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로드 오브 머니-256화 (256/315)

# 256

256. 진짜 나한테 왜 이러는데? (1)

문자를 통해 내용을 알게 된 천중명도 지경제강 굴뚝에 올라간 천상기의 모습을 인터넷 중계를 이용해 보았다.

‘힘들겠지만, 조금 더 서둘러서 성장해. 더 독하게 자신을 이기고.’

바닥에 내려선 천상기의 모습을 카메라가 쭉 당겨 잡았다.

화면 가득 그의 얼굴을 담았는데 완전히 지친 상태에서 반항기 가득한 눈빛을 강렬하게 빛내고 있었다. 천상기는 분명 사람이 바뀌었다. 그 반항기가 밉기는커녕 매력적으로 느껴지는 것을 보며 짐작할 수 있었다.

카이로 공항으로 향하는 마타르의 자가용 비행기 안에서 천중명은 휴대 전화기를 들었다. 그런 뒤에 천상기의 번호를 찾아 통화버튼을 눌렀다. 그는 신호음이 여러 번 울린 뒤에야 전화를 받았다.

- 여보세요?

억울하고 분한 느낌이었다.

“영상 봤어. 고생했어.”

- 진짜 다시는 이런 거 시키지 마라, 정말!

“동생 회장이 시켰다는 말을 뭐 그렇게 크게 떠들어?”

- 그거 따지려고 전화했어? 고소공포증 있는 사람을 그 높은 곳에 올려놓고?

아직 억울함이 풀리지 않은 음성이었는데 그 투덜거림에도 거짓말처럼 적대감은 느껴지지 않았다.

“부탁이 하나 더 있어.”

- 싫어! 안 해! 못해! 절대 안 돼!

“듣지도 않았잖아?”

- 전화가 왜 이러지? 어? 여보세요? 엽세요?

“시끄럽고. 내일 지경제강 사건 확인해서 문제 있는 임원과 간부들을 알아서 처리해.”

장난처럼 전화가 안 들린다고 버티던 천상기의 음성이 뚝 끊겼다.

“철저하게 조사해. 그런 뒤에 관련자들을 냉정하게 처리하고. 회사 규정이 궁금하면 법무팀이나 그룹발전본부에 연락하면 돼. 틀림없이 발전본부에 지경제강과 내통한 직원이 있어. 그 직원도 찾아내.”

- 그걸 왜 내가 해야 하는 건데?

“유진교 본부장까지 여기에 있잖아. 기획실장은 아직 임명하기 전이고. 지경제강의 회장단과 임원진들을 상대해서 강단 있게 버틸 사람이 누가 있어?”

천중명의 말이 끝난 직후였다.

그가 있는 곳에 누군가 들어왔는지 “조금만 더 있다가 나갈게.” 하는 천상기의 음성이 들렸다.

- 동생회장님. 진짜 나한테 왜 이러는데?

“회장단과 임원 전체를 해임할 수 있는 일을 누굴 시켜? 대송자동차그룹을 맡은 최만호 회장이 하는 것은 격식에 안 맞고, 그렇다고 어설픈 그룹 임원이 가면 반발할 거 알잖아?”

- 돌아와서 직접 해. 그건 동생회장 전문이잖아.

천중명은 마타르의 자가용 비행기의 소파에서 탁자를 향해 몸을 기울였다.

“오늘 그 소동이 있었는데 후속 조치가 없으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몰라서 그래?”

- 몰라! 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

“문제가 된 사건의 증거를 감추기 위해 무슨 짓이든 하겠지. 오늘 굴뚝에 올라갔던 보람 전부 사라지는 거고, 지켜보며 감동했던 지경그룹 직원들은 결국 이렇게 늘어지는구나. 쇼했구나, 하며 실망하겠지.”

- 이렇게 나한테 힘을 실어주다가 내가 또 다른 마음먹으면 그땐 어떻게 하려고? 나 이제 섬에 안 가! 가고 싶지도 않고! 그리고…….

“형.”

천중명은 천상기의 말을 잘랐다.

“직원이 그 무엇보다 앞에 있는 그룹을 만들 거야. 형이 좋아하는 그 대원이 지금 벤처사업부 직원으로 있어. 그 가족을 위하는 일이라고 생각하고 한번 도와주라.”

