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62
262. 저 새끼들 먼저 해결하고 (1)
저속한 표현으로 ‘피떡’이 된 조직원 여섯 놈을 군인들은 아예 짐처럼 트럭의 뒤에 던져 실었다.
수갑이 없는 모양이었다.
놈들의 팔을 뒤로 꺾어서 줄로 꽁꽁 묶었는데 얼핏 보기에는 시체를 묻으러 가는 광경과 다르지 않았다.
밤새 기다려 새벽에 움직이는 군인들이었다. 솔직히 저들은 굳이 이런 수고를 할 이유가 없었다.
다른 의미 없었다.
그저 아침 제대로 먹고, 하루쯤 쉴 용돈으로 수고했다는 의미와 감사한 마음을 전하고 싶었다.
천중명은 통역을 시켜 콧수염을 두툼하게 기른 지휘관을 불렀다. 그리고는 지갑을 열어 1백 달러짜리 지폐 20장을 건네주었다.
‘땡큐, 써!’와 ‘슈크란!’을 반복해 외친 콧수염의 지휘관은 통역을 통해 ‘신의 가호가 천중명의 주변에 영원히 함께하길 바란다.’는 거창한 축복을 늘어놓았는데 돈의 의미를 오해한 것이 분명했다.
훌쩍 트럭의 짐칸에 올라간 그가 독한 눈으로 고함을 지르자, 군인들이 달려들어서 잔인한 매질을 10분쯤 이어나갔다.
2천 달러를 주었기에 망정이지, 5천 달러나 1만 달러를 주었다면 정말 시체를 싣고 갈 뻔했다.
쿠르릉! 덜컹! 덜커덩!
바쁠 것 없는 길이었다.
팔과 어깨 근육이 끊긴 주척정과 문윤, 천중명이 팔을 부러트린 두 놈과 곽대출이 눈알을 찍었다는 두 놈이 없어진다 쳐도 증거는 트럭의 짐칸에 있는 놈들로 충분했다.
웃기는 일이었다.
지프와 트럭이 다가가자 텐트 앞에 옹기종기 모여 있던 놈들이 목을 길게 빼고 이쪽을 바라보는 모습이 말이다.
철컥! 철컥!
소총을 겨눈 이집트 군인이 달려간 데다, 팔과 눈을 제대로 못 쓰는 놈들이라 반항은 거의 없었다.
우르르!
그런데 일제히 달려간 군인들은,
퍽! 퍼벅! 콰작! 콰자작! 퍼벅!
혹시나 돈을 더 바라고 저러는가 싶을 정도로 갈라진 어깨에서 피를 줄줄 흘리는 두 놈과 반항조차 못 하는 졸개들에게 잔인한 매질을 퍼부었다.
“데려가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지?”
“청장님께서 이미 이집트 정부에 협조를 구해두셨습니다.”
통역과 대화를 마친 천중명에게 콧수염을 좌우로 문지른 지휘관이 칭찬받고 싶은 눈으로 다가왔다.
“현찰 있으면 줘라. 천 불까지만.”
“예, 회장님.”
돈을 받은 지휘관이 누런 이를 드러내며 또다시 신의 축복을 만 불어치 정도 사정없이 쏟아붓고는 트럭으로 움직였다.
퍽! 퍼억! 퍼억!
팁을 건네면 특별한 서비스를 받을 때도 있다만, 쓰러진 놈들의 가슴과 목을 군화로 짓밟는 친절은 천중명도 처음이었다.
통역이 몸서리를 치며 얼른 고개를 돌렸다.
“나는 우리 차가 오면 움직일 테니까 먼저 출발해. 10시쯤 호텔에 도착할 거라고 계산해서 연락하면 적당해.”
“필요하시면 위성 전화를 놓고 가겠습니다.”
“그럴 필요까지는 없어.”
“예, 회장님. 그럼 출발하겠습니다.”
이쪽을 힐끔거리며 발길질을 하던 지휘관과 군인들이 아쉬운 얼굴로 모자를 벗어 인사한 뒤에 통역과 함께 지프에 올랐다.
크르릉! 부으응! 부으으응!
