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로드 오브 머니-294화 (294/315)

# 294

294. 뭘 하려고 이래? (2)

회장단 회의를 마친 최만호는 대송자동차 그룹에 속한 세 명의 회장을 데리고 그룹발전본부에 들렀다.

“도시락을 준비했으니까 편하게 점심이나 하지.”

“이제 본사 지정 메뉴가 도시락이 되는 느낌입니다.”

“회장님께서 드시는 것보다 2만 원 저렴하니까 그 점은 이해해.”

유진교를 따라 회의실로 들어선 일행은 재킷을 벗어 의자에 걸쳐두었다. 테이블에 반찬이 가득 놓였고, 의자마다 밥과 수저, 그리고 국그릇, 물병이 있었다.

“들어.”

“맛있게 드십시오.”

유진교를 시작으로 다들 젓가락을 들었다.

“자네는 뭐가 그렇게 좋아?”

밥을 먹기 시작한 다음이었다. 누구도 알아차리지 못할 최치국의 미소를 맞은편에 앉은 유진교가 알아보았다.

“아까 총수님께서 꾸짖으실 때 회장님의 표정이 떠올라서 그랬습니다. 죄송합니다.”

“회장님의 표정이 어땠는데?”

“덤덤하게 받아들이시는 눈치였고, 또 총수님께서 나서신 것을 다행이라고 여기는 모습이었습니다. 총수님께서 꾸짖고 나신 뒤에 회장단의 반응이 단숨에 바뀐 것 같아서 속으로 대단한 분이구나 싶었습니다.”

유진교가 가볍게 웃으며 반찬을 집었다.

“그 덕분에 아르바이트 직원을 구하는 일이 별다른 반발 없이 넘어가긴 했지.”

“반발한다고 계획을 꺾으실 분도 아니시지요.”

“그런가?”

대화의 끝에 끼어든 최만호의 말을 또 유진교는 넉넉하게 받아들였다.

“대단하신 분입니다. 20조 원이라니? 전에 금 모으기를 할 때 실제 반지의 주인공들이 지금 20대라는 말씀을 하시더니 결국 나서신 것 아닙니까?”

“꼭 그렇게 생각할 것 없어.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다하겠다고 생각하는 게 더 정확하지.”

그나마 최치국이니까 말 한마디나 했지, 다른 회장 둘은 도시락 먹는 인형처럼 밥과 반찬을 입으로 가져가고 있었다.

“최악의 상황에는 국내 금리가 20퍼센트까지 오를 거라고 예상되니까 앞으로 6개월은 정신 바싹 차리는 게 좋아.”

“원·달러 환율은 얼마까지 예상하십니까?”

“아래로 870, 위로는 2,100선이 아닐까 생각하고 있어.”

밥이 얹힌 것처럼 최만호가 숨을 들이마셨다가 천천히 내쉬었다.

“최 회장. 세계 시장을 휩쓸 자동차를 만들어.”

그런 최만호에게 유진교는 덕담을 건네듯 엉뚱한 요청을 꺼내 들었다.

“자동차를 사고 싶은 모든 이가 원하는 베스트 셀링카. 그것이 지금 회장님께 가장 큰 힘이 되지 않을까?”

“외계인을 고문하는 심정으로 지경리온에서 온 연구원과 우리 개발진을 독촉하고 있습니다.”

최만호는 국물이 담긴 넓적한 용기를 들어 입으로 가져갔다. 그런 뒤에 그는 냉정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이번에 지경리온의 연구원들이 작성한 보고서를 보며 느낀 바가 많았습니다. 안전과 성능에 자신 있었는데 그렇더라도 아쉬운 점이 있었다는 것은 분명합니다.”

젓가락을 든 유진교가 지켜보는 앞이었다.

“여기 세 명의 회장과 함께 지경그룹과 회장님께서 자부심 넘칠 자동차를 반드시 선보이겠습니다.”

“어서 들어.”

지금 식사를 재촉하는 유진교의 눈에 평소에 보기 힘든 흐뭇한 감정이 달려 있었다. 최만호와 세 명의 대송자동차그룹 회장들에게는 더할 수 없이 큰 칭찬이었다.

**

박승양은 남부증권으로 바로 이동했다.

“밥 안 먹었지?”

그런 뒤에 불쑥 문요양 회장의 방을 열고 들어갔다.

“뭐야? 표정이 왜 그래?”

