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로드 오브 머니-264화 (264/315)

# 264

264. 저 새끼들 먼저 해결하고 (3)

지프에 기름을 채우는 동안 천중명의 휴대 전화기가 울었다.

- 어디쯤 계십니까?

천중명이 알려준 주유소의 이름과 위치를 통역은 바로 알아들었다.

- 바로 도착합니다.

그 답을 듣고 채 3분도 되지 않아서 붉은색 경광등을 단 지프 두 대가 도착했다. 콧수염을 단 지휘관이 천중명을 얼마나 반갑고 공손하게 대하는지 주유소 직원이 놀랄 정도였다.

출발하기 전이었다.

그런데도 천중명은 통역을 불러 1만 달러를 콧수염의 지휘관에게 건넸다.

“도착할 때까지의 시간에 상관없이 이렇게 도와준 것에 감사하는 의미라고 전해줘.”

“예, 회장님”

통역이 말을 건넨 다음이었다.

두툼한 콧수염 옆으로 오늘 면도를 못 한 탓인지 볼과 턱에 뾰족뾰족 수염이 튀어나온 지휘관이 눈물 그렁그렁한 눈으로 천중명에게 다가왔다.

그는 곧장 두 손을 하늘로 벌려서는, “신이 우리 회장님의 시선이 닿는 모든 곳에 축복을 주실 것입니다.”하는 어마어마한 축원과 함께, “회장님과 신을 위해 달리겠습니다!” 하는 어쩐지 말리고 싶은 각오를 뱉어냈다.

삐뽀삐뽀! 삐뽀삐뽀!

그때부터였다.

경광등과 요란한 사이렌을 울리며 지프가 달리기 시작했다.

연신 클랙슨을 울리는 것으로도 모자라 뒷좌석의 대원들이 소총을 돌려가며 주변 차량에 겁을 팍팍 주는데, 지휘관은 이 질주가 끝난 뒤에 지프를 폐차할 사람처럼 속도를 줄이지 않았다.

부으으응! 끼기긱!

U자형으로 돌아가는 커브에서 국경수비대의 지프는 보기조차 섬뜩하게 방향을 틀었고, 그걸 또 막심이 질 수 없다는 투로 따라붙었다.

그렇게 달리는 지프 안에서 천중명의 휴대 전화가 울렸다.

- 회장님! 랠리의 스태프 이동이라고 통보했고, 협조 요청에 대한 긍정적인 답을 받았습니다.

“고생했습니다. 우선 이쪽 일 처리하고 나중에 통화하기로 하시죠. 혹시 급하게 회장의 역할을 해야 할 일이 생기면 천상기 회장에게 부탁하세요.”

유진교와 통화를 마친 천중명은 다시 신상훈의 번호를 눌렀다. 그 통화에서 천중명은 오늘 선두 차량의 예상 진로를 확인했고, 양서평과 조양회가 가장 뒤에 남았다는 사실도 들었다.

끼기긱! 그아아앙! 빵! 빠아-앙!

누가 보더라도 광란의 질주, 그 자체였다.

몸이 급하게 쏠리는 지프의 뒤에서 천중명은 조양회의 번호를 눌렀다.

그아아앙! 덜커덩!

터져 나오는 엔진음과 진동을 가리기 위해 왼편 귀를 가린 다음이었다.

- 예, 회장님!

조양회의 답이 있었다.

“가장 뒤에 출발한 우리 트럭을 거양자동차의 트럭 두 대가 막아섰다는 정보가 있어! 내가 지금 도로에서 벌판에 진입하는 지점을 향해 가고 있으니까!”

빵! 빠아앙! 끼기긱! 부으으응!

앞차를 젖히려던 막심이 맞은편에서 오던 차에 놀라 방향을 트는 바람에 잠시 말이 끊겼다.

“혹시 후미에 가등섭이나 다른 일당이 따라붙는 일은 없는지 살피고 알려줘!”

- 예, 회장님!

지프에서 군인들이 소총을 겨누자 앞의 차가 급하게 구석에 처박히며 길을 열었다.