흙먼지를 길게 피워올리며 지프와 트럭이 달려간 뒤에 곽대출은 텐트 옆으로 움직여 삽으로 땅을 파기 시작했다.
“새끼들! 여기 숨겨 놨는데 그걸 못 찾았네! 커피 먼저 드시고 아침 오케이?”
“내가 불 피울 테니까 준비해.”
“예, 회장님.”
곽대출이 물병과 소형 아이스박스를 꺼내는 동안, 천중명은 끄트머리가 남은 장작을 모아서 불을 잔뜩 살렸다.
주전자를 걸었고, 이어서 믹스 커피를 두 개씩 부은 잔에 뜨거운 물을 붓자 장작 타는 냄새 가득한 황야에 달달한 커피향이 뒤엉켰다. 그렇게 마시는 커피는 더할 수 없이 좋았다.
뿌옇게 밝아오던 하늘 저 끝에서 ‘그게 그렇게 맛있나?’란 투로 태양이 반쯤 머리를 내민 시간이었다.
**
인천에 도착한 유진교는 점심시간에 본사에 도착해서 바로 업무를 살폈다.
보고서는 이미 두바이와 오는 비행기 안에서 살폈다.
유진교는 가장 먼저 상무를 불렀다. 그런 뒤에 사건이 있을 때의 상황과 보고서에 적기 어려운 느낌들을 물었다.
“냉정하고 거칠게 처리하셨습니다.”
천상기를 떠올렸는지 상무의 표정이 좋지 않았다.
“지경제강 회장과 부회장에게 얼마나 욕을 하시는지 옆에 있기가 민망할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왜 해임이 아니라 직무정지만 내렸지? 그럴 만한 특별한 이유가 있었나?”
“그게 좀 이상하긴 했습니다. 분명 제게 칼춤을 추면서 목을 뎅겅뎅겅 치겠다는 막말을 하셨는데 실제로 내린 것은 직무정지였습니다.”
“다른 말은 없었고?”
“해임은 회장님의 권한이어서 이 정도만 하는 거라는 말을 하셨습니다. 만약 해임했는데 일 처리가 잘못된 거면 복직 문제로 회장님께 누를 끼치는 거라고.”
고개를 끄덕인 유진교는 이어서 추가로 삭제된 메일이 있는지를 다시 한 번 확인했다.
“벤처사업부가 갑자기 빠져나가면서 안신우 부장이 모든 일을 담당하게 한 제 불찰입니다. 부장직급 이상의 임명은 제가 함부로 할 수 없는 일이라서 시간이 걸렸습니다.”
“분명하게 더 삭제된 메일은 없지? 만약 이후에 더 나오면 나는 물론이고, 자네도 사직서를 제출하게 될 문제야.”
“전산실에 두 차례나 확인했던 사항입니다.”
“알았어. 나가 봐.”
상무가 나간 뒤에야 유진교는 넥타이를 느슨하게 만들고 소파에 등을 기댔다.
벌벌 떨면서도 굴뚝을 악착같이 올라가더니, 천상기는 뒤처리도 더할 수 없이 깔끔하게 처리했다. 혹시나 싶었던 유진교가 미안할 만큼 천중명을 배려했고, 거기에 천호득까지 나서서 신임회장의 얼굴을 확실하게 세워놓았다.
유진교는 이번 일이 벌어진 이후 처음으로 마음을 놓았다.
이제는 기획실장을 서둘러 임명하고, 이어서 안신우의 빈자리와 임원급 두 명 정도를 보강해야 할 때였다.
이번 사고에 대한 징계는 천중명이 돌아온 뒤에 의논하는 것이 옳다. 회장이 출장 중인 상황에서 스스로 징계를 결정하는 것도 우스운 일이었다.
가서 샤워라도 하고 올까?
유진교가 슬쩍 시간을 확인할 때였다.
우우웅. 우우웅. 우우웅.
그가 돌아왔다는 소식을 들었는지 최만호의 이름이 액정에 올라와 있었다.
“여보세요?”
- 잘 다녀오셨습니까? 리콜과 관련해서 보고드릴 내용이 있어 전화드렸습니다.
확실히 인정사정없는 최만호다운 전화였다.
