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63
263. 저 새끼들 먼저 해결하고 (2)
30분쯤 달린 승용차는 길가에 테이블을 내놓은 카페의 앞에 멈췄다. 그동안 조양회의 휴대 전화기로 체포과정과 장소, 시간, 명단이 줄줄이 넘어온 덕분에 내용을 파악하는 데 문제 될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커피를 주문한 뒤에 담배를 입에 물고서야 양서평은 고개를 끄덕였다. 사건이 사건인 만큼 그도 각오를 다질 최소한의 시간이 필요한 모양이었다.
번호를 누른 조양회가 전화기를 건네준 다음이었다.
신호음을 기다리던 양서평은 굳은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총재님. 양서평입니다.”
그런 뒤에 그는 주척정과 문윤의 문제를 묵직한 음성으로 전했다.
- 양서평. 가등섭을 모함하려는 일이라면 지금에라도 솔직하게 말해라. 내가 나선 뒤에는 돌이키기 어려워. 어떤 의미인지 잘 알 거라 믿는다.
“이집트의 국경수비대와 외무장관에게 연락하시면 바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아랍에미리트 마타르 카히로 모하메드 청장에게 연락해도 마찬가지입니다.”
- 가등섭, 이 부족하고 모자란 놈! 고작 외국에 나가서 한다는 짓이 총질에 칼부림이라니! 수습할 방법은?
마침내 기다리는 질문이 나오자 양서평은 부리부리한 눈에 힘을 딱 주고는 입을 열었다.
“중국 내 대송자동차의 공장과 판매시설의 재가동, 그리고 가등섭의 송환 후 사형 혹은 이쪽에서 적당하게 처리, 이렇게 두 가지입니다.”
- 그 두 가지만 들어주면 조용하게 묻겠다?
“그렇습니다.”
- 흥! 여우라고 생각했던 가등섭이 꼼짝 못 하고 당한 모양이구나! 한 시간 뒤로 전화하마. 마지막으로 하나 묻겠다. 책임지고 이 일을 덮을 자신은 있겠지?
“맡겨주십시오.”
양서평의 입가에 흔들리듯 미소가 그려진 직후였다.
- 이게 네놈의 머리에서 나왔을 리는 없을 테고, 한국의 그 회장이란 사람이 생각보다 대단하긴 한 모양이군. 연락을 기다려.
총재는 묘한 여운을 남기며 전화를 끊었다.
휴대 전화기를 건네준 양서평은 먼저 히죽 웃었다.
“후하하하하-!”
그런 뒤에 그는 참지 못하겠다는 듯 커다란 웃음을 터트렸다.
도로를 달리는 승용차와 트럭들이 피운 먼지가 뿌옇게 날아드는 길가의 카페였다. 덩치가 단단한 동양인인 양서평이 거만하게 다리를 벌리고 앉아 터트린 웃음에 의아하고 약간은 불쾌한 시선들이 몰려들었다.
“후하하! 후하하하하!”
그러나 지금 아니면 언제 웃겠냐는 듯 양서평은 주저함이 없었다.
**
앞에서 달리는 거양자동차의 트럭 두 대가 연달아 서서 시속 100킬로미터의 속도를 유지했다.
저 두 대의 앞에서 달리던 트럭의 속도가 시속 200킬로미터인 것을 계산하면 상황은 정말 좋지 않았다.
크르르릉! 철컹! 크르르릉!
이제야 뭔가 수상하다고 느낀 드라이버가 힐끔 시간을 확인했다.
포장도로를 달리는 것은 기본 성능을 테스트하는 과정으로 보면 적당했다. 이런 도로에서 고장으로 퍼질 트럭이 있다면 아예 사막에 들어서지 못하게 하는 안전장치쯤 되겠다.
시차를 두고 출발한다고 해도 이렇게 왕복 2차선 도로에서 앞차에 걸리면 제 속도를 내기는 어렵다. 그러니 진짜 승부는 마음 놓고 달리는 벌판이나 사막에서 결정 난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을 감안한다고 쳐도 하여간 앞에 있는 두 대의 트럭은 심했다. 너만큼은 절대 곱게 보내줄 수 없다는 의미 외에 달리 생각할 이유 따위는 없었다.
