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로드 오브 머니-246화 (246/315)

# 246

246. 승리를 가져와! (3)

이틀이 훌쩍 지났다.

그사이 비밀유지계약을 포함하지 않은 거양자동차와 지경그룹의 계약이 있었고, 천상기를 저축은행의 회장으로 임명했으며, 방송은 계속해서 랠리에 관해 떠들고 있었다.

사흘째, 출근길에 천중명은 집에서 5분 거리인 벤처사업부로 향했다. 오전 7시 50분이었다. 아직 직원들이 나오지 않은 사무실에서 서류를 함께 보던 곽대출과 주인영이 얼른 자리에서 일어섰다.

“오셨습니까?”

“본부장하고 차 한잔 마시려고. 시간 돼?”

“위로 가시겠습니까?”

픽 웃어준 천중명이 옥상을 향해 걸었고, 곽대출이 얼른 뒤를 따랐다. 정장에 깔끔한 셔츠와 세련된 넥타이, 고급 벨트와 구두, 이제는 이런 것들이 없는 삶을 상상하기 어렵다.

“믹스 커피로 준비하겠습니다.”

“옥상 문을 닫자.”

“예, 회장님.”

문을 시원하게 닫은 곽대출이 커피포트의 스위치를 누른 뒤에 휴대 전화기를 들어 번호를 눌렀다.

“여보세요? 난데 옥상에 당분간 직원들 올라오는 일이 없도록 부탁해. 그래.”

통화를 마친 곽대출이 짓궂은 표정으로 종이컵 두 개를 들고 벤치로 다가왔다.

“어쩐 일이셔? 얼굴이 밝아지셨습니다.”

“일요일에 놀이공원에 다녀왔거든. 놀이기구도 타고 호랑이도 보고, 좋더라.”

“놀이기구? 거기에서 회장님이 재미있을 게 있으셔?”

“아무렴 훈련에 비하겠냐? 그냥 선영 씨 들으라고 소리 지른 건데 그게 뜻밖에도 스트레스가 확 풀리더라고.”

종이컵에 담긴 커피를 마시며 나눈 이야기였다.

“무슨 서류를 그렇게 봤어?”

“박승양 회장이 넘겨준 회사들과 벤처사업부로 들어온 개발품 자료였습니다. 계열사에 기술 평가를 협조할 곳이 있어서 그거 의논했습니다.”

천중명은 커피를 삼키며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오늘 밤 비행기지? 준비는?”

“다 끝났습니다.”

그런 뒤에 건넨 질문에 곽대출이 단단하게 답했다.

“내가 무슨 말 하려고 온 건지 짐작하지?”

“에이, 너무하신다! 훈련받던 시절에야 회장님이 징그럽게 뛰어나서 그런 거지, 나도 어디 가면 꿀리는 인간이 아니라니까!”

“방심하지 마라. 일이 있을 걸 대비해서 안 움직이는 거니까 그렇게 알고.”

“일?”

“그런 게 있어. 안 생기면 좋지만, 피할 수 없는 일이기도 하니까.”

“알았습니다.”

천중명의 시선을 받은 곽대출이 농담을 걷어낸 얼굴로 답했다.

“TV에서 중계하는 방식을 찾아봤거든. 대개 헬리콥터로 위에서 촬영하는 게 거의 전부더라고. 베이스에서 장난질도 많이 치나 보더라.”

“준비하고 있습니다.”

“대원들하고 연락은?”

“어제도 통화했습니다. 스타트 지점에 도착했다는 보고였습니다. 그곳에서 하루 쉬면서 점검하면 출발이랍니다. 무기는 마음에 드는 칼을 두 자루씩 준비했다고 들었습니다.”

천중명은 입술에 힘을 꾹 준 채 종이컵을 내려다보았다.

“일이 많아질수록 내가 직접 돌아보지 못하는 곳이 많아진다. 잘 부탁한다.”

“안심하셔. 내가 트로피 반드시 가져올 테니까.”

“너 때문에 더 불안해, 인마.”

“아, 진짜!”

웃는 얼굴로 천중명이 내민 종이컵에 곽대출이 들고 있던 종이컵을 부딪쳤다.

