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로드 오브 머니-242화 (242/315)

# 242

242. 거절하겠네! (1)

추일원은 도깨비 출신으로 곽대출을 진심으로 따르던 대원이었다. 군대가 엿 같이 풀렸다고 깨달았을 때, 장기복무를 신청할 때, 그의 유일한 구원과 목적은 곽대출이었다.

곽대출이 어떤 인간인지를 모르면 이해하기 어려울 수 있겠다.

도깨비들은 대개 까맣다.

훈련 지랄 같고, 사는 거 그러니까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그 상태에서 눈이 뒤집힐 때가 문제였다. 까만 얼굴에서 핏발 선 눈만 보인다.

곽대출은 그 독한 생활에서도 대원의 실수를 곧잘 감싸고 나섰다. 한 놈이 실수한 바람에 줄줄이 구식 화장실에 거꾸로 매달려도, 자갈밭 바닷가의 기둥에 뒤집어 매달아 놓아도, 그는 실수한 대원을 욕하는 법이 없었다.

독기 충만하지, 군인 아버지 덕분인지 ‘나는 아예 군인으로 태어났어요’ 하는 근성 있지, 그에 걸맞은 실력과 끈기 갖췄지, 따를 수밖에 없었다.

“죄송합니다.”

“개새끼. 나중에 따블로 갚아.”

추일원이나 다른 대원들이 고개 숙일 양이면, 곽대출은 달랑 저 대꾸를 던지는 게 전부였다.

솔직히 제대한 도깨비는 막막하다. 군 특기를 적어주지 않으니 끼리끼리는 출신을 알아도 경호회사에 취직하기조차 어려웠다.

배운 건 또 오죽해야지.

뼈 부러트리거나 눈알 파내는 연습만 하던 인간이 밀쳐내고 막는 호신술이 될 턱이 있겠나. 기껏 경호회사에 취직했다가도 엉뚱한 사람의 팔이나 눈알 건드렸다가 잘리곤 했다.

사정 급하지, 돈은 필요하지.

살면서 거 왜 만 원짜리 한 장이 하느님처럼 느껴질 때 있잖나. 나쁜 짓이라도 해? 그렇게 망설일라치면 어디선가 누구에게서 말을 들었는지 모르지만, 곽대출이 나타나서 돈을 내밀었다.

“선배님은 지치지도 않습니까?”

추일원이 언젠가 도저히 손이 나가지 않아서 곽대출이 내민 돈 봉투를 서러운 눈으로 바라보며 질문을 던졌을 때였다.

“개새끼, 지금 그럴 말을 할 여유도 있어? 헛소리 말고 나중에 따따블로 갚아.”

죽이잖아. 미치게 고맙잖아. 그런 모습의 곽대출 선배는.

그게 끝이 아니었다. 그런 날이면 시커먼 얼굴에 눈을 하얗게 뜬 곽대출은 반드시 삼겹살집에 데려가 배불리 먹여주었다.

그 선배가 어느 날 불쑥 나타나서 대원들의 아쉬운 점을 한 방에 모두 풀어주었다. 그것도 1억 원 가까이 써서. 몇백만 원에 묶인 신용불량도 다 풀어줬고.

지경그룹의 그룹발전본부에 이사로 있다더니 지금은 벤처사업부 본부장이 돼서 대원들 전부 급여 받게 해준 건 또 어떻고. 그것도 적성에 꼭 맞는 일만 시킨다.

안 따르면 이상한 놈 아닐까?

지경리온자동차의 드라이버, 스태프들과 인사할 때 추일원은 살아있기를 잘했다고 몇 번씩 되뇌었다. 이렇게 곽대출에게 조금이나마 갚을 수 있으니 되었고, 미래를 그릴 수 있는 삶을 살게 되어서 그렇다.

“출발해도 되겠습니까?”

지급 받은 생활 무전기를 살피는 추일원에게 신상훈이 건넨 질문이었다.

“예, 준비 끝났습니다.”

