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로드 오브 머니-267화 (267/315)

# 267

267. 미안해, 상기 형 (3)

천중명은 먼저 발목이 나간 세 놈과 칼을 맞은 한 놈, 그리고 운전을 할 놈까지 모두 다섯을 한 차에 태워 먼저 근처의 도시로 보냈다.

이어서 조양회가 신상훈의 번호를 입력한 뒤에 건네준 위성 전화를 들었다.

- 여보세요?

“나 천중명 회장인데, 목소리 알아듣겠어?”

- 예, 회장님.

확실히 휴대 전화기보다는 울림이 컸고, 반 박자 느리게 전달되는 느낌으로 신상훈의 음성이 건너왔다.

“가장 마지막에 달린 우리 트럭이 중간에 거양자동차의 트럭에 의해 진로가 막힌 일이 있었는데, 타고 있던 우리 쪽 대원들이 내린 뒤에 곧바로 출발했어.”

- 예?

“자세한 설명은 나중에 할 테니까 우선 마지막에 도착하는 트럭의 드라이버가 오늘 일을 공개적으로 항의하거나 문제 삼지 않게 설득해줬으면 싶어요.”

- 경주나 랠리에 참가하는 드라이버는 프라이드가 워낙 강해서 규정에 어긋난 행위에 대한 항의를 쉽게 꺾지 않습니다. 어느 정도 수준의 문제를 일으켰는지 알면 대응하기가 쉬울 것 같습니다.

“길을 막은 뒤에 동승했던 우리 쪽 대원들이 내리고서 출발한 수준이거든. 설득에 필요하다면 거양자동차의 류효양 부사장을 찾아가서 직접 사과하라고 요구해요. 군말 없이 들어줄 겁니다.”

- 예, 회장님.

뭔가 하고 싶었던 말을 삼킨 듯한 신상훈의 답이 있었다.

“그리고 여기 산이 두 개 가로막아서 터널처럼 길이 뚫린 지점이 있는데.”

- 알고 있습니다.

“이곳으로 지프에 사용할 연료를 보내주었으면 싶은데, 가능할까?“

- 회장님은 그 지프로 이동하십니까?

“연료를 채울 수 있으면 나는 이집트로 향할 생각이니까 그렇게 알고 계세요. 아! 참고로 이곳에 남았던 대원 두 명은 근처 도시로 이동했으니까 그것도 거기 지휘자에게 알려주고. 남은 이야기는 나중에 합시다.”

- 예, 회장님.

통화를 마친 천중명은 조양회에게 위성 전화기를 건네주었다.

“들었으니까 짐작하겠지? 신상훈 총괄사장이 설득하기는 할 텐데 드라이버의 자존심이 강해서 어떻게 될지는 결과를 봐야 알 것 같다.”

“예, 회장님.”

두 대 중, 남아 있는 한 대의 승용차 옆에 걸터앉아 나누는 대화에서 조양회는 양서평에게 천중명의 말을 전했다.

“류효양은 어떻게 처리할 생각이지?”

“지시를 주시면 만나겠습니다. 가등섭을 등에 업고 얼굴을 바꾼 점에 관해 물어볼 것도 있습니다.”

그런 거야 천중명이 끼어들 일은 아니었다.

“거양자동차의 문제는 랠리가 완전히 끝난 뒤에 정리하기로 합시다.”

“이제 한국으로 돌아가십니까?”

“두바이에 들러야 할지 모르는데 그렇더라도 한국으로 향하게 될 거야.”

대충 씻는다고 물병으로 닦기는 했는데 깔끔해지기는 역부족이었고, 또다시 흙가루가 날아들어서 여전히 뿌연 얼굴이었다.

“이제 이런 짓도 그만했으면 싶어.”

대화의 끝에서 천중명은 옆에 내려놓은 소총을 내려다보며 가볍게 웃었다.

“사업을 한다는 사람이 언제까지 총질에 칼질을 하고 다닐 수도 없고.”

“회장님은 조직을 이끌었어도 크게 되셨을 겁니다.”