**

곽대출과 시간을 보내는 바람에 천중명이 본사 건물에 도착했을 때는 오전 9시가 조금 넘어서였다. 집무실에 들어선 천중명은 재킷을 걸어 놓은 뒤에 책상에 앉았다.

부속실에서 올라온 메모와 요약 기사의 대부분이 랠리와 관련되었을 정도로 과열현상이 있었지만, 이 정도는 충분히 이해할 수준이었다.

승리하면 생산과 판매를 재개할 명분을 얻고, 패하면 그에 걸맞게 움직일 예정이어서 자극적으로 올라온 기사와 달리 지경그룹의 핵심인 그룹발전본부와 천중명의 집무실의 분위기는 차분했다.

천중명은 먼저 대송자동차의 리콜 현황을 살폈다.

리콜 초창기라 그런지 하루에 들어가는 비용이 2천억 원대에 이르고 있었다. 리콜 관련 보고서, 연결 보고서를 살핀 천중명은 인터폰을 향해 손을 뻗었다.

“대송장비 최치국 회장 연결해줘.”

[네, 회장님.]

1분쯤 서류를 더 살핀 뒤였다.

[회장님. 1번에 최치국 회장이 연결되었습니다.]

부속실 직원의 보고가 있었다.

수화기를 든 천중명은 바로 1번 버튼을 눌렀다.

“여보세요?”

- 예, 회장님. 최치국입니다.

“고생 많죠?

- 자부심 넘치게 일하고 있습니다.

어쩐지 군대에서나 들음직한 최치국의 대답을 들은 천중명이 서류를 넘기며 입을 열었다.

“리콜에 들어가는 패킹 부품이 과거에 있던 재고거든요. 게다가 새로 받아들이는 것도 당분간 동일 제품을 사용하는데 괜찮겠어요?”

- 현재 새로운 제품의 시안을 받아서 품질 평가를 진행 중입니다. 다만, 신제품을 대량 생산하는데 1개월의 시간이 소요돼서 기존의 패킹 제품이 소모되거나 교환할 경우에는 앞으로도 전량 무상교체라는 기준점을 정해두었습니다.

“안전에는 문제없습니까?”

- 엔진과 같이 주요 부위에 들어가는 패킹은 이미 다른 제품으로 교체했습니다. 현재 사용하는 것에서 불량이 발생한다면 흔히 말하는 잡소리 수준에서 처리되는 정도입니다.

궁금했던 점을 해결한 천중명은 고개를 끄덕였다.

“자동차의 가장 기본적인 부품을 대송장비가 생산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 예, 회장님.

“내가 최치국 회장께 대송장비를 맡긴 것은 기본에 충실한 부품, 그리고 그 부품을 바탕으로 고객의 안전을 꼼꼼하게 지켜낼 자동차를 만들 수 있도록 지원해 달라는 의미였습니다. 한 가지 더.”

보고서에서 시선을 든 천중명이 말을 이었다.

“식당에서 주문한 음식에서 머리카락이 나올 수는 있습니다. 정중한 사과, 확실한 보상이 있다면 고객은 용서합니다. 절대 고객에게 과실을 전가하지 마세요. 물론 부작용이 있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실제로 일부 악성 고객은 단순한 조작 실수로 인한 교통사고를 기계적 결함으로 몰아서 보상을 요구하거나 언론에 말을 퍼트리는 일이 최근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었다.

“악성 고객은 그에 맞게 대처하겠습니다. 그러나 생산을 담당하는 현장에서 그런 일이 생기지 않아야 합니다.”

- 명심하겠습니다, 회장님.

“그럼 고생 부탁합니다.”

최치국은 가까워질수록 어쩐지 말수가 점점 줄어드는 느낌이었다. 통화를 마친 천중명은 다음 보고서를 펼쳤다.

이제 큰 틀이 어느 정도 잡혔다. 타이밍이 절묘하게 맞아떨어졌는데 여기에 우승만 더 한다면 그야말로 바랄 것 없는 수준이었다. 거양자동차? 아무렴 너희가 가진 트럭 부분 하나 먹자고 이렇게 요란스럽게 일을 벌였을 것 같나?

류효양을 떠올린 천중명이 픽 웃으며 보고서를 넘겼다.

