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60
260. 미끼가 좋잖아 (2)
해가 떨어진 이집트의 알부하라 마투루시 주변을 어둠과 서늘한 기운이 동시에 덮쳤다.
곽대출은 둥그렇게 돌려 깔아놓은 장작의 가운데에 불을 붙였다. 그리고는 불꽃이 힘차게 솟구쳤을 때 장작을 슬쩍 뒤로 빼냈다.
이 상태에서 불꽃이 약해질 때마다 조금씩 장작을 밀어 넣으면 오래도록 태우는데 무엇보다 멀리서 이곳을 찾기에 더없이 좋은 방법이었다.
포장해 온 양고기 케밥으로 저녁을 해결했고, 주전자에 물을 끓여 만든 믹스 커피를 손에 들었다. 게다가 모닥불에 피우는 담배 맛은 또 어떻고.
분위기는 기가 막혔다.
쏟아질 것처럼 넘쳐나는 별, 벌판의 끝에서 어슴푸레한 하늘과 맞닿은 지평선, 모닥불, 커피, 바람에 섞인 흙먼지만 아니라면 정말이지 더 바랄 것이 없는 풍경이었다.
“회장님은 한 번도 돈 욕심 난 적 없어?”
불빛을 받아 벌겋게 보이는 곽대출이 구덩이와 땅굴을 파느라 흙먼지를 잔뜩 뒤집어쓴 얼굴로 건넨 질문이었다.
“딱히 욕심낼 거 있겠냐? 저기 좀 봐라.”
모닥불의 맞은편에서 스테인리스 컵을 든 천중명은 하늘을 향해 고개를 들었다.
“저 빛나는 별 아래에서 고작 한다는 일이 더 갖겠다고 달려드는 놈들과 싸우는 거 아니냐? 내 몫을 뺏길 마음도 없지만, 내 것 아닌 걸 욕심낼 마음도 없다.”
천중명은 픽 웃으며 잔을 입에 가져갔다.
“왜 이렇게 몸이 바뀌었고 왜 여기까지 왔는지, 느닷없이 사라진 검은 기운이 정말 기계 때문인지, 제대로 알아낸 건 하나도 없다만, 적어도 우리 욕심을 채우라는 건 아니지 싶다. 우리가 남의 것을 뺏기 위해 여기 있는 거라면 얼마나 서글프겠냐?”
“그렇긴 하네.”
스테인리스 컵에 남은 커피를 단숨에 털어 넣은 곽대출이 “퉤!” 하며 바람에 실려 들어갔던 흙가루를 뱉어냈다.
“그나저나 손님이 안 옵니다.”
“간판불이 약한가?”
“그렇다면 담배를 하나 물어줘야지요.”
얇은 배낭을 등에 짊어진 곽대출이 사파리의 왼쪽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려던 순간이었다.
“왔다. 준비해.”
나직한 천중명의 지시가 있었다.
주척정과 문윤은 가등섭이 믿고 아끼는 행동대원이었다.
두 사람은 각각 다섯 명을 이끌었는데 그 두 개조를 조직원들은 ‘가등섭의 양 날개’라 불렀다.
주척정의 어릴 적 꿈은 쿵후 영화의 주인공이었다.
네 살 때부터 합숙 학교에 들어가 수련했고, 열다섯 살에는 중국 인민대회에서 2위에 입상할 정도로 열심히 노력했다. 그러나 가등섭을 만난 이후로 주척정은 영화배우의 꿈을 깨끗하게 버렸다.
고급스러운 옷과 차, 풍족한 삶, 무엇보다 상대의 목숨을 실제로 빼앗을 수 있는 조직의 생리에 매료된 탓이었다.
가등섭의 지시에 주저함 없이 따르는 충성심은 말할 것 없고, 그에 걸맞은 실력과 잔인함은 곧바로 나이 어린 그를 조직의 위쪽으로 끌어올렸다.
주척정이 재능에 노력을 더해 만들어진 행동대장이라면 문윤은 그냥 타고난 조직원이었다.
충칭에서 거들먹거리는 지역 조직원 셋의 목을 가른 그를 가등섭이 구해주었고, 이후로 조직에 몸담았다.