“가등섭은 이미 뒤가 없어! 악에 받쳐 있을 테고, 우리 쪽 대원들이 허술하지 않으니까 무리하지 마! 알았어? 정확한 상황만 파악하면 돼!”

- 알겠습니다, 회장님.

통화를 마쳤을 때 세상 무서울 것 없던 곽대출이 조수석의 손잡이를 붙들고 있을 정도로 앞에 달리는 지프와 막심의 운전은 이성을 날려버린 수준이었다.

번쩍번뻑! 빵! 빠아-앙!

차선을 뛰어나갔다가 급하게 들어서는 일은 아예 예사로 벌어지고,

까가가각! 부아아앙!

어지간한 커브는 속도를 전혀 줄이지 않은 채 내달렸다.

**

승용차의 뒷좌석에서 여유 있게 통화하던 가등섭의 미간이 완벽하게 구겨졌다.

- 그런 이유로 당국은 너에게 사형을 내리기로 결정했다. 우리 법원의 판결이 당의 결정에 따른다는 것은 너도 알 테고.

“기회를 주십시오, 총재님!”

- 대송그룹의 공장과 판매시설을 가져오겠다고 큰소리친 것이 컸어. 안전점검이라는 명분으로 시간을 끌었기에 망정이지 국영관리를 지시했다면 이 또한 망신이 됐겠지.

마른침을 삼킨 가등섭의 침묵을 총재는 이해한다는 음성이었다.

- 알아서 판단해. 그곳에서 마지막 불꽃을 태우든가, 들어와서 사형을 받든가. 그래도 2인자였던 너에게 주는 내 마지막 배려다.

총재의 말을 들은 가등섭이 이를 악물었다.

“양서평과 함께 가겠습니다.”

- 좋아! 그 각오를 가등섭의 마지막 모습으로 기억하겠다. 총을 사용해서 국제적인 분쟁이 일어나는 일은 없도록. 그리고 체포되는 꼴을 보이지는 마라. 참고로 양서평은 내 전화를 기다리느라 가장 후미의 트럭보다 20분가량 뒤처졌다.

“감사합니다, 총재님.”

통화는 그렇게 끝났다.

이를 몇 번이나 으스러지도록 깨문 가등섭이 입술을 앞으로 내밀고는 고통스러운 사람처럼 인상을 찌푸렸다.

“적당한 곳에서 세워! 그리고 가장 마지막의 지경리온 트럭이 지난 뒤에 따라붙어! 우리는 벌판에서 양서평을 노린다.”

“예.”

조수석의 남자가 몸을 틀어 고개를 숙였다.

“후미의 트럭에 있는 놈들에게 연락해. 지경리온의 트럭에 타고 있는 천중명의 사람들을 모조리 죽이라고.”

“알겠습니다.”

가등섭의 지시에 또다시 답이 있었다.

**

카페에서 출발해 승용차로 이동하던 양서평의 휴대 전화기가 울었다.

“양서평입니다, 총재님.”

- 가등섭이 너를 노린다. 내가 그걸 허락했고.

아직 설명이 나오지 않아서 양서평은 잠자코 듣고만 있었다.

- 놈은 절대 돌아와서 얌전히 사형을 받을 놈이 아냐. 그러니 적당한 곳에서 알아서 해결해.

“예, 총재님.”

양서평의 답을 들은 총재는 나직하게 숨을 내쉬었다.

- 잠시 뒤에 대송자동차의 공장과 판매시설에 대한 정상적인 영업지침이 내려질 거다. 랠리를 무사하게 끝내고 돌아와. 남은 일은 그 뒤에 의논하기로 하자.

통화를 마친 양서평은 조양회에게 내용을 설명해 주었다.

말하는 양서평이나 듣는 조양회나 총재의 의도를 모르지 않았다. 급격하게 세력이 확장되는 양서평이 가등섭과 함께 죽는 것이 총재의 입장에서 가장 좋은 결과였다. 그게 아니어도 이리저리 속 썩일 가등섭을 양서평이 깔끔하게 처리해주는 것 역시 손해 볼 일은 아니고.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가등섭을 묻어줘야지.”