**

스타트 지점에 모인 트럭의 숫자는 모두 47대였다. 그리고 그중 가장 관심을 끄는 것은 역시 누가 뭐래도 지경리온자동차의 ‘미트’였다.

다른 트럭과 달리 배기구에 유해가스 측정장치를 설치해서 그 기록이 입력, 저장되는 것은 물론이고, 수신장치로 발신까지 하는 터라 기자들은 물론이고, 랠리 참가자들까지 몰려들어 미트를 살폈다.

유럽의 지경그룹 직원들이 또 상당수 가세했다.

베이스 기지마다 블루크루드를 적재한 탱크로리를 배치해서 혹시 모를 만약의 사태를 대비했고, 기동성이 뛰어난 지프를 준비해서 연료누출 따위의 돌발 상황에도 대비했다.

몰려드는 스태프와 지경그룹 관계자, 기술자들 틈에서 혼이 반쯤 나갈 정도로 바빴던 신상훈이 다가선 이를 보고는 모처럼 환히 웃었다.

“어떻게 여기까지 오셨습니까?”

“이름을 안 새겨주실지 몰라서 확인하러 왔습니다.”

신상훈이 내민 손을 지경전자 연구소장이 반갑게 잡았다.

“어떻게 되신 겁니까?”

혹시 누군가 말을 들을까 봐 주변을 둘러본 신상훈이 조용하게 말을 건넸다.

“기용도 부회장께서 보내셨습니다. 함께 이동하면서 혹시 모를 순간에 도움 되었으면 한다는 말씀이었습니다. 저쪽에 함께 작업했던 직원 세 명과 도구도 모두 가져왔습니다.”

“숙소는요?”

“우리 부회장님이 경비사용에 결벽증이 있어서 이 옆의 호텔입니다. 총괄사장님이 옮겨주시겠습니까?”

“하하하!”

아무렴, 옆의 호텔이 그리 부실하겠나.

그러나 모처럼 신상훈은 쌓여있는 일들을 밀쳐내고 통쾌하게 웃었다. 이게 힘이겠지. 믿을 수 있는 누군가, 의지가 되는 누군가가 함께 곁을 지켜주는 것이 말이다.

“바쁘신 것 같으니 저는 이만 호텔로 돌아가 있겠습니다. 전화번호부터 입력해 주십시오. 그리고 ID 카드는 총괄사장님께서 신청해 주십시오.”

“지경리온자동차로 신청하면 됩니다. 저녁에 호텔에서 받아보시도록 처리하겠습니다.”

번호를 입력한 신상훈이 손을 내밀었고, 연구소장이 그 손을 꽉 잡았다.

**

하루가 마감되는 시간이었다.

곽대출은 책상을 깔끔하게 정리한 뒤에 말없이 앉아 방 안을 둘러보았다. 지경그룹 벤처사업부 본부장 곽대출이라고 쓰인 명패도 손으로 쓰다듬었다. 고작 보름 남짓 떠나 있다가 돌아오는 여정인데 이게 또 아쉽다.

똑똑똑.

“본부장님. 준비되셨어요?”

그때 주인영이 결재판을 옆에 들고서 방으로 들어왔다.

“왜 그러세요?”

“그냥.”

곽대출은 몸을 일으켜 재킷을 집어 들었다.

“예쁜 여자가 나타나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아시죠?”

“사랑한다, 주인영.”

이마를 콕 찍힌 것처럼 주인영이 멍한 눈으로 곽대출을 바라보았다.

“무식한 나를 여기까지 끌어준 거 고맙고, 한눈에 빠져든 나를 밀쳐내지 않은 것도 고맙다.”

“무슨 일 있으세요? 랠리에 참가하시는 거잖아요? 스태프는 헬리콥터나 안전한 차량으로 이동하고, 베이스에서 지낸다면서요.”

“그냥 보름 정도 못 본다고 생각하니까 아쉬워서 그래. 이렇게 내 감정을 말해주지 못한 것도 걸리고.”

결재판을 책상에 올린 주인영이 곽대출을 향해 팔을 뻗어서는 목을 꼭 끌어안았다.

“누가 들어오면 어떡하려고 그래?”