문윤은 충칭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난충에서 있었던 반대파 조직원과의 싸움에서 홀로 열세 명의 목을 가르며 단숨에 가등섭의 신임을 얻었다. 그중 두 명의 가슴을 갈라 심장을 움켜쥔 일화가 아직도 강북의 조직원들 사이에 떠돌 정도로 문윤 역시 잔인함과 타고난 재능에서 누구에게도 밀리지 않는 인물이었다.
무술을 익힌 주척정은 팔뚝 길이의 도를 거꾸로 들어 팔 뒤에 감추었고, 타고난 재능의 문윤은 도끼날을 두들겨 펴 놓은 형태의 칼을 들었다. 그 뒤를 따르는 조직원들은 각자 무쇠로 만든 작두날, 중국의 주방에서 사용하는 판도라는 사각형의 칼을 들었는데, 확실히 일반적인 것들보다 크기가 컸다.
인적이 드문 벌판이었다.
허리 뒤에 권총까지 하나 걸고 있어서 이번 일에 실패할 이유는 전혀 없었다.
“배짱 하나는 인정할 만 하군.”
모닥불을 확인한 두 사람은 라이트를 끄고 달리던 지프에서 내려 조직원들과 함께 걸었다.
지금 걸어가는 열두 명의 남자들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가등섭의 명령이었다. 그러니 저 앞에 있는 두 명의 목을 잘라 땅에 묻는 일에 죄책감 따위는 없었다.
모닥불과 그 앞에 앉은 두 명의 모습이 보이자 주척정이 만족한 듯 웃었다.
랠리에 돼먹지 않는 한국의 퇴역 군인을 보냈다는 말로 웃기더니, 그룹을 경영하는 인물이 대놓고 사람을 불러들이는 꼴이 그의 눈에는 우습기 그지없었다.
모습을 감출 것도 없이 주척정과 문윤은 모닥불을 향해 직선으로 걸었다.
건방진 행동에 대한 대가는 죽음이었다.
손가락과 손목, 발목을 순서대로 자른 다음, 고통을 이기지 못해 비명을 지를 때 가슴을 벌려 심장을 두 조각 내준다.
힐끔 문윤을 돌아본 주척정이 조금 더 걸음을 빨리 움직였다.
곽대출은 이제야 다가오는 놈들을 보았다.
도대체 천중명은 어떻게 저 멀리에 있는 인간들의 기척을 알아내는 걸까?
잠시 고민했던 곽대출은 곧바로 생각을 털어냈다.
훈련에서, 그리고 지리산에서, 지겹도록 궁금했던 일이 지금 풀릴 리가 없다는 생각에서였다.
이어서 곽대출은 묘한 미소를 그려냈다.
모닥불 맞은편에 앉은 천중명의 눈빛 때문이었다.
저런 눈빛을 할 때 천중명은 진 적이 없었다.
조교들을 바다에 거꾸로 매달아 놓고도 편히 자던 남자, 새벽에 독이 올라 핏발이 곤두선 조교들의 눈을 보며 피식 웃던 남자, 그리고 절벽에서 뛰어내릴 강단을 가진 남자가 천중명이었다.
회장이 되면서, 인간적인 면모를 보이면서 그 감각과 독기가 죽은 줄 알았었다. 그런데 오늘 모닥불 앞에서 천중명은 꼭꼭 눌러두었던 예전의 눈빛을 하고 있었다.
모닥불을 무심하게 바라보는 천중명이 언제 신호를 보낼지 모른다. 그러니 곽대출은 신경을 곤두세우고 바싹 긴장해 있는 것이 옳았다.
타닥. 탁.
모닥불을 피워낸 장작이 존재감을 드러낸 직후였다.
시선을 돌린 천중명이 오른손 엄지와 검지만 편 주먹을 좌우로 돌렸다.
‘시작해.’
눈빛을 확인한 곽대출은 삽을 세워 놓은 옆으로 몸을 감췄다.
땅에 꽂아놓은 삽에 갈아입느라 벗어놓은 옷과 모자를 씌워놓고서 곽대출이 모습을 감춘 뒤였다.
천중명은 그 자리에 그대로 있었다.
작아진 모닥불의 불꽃이 바람에 이리저리 휘날릴 때 천중명은 힐끔 시선을 돌려 다가오는 조직원들을 보았다.
세상이 달라졌다.
동영상 전문사이트에 ‘대한민국 특전사 특공무술 교육 영상’이라는 제목으로 특전사의 교육 과정이 나오는 세상이다.