- 에이, 씨! 또 사람 마음 약해지게…….

“도와줄 거지?”

- 갑수가 진짜 벤처사업부 직원이야? 직급이 뭔데?

“일반 사원.”

- 지금 랠리에 합류해 있지?

대화가 느닷없이 엉뚱한 방향으로 흐르고 있었다.

“랠리 끝나면 바로 돌아갈 거야. 그러니까 이번 일 멋지게 마무리해. 만약 지경제강의 회장을 해임하게 되면 제강을 우선 맡아서 관리하고.”

- 안 오고 아예 거기서 살 거야? 제수씨가 싫어졌어?

천상기의 뻔뻔한 질문을 천중명은 가벼운 웃음으로 받았다.

“아버지께서 걱정하실 테니까 통화 끝나는 대로 전화부터 드려. 내일부터 제강 관리하고. 그룹 총수 자리도 노렸던 사람이 제강 하나 관리 못 하면 안 되잖아.”

- 안 한다니까! 그룹 회장 자리에 욕심도 없고!

“제강 잘 처리하면 갑수인가 하는 직원 대리로 승진시켜 줄게.”

짧은 침묵이 흐른 뒤였다.

- 할게.

터무니없을 정도로 순순한 답이 건너왔다. 하여간 변화무쌍한 건 박승양과 우열을 가리기 어려운 수준이었다.

“고생해.”

- 약속 지켜.

“알았어.”

통화를 마친 천중명은 픽 웃었다.

이제 30분 후에 곽대출을 만난다.

중국 쪽의 인원이 굳이 호텔이나 카이로 국제공항에서 린치를 가할 이유가 없으니 이렇게 만나는 것으로 천중명이 도착했다는 것을 알려주는 편이 좋았다.

가등섭, 지금은 잠이 달지?

그 잠, 아예 쭉 자게 해줄게.

그러게 그냥 놀던 바닥에서 왕 노릇이나 하지, 왜 남의 식탁에 허락 없이 젓가락을 얹어?

천중명은 픽 웃으며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자가용 비행기 날개 끝에서 붉은빛이 반짝였다.

**

유진교 역시 문자를 받았고, 호텔의 객실에서 천상기의 활약상을 보았다.

편안한 복장으로 테이블에 앉아 있던 참이었다.

[내일부터 지경제강의 조사와 관련자들을 해임 및 처벌할 권한을 천상기 지경저축은행 회장에게 일임하겠습니다. 발전본부와 법무팀에 내용을 전달하고, 권한을 위임하는 데 문제없게 처리해 주세요.]

방송이 끝난 늦은 시간에 천중명의 문자도 받았다.

[알겠습니다, 회장님. 바로 지시하겠습니다.]

답을 보낸 유진교는 문자를 다시 읽으며 고개를 갸웃했다.

혹시 이집트에서 생각하기조차 싫은 문제가 생기는 건가?

마치 천상기를 후계자로 생각했던 것처럼 신임회장은 지경제강의 사태를 그렇게 이용하고 있었다.

천상기를 굴뚝에 올라가게 해서 스포트라이트를 받게 했고, 다음으로 모두의 관심이 쏠릴 사건의 해결을 맡겼다.

그것만도 고개가 갸웃해질 판에 지경제강의 임원을 해임하는 권한을 위임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그것이 지경그룹 회장의 권한을 양도하는 의미라는 것을 모를 리 없는데도 말이다.

“후-.”

그룹은 상황실을 운영한다.

전 세계에서 몰려드는 보고와 지금처럼 야간에 벌어지는 우발적인 사건과 사고에 대응하기 위해서였다.

한숨을 내쉰 유진교는 어둠이 깔린 두바이를 품은 창가로 걸었다. 객실의 창이 셔츠와 편안한 바지 차림의 유진교를 거울처럼 선명하게 보여주었다.

무슨 생각일까?

천상기라는 인물을 모르지 않을 텐데?

의문이 끝없이 떠올랐으나 유진교는 휴대 전화기를 들어 버튼을 눌렀다.

“나, 그룹발전본부장인데.”

그런 뒤에 그는 상황실에 천중명의 지시를 분명하게 전했다.

“날이 밝는 대로 처리하고 보고해.”