“회장님. 이명선을 키운 것은 우리 남부증권입니다.”

“무슨 소리야? 대학 마치고 증권사에 입사한 이명선 과장이 어떻게 더 커?”

“그게 아니잖습니까?”

문요양은 억울하고 서운한 얼굴이었다.

“이봐, 문 회장! 당신 말이야, 솔직히 지점에서 잘라내려고 작업 치던 거, 천 회장님이 나서시고 내가 막았으니까 여태 여기 있었던 거지! 그대로 뒀으면 이명선 과장이 지금 뭐 하고 있었겠어?”

“그야…….”

“말이 되는 소릴 해! 말이! 한 사람의 인생이 망가질 뻔했어! 지금 파생계의 독거미가 된 이명선 과장이 아차 했으면 수습에서 잘릴 뻔했었다고!”

박승양이 새초롬하게 눈을 떴다.

“여기에서 잘린 뒤에 이 과장이 어떻게 됐을까? 취직하려고 여기저기 돌아다니다가 추운 날, 거리에서 성냥 사세요, 성냥 좀 사주세요. 이러고 살았을지 모른다고!”

‘요즘 누가 성냥을 쓴다고…….’

하마터면 그 말을 꺼낼 뻔했던 문요양이 박승양의 독한 눈매를 보고는 얼른 삼켰다.

“어려서 부모님을 잃은 신데렐라가 성냥을 팔다가 과자로 만든 집을 발견해. 그곳에 들어가서 왕자님을 머리칼로 끌어올려 행복하게 산다는 이야기 알지?”

“예?”

“이렇게! 이렇게! 그렇게 행복해야 할 신데렐라가 왜 불행해졌어?”

이건 뭐, 문요양은 아예 머릿속이 멍해서 대꾸조차 나오지 않는 수준이었다.

“배가 고파서 독이 든 사과 잘 못 먹어 그런 거 아냐! 내가 지금 그래! 배가 고파서 독이 든 문 회장 머리라도 먹을 것 같거든.”

“가시죠.”

“진즉 그래야지.”

급하게 재킷을 집어 드는 문요양을 이제야 박승양이 너그러운 표정으로 보았다.

“오늘 회장단 회의에 참석했었잖아.”

“그러셨습니까?”

문요양은 부러움과 놀라움이 뭉친 얼굴이었다.

“천 회장님은 무서운 분이셔.”

“그야 뭐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대화를 나누는 동안이었다. 배가 불룩 나온 문요양이 문으로 향했고, 박승양이 그 뒤를 따랐다.

“아무렴 큰 거래를 앞에 두셨는데 남부증권을 그냥 모른 척하시겠냐고. 정 뭐하면 내가 슬쩍 말씀드릴 수도 있고. 내가 회장단 회의에 참석했던 건 말했었나?”

문을 열던 문요양이 눈이 동그래져서 박승양을 보았다.

“소갈비가 당기네.”

“드셔야죠! 그럴 때는 소갈비를 드셔야 합니다! 제가 마침 한우 갈비 잘하는 식당을 압니다!”

점심 메뉴가 그렇게 결정되었다.

**

책상에 앉은 곽대출은 심오한 표정으로 앞에 서 있는 주인영을 치켜 보았다.

“어려운 기업을 도우랬더니 이게 뭐하는 거야?”

곽대출 딴에는 최대한 성질 누르고 고운 말로 던진 질문이었다. 그러나 주인영이 보기에 곽대출은 당장 주먹을 날리기 직전처럼 살벌한 인상이었다.

“가불에 직원 대출? 어쩌자고? 회장님께서 맡긴 돈을 직원들하고 손잡고 펑펑 쓰자고?”

“그게 아니라 당장 대출의 일부를 상환하지 못하면 곤란한 처지라고 해서요.”

“푸후.”

한숨을 푹 내쉰 곽대출이 고개를 끄덕였다.

“지경그룹 급여가 우리나라 평균으로 보면 굉장히 높은 거 알지?”

“네.”

“여기 세 명 중 집에 중환자가 있어서 삶이 팍팍해졌다가 느닷없이 우환이 생겼거나 그런 직원 있어?”

주인영의 시선이 아래로 내려갔다.

“지금 집을 버티기 어려우면 경기도 근처로 옮기라고 해. 그도 아니면 전세로 옮기거나.”