“그랬다면 양서평 부총재와 칼을 들고 마주 섰을지도 모르지. 양 부총재가 물러난다고 조직이 없어지지는 않겠지만, 언젠가는 적당한 선에서 빠져나오는 게 좋아.”

“알겠습니다.”

어쩐지 양서평의 답은 자신 없다는 투였다. 하긴, 삼합회라는 거대조직이 천중명의 말 한마디에 없어질 것도 아니고, 양서평이 그곳에서 물러나 살아가기가 쉬운 일은 아니었다.

“양 부총재.”

“예, 회장님.”

“멀리 봅시다. 칼을 들고 씩씩대는 사람보다는 상황을 미리 짐작하고 막아내는 사람이 더 두려워.”

“알겠습니다.”

천중명과 양서평은 처음이다 싶은 솔직한 대화를 나누었다. 전과 다르게 공손한 양서평의 태도가 그렇게 이끌었는지 모를 일이었다.

아직 소총을 앞에 든 곽대출이 담배에 불을 붙이며 조용하게 이쪽을 지켜보고 있었다.

“본부장. 무기를 넘겨줘.”

“예, 회장님.”

천중명이 몸을 일으켰고, 양서평과 조양회가 함께 걸터앉았던 자리에서 일어섰다.

“총과 무기는 알아서 처리해.”

“예.”

양서평이 무언가를 지시하자 조금 떨어진 곳에서 대기하던 남자가 다가와 총과 칼들을 트렁크에 담았다.

**

신상훈은 오늘 하루 랠리에서 이상한 일이 많았다는 것을 모르지 않았다. 그런 그에게 위성 전화기를 이용한 천중명의 지시가 있었다.

통화를 마친 신상훈은 먼저 기름과 생수, 그리고 혹시 모를 간식과 의약품을 실은 차량을 산으로 만들어진 관문을 향해 보냈다.

그런 뒤에 그는 곧바로 신화를 담당한 드라이버를 찾아 협조를 요청했다.

“우리 지경그룹 회장님이 직접 요청하신 일입니다. 우리는 랠리가 원만하게 진행되어서 마지막 순간에 정당하게 승리하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부탁합니다.”

수석 드라이버 아론도 지안테는, ‘너 뭔가 있지?’ 하는 표정이었다.

“아론도, 부탁합니다.”

“혹시 뒤에 이것과 관련해 불거질 문제가 있습니까?”

“현재로는 없습니다. 혹여 사소한 문제가 있더라도 절대 아론도를 비롯한 드라이버의 명예를 손상하는 일은 없도록 처리하겠습니다.”

“흠.”

잠시 망설이던 아론도가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알아서 할 테니 총괄사장님은 나서지 마십시오. 만약 내가 해결 못 하는 일이 생기더라도 그가 이의를 제기하기 전에 반드시 총괄사장님께 먼저 말하도록 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아론도.”

“한편이니까요.”

신상훈의 어깨를 다독여준 아론도가 트럭이 도착할 지점을 향해 움직이는 것으로 우선 급한 불은 끈 모양새였다.

“총괄사장님!”

추일원을 향해 움직이려는 신상훈을 파크 피터슨이 불렀다. 연일 이어지는 랠리로 인해 그 역시 꽤 지치고 힘든 얼굴이었다.

“파크! 내가 잠깐 일이 있어서요! 급한 건가요?”

“그런 건 아니고, 내일 일정에 관해 잠시 의논할 것이 있어서 그렇습니다!”

“바로 옵니다! 나 대신 점검표를 챙겨주세요!”

몸을 돌린 신상훈은 추일원을 향해 움직였다.

그나저나 신임회장은 무슨 일 때문에 이집트에서 급하게 관문까지 이동했으며, 또 무슨 일로 마지막 트럭에 타고 있던 대원들이 대도시로 간다고 했을까?

칼을 구해주었던 일이 떠올라 신상훈은 몸서리를 쳤다.

구해서 가져다주는 것과 그 칼로 사람이 다치는 것은 완전히 다른 일이었다.

**

막심과 합류해 지프에 기름을 채운 천중명은 그 길로 곽대출과 함께 이집트로 향했다.