통화는 짧게 끝났다.

천중명을 믿는다. 믿을 수밖에 없었다.

신상훈이 랠리 참가를 신청할 때만 해도 유진교는 일이 이렇게 커질 줄 짐작조차 못 했다. 그런데 신임회장은 조양회를 이용해 거양자동차를 끌어들이더니 아랍에미리트를 한편으로 만들었다. 생각이 거기까지 달려간 유진교가 거울 속에 담긴 자신의 얼굴을 보며 웃었다.

신임회장은 이번에도 유진교는 짐작도 못 하는 일을 진행하고 있을 게 분명했다. 그리고 그 계획의 끝에서 지경그룹은 분명 또 한 단계 성장할 거라 믿는다.

“참 도깨비 같은 회장님을 모셨어.”

혼잣말을 뱉은 유진교가 테이블로 몸을 돌렸다.

뒤처리를 꼼꼼하게 하는 것이 그의 역할이자 임무였다.

**

카이로 공항에 도착한 천중명에게 공항직원이 다가왔다.

마타르의 힘은 대단했다.

“여권을 주십시오.”

뚝딱이는 영어로 말을 건넨 남자는 알아서 입국도장을 받아오고는 검색 하나 없이 천중명을 입국장으로 안내했다. 밀수범이 봤다면 목을 걸고 매달릴 입국절차였다.

늦은 시간이었다.

불이 반쯤 꺼진 공항의 입국장에서 곽대출이 기대에 찬 표정으로 서 있었다.

“오셨습니까?”

깍듯하게 인사한 곽대출을 향해 천중명이 픽 웃었다.

이집트의 카이로에서 정장 차림으로 이렇게 마주할 줄은 진심으로 상상하지 못했던 일이었다.

“별일 없었습니다.”

천중명을 바깥으로 안내하며 곽대출이 씨익 웃었다.

좋은 모양이었다.

일이 어떻든, 누가 노리든, 장소가 어디든 간에 천중명과 이렇게 함께 있는 것이 곽대출도 좋은 것이 분명했다.

“나야 그렇지만, 회장님이 굳이 나서실 필요 있겠습니까?”

공항의 자동문을 나서며 곽대출이 건넨 질문이었다.

“그럼 너 혼자 사막에서 고꾸라졌다는 보고를 받으라고?”

“누가 나를 그렇게 해?”

불쑥 거친 대꾸를 쏟아냈던 곽대출이 주변을 빠르게 살폈다.

“회장님아. 나 또 흥분돼.”

“미친놈.”

그런 뒤에 곽대출이 뱉어낸 말을 천중명이 웃으며 받았다.

공항의 바깥 도로에 S500과 우리 직원 두 명이 기다리고 있었다.

“안녕하십니까, 회장님?”

“늦은 시간에 미안해.”

“모시겠습니다.”

천중명이 뒷좌석에 오르는 동안 뒤로 빙 돌아간 곽대출이 운전석 뒷자리로 움직였다.

“피곤하실 텐데 잠시 눈을 붙이십시오.”

“여기에서 얼마나 걸리지?”

“한 시간 조금 넘게 가야 합니다.”

밤인데도 그 정도라면 꽤 먼 거리인 모양이었다.

계속된 일정과 비행에 지친 천중명은 고개를 끄덕여준 뒤에 뒷좌석에 몸을 기댔다. 놀이기구를 탄 것처럼 빙빙 도는 느낌과 함께 잠이 담뿍 달려들었다.

**

아침이 밝았다.

간단하게 식사를 마친 대원들이 밖으로 나섰을 때, 트럭 주변은 몰려나온 스태프들로 정신이 없었다.

연신 점검기록표를 받아서 확인하는 신상훈의 곁으로 움직인 추일원은 드라이버인 아론도, 파크 피터슨과 아침 인사를 주고받았다.

“컨디션은 괜찮습니까?”

기록표를 꽂아 넣은 판을 옆에 낀 신상훈은 이제야 여유가 생긴 모양이었다.

“염려하실 것 없습니다.”

눈을 보면 안다. 신상훈이 이 랠리에 얼마나 집중하는지, 우승을 얼마나 간절하게 바라는지를 말이다. 그리고 신상훈도 분명하게 느꼈으리라 확신한다. 추일원이 어떤 각오로 트럭에 오르는지를.