힐끔 강갑수와 조호철을 돌아보았던 드라이버가 독하고 강렬한 두 사람의 눈빛을 보고는 ‘이건 또 뭐야?’ 하는 얼굴로 바로 시선을 가져갔다.
크아아아-앙! 철컹! 크아앙!
항의하는 의미로 후미에 바싹 머리를 붙였는데도 앞의 트럭 두 대는 꼼짝도 하지 않았다.
이미 아침과 정오의 중간쯤이어서 맞은편 차선 역시 붐볐다. 그러니 튀어나가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게다가 그런 추월은 실격 사유이기도 했다.
“새끼들!”
뒤편에서 조호철이 웃었다.
재미있다는 투였는데 이미 그는 한바탕 칼부림을 각오한 눈빛이었다.
“형님. 트럭의 숫자가 부족한 상황에서 이런 식으로 막아서면 계속 밀리게 됩니다. 일이 벌어지면 적당하게 마무리하고 먼저 출발하십시오.”
조수석에 앉았던 강갑수가 뒤를 향해 몸을 틀었다.
“네가 맡은 트럭이야! 일이 생기면 틈을 봐서 네가 움직여! 저쪽도 드라이버가 보는 앞에서 일 저지르기 어려울 테니까 내리자마자 트럭이 출발할 확률이 높아. 내가 막는다. 너는 그사이에 트럭과 함께 움직여.”
“형님?”
“이 새끼가 천상기 회장이 동생 어쩌고 하니까 간이 부었나? 어디에서 목소리를 높여? 죽고 싶어?”
“형니-임!”
물러서지 않는 강갑수를 보며 기가 막힌 것처럼 조호철이 픽 웃었다.
“너는 꼭 만나야 할 사람도 있잖냐. 그러니까 출발하라고, 이 새끼야!”
“나는 이마 마주 댔으니까 무슨 일이 있어도 돌아갑니다. 아무래도 우리를 떨구면 뒤에 더 무서운 놈들이 달려들지 않겠습니까. 그러니까 형님이 이 트럭과 움직여서 결정적인 순간을 막아주세요.”
그런 게 있나?
조호철이 고개를 갸웃할 때였다.
“그럼 그렇게 알고 움직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형님.”
말을 마친 강갑수가 앞으로 상체를 가져갔다.
크아앙! 크아아앙!
속도를 내지 못한 트럭이 갑갑한 듯 엔진음을 터트리고 있었다.
**
호텔에 돌아와서 샤워를 마친 천중명은 몸을 떨어대는 휴대 전화기를 들었다.
“여보세요?”
- 조양회입니다, 회장님. 총재님께 보고 마쳤고, 한 시간 안으로 연락하신다는 답을 받았습니다. 저기…….
조양회가 어렵게 꺼낼 말이 뭐가 있지? 천중명이 고개를 갸웃한 순간이었다.
- 감사합니다, 회장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진심이 담긴 조양회의 인사가 건너왔다.
“잘해.”
- 예, 회장님.
천중명의 아리송한 지시를 조양회가 찰떡같이 받으면서 통화가 끝났다.
샤워실에서 나온 직후였다.
휴대 전화기를 내려놓은 천중명은 젖은 머리를 수건으로 닦으면서 안쪽을 살폈다. 기다렸다가 킬킬대야 할 곽대출이 보이지 않아서였다.
뭐, 화장실에 있던가, 주인영의 목소리가 그리워 전화를 붙들고 있을 수 있으니까.
천중명이 물병을 들고 테이블에 앉았을 때, 실제로 휴대 전화기를 든 곽대출이 안쪽에서 나왔다.
“표정이 왜 그래? 무슨 일 있어?”
“랠리에 참가한 조장에게 가등섭의 내용을 알려주려고 전화했었습니다.”
“그런데 왜?”
갑갑한 표정의 곽대출이 결심한 것처럼 입을 열었다.
“오늘 지경리온 소속 트럭이 가장 늦게 출발했답니다. 그 앞에 거양 트럭 두 대가 있는데 일부러 시속 100킬로미터의 속도로 달린다는 보고였습니다. 가장 뒤에 있는 대원들을 노리는 게 아닌가 해서…….”
무슨 뜻인지 이해하지 못한 천중명이 고개를 갸웃한 순간이었다.