그런 훈련을 근육과 손이 완벽하게 기억할 때까지 지겹도록 반복한 뒤에 도깨비는 다시 북한군이 자랑하는 ‘격술’을 배운다.
사람들이 흔히 생각하는 동작의 정반대로 움직여, 관절의 뒷부분을 꺾고, 대동맥, 혹은 중요한 근육이 지나가는 자리를 빠르게 베는 훈련을 마치면 그때부터 매복과 추적을 가르쳤다.
세상이란 게 원래 공평하지 않은 거라 가진 사람도 있고, 가졌다가 망가진 사람, 원래부터 없이 태어난 사람이 있는 것이 새삼스러울 리는 없었다.
그렇지만 말이지, 있다고 해서, 좀 더 가졌다고 해서 다른 사람을 무시하거나 짓밟을 권리가 있는 건 아닌데 이상하게 그걸 착각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이제 너희는 도깨비를 만난다.
정신을 차렸을 때는 이미 돌이키지 못하겠지만 말이다.
바람은 여전히 장작의 끝에 매달린 불꽃을 흔들며 지나갔고, 쏟아지는 별빛이 가득한 황야에서 5분쯤이 흘렀다.
10미터쯤 떨어진 곳에서 걸음을 멈춘 주척정과 문윤이 고개를 비틀었다.
“뭐야? 가서 확인해!”
주척정의 눈짓을 받은 조직원 셋이 달려가 모자를 잡아챘다가 황당한 표정으로 고개를 돌렸다.
모자 아래에 있던 것은 삽의 손잡이였다.
두리번거리며 주변을 살폈는데 사람의 흔적은 보이지 않았다.
뭐지? 어떻게 된 거야?
여기까지 오도록 내내 기다렸던 인간들이 갑자기 사라졌다고? 몸을 숨길 자신이 있어서 그런 건가?
텐트의 안과 모닥불을 살핀 주척정이 옷을 덮어놓은 삽을 세차게 걷어찼을 때였다.
“저기!”
조직원이 손을 들어 가리킨 곳에 사람의 모습이 서 있었다. 얼핏 보기에는 군복 차림에 등에 작은 배낭을 멨다.
이거 봐라? 사람을 가지고 노네?
주척정이 기가 막힌 웃음을 털어낼 때였다.
“저쪽에도 있습니다!”
문윤 쪽에서 고함이 들렸고, 반대편에 또다시 사람의 모습이 어슴푸레한 하늘을 배경으로 서 있었다.
“내가 이쪽을 맡은 테니 저놈을 상대해!”
주척정의 지시에 고개를 끄덕인 문윤이 다섯 명의 조직원과 함께 몸을 돌렸다. 함께 왔던 열두 명이 여섯 명씩 갈라서서 반대 방향으로 움직인 꼴이었다.
사람 키만큼 올록볼록 올라온 모래 둔덕과 황야에 핀 잡목이 전부인 벌판에서 주척정은 걸음을 좀 더 빨리 움직였다.
미칠 일이었다.
대략 30미터쯤 떨어진 천중명과의 거리가 전혀 좁혀지지 않는 것이 말이다. 슬쩍 돌아본 뒤편의 문윤도 사정은 비슷한 눈치였다.
“안 되겠다! 뛰어가서 잡아!”
주척정은 옆에 있는 두 놈에게 나직하게 지시를 던졌다.
이 둘이 달려가 치고받으며 시간만 벌어주면 된다.
아니어도 뛰다 지칠 때가 올 테니 그때 해결할 거고, 그도 저도 안 되면 허리춤에 꽂아둔 총을 갈겨서라도 죽여버리면 끝나는 일이었다.
황야를 벗어나면서 바닥에 모래가 밟혔는데 그건 저 앞의 회장이란 인간도 비슷할 테니 이쪽만 손해 보는 일은 아니었다.
두 놈이 칼을 들고 앞으로 달리는 것을 보며 주척정은 걸음을 좀 더 빨리했다.
어둠과 어슴푸레한 하늘이 전부인 세상에서 회장이란 인간이 앞의 모래 둔덕을 내려가는 모습이 보였고, 그 뒤를 먼저 달려간 조직원 둘이 악착같이 따라붙고 있었다.
둔덕을 넘어선 천중명의 모습이 허리와 배, 가슴, 목의 순서로 아래로 사라질 때, 두 명의 조직원은 그 둔덕을 기듯이 올랐다.