“본부장님. 그렇게 쉽게 생각하실 게 아니…….”

곽대출의 볼이 꿈틀하는 것을 본 주인영이 입을 다물었다.

“한 사람은 무려 9천만 원을 대출해달라고 적었어. 3조 원이 내려온다니까 회삿돈 9천만 원이 별거 아닌 거 같아? 변동금리라는 게 계속 변하는 거지? 앞으로 아파트값이 더 떨어지면 그때 또 해줄 거야? 전세금 이하로 떨어지면 모자란 전셋돈도 해주고?”

“죄송합니다.”

“거기 서.”

돌아서려는 주인영을 곽대출이 무섭게 붙들었다.

“오늘 회의에서 내가 했던 말 잘 기억해. 자금 집행에 부정한 행위가 있으면 누구도 용서하지 못한다는 거.”

엄청나게 억울하고 서운한 모양이었다.

주인영이 붉어진 눈으로 겨우 “네.”하고 답했다.

**

지경전자로 돌아온 기용도 부회장은 연구소장을 방으로 불렀다.

“잘 다녀오셨습니까?”

들어선 연구소장은 아예 파김치에 담갔다 꺼낸 것처럼 푹 삭은 얼굴이었다.

“오늘 회의를 알고 계셨나요?”

“회장님 취임 이후에 처음으로 열린 회장단 회의라 직원들 전부가 귀를 쫑긋 세우고 있었을 겁니다.”

“앉으세요.”

소파를 권한 기용도는 회의에서 있었던 일을 간략하게 전해주었다.

“하아! 우리 회장님 진짜!”

“도움을 드리고 싶은데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지경전자를 지키는 일과 매출밖에 없습니다.”

시선을 떨구었던 연구소장이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배터리를 말씀하시는 겁니까?”

“메모리와 연결은 어떻습니까?”

문을 힐끔 본 연구소장이 상체를 기울였다.

“아직 테스트 중이긴 한데…….”

상체까지 기울여 놓고도 불안했는지 소장은 다시 한 번 더 문을 바라보았다.

“피에조 필름의 원리를 이용할 수 있습니다.”

“압전 필름 말씀이시죠?”

“예. 기존의 배터리는 일정한 형태를 만들어야 해서 곤란했는데 이번에 새로 개발한 배터리는 어떤 모양으로도 가능해서 테스트해 봤는데…….”

뭐가 그렇게 불안했는지 연구소장은 또다시 문을 바라보았다.

“피에조 필름이 압력과 변형에 반응하는 것처럼 새로운 배터리 역시 같은 방식에 반응합니다.”

기용도가 설마 하는 얼굴로 고개를 비트는 순간이었다.

“인공지능이 사용자의 대화 톤을 확인해서 가족들의 목소리도 알아듣습니다. 거기에 고객의 터치 습관, 강도를 모두 기억하는 스마트 폰, TV, 게임기가 가능합니다. 이걸 자동차와 블루투스 이어셋에 응용하면…….”

소름이 끼친 얼굴로 기용도가 상체를 세웠다.

“그렇다면 고객의 습관을 완벽하게 반영한다는 겁니까?”

“어떤 제품이든 가능합니다. 한 번만 경험하면 그 뒤에는 완벽하게 사용자의 취향과 버릇을 숙지하는 인공지능입니다.”

“소장님?”

기용도가 감동과 전율이 버무려진 얼굴로 연구소장을 불렀다.

“내가 싫어하는 사람들의 전화는 당분간 안 받고 싶어. 이런 명령을 받아들이는 스마트 폰이 가능합니다. 심지어 케이스가 배터리와 스피커의 역할을 대신합니다. 그것만이 아닙니다.”

기용도의 눈을 들여다보며 연구소장이 말을 계속 이었다.

“검지 손톱 크기의 테이프를 귀에 붙이는 것으로 블루투스 통화도 가능하게 됩니다.”

“특허는요?”

“기존에 없던 소재입니다. 특허에 전혀 문제없습니다.”

“우-하하!”

잠시 침묵했던 기용도가 느닷없이 미쳐버린 사람처럼 커다랗게 웃었다.

“이걸 왜 여태 말씀 안 하셨습니까?”

“연구실에 가 보십시오. 지금 기절한 것처럼 자고 있습니다. 오늘 새벽에 겨우 결과를 얻은 따끈한 보고라 그 전에 말씀드리기도 어려웠습니다. 제 몰골 보시면 이해하실 겁니다.”