“오늘부터 벌판이 시작된다고 들었습니다. 듣기로는 벌판이 나오면 도로를 벗어나 직선주로를 택한답니다. 그곳에서부터 실제로 얼마나 시간을 줄이느냐의 싸움이어서 그렇답니다.”
“지도 가져와 봐.”
수건을 옆자리에 걸친 천중명의 앞에 곽대출이 지도를 펼쳐주었다. 테이블 위에 있던 연필을 든 천중명은 도로에서 목적지 방향을 향해 선을 길게 그었다.
“직선으로 달리면 여기 황토색의 야산에 걸려. 그러니까 우선 이쪽으로 방향을 틀 확률이 높고.”
천중명은 도로에서 야산을 피한 다음 도로까지 직선을 그었다.
“저쪽에서 목적지까지 오는 직선거리가 660킬로미터쯤 되는데 도로를 타고 오는 동안 돌아야 하는 구간을 계산하면 750킬로미터 정도 되는 거지. 몇 시에 출발했는지 들었어?”
“오전 8시 출발입니다.”
고개를 돌린 천중명은 현지시각을 확인했다.
“호텔에서 이곳까지 550킬로미터 정도거든. 두 시간 정도 늦었으니까 마주치는 거리가 이곳이 되는데, 시속 100킬로미터로 달린다면?”
천중명은 연필로 선을 세 개 정도 더 그렸다.
“무기들 가져다 놨지?”
“예.”
“옷 갈아입어. 지금 출발하면 아슬아슬하게 잡거나 살짝 늦거나 할 거 같다.”
곽대출이 후다닥 안으로 뛰었다.
“아랍에미리트에 연락해서 헬리콥터나 뭐 이런 거 도움받으면 어떻겠습니까?”
그리고는 옷을 갈아입는지, 가방을 확인하는지 모를 부산스러운 소리와 함께 질문을 던졌다.
“중간에 이스라엘이 있어! 우리가 아랍에미리트와 손잡은 걸 빤히 알 텐데 하늘을 날아가라고 허가해 주겠냐? 허가한다고 해도 시간이 너무 걸려서 괜히 그거 기다리는 동안 일 다 끝난다.”
자리에서 일어난 천중명 역시 진바지와 셔츠를 입었다. 어제 흙구덩이를 굴렀던 옷에서 벨트만 꺼내 허리에 맸는데 셔츠를 밖으로 꺼내 감췄다.
기다란 가방을 든 곽대출이 거실로 튀어나왔다.
“막심은?”
“호텔 앞에서 기다리라고 했습니다.”
“가만! 물은 차에 있지?”
천중명은 배낭을 가져왔다. 그리고는 냉장고를 열어 초콜릿 바를 비롯한 간식 종류와 샌드위치 따위를 아예 쓸듯이 가방에 담았다.
“가자!”
천중명과 곽대출은 그 길로 호텔을 나섰다.
“막심! 서둘러!”
호텔 주차장의 나무 아래 걸터앉아 있던 막심이 신의 부름을 받은 전사처럼 벌떡 일어나 차를 향해 움직였다.
“가서 타자.”
천중명은 아예 주차장으로 걸었다.
“이렇게 서두르는 게 회장님도 이상하다고 여겨서 그런 겁니까?”
바쁘게 걷는 와중에도 곽대출은 답을 원하는 것처럼 천중명에게 시선을 주었다.
부르릉! 부으응.
지프가 주차장을 빠져나와 천중명 앞에 멈췄다.
“가등섭을 오전에 몰았잖아. 야비한 놈이라던데 어차피 죽는 일밖에 안 남은 가등섭이 무슨 짓을 할지 누가 알겠냐.”
뒤로 들어간 천중명은 곽대출이 넘겨준 가방을 받아 운전석 뒤편에 내려놓았다.
“막심, 히어!”
그런 뒤에 막심에서 지도를 내놓고, 장소를 검지로 가리켰다.
“막심 노우. 노우 패스포트.”
“원 헌드레드 달러, 오케이? 나머지는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 그냥 가!”
천중명은 아예 우리말을 건네고는 검지로 얼굴을 가리켰다. 막심의 영어 수준이 어렵게 이야기한다고 알아들을 것 같지 않아서였다.
