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로드 오브 머니-244화 (244/315)

# 244

244. 승리를 가져와! (1)

하루에 해결하는 보고서, 그 외에 방문, 면담, 길고 짧은 회의들까지, 오전 8시에 출근하는 천중명이 오후 10시에만 퇴근해도 하루에 14시간을 집무실에서 일에 매달리는 꼴이었다.

처음과 달리 천중명에게도 충전이 필요했다.

긴 싸움, 가진 것을 모두 걸어야 하는 싸움을 앞두고 천중명은 약간의 여유를 갖고 싶었다.

“놀랄 거라고는 했지만, 이건 진짜 놀랐어요.”

일요일 오전에 함께 집을 나섰던 허선영이 승용차에서 내리며 한 말이었다. 편안한 복장으로 놀이공원에 도착한 천중명과 허선영은 그 길로 표를 끊어서 안으로 들어갔다.

편안한 복장에 적당하게 모자를 쓰고 있어서 얼굴을 직접 들여다보지 않는 한, 천중명을 알아보기는 어려웠다.

“사람들 틈을 걸어보고 싶어서.”

“그런 계획이라면 완벽한 장소인데요? 그런데 공원을 보니까 이상하게 들떠요.”

그렇게 놀이공원에 들어간 천중명은 허선영과 함께 캐릭터 상품점을 들러보았고, 아이스크림콘을 사서 먹으며 걸었다.

“놀이기구는 안 타요?”

“무섭잖아?”

“중명 씨가요?”

집과 회사를 오가며 살던 삶에 주는 선물 같은 하루였다.

둘이서 40분 넘게 줄을 선 뒤에 무섭게 회전하는 열차를 타고는 소리를 꽥꽥 질렀고, 다시 또 줄을 서서 물이 튀는 놀이기구도 즐겼다.

시간이 지나면서 사람들이 꽤 많아졌다.

피곤한 얼굴로 유모차를 미는 아빠와 아이의 사진을 찍느라 바쁜 엄마, 그렇게 다른 가족들 틈에서 천중명과 허선영은 동물원까지 모두 돌아보았다.

“아, 힘들다!”

벤치에 앉은 허선영이 환하게 웃는 얼굴로 다리를 길게 뻗었다. 그런 뒤에 천중명이 건네주는 햄버거와 음료수를 받았다. 배가 고팠던 참이었다. 둘이서 앞을 지나가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햄버거와 음료수를 번갈아 먹었다.

“저기 봐요! 어쩜!”

뒤뚱거리며 걷는 아이를 향해 허선영이 먼저 손을 흔들었고, 시선이 마주친 순간에 천중명도 함께 손을 흔들어주었다.

“이제 갈까?”

“그래요.”

벤치에서 일어난 천중명은 허선영과 함께 차를 세워둔 입구를 향해 걸었다. 들어왔을 때와는 달리 사람들이 제법 많았다.

“무슨 일 있는 건 아니죠?”

“아니야. 너무 일에 치여 사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 그리고 이곳은 선영 씨와 꼭 와보고 싶었던 곳이기도 하고.”

“놀이공원을요?”

천중명은 고개를 끄덕이며 웃었다.

“행복한 사람들을 보고 싶었어. 물론 힘들어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천중명의 시선을 따라갔던 허선영이 풉, 하고 웃었다.

쉬고 싶었던 날에 끌려 나왔는지 지친 기색으로 유모차를 밀고 가는 남자의 모습을 보고 나서였다.

“우리는 꼭 행복하게 사는 법을 가르치자.”

“다른 부모들도 다 그렇게 하지 않아요?”

“말이야 그렇지. 대신 행동이나 사는 모습은 남들보다 앞서야 하고, 많이 가져야 행복한 거라고 보여주잖아. 비싼 장난감보다는 함께 웃고 떠들 시간이 더 소중하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어.”

“이럴 때 보면 중명 씨는 꼭 아저씨 같아요.”

“내가?”

편안하게 대화를 나누며 주차장에 도착한 천중명이 운전석에, 허선영이 조수석에 앉았다.

“이제는 어디로 가요?”

“안성.”