“본부장님에게 엉뚱한 생각 못 하는 거죠.”

가방을 내려놓은 곽대출이 주인영의 등을 받치듯이 안았다.

“건강한 모습으로 돌아오세요.”

“그래.”

주인영의 입술이 까만 곽대출을 향해 움직일 때였다.

똑똑똑.

뜨거운 물을 부은 것처럼 노크가 두 사람을 확 떼어놓았다.

**

천중명은 집무실 책상에서 울어대는 휴대 전화기를 들어 통화 버튼을 눌렀다.

“여보세요?”

- 회장님. 신상훈입니다.

지친 기색이 역력한 음성인데도 굳은 의지가 담겨 있는 것이 당장은 고마웠다.

- 준비 모두 마쳤습니다. 오늘 마지막 미팅과 간단한 출정식, 파티가 있고, 내일 새벽에 바로 출발입니다.

“고생 부탁해요.”

- 회장님. 드리고 싶은 말씀과 작은 청이 한 가지 있습니다.

천중명은 몸을 일으켜 책상에 기대앉은 자세로 신상훈의 말을 기다렸다.

-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이 기회를 주신 회장님께서 실망하지 않도록 제 역할에 충실하겠습니다. 그렇지만 제가 감당하지 못하는 이유나 부족한 능력이 걱정되는 것도 사실입니다.

“출발을 앞두고 별로 좋지 않은데?”

- 그래서 회장님께 감히 한 가지 부탁을 드리려고 합니다.

“말해보세요.”

- 우승해서 트로피를 가져오라고 지시를 내려주십시오.

천중명이 픽 웃은 다음이었다.

- 회장님께서 그렇게 지시해주시면 부족한 면이 있더라도, 제가 감당하기 어려운 난관이 있더라도 해낼 것만 같습니다.

진심이 담긴 신상훈의 요청이 있었다.

낯간지럽긴 하다만 이런 솔직한 바람을 어떻게 외면하겠나.

“신상훈 총괄사장.”

- 예, 회장님.

“지경그룹의 명예를 위해, 하나 된 지경과 리온을 위해, 그리고 나를 위해 우승 트로피를 가져오세요.”

- 감사합니다, 회장님. 반드시 회장님께 우승 트로피를 전해드리겠습니다.

먹먹한 침묵을 끝으로 통화가 끝났다.

천중명은 잠시 그렇게 책상에 걸터앉아 해가 지는 창밖을 바라보았다.

똑똑똑.

그리고 그때 노크와 함께 유진교가 들어섰다.

“이리 오세요. 노을이 참 보기 좋네요.”

부속실 쪽을 바라본 유진교가 집무실을 걸어 소파를 지나 책상을 빙 둘러서 천중명의 왼편으로 다가왔다.

“조금 전에 신상훈 총괄사장에게서 전화가 있었습니다.”

“제게 먼저 했었습니다. 회장님께 부탁드리고 싶은 청이 있는데 말씀드려도 되겠냐고 물었습니다.”

“허락하셨던 모양이죠? 엉뚱한 부탁을 하던데요.”

유진교는 대답 대신 그답지 않은 미소를 보여주었다.

“회장단과 임원들이 그룹 회장님께 감정적으로 의지하는 것을 처음 보아서 솔직히 당황스러웠습니다.”

창밖에서 달려든 노을에 물든 유진교가 전에 없이 감상을 꺼내놓았다.

“그룹의 임원으로 일하며 처음 느끼는 감정이 하나 더 있습니다.”

천중명이 궁금한 얼굴로 고개를 돌린 다음이었다.

“지경그룹에 대항하는 거대자본 세력이 불쌍하게 느껴졌고, 어쩐지 그 뒤에 세계 곳곳에 우리 지경의 깃발이 꽂혀 있을 것 같은 확신도 들었습니다.”

유진교가 진지한 얼굴로 감정을 전했다.

“당장 랠리도 장담하기 어려운데 너무 멀리 가신 것 아닙니까?”

“지경그룹 천중명 회장님은 반드시 그렇게 하실 겁니다.”

뭔가 있는데?

의아해하는 천중명을 유진교는 확신에 찬 얼굴과 눈빛으로 대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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