“오케이! 빅 보스! 패트롤 퍼스트!”
“오케이! 빨리! 서둘러!”
부아아아-앙!
지프가 급하게 달렸다.
“패트롤이 뭡니까? 순찰차를 부른다는 겁니까?”
“기름 넣는다고.”
“아!”
곽대출의 질문에 답을 한 천중명은 다시 휴대 전화기를 꺼내 버튼을 눌렀다.
- 유진교입니다, 회장님.
“이집트 호텔에서 출발해서 요르단을 향해 갑니다! 국도를 넘어서 이스라엘 국경을 지나야 하는데 내가 탄 차를 지경리온의 스태프 차량으로 처리해주세요! 시간이…, 대략 두 시간에서 세 시간 뒤에 국경을 지나게 될 겁니다.”
- 예, 회장님.
상황을 이해하기 어려웠는지 멈칫했던 유진교의 답이 있었다.
“지도를 찍어서 보낼 테니까 국도에 걸린 국경을 확인하세요, 차량 번호와 이집트 안내원 이름도 보내니까 그것도 처리 부탁합니다.”
- 처리하는 대로 연락드리겠습니다.
통화를 마친 천중명은 뭔가를 말하려는 곽대출을 손으로 막은 뒤에 다시 번호를 눌렀다.
- 예, 회장님.
“어디야?”
- 이집트 국경수비대에 있습니다.
다행히 새벽에 헤어졌던 마타르의 통역이 아직 이집트에 있었다.
“가등섭이 앙심을 품고 랠리에 참여한 우리 트럭 한 대를 노리는 거 같은데 내가 지금 요르단을 향해 가는 길이거든. 국경을 쉽게 넘을 방법이 있을까?”
- 회장님! 이스라엘을 거치는 거라면 이집트의 협조를 받는 것이 좋습니다. 방향을 정확하게 알고 계십니까?
“지도에 연필로 선을 그려놨어. 그 도로를 타고 간다고 생각하고, 나와 오전에 봤던 본부장, 이집트인 안내원, 이렇게 세 명이 전부야. 본사에서 우리를 랠리 스태프로 협조 요청할 테니까 그것도 참고하고.”
- 잠시만 기다리십시오.
지프가 요리조리 움직이며 차와 사람 사이를 섬뜩하게 빠져나가고 있었는데 지금은 다른 말을 하기 어려웠다.
- 여보세요? 회장님?
“말해.”
- 오전에 보았던 국경수비대가 앞에서 에스코트하겠답니다. 대신 미화 5천 달러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두 시간 안에 국경을 통과할 수 있게 달리면 2만 달러 준다고 말해. 달릴 수 있는 최고 속도로 달리라고.”
- 잠시만 기다리십시오.“
곽대출이 자꾸만 뒤를 돌아보며 상황을 살피는 동안, 전화기 건너편에서 환호성 비슷한 요란한 고함이 터져 나왔다.
- 회장님! 만 달러에 두 시간을 제시했습니다. 지금 출발할 텐데 저도 함께 가겠습니다.
통역이 있으면 훨씬 수월하기는 하겠다. 이런 일을 부탁하는 것이 미안하지만, 지금은 대원과 트럭의 안전이 가장 최우선이었다.
“지금 호텔에서 카이로 방향으로 달리고 있으니까 부탁한다.”
- 사진을 보내주십시오!
통역의 말 뒤에서 잔뜩 흥분한 소리와 소란이 터진 뒤에 통화가 끝났다.
“아까 무슨 말 하려고 그랬어?”
“마타르가 보내준 통역이나 국경수비대의 도움을 받으면 어떨까 하고 말씀드리려고 했습니다.”
곽대출을 향해 픽 웃은 천중명은 지도를 찍은 뒤에 유진교와 통역에게 문자를 통해 보냈다.
“별일 없을 겁니다.”
고개를 든 천중명을 향해 몸을 뒤로 돌린 곽대출이 다짐 같은 말을 건넸다.
“그게 좋을 거야.”
“예?”
“아니면 관련된 놈들 목을 모조리 따 버릴 거니까.”
히죽 웃는 곽대출을 향해 천중명은 모처럼 번들거리는 눈빛으로 픽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