곧바로 조직원 둘이 둔덕의 위에서 아래를 향해 높다랗게 뛰어내렸다.
“좋아!”
탄성을 지른 주척정은 나머지 세 명과 함께 힘껏 달렸다.
터덕! 턱!
“끄으-!”
콰작! 콰드득!
“끄어억!”
그 직후에 조직원의 것이 분명한 비명이 터져 나왔다.
발이 푹푹 빠지는 모래언덕을 급하게 올라간 주척정이 서둘러 아래를 살폈다.
“이게 도대체……?”
그는 눈 앞에 펼쳐진 모습을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앞서 몸을 날렸던 조직원 둘이 모래에 처박혀 이리저리 몸을 비틀고, 천중명은 여전히 비슷한 거리에서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쏴! 그냥 쏴버려!”
“예!”
권총을 쏘기에 30미터는 밤에 좀 먼 거리다. 그러나 분을 참지 못한 주척정의 지시에 조직원들이 뒤춤에 꽂아두었던 권총을 꺼내 드는 순간이었다.
어? 저게……?
천중명이 자세를 낮추자 아무것도 보이는 것이 없었다.
타아아-앙! 타앙! 타아앙! 타아앙! 타아앙!
아무것도 없는 곳에 총질하는 꼴이었다.
“그만해!”
주척정의 고함에 총소리가 멈춘 뒤였다.
장난이라도 치는 것처럼 천중명이 같은 자리에서 나타나 고개를 기울인 채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너희가 총을 안 쏘면, 나도 숨을 마음 없다.
어디 한 번 잡아봐.
완벽한 몸짓이었다.
“재미있군! 아주 재미있어!”
주척정은 오른쪽에 있는 조직원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어차피 밤새 걸을 필요 없이 내가 간다고 전해! 둘이 붙자고!”
“우리 형님이 가신다! 혼자서! 상대하겠나!”
조직원이 한국말로 떠든 다음이었다.
천중명은 팔을 높게 들어서 오라는 투로 짧게 흔들었다.
“안 되면 놈이 비틀대는 순간을 노려서 총을 쏴!”
“예!”
“저놈의 목을 못 자르면 내가 주척정이 아니다!”
주척정은 이를 악물고 앞으로 걸었다.
“끄아-아! 끄악-!”
그리고 그 직후에 문윤이 달려갔던 반대편에서 처절한 두 개의 비명이 들렸는데 주척정은 눈길 한 번 주지 않았다.
문윤은 쓰러져 있는 두 놈을 보며 이를 뿌드득 갈았다.
곽대출이란 인간이 앞서 달린 조직원들의 눈을 찔러서 피범벅을 만들어 놓았다. 겨우 손을 내리고 고개를 든 조직원 둘은 숫제 피눈물을 흘리는 몰골이었다.
“죽인다! 심장을 터트려서 죽일 거라고!”
고함을 버럭 지른 문윤이 일어섰을 때 곽대출은 여전히 비슷한 거리에 떨어져서 이쪽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총을 쏴봐야 이 거리에서는 무리다.
사격을 잘하는 놈도 없고.
주척정이 달려간 곳에서 터져 나온 총소리로 봐서 이 밤에 하는 총질은 오히려 사람을 불러들이는 미련한 짓이었다.
“너희는 여기 있어!”
문윤이 거친 걸음으로 혼자 다가갔는데 곽대출은 의미를 알았다는 것처럼 제자리에 서서 움직이지 않았다.
죽인다! 죽여버릴 테다!
가까이 다가서서 본 곽대출은 군복 차림이었다.
상의, 바지, 신발, 그리고 허리에 잘록하게 맨 허리띠 옆으로 권총도 분명하게 보였다.
10미터쯤 거리가 남았을 때 문윤은 들고 있던 칼날을 앞으로 돌렸다. 난충에서의 그 유명한 싸움을 시작으로 지금껏 그와 함께했던 칼이었다.
거리가 5미터쯤 남았을 때였다.
번득!
마주한 곽대출의 눈빛이 예사롭지 않았다.
기가 죽으면 끝이다.
“죽인다-아!”
고함을 버럭 지른 문윤은 이를 드러내며 인상을 찌푸렸다.
와락!
곧바로 문윤이 곽대출을 향해 달려들었고,
사악!
상체를 숙인 곽대출이 대검을 거꾸로 든 오른손과 왼손을 얼굴 앞으로 내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