“설마요? 또 전화도 안 하고 가게요? 엄마가 절대 그러지 말라고 몇 번을 말씀하셨는데요?”

“그런데 그게 더 재미있지?”

차를 움직이며 짓궂은 표정으로 던진 천중명의 질문에 허선영이 비슷한 느낌으로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중명 씨. 고마워요.”

“이럴 땐 사랑한다고 해야 하는 게 아닐까요, 사모님?”

“네, 사랑합니다, 회장님!”

모처럼 하루를 완전히 비우기로 한 날이었다. 오늘은 그렇게 하라는 것처럼 다행히 급한 문자도 없었다.

**

한쪽 바퀴가 들릴 정도로 거친 산길이었다.

크르릉! 철컹! 크아아앙!

드라이버는 거대한 트럭을 능숙하게 다루며 울퉁불퉁한 산길을 헤치며 달렸다. 운전석과 조수석 뒤에서 X자 벨트를 건 채 지켜보던 강갑수는 내심 혀를 내둘렀다.

그리고 그 직후에,

덜컹! 크르릉!

짧게 요동쳤던 트럭이 점프하듯 언덕을 튀어 올랐다가,

콰다다당!

거칠게 바닥을 내려서서는 곧장 달렸다.

지금 속도가 시속 130킬로미터가 넘는다.

‘굉장하네!’

벌써 세 번째 훈련인데도 아직 강갑수는 놀라는 심정이 줄어들지 않았다.

거친 산길을 헤치며 때론 넘어지나 싶게 기울어지고, 또 때로는 높다랗게 떴다가 떨어지면서도 시속 130킬로미터 이하로 속도가 줄지 않는다. 트럭의 성능도 놀라울 정도이지만, 드라이버의 기술은 정말이지 볼 때마다 감탄사가 터져 나올 지경이었다.

덜컹! 크르르릉! 덜커덩! 철컹! 크르르릉!

좌우로 흔들리는 트럭 안에서 운전석과 조수석 의자를 붙들고 앉은 강갑수는 천상기를 떠올리며 픽 웃었다.

‘형은 잘 지내?“

크르르릉! 철컹! 크아아앙!

마치 트럭이 대신 대답하는 느낌이었다.

‘사흘 뒤에 랠리 시작이래. TV에 내가 나올 것 같지는 않은데, 그래도 어쩌다 나오면 형은 나 볼 수 있는 거네!’

크아아아아앙!

모처럼 편평한 흙길을 만나자 트럭의 속도가 단박에 180을 넘어서고 있었다.

‘형은 돈 많은 집에서 태어났잖아. 받은 것에 감사하며 살아. 그리고 혹시 기회가 된다면 어려운 사람들 조금씩만 도와주라.’

아프게 형을 잃어서일까, 아니면 얼마 전에 아버지를 허무하게 떠나보내서였을까, 강갑수는 이상하게 가슴 한구석에 박힌 천상기가 떠오를 때면 감정이 울컥 올라왔다.

‘살아서 꼭 보자, 형.’

조수석에 앉은 추일원이 들었다면 ‘징그럽다, 이 새끼야!’ 하고 뒤통수를 갈겨주기 좋은 바람이었다.

**

천상기의 바람을 들은 천호득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늙은 아버지와 뒤늦게 정신을 차린 아들은 여주의 천봉서 묘지 앞에 도착했다. 어쩌면 죽어서나 다시 찾게 될 거라 생각했던 천봉서의 묘지였다.

“큰형님…….”

묘지가 보이기 무섭게 울음을 터트렸던 천상기가 잘못했다고, 정말 잘못했다고 엎드려 흐느끼는 모습에 장만섭까지 눈시울을 붉혔다.

고맙네.

자네가 돌봐준 게지.

그래서 동생은 이렇게 만들어주었어?

발에 매달리던 자네를 안아주지 못했던 것이 아프이.

미안하네.

그깟 돈이 뭐라고 형제를 경쟁시켰던지.

한 번쯤 다녀가, 이 사람아.

자네가 사무치게 보고 싶어서 잠을 못 이루는 날에는 원망해도 좋고, 저주를 퍼부어도 좋으니 한 번쯤 다녀가.

