 말고 다른 곳에서 베팅하는 곳이 있어. 이거 잘하면 중국에 되빠꾸치겠다. 중국 털어먹으면 1백조 원은 아예 장난감 사는 돈이 되겠는데?”

통화하던 구완섭이 광기 어린 눈으로 팀원들을 돌아보았다. 신호였다. 거래를 준비하라는 신호. 팀원들이 모니터와 키보드 앞에서 긴장된 얼굴로 지시를 기다렸다.

**

강다희는 기껏 갔던 유학을 2년 만에 돌아올 정도로 자신의 판단을 믿는 강단이 있었다.

“무슨 짓을 하는 거야, 이 멍청이들아!”

그녀는 독이 잔뜩 올라온 채로 아래쪽에 놓인 두 개의 모니터를 번갈아 보았다. 하나는 마진 거래, 하나는 현물 거래 창이었다.

“달러를 더 풀어!”

오전부터 들어온 정부 위탁 창구에서 연신 달러를 매입하고 있어서 원·달러 환율이 움찔움찔 아래로 내려가기 위해 달리고 있었다.

“멍청이들아! 지금 그렇게 원·달러를 1,500 이하로 당겨버리면 적들에게 우리의 한계를 증명해 주는 꼴이라니까! 한국 채권이 더 나오거나 지켜보던 헤지펀드들이 기회구나 싶어 달려들면 그때는 누구도 못 막는다고!”

앙칼지게 고함을 지른 강다희는 “달러 계속 풀어!” 하는 지시를 내린 뒤에 이어셋을 귀에 걸었다.

“여보세요?”

그녀의 음성에 직원들이 힐끔 뒤를 돌아보았다.

그럴 정도로 지금 그녀의 음성은 차분하고 깜찍하게 들렸다.

“얼마 먹었어? 진짜?”

모니터를 본 그녀가 오른손목을 바깥으로 빙빙 돌렸다.

달러를 더 풀어주라는 의미였다.

“달러 푸는 건 한국 정부 창구가 아냐. 중국 오더받은 홍콩 쪽인 것 같은데? 어떻게 한 번 더 달려? 이번엔 정말 믿고 따라올 거야?”

이어셋으로 상대방의 말을 듣고 있던 강다희가 만족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쪽에 있는 팀 전부 모아봐. 우리도 달려들 테니까. 우리 회장님이 투자받은 거 알지? 내가 거기에서 그쪽 실적 나오게 조금 밀어줄 테니까 팀만 정확하게 짜. 한 방에 먹자!”

목소리는 세상 차분하고 깜찍한데 독한 눈을 한 강다희가 손을 거칠게 바깥으로 돌렸다. 가격이 더 오르지 않도록 계속 풀어주란 의미였다.

“이거 홍콩에서 나온 자금이면 중국 쪽 밀고 가도 돼. 그 작업 들어가게 되면 우리 은퇴해도 돼. 혹시 모르니까 총알 단단히 준비해.”

2초쯤 상대의 말에 집중하던 강다희가 씨익 웃었다.

“콜!”

그런 뒤에 짧은 한마디를 던지고는 이어셋을 내려놓았다.

“정부에서 오늘 쏟을 자금이 많아야 2조 원이니까 이대로 어제 선 지켜. 아니다. 그래도 정부가 개입한 거니까 한 3원 정도 낮춰 잡아.”

강다희는 오늘 지시만 했지 아직 주문을 넣은 적은 없었다.

**

파생팀 대리 둘은 아예 고개를 저어댔다.

“이명선!”

“네!”

전지곤이 불렀고, 이명선은 대답했다.

그게 전부였다.

타다다다닥! 타닥! 타다다다닥! 타다닥!

이명선, 김서언, 안민근, 전지곤의 순서로 책상이 있어서 두 사람은 서로의 모니터를 지켜보지도 못한다.

그런데 이름을 부르면 답을 한 뒤에 둘이서 기계처럼 주문을 입력하고 있으니 지켜보는 대리 둘은 할 말이 없는 상태였다. 메이저 증권사인 지경증권 파생팀의 대리다. 여기까지 고스톱이나 커피 타서 올라온 게 아니란 의미였다. 그런데도 거래주문을 이해조차 못 하고 있으니 심정이 오죽하겠나.

‘멋지긴 하네.’

주문을 기계적으로 찍어대는 두 사람 사이에서 대리 둘은 모니터를 보며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이리저리 흔들기 위해 쏟아지는 선물 주문을 상대하며 두 사람은 219.00을 악착같이 지켜내고 있었다.

5일 이동평균선을 아래로 깔아놓은 선물지수선이 20일 이동평균선과 함께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오늘을 버틴 뒤에 내일쯤 다시 상승 곡선을 그려내면?

외국인 투자자들이 고개를 갸웃할 테고, 거기에서 60일 선을 위로 뚫으면 앞으로 주식장세가 강세로 돌아온다는 신호가 된다. 한 마디로 주식과 선물의 매수 주문이 돌아온다는 의미였다.

**

챠트와 숫자를 보고 있던 천중명이 픽 웃었다.

잘하고 있는데?

그렇다면 여기에서 힘을 실어줘야지?

모처럼 기분 좋은 표정으로 웃은 천중명은 휴대 전화기를 들어 번호를 눌렀다.

- 예, 회장님.

“해킹 가능한가요?”

- 대기하고 있습니다.

“시작하죠.”

- 알겠습니다, 회장님. 지시만 내려 주십시오.

황성규의 답을 들은 천중명은 자리에서 일어나 창으로 다가갔다.

진광효. 방아쇠를 당길 거야.

네놈 이마에 대고.

설마 한 방에 죽는 건 아니지?

창에 선 천중명이 옅게 웃었다.

지경의 반격이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1차 목표는 진광효, 2차 목표는 중국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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