“하! 하하하!”

“한 달만 주십시오. 전 세계 전자기기 회사가 우리 지경전자 앞에 한 줄로 쭉 서 있는 것을 보게 되실 겁니다. 회장님과 우리 부회장님께 뭐라도 만들어보자고 다들 눈에 불을 켜고 있습니다.”

“흐하하하!”

와락!

“부회장님! 이건 좀!”

상체를 끌어안은 기용도를 뿌리치기 위해 연구소장이 앙탈 비슷하게 몸을 빼냈다.

**

진광효는 솔직히 파생거래나 환율을 잘 모른다. 그러나 숫자는 읽을 수 있으니 변화폭을 보며 대강 이해하는 수준이었다.

“더 없나?”

그는 한국어에 능통한 직원을 옆에 앉히고서 한국의 포털 사이트를 살피고 있었다.

“지경그룹에서 회장단 회의를 갖은 뒤에 앞으로 6개월의 비상 경영을 선포했습니다. 천호득 그룹 명예회장까지 참석한 회의에서 천중명 회장은 고용을 증대하겠다는 포부를 밝혔습니다.”

“크하하하하!”

내용을 들은 진광효가 틈이 벌어진 이를 드러내며 통쾌한 웃음을 터트렸다.

“젊은 놈이 돈을 손에 쥐더니 아예 나라를 경영하려 드네! 크하하하! 크하하하하!”

얼마나 요란하게 웃었는지 앞에 놓인 모니터에 침방울이 툭툭 튀었다.

“너무 웃었더니 머리가 다 아프군! 다른 소식은?”

“환율이 1,309를 기록하며 원자재 수급에 비상이 걸리고 있습니다. 시중 금리 또한 가파른 상승세를 보이고 있어서 주택과 신용 대출을 받은 서민들을 위협하고 있습니다.”

한글로 작성된 기사를 중국어로 전하느라 직원의 발음이 무척 어색했다.

“가계 대출 1천조 원이라는 폭탄이 언제 터질지 모른다는 우려가 확산되면서 자금시장이 급격하게 경색되고 있습니다.”

진광효는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계속해 봐.”

“이미 5퍼센트 위로 올라선 시중 대출 금리가 환율과 미국의 금리 시장에 따라 추가로 더 오를 수 있다는 우려에 대출이 많은 주택 소유자들이 불안에 떨고 있습니다.”

“흥! 불안에 떨어야지! 암! 그래야 뺏어올 맛이 나지!”

만족한 표정을 그려낸 진광효가 테이블에서 상체를 세우고는 찻잔을 들었다.

“이틀 뒤에 폭탄을 하나 더 얻어맞으면 세상이 온통 시커멓게 보일 텐데? 크하하! 크하하하하!”

그의 턱을 타고 흘러내린 찻물을 진광효는 팔뚝으로 쓱 문질렀다. 그런 뒤에 옆에 서 있던 조직원을 향해 고개를 들었다.

“자금 집행은 어떻게 했어?”

“입금 확인했습니다.”

“지키는 아이들은?”

“24시간 붙어 있습니다.”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표정으로 진광효가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무식하긴 해도 미련하지는 않지. 테드 케블린이란 놈은 그걸 몰라.”

찻잔을 내려놓은 진광효가 내내 한국 소식을 전하던 직원을 빤히 바라보았다.

어쩌라고?

직원이 진광효에게서 옆에 서 있던 조직원에게 시선을 돌린 다음이었다. 조직원이 고갯짓으로 문을 가리켰다.

“물러가 있겠습니다.”

그제야 상황을 눈치챈 직원이 얼른 인사를 마치고 문을 나섰다.

“홍콩에 보낸 돈이 가장 중요해. 그곳을 지키는 놈들에게 다시 연락해서 실수가 없도록 다그쳐. 들어간 돈이 20조 원이 넘어.”

“예, 총재님.”

지시를 마친 진광효가 입맛을 다시며 고개를 창으로 돌렸다.

햇살, 인공호수, 그 위를 가로지르는 아치형 다리까지, 창밖으로 넓게 펼쳐진 정원은 한 폭의 그림 같았다.

“흐음.”

이상한 일이었다. 그렇게 통쾌하게 웃었는데도 천중명을 떠올린 진광효의 속이 편치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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