호텔에 도착한 천중명은 먼저 마타르의 통역을 불렀고, 그를 통해 마타르와 긴 시간을 통화했다. 그리고 다음 날, 곽대출과 함께 한국으로 출발해서 오전 7시에 인천공항에 도착했다.

천중명을 위해 비서실 직원들이 나와 있었는데, 벤처사업부에서도 직원이 나와서 곽대출을 맞았다.

“고생했다. 급한 일 좀 정리해놓고 시간 내자.”

“예, 회장님.”

모처럼 천중명과 구르고 뛰었던 곽대출이 아쉬운 얼굴로 건넨 인사였다. 어쩌면 곽대출에게는 지난 며칠이 더 마음 편하고 행복한 삶이었는지 모른다.

천중명 역시 그와 함께 사막을 달리고, 적을 상대했던 것이 나쁘지 않았던 것처럼 말이다. 그러나 이제는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야 할 시간이었다.

“먼저 간다.”

곽대출을 향해 웃어준 천중명은 비서실 직원들이 준비한 차에 올라 본사로 향했다.

달리는 승용차 안에서 천중명은 먼저 천호득의 번호를 눌렀다.

- 여보세요?

“인천공항에 도착했습니다. 본사에 들러 급한 일 몇 가지 처리하고 오후에 찾아뵐까 하는데요.”

- 바쁜 사람이 그럴 게 뭐 있어? 특별하게 할 말 없으면 아예 떡국 먹으러 가기 편할 때 연락해.

애틋하게 매달렸던 일을 모두 잊은 사람처럼 천호득은 투박하기 그지없는 음성이었다. 어떤 사람들은 끔찍하게 싫어하는 저 말투가 천중명에게는 ‘건강하다, 잘 지낸다.’라는 뜻으로 들렸다.

“그럼 시간 봐서 다시 전화 드릴게요.”

- 그래.

전화는 그렇게 끊겼다.

하여간 변화무쌍한 건 정말이지 따라갈 사람이 없는 수준이었다. 액정을 바라보며 웃은 천중명은 이어서 허선영의 번호를 눌렀다.

- 여보세요? 어디에요?

“본사로 향하고 있어. 오늘 일찍 퇴근할 수 있어?”

- 글쎄요. 제가 일이 많아서요.

“흠.”

장난 섞인 천중명의 반응에 허선영이 재미있다는 투로 웃었다.

- 오늘 일찍 퇴근하려고 어제 열심히 일했어요. 혹시 늦게 끝날 일이 생기면 연락해요. 내가 본사로 가든가 할게요.

“알았어. 퇴근해서 봐.”

두 통의 전화를 마친 천중명은 잠시 고민하다가 다시 번호를 찾았다.

- 여보세요?

천상기 특유의 삐친듯한 대꾸였다.

“나 들어왔어.”

- 그럼 이제 나는 저축은행 일만 본다. 지난 며칠 동안 했던 일은 전부 보고서에 있으니까 유진교 본부장과 의논해. 사람 좀 뽑아. 본부장이 감당할 일이 너무 많아. 돈을 아끼려고 그런 것도 아니면서 진짜!

천호득이 투박하다면 천상기는 어딘가 뾰족뾰족한 가시가 달린 음성이었는데 적대감이 없으니 그 또한 잘 지내고 있다는 의미처럼 들렸다.

- 그리고 약속 지켜!

“무슨 약속?”

- 대리로 승진시켜준다며!

“아! 그건 염려하지 말고. 오후에 바빠? 차 한잔 했으면 싶은데?”

- 싫어! 절대 안 해! 못해! 어? 전화가 왜 이러지?

툭 끊겨 버린 휴대 전화기를 들고 천중명은 기가 막힌 웃음을 쏟아냈다. 천호득의 성품을 가장 많이 닮은 사람이 어쩌면 천상기가 아닐까 싶어서 나온 웃음이었다.

익숙한 도로와 풍경을 보며 천중명은 모처럼 느긋하게 뒷좌석에 몸을 기댔다. 오랜 비행에서 오는 피로가 잠으로 바뀌어 달려들고 있었다.