조양회는 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뭐라 해도 조직에 몸담은 사람이고, 계략만으로 가등섭을 누르는 것보다는 직접 해결하는 것이 나중에 양서평의 입지를 세우는 데 좋았다.

“천 회장님도 이쪽으로 오고 계신다니 오늘 아예 결판을 내고 그리 합류하자.”

“회장님께 이 내용을 말씀드려야 하지 않겠습니까?”

빠르게 달리는 승용차 안에서 양서평은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답을 대신했다.

**

밤에 잠을 설쳐서 그런지 천상기는 컨디션이 좋지 못했다.

정신은 멍하고, 입맛도 없는 데다 공연히 짜증까지 치솟아서 당최 직원들을 대하기조차 두려울 지경이었다.

전 같으면 사소한 꼬투리에 악을 바락바락 썼겠다만, 천중명의 말을 들은 뒤로 저 직원도 강갑수 같고, 이 직원도 그 녀석 같아서 자꾸만 울뚝 튀어나오려는 짜증을 천상기는 누르고 눌렀다.

“에이! 꿈에 문어 한 마리 나타났다고 이게 뭐하는 거야, 진짜!”

대강 서류를 살핀 천상기는 나머지를 내일로 미루고는 일찌감치 저축은행을 나섰다. 그런 뒤에 그가 찾은 곳은 뜻밖에도 저축은행 근처의 백화점이었다.

지경백화점에 가면 할인도 되고, 남다른 대우도 받을 텐데 당장 그는 그런 것들이 부담스러워서 근처를 택했다.

가장 먼저 들른 곳은 유명 스포츠 브랜드의 매장이었다.

발목이 긴 운동화, 스니커즈, 런닝화, 이렇게 종류별로 골라 담았고, 다음으로 운동복 상·하의와 편하게 입을 티셔츠를 샀다.

모두 강갑수를 위한 옷과 신발들이었다.

“감사합니다, 안녕히 가세요!”

직원의 인사를 받으며 스포츠 매장을 나선 천상기는 정장 코너로 향했다.

“흠.”

강갑수가 정장을 입을 일이 있을까?

멋쩍게 웃은 천상기는 바깥에 진열된 캐주얼 느낌의 재킷을 이리저리 둘러보았다.

‘내가 이거 뭐하는 거지?’

생각해보면 황당한 모습이기도 했는데 또 이걸 받고 좋아할 강갑수가 떠올라서 천상기는 속없이 씨익 웃었다.

대뜸 줘봐야 그 성격에 냉큼 받지는 않을 테고, 이걸 무슨 핑계로 주나?

“오다 주웠다!”

엉뚱한 혼잣말을 뱉은 천상기가 양손에 종이 쇼핑백을 들고 서서 키득거릴 때였다.

우우웅. 우우웅. 우우웅.

그의 주머니에서 휴대 전화기가 울었다.

“어? 뭐야?”

잠시 망설이던 천상기는 매장과 매장 사이로 움직인 뒤에 통화버튼을 눌렀다.

“여보세요? 나 안 해! 뭐든 안 한다고!”

- 갑수가 위험해!

천상기의 거절을 알고 있던 것처럼, 커다랗게 울리는 엔진음과 덜컹대는 소리를 뚫기 위한 고함처럼 천중명의 음성이 들렸다.

- 내가 가고 있거든! 오래 걸릴지 몰라! 중국에서 대송자동차의 공장과 판매시설 재개를 통보할 거라서 일이 많아! 회장 대행으로 일을 봐 줘!

“갑수가 어디 있는데! 왜 위험한데!”

매장에 있던 직원들이 고개를 내밀어 바라보았고, 오후의 한가한 신사복 매장을 돌아보던 손님 몇 명이 인상을 찌푸리며 시선을 줄 정도로 천상기의 목소리는 높았다.

- 내가 가고 있으니까 찾는 대로 전화할게! 갑수와 대원들이 목숨 걸고 찾아낸 공장과 판매시설이야! 그러니까…….

“동생회장님!”