휠체어에 앉은 천호득이 바라보는 앞에서 천상기는 참 오래도록 울었다.

“형님. 아이들은 제가 최선을 다해 돌보겠습니다. 그 아이들은 저처럼 되지 않게 챙기겠습니다. 그것 하나는 약속드립니다.”

눈이 퉁퉁 붓고, 코가 빨갛게 될 정도로 울었던 천상기가 무릎을 꿇은 자세에서 고개 숙여 약속했다.

천호득과 천상기는 오후 늦게 평창동에 도착했다.

이은명과 메이드들이 나서서 옷가지와 짐들을 챙겼다.

그동안 천상기는 천호득과 서재로 들어갔다.

“어디로 갈 생각이야?”

“우선 쉬고 내일 동생 회장을 만나서 지낼 곳과 저축은행 일을 의논할 생각인데요.”

“그럼 오늘은 어디에 있을 거야?”

“왜 이러세요, 아버지? 당장 갈 곳이 없는 아들을 내쫓으시려는 거 아니시죠?”

“흐헤헤헤헤.”

천호득이 여행의 즐거움이 남은 웃음을 터트린 다음이었다.

“아버지. 힘드셨을 텐데 기회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래 가슴에 담아두겠습니다.”

진심을 전한 천상기가 고개를 숙였고, 그런 아들의 등을 천호득이 아이 다루듯 조심스럽게 다독여주었다.

**

월요일 오전에 출근한 천중명을 유진교 본부장과 고강도 법무팀장이 방문했다. 오전 9시 10분쯤 된 시간이었다.

“앉으세요. 커피 괜찮으세요?”

“감사합니다, 회장님.”

셋이서 소파에 앉아 커피를 앞에 두었다.

“조금 전에 거양자동차의 법무팀이 입국한다는 연락이 있었습니다. 법률적 문제를 상담하겠다며 오후 1시에 방문하고 싶다는 요청도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친구 회사를 방문하는 것도 아니고, 오전에 통보하고 점심시간쯤 만나서 법률문제를 논의한다고?

결례가 아닌가 싶어 고개를 갸웃하는 천중명을 보며 고강도가 묘한 미소를 그려냈다.

“회장님께서 허락하시면 오늘 만나볼 예정입니다.”

“너무 급하지 않나요?”

“중국 기자들이 함께 방문하겠다는 것을 보면 거양자동차 측은 이걸 보도자료로 사용할 눈치인 것 같습니다. 지경그룹은 제대로 준비도 하지 못한 채 조양회를 이용했다, 이런 느낌입니다.”

하여간 속 시커먼 인간들.

류효양의 퉁퉁한 볼을 떠올린 천중명이 가볍게 웃었다. 하긴, 리온자동차를 인수할 당시 양서평 역시 처음에는 그와 다를 바 없는 모습이었다.

“법무팀의 대응방법은요?”

“오후 1시에 방문하면 기초안만 정하고 내일부터 실무진 회의를 진행하도록 조율하겠습니다. 관례상이나 절차상으로 트집잡힐 일은 없습니다.”

“계속 무리한 일정인데 괜찮으시겠습니까?”

“대송그룹의 인수절차가 끝난 뒤라 어제는 모처럼 모두 쉬었습니다.”

고강도의 답변에 천중명과 유진교가 가볍게 웃었다.

“회장님. 거양자동차의 트럭 부분은 실사를 통해 가치를 결정하겠습니다. 양측의 이해가 충돌되는 일이 없도록 국제적인 명성을 갖춘 회계법인과 법무법인을 주관사로 정하고, 다시 우리 측 파트너로 국내의 회계와 법무법인을 추가로 계약할 예정입니다.”

“방법은 괜찮은 것 같은데 문제가 있나요?”

“비용이 대략 300억 원가량 소요됩니다.”

“법무팀장이 결정해서 결재를 올리시고, 그 부분은 본부장님이 결재하는 것으로 하시죠.”

“예, 회장님.”

유진교가 답을 내놓으면서 중국의 법무팀 방문에 관한 협의가 대략 마무리되었다.

“그럼 바쁠 테니 법무팀장님은 먼저 일어나시죠.”