**

곽대출이 삼성동의 벤처사업부에 도착한 것은 얼추 9시가 조금 넘어서였다.

“오셨습니까?”

“안녕하십니까, 본부장님?”

1층에서 직원들과 반가운 인사를 마친 곽대출은 3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을 통해 사무실로 들어섰다. 직원들이 일어나 인사했고, 그중에는 보고 싶었던 주인영도 있었다.

“주인영 부장. 커피하고 결재서류 가져다줘.”

“네, 본부장님.”

방으로 들어간 곽대출이 가방을 내려놓은 다음 재킷을 걸었을 때였다.

똑똑똑.

주인영이 들어왔다. 그녀는 먼저 책상에 결재판과 커피가 올려진 쟁반을 내려놓았고, 이어서 문을 닫았다.

달칵.

문이 닫힌 직후였다.

책상을 빙 둘러간 곽대출이 팔을 벌려 그녀를 안았다.

주인영 역시 곽대출의 목을 꼭 안아주었다.

“잘 있었지?”

“보고 싶었어요.”

대화는 거기까지였다.

주인영이 문을 닫아두어서 밖에서는 곽대출의 방에서 무슨 일이 있는지 알 길이 없었다.

**

본사에 도착한 천중명은 부속실 직원들의 인사를 받으며 집무실에 들어갔다.

“유진교 본부장 불러주고, 커피 좀 부탁해.”

“예, 회장님.”

그동안 노트북을 이용해 중요한 보고서와 메모를 검토한다고 했는데 책상에는 미뤄두었던 중요한 결재서류들이 잔뜩 놓여있었다.

똑똑똑.

노크와 함께 유진교가 들어왔고, 이어서 부속실 직원이 따라 들어와 차를 놓아주었다.

“앉으세요, 본부장님. 아! 내가 식사를 못 해서 그런데 샌드위치가 있을까?”

“예, 회장님. 바로 준비하겠습니다.”

집무실, 커피, 마주 앉은 유진교, 샌드위치를 준비하겠다는 부속실 직원까지, 천중명은 이제야 한국에 돌아온 것을 실감할 수 있었다.

“피곤하실 텐데 하루 쉬시지 그러십니까?”

“저쪽에 결재서류를 더 쌓았다가는 내일 과로로 쓰러지겠는데요? 급한 결재는 처리하라고 말씀드렸는데 저 정도인가요?”

“제가 결재한 서류는 앞면에 체크해서 놓았습니다.”

책상을 힐끔 돌아본 천중명은 고개를 끄덕인 뒤에 커피를 먼저 마셨다.

“이번에 다녀오며 느낀 점이 있는데요. 아무래도 제가 없는 동안 그룹을 책임질 부회장이 있었으면 싶습니다.”

“예, 회장님. 그 점은 저 역시 공감하고 있었습니다. 혹시 천상기 회장을 생각하고 계십니까?”

잔을 내려놓은 천중명은 의견을 듣고 싶다는 투로 유진교를 보았다.

“나쁘지 않습니다. 보고서를 통해 확인하시겠지만, 대송자동차그룹 회장단 회의를 완벽하게 이끌었고, 회장님의 경영철학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었습니다.”

“그렇군요. 그런데 저는 다른 분을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다른 사람이 있다고?’ 하는 얼굴로 유진교가 천중명의 다음 말을 기다리고 있었다.

“본부장님을 내일 지경그룹 부회장으로 발령낼 생각입니다.”

“예에?”

“그게 그렇게 놀랄 일인가요? 일이 더 많아지기는 것 말고는 지금과 다를 게 없을 것 같은데요?”

“회장님? 천상기 회장도 있고, 제게는 그룹발전본부의 신문고 메일 삭제 건에 대한 책임도 남아 있습니다.”

“그러니까 그 책임을 지시라는 의미로 지금보다 무거운 임무를 드리는 겁니다. 당분간 그룹발전본부 본부장을 함께 맡으시고, 기획실장과 기타 필요한 임원, 간부, 사원을 선임하는 것부터 시작했으면 싶습니다.”

유진교가 몹시 복잡한 표정으로 천중명을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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