천상기는 천중명의 말을 대뜸 잘랐다.

“내가 뭐든 한다, 진짜! 그러니까 우리 갑수 좀!”

말을 하다 말고 천상기는 울컥 올라온 감정을 억지로 삼켰다.

“없는 사람도 행복해 보자! 아버지 잃고! 돈 없는데! 나라에 충성했던 사람들이잖아! 왜 그 사람들은 행복하면 안 되는 건데, 왜! 왜애-!”

놀란 직원의 신고로 달려온 정장 차림의 직원 두 명이 천상기를 알아본 것처럼 움찔해서는 거리를 둔 채 지켜보았다.

“내가 다 할게! 그러니까 부탁한다, 동생회장님아!”

말을 건넨 천상기가 감정에 복받쳐 씩씩거리는 순간이었다.

- 갑수가 돌아가서 일할 그룹이고, 갑수와 똑같은 직원들이 일하는 그룹이야. 내가 갈 때까지 단단하게 지켜!

섬뜩할 정도로 나직한 천중명의 말이 건너왔다.

“동생회장님도 다치면 안 돼! 나 이제 회장 같은 거 싫어! 싫다고!”

- 끊어.

한마디 대꾸와 함께 전화가 끊겼다.

“후-. 꿈이 지랄 같더니! 이 문어 새끼! 앞으로 내 눈에 띄는 문어는 내가 다 먹어버린다! 진짜!”

휴대 전화기를 내린 천상기가 눈물이 그렁그렁한 얼굴로 혼잣말을 뱉었다.

“혹시 천상기 회장님이십니까?”

“그래! 왜!”

“VIP실로 모시겠습니다.”

“나 살 거 다 샀어! 이제 가야 돼!”

직원들의 제안을 거절한 천상기가 쇼핑백을 들고는 에스컬레이터를 향해 걸었다.

**

천중명이 통화를 마치기 무섭게 앞의 지프가 속도를 줄였다. 주변은 황량한데 저 앞으로 철조망과 초소가 있는 것으로 봐서 벌써 국경에 도착한 모양이었다.

우르르!

소총을 든 군인들이 내리자 초소에서 나오는 놀란 표정의 남자가 튀어나왔다. 민병대인가 싶을 정도로 그는 누런 원피스에 군인 모자를 썼다.

바쁘게 대화가 오갔고, 콧수염을 단 이집트 지휘관이 천중명의 지프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홱!

그리고는 정말이지 칼로 찔렀다면 절대 피하지 못할 만큼 빠른 동작으로 접고 접은 달러를 초소의 군인에게 내밀었다.

시선과 시선이 교차했고, 씨익 웃은 초소의 남자가 돈을 받고는 앞을 막은 문을 열었다.

“출발하시면 됩니다. 남은 문제는 알아서 하겠습니다.”

“지휘관에게 이 돈을 건네줘.”

천중명이 지갑에서 돈을 꺼내려는 순간이었다.

“초소에서 보면 곤란합니다. 제가 돌아가는 길에서 전하겠습니다.”

시간이 급한 마당이었다.

고개를 끄덕여준 천중명은 앞을 향해 출발하라고 지시했다.

그아아앙!

국경을 넘어서는 동안 콧수염의 지휘관은 처음으로 경례를 보여주었다.

콰등! 덜커덩! 그아아앙!

길이 급격하게 거칠어졌는데 막심은 속도를 줄이지 않은 채 달렸다.

“대출아! 이거 먹고 앞에 막심에게도 먹여줘!”

천중명은 배낭에서 초콜릿 바와 샌드위치를 조수석의 곽대출에게 건넸다.

“최소 한 시간에서 한 시간 반은 줄였다. 어느 정도 여유 있으니까 안심하고, 먹어둬.”

“예, 회장님.”

곽대출이 수류탄을 받아드는 것이 아닌가 싶을 만큼 굳은 얼굴로 샌드위치와 초콜릿 바를 받았다.

울퉁불퉁 솟은 황량한 야산들이 둘러싼 사이를 지프가 빠르게 달리며 흙먼지를 길게 피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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