**
양서평과 조양회는 솔직히 꿔다 놓은 보릿자루 신세였다.
랠리에서 가등섭의 음모를 막고, 최종 결과에서 한국과 중국이 아니라 지경과 거양의 대결이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달려왔다.
그래놓고 기껏 한다는 일이 출발을 확인하고, 종일 달려서 그날의 숙소에 처박혀 있는 일이니 그 심정이 오죽하겠나.
“이놈들이 어딜 갔지?”
아침을 일찍 먹은 양서평과 조양회는 지경리온자동차에서 제공한 승용차의 뒤에서 다음 베이스 기지를 향해 달리고 있었다.
“어제 일제히 빠져나간 것을 보면 분명 뭔가 있는데?”
양서평의 혼잣말 같은 질문에 조양회는 제대로 답을 하지 못했다. 아는 것이 없으니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양서평이 답답한 듯 커다란 눈을 창밖으로 굴리며 숨을 내쉬었을 때였다.
우우웅. 우우웅. 우우웅.
조양회의 휴대 전화기가 몸을 떨었다.
“천중명 회장님입니다.”
얼른 발신자를 알려준 조양회가 공손하게, 그러나 빠른 동작으로 전화를 받았다.
“조양회입니다, 회장님.”
한국말이라 양서평이 궁금한 표정으로 눈알을 부라리는 옆이었다.
- 가등섭이 보낸 조직원 열두 명이 이집트 국경수비대에 체포됐다.
“예?”
- 이름이 주척정? 문윤?
“가등섭 부총재의 날개라고 불리는 두 사람입니다, 회장님.”
가등섭이란 이름을 들은 양서평이 궁금함을 참기 어려운지 미간을 잔뜩 찌푸렸다.
- 나와 곽대출 본부장을 살해하려던 상황에서 체포되었는데 무기가 나왔고, 반항이 심했다는 국경수비대의 증언도 있었다. 이집트 당국과 아랍에미리트가 정식으로 중국에 항의하려고 준비 중이지.
“어떻게 그런 일이……?”
- 내가 아랍에미리트의 요청으로 이집트를 방문한 거라서 두 나라에서 동시에 항의할 텐데 그렇게 되면 중국 당국이 무척 곤란하겠지? 양 부총재가 그 문제를 중재해서 해결하면 체면이 서지 않을까?
말해 뭐하겠나.
체면을 중시하는 중국의 입장을 바짝 세워놓는 일인데!
“회장님……?”
감격한 조양회의 음성이 넘어간 뒤에 가벼운 천중명의 웃음이 대꾸처럼 건너왔다.
- 총재라는 양반과 의논하든, 당 간부와 의논하든 알아서 해결해. 대신 두 가지 정도는 조건으로 내세웠으면 싶은데?
“말씀하십시오.”
- 대송자동차의 중국 내 공장 가동과 판매망 재개.
“예, 회장님!”
- 그리고 가등섭의 송환 후 사형, 혹은 이쪽에서 적당하게 처리. 이 두 가지를 받아주면 싶다.
“의논해서 답을 드리겠습니다!”
- 고생해.
천중명의 음성을 끝으로 통화를 마쳤다.
얼른 내용을 털어놓으라는 양서평의 부리부리한 눈을 앞에 두고서도 조양회는 먼저 숨을 몰아쉬었다. 그런 뒤에 그는 양서평에게 조금 전에 들었던 내용을 빠르게 설명했다.
“그럼 이놈들이 어제 빠져나갔던 게?”
“회장님과 본부장을 노렸던 모양입니다.”
“하하하하! 하하하하! 후하하하하하!”
드라이버와 조수석의 직원이 돌아볼 정도로 양서평의 웃음은 통쾌하고 요란했다.
“회장님이 이렇게 가등섭을 잡아내시는군! 생각지도 못했어! 나는 짐작조차 못 했던 일이야! 후하하하!”
“총재님과 통화를 하시는 것이 어떠시겠습니까?”
“그쪽이 지금 몇 시지?”
“오후 1시쯤입니다.”
“점심이 아직 안 끝났을 테니 한 시간쯤 뒤에 전화하지! 어디 잠시 서서 커피든, 담배든, 숨을 돌리고 싶은데!”