“알겠습니다, 회장님.”

고강도가 자리에서 일어나 인사를 마치고 집무실을 나선 다음이었다.

“회장님. 오늘 중국 측의 방문을 포함해 외신 기자들의 관심을 끌어낸 것까지 모두 거대자본을 상대하시려는 계획의 일환이라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그룹발전본부가 회장님께 도움 되려면 큰 틀은 알고 있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 뒤에 유진교가 나직하게 말을 건넸다.

“거양자동차는 우선 중국 당국이 대송자동차의 생산과 판매에 더 개입하지 못하도록 하는 안전장치로 사용할 생각입니다.”

천중명은 편안한 태도로 유진교에게 생각하던 바를 꺼내놓았다.

“생산이 중단된 공장을 다시 가동하려면 어지간한 노력으로 어렵습니다. 더구나 최종 결정권자가 중국 당국입니다. 그들의 독단적인 조치를 이겨내는 데 거양자동차만큼 확실한 방법은 없습니다.”

짐작하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묵묵하게 듣고 있는 유진교의 표정을 보며 짐작할 수 있었다.

“이번에 당한 걸 랠리가 끝난 뒤에 멋지게 돌려줘야죠.”

“거양자동차가 많이 아프겠군요.”

“꽤 아프겠죠.”

둘이서 비슷한 표정으로 웃었다.

“저는 이만 내려가 있겠습니다.”

“본부장님. 한 가지만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예, 회장님.”

천중명은 일어서려는 유진교를 붙들었다.

“그룹은 사회적 책임이 있습니다. 고용, 안정, 그리고 발전입니다. 그 책임을 다하는 지경을 만들고 싶습니다.”

어쩔 수 없다는 듯 유진교가 허탈한 웃음을 그려냈다.

“늘 꿈꿔왔던 기업의 모습을 회장님께선 항상 쉽게 말씀하시고, 주저하는 일 없이 이끌어 가십니다. 그래서 더 안타깝습니다.”

굵직한 저음으로 유진교가 속내를 꺼내놓았다.

“회장님께서 실패하는 모습을 보게 될까 봐, 이런 회장님께서 실패의 책임으로 인해 죄인으로 몰릴까 봐, 그것이 두렵습니다.”

언제 이 양반과 이런 관계가 됐을까.

“지경그룹과 새롭게 인수한 대송자동차그룹, 대송그룹을 포함해 임직원의 수가 30만 명을 넘습니다. 이렇게 이루셨으면서 도대체 왜 그렇게까지 하십니까?”

천중명을 진심으로 위하는 사람의 감정이 유진교의 두 눈에 분명하게 올라와 있어서, 그것이 천중명은 좋았다.

“유치하게 들리실 겁니다.”

“회장님께선 그럴 분이 아닙니다.”

말을 주고받은 뒤에 어딘가 닭살이 돋는 느낌이라 둘이 비슷한 표정으로 웃었다.

“본부장님. 언젠가 TV에 태극기를 배경으로 하얀 저고리와 까만 치마를 입은 어린 여자아이가 나온 광고가 있었습니다. 리포트에 있더군요.”

“기억합니다.”

“나라를 위해, 대한민국을 위해 우리 물건을 사달라고 매달리고, 우리에게 투자해 달라고 졸랐습니다. 그렇게 성장한 뒤에 한 일들이 정권에 붙어 부동산 광풍에서 떡볶이 판매까지, 우리는 그동안 부끄럽게 돈을 벌었습니다.”

남들도 그렇게 한다는 말을 차마 꺼내지 못하는 것처럼 유진교가 마른침을 삼켰다.

“이제는 세상이 바뀌어 갑니다. 존재 목적을 증명하지 못한 채 계속 우리 배만 불리려 한다면 더는 이 사회가 우리를 인정하지 않을 테고, 그렇게 된다면 그룹은 존재 가치가 사라집니다.”

유진교가 묵직한 표정으로 천중명을 보았다.

“최선을 다해 회장님을 따르겠습니다.”

그렇게 다짐을 건넨 유진교가 자리에서 일어나 인사를 마친 뒤에 집무실을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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