고개를 끄덕여 짧은 인사를 마무리한 추일원은 조수석으로 걸음을 옮겼다. 발목에 매달린 칼의 감촉을 확인한 그는 손잡이를 잡은 뒤에 발판을 밟으며 트럭에 올랐다.

오늘 하루 잘 부탁한다.

최선을 다해 지킬 테니 최고의 성능을 발휘해다오.

문을 닫기 전에 추일원은 조수석을 가볍게 두들겼다.

그의 감정이 전달되길 바라는 심정에서였다.

운전석에 앉은 아론도와 함께 X자의 안전벨트를 채운 다음이었다.

부르릉!

기분 좋은 엔진음과 함께 가벼운 진동이 두 사람에게 달려들었다.

크르릉! 철컹! 크르릉!

출발선으로 향하는 동안, 바깥의 스태프들이 아론도와 추일원을 향해 엄지를 세워주었다.

끼이익.

출발선에 트럭이 섰을 때, 추일원은 숨을 커다랗게 들이마셨다.

아론도가 대회관계자를 향해 고개를 끄덕인 직후였다.

펄럭! 펄럭!

앞쪽에 있던 관계자가 깃발을 커다랗게 좌우로 휘둘렀고,

크아아앙! 철컹! 크아아아아-앙!

고개가 젖혀질 정도로 거칠게 아론도가 튀어나갔다.

크아앙! 철컹! 크앙! 철컹! 크아아앙!

달려라, 신화야!

무슨 일이 있어도 너를 지켜줄 테니 우승을 향해 후회없이 달려!

추일원은 조수석의 손잡이를 움켜쥔 채 앞을 노려보았다.

**

한국의 아침은 지경제강의 보도로 시작됐다.

이해하기 어려운 고함을 지르며 굴뚝을 올라간 천상기가 오히려 구출되는 모양새로 내려오는 장면은 처절하면서도 묘하게 우스꽝스러웠다.

그런 장면에서 분명하게 느껴지는 감정도 있었다. 고소공포증을 호소하면서도 직원을 위해 굴뚝을 꾸역꾸역 올라가는 천상기가 전해준 진심이었다.

[지경그룹은 현재 해외 출장으로 자리를 비운 천중명 회장을 대신해 천상기 지경저축은행 회장이 직접 이번 일을 조사할 것이라고 공식 발표했습니다.]

[아랍에미리트의 공사가 어제 바로 재개되었는데요. 그렇다면 천중명 회장이 곧바로 돌아올 텐데 굳이 이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을까요?]

[지경그룹은 하루라도 속히 사태를 해결하라는 천중명 회장의 지시가 있었다고 발표했습니다. 그러나 속내가 어떻든, 이번 조치는 앞으로 천상기 회장을 중용하겠다는 상징적인 의미로 보는 것이 정확할 것 같습니다.]

앵커와 기자가 질문과 답을 나누는 동안, 화면에는 굴뚝에서 내려와 반항기 가득한 눈으로 카메라를 노려보는 천상기의 얼굴이 배경화면처럼 커다랗게 떠올라 있었다.

[천상기 회장의 평판은 어떻습니까?]

[고 천봉서 회장이 그룹을 장악했을 때만 해도 천상기 회장은 완벽한 2인자의 역할이었습니다.]

보도 화면에 과거 천봉서의 뒤에서 걷고 있던 천상기의 모습이 나왔다.

[흔히 말하는 1차 왕자의 난에서 살아남았던 천상기 회장은 강승애 이사장과 함께했던 2차 왕자의 난 이후로 완벽하게 밀려났으며, 한동안 모습을 감췄다가 복귀와 동시에 지경제강의 일을 맡았습니다.]

[그렇다면 천중명 회장과의 관계가 좋아졌다는 의미로 봐도 무방하겠군요.]

[그 점은 지켜보며 판단해야 할 것으로 보입니다.]

[지경그룹의 소식은 관련 발표가 나오는 대로 추가로 보도해 드리겠습니다. 다음은 환율의 변화가 심상치 않다는 소식입니다.]

지경그룹에 관한 보도는 우선 거기까지였다.

화면에 나온 앵커는 다른 사건을 소개하며 보도방송을 이어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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