양서평의 뜻을 받은 조양회가 조수석의 직원에게 영어로 잠시 쉬고 싶다는 요청을 전했다.
“이른 시간이라 30분가량 더 달려야 합니다. 그래도 되겠습니까?”
“그렇게 하십시오. 번거롭게 해서 미안합니다.”
이슬람 양식의 건물이 드문드문 박힌 도로의 중간에서 조양회는 조수석의 직원에게 공손하게 답을 건넸다.
세상에!
양서평과 눈을 마주쳤던 조양회는 벅찬 가슴을 누르기 위해 창밖으로 시선을 주었다.
기가 막힌다.
이 정도 사태를 막아내는 조건이라면 대송자동차의 공장과 판매망을 재가동하는 것은 문제가 없을 것 같다. 그리고 혹시 사형을 면한다고 해도 가등섭은 총재의 눈 밖에 날 것이 분명했다.
양서평의 세상이 온다는 뜻이었다. 거기에 조양회는 사업가로 변신한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쳤던 조양회의 팔뚝과 등에 소름이 쫙 끼쳤다.
양서평과 조양회는 천중명을 모신다.
이번 일 하나로 천중명은 중국의 밤을 거머쥔 양서평과 자동차 산업을 거머쥘 조양회를 수하로 둔 회장님이 될 수 있었다.
무섭다, 천중명은.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자부심 넘친다.
배신하지 않는다면, 그의 식탁에 함부로 젓가락을 올리지만 않는다면, 천중명은 자기 사람을 끝까지 지켜준다.
자꾸만 두근대는 가슴을 누르기 위해 조양회는 나직하고 길게 숨을 뱉어냈다. 낮은 이슬람 양식의 건물들과 초원이 빠르게 뒤로 밀려나고 있었다.
**
출발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강갑수는 앞을 노려보며 재미있다는 듯 웃었다.
거양자동차의 트럭 두 대가 아예 길을 막듯이 시간을 끌며 버티는 꼴을 보아서였다.
크르릉! 철컹! 크르르릉!
드라이버는 이런 장면에 익숙한 것처럼 틈을 노릴 뿐 별다른 반응이 없었다.
“아무래도 앞쪽과 거리를 벌리려는 것 같지?”
운전석과 조수석의 가운데 뒤편에 앉은 조호철이 상체를 숙이며 던진 질문이었다.
“속도가 시속 100킬로미터 수준입니다. 이렇게 자꾸 늦추는 꼴이 아무래도 도로에서 벗어났을 때 한 딱가리 하자는 거 같은데요?”
“개새끼들이 자존심 상하게!”
조호철이 욕을 뱉은 뒤에 둘이서 비슷한 표정으로 웃었다.
완벽하게 떠오른 태양이 주황색을 넘어 강렬한 빛으로 바뀌어서 파란 초원과 띄엄띄엄 지어진 농가, 그리고 이따금 보이는 이슬람 양식의 건물들을 비추고 있었다.
빠르게 지나가는 바로 옆의 풍경에서 시선을 돌린 강갑수는 멀리 펼쳐진 녹지를 보며 섬에서 보았던 바다를 떠올렸다.
도깨비 훈련에서 바다는 빼놓을 수 없는 과정이었다.
그 지긋지긋한 훈련을 거친 강갑수도 조개를 잡으며 기뻐하던 천상기의 표정을 볼 때만큼은 바다에서 노는 시간이 즐거웠었다.
‘다시 가자, 형. 다음번에는 정말 큰 문어 잡아줄게.’
멀리 향한 녹색의 초원을 향해 다짐을 건넸던 강갑수가 독한 시선을 앞으로 돌렸다.
저 새끼들 먼저 해결하고.
문어는 내가 잡을 테니까 이번엔 형이 라면 끓여.
오른발의 발목을 두어 번 끄덕여 칼의 무게를 확인한 강갑수가 픽 웃었다.
굴뚝을 오르며 고함지르던 천상기가 떠오른 탓이었다.
보고 싶다, 형.
앞에 있는 트럭을 향했는데도 강갑수의 얼굴에서 웃음이 지워지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