우두머리인 추일원이 고갯짓을 하자 대원들이 뒤편 트럭에 세 명씩 올라갔다. 조수석에 두 사람, 운전석과 조수석 뒤의 공간에 한 사람이 앉을 수 있도록 별도의 의자가 있었다.

“공간이 부족해서 오래 버티려면 요령이 필요합니다.”

“우선 오늘 경험해 보고 대원들과 의논해 보겠습니다.”

말을 마친 추일원은 신화라는 1호차에 올랐다.

앞쪽은 스태프를 앉혔고, 그는 중앙의 뒷좌석에 앉았다.

뭔 트럭의 계기판이 비행기 느낌이 날 정도로 웅장하고 화려했다.

크르르릉!

거친 엔진음을 얼마나 잘 막아냈는지 추일원은 마치 승용차에 앉아 있는 느낌이었다.

크르르릉! 철컹! 크르르릉!

트럭은 천천히 지경리온자동차의 테스트 도로를 빠져나갔다. 앞 유리 너머로 펼쳐진 스웨덴의 하늘과 옆으로 흐르는 바깥의 풍경을 보며 추일원은 뜬금없이 성창욱 선배를 떠올렸다.

그 선배가 있으면 곽대출이 여기 일곱 명을 부르지 않고 그와 둘만 왔을지도 모르겠다. 밥 주는 주인 따르는 강아지처럼 곽대출은 성창욱을 졸졸 따라다녔다. 하여간, 성창욱은 긴말 할 것 없이 한 마디로 표현됐다.

괴물, 그는 그냥 괴물이었다.

딱 한 번 그가 진심으로 분노한 적이 있었다. 후배를 감싸다가 선배들과 싸움이 붙은 곽대출이 산으로 끌려갔을 때였다. 그대로 뒀다면 선배들의 절반은 죽은 채로 들려 나왔을 정도로 당시에 성창욱은 말리기조차 무서웠었다.

여기 일곱 명이 명령에 의해 그를 죽이려고 달려든다면?

추일원은 나직하게 숨을 내쉬었다.

괜히 일하러 외국 와서 끔찍한 상상할 이유가 뭐 있겠나.

굳이 승산도 없는 일을 말이다.

**

집무실에 앉은 천중명은 느닷없이 가려워진 오른쪽 귀를 털 듯이 만졌다.

욕하고 원망할 인간이 한둘이 아니니까.

천중명이 모니터에 올라온 새로운 리포트에 시선을 줄 때였다.

똑똑똑.

“회장님. 윤병지 회장이 도착했습니다.”

부속실 직원이 들어와 윤병지의 도착을 알렸다.

“여기서 뵙지.”

부속실 직원이 나가고,

“안녕하십니까, 회장님?”

곧바로 윤병지가 들어왔다. 수척한 그가 깍듯하게 인사를 하고는 천중명이 내민 손을 마주 잡았다.

“이쪽으로 앉으세요.”

“감사합니다.”

한과에 시원한 오미자차를 앞에 두었다.

“많이 힘드시죠?”

“회장님께는 부끄럽지만, 얼마나 잘못 살았는지, 그리고 제가 얼마나 부족하고 못났었는지를 깨닫는 시간이었습니다.”

“지금에라도 바로 잡으려 애쓰신 덕분에 대송그룹의 직원들이 안정을 찾았다고 생각하시고, 앞으로는 절대 이런 불행한 일이 생기지 않도록 시스템을 갖추는 데 최선을 다해 주세요.”

“예, 회장님.”

답을 한 윤병지는 결재판과 그 아래로 두툼한 서류를 내놓았다.

“보고를 받으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비자금을 조성한 경위, 총액, 그리고 현재 입금된 계좌에 관련한 자료입니다. 결재하시면 그 뒤에 발표하겠습니다.”

이미 매일 확인했던 내용이었다. 그러나 발표를 앞두었다면 한 번쯤 다시 검토할 필요는 있었다.

“세계는, 아니 윤세계 전 대표는 우선 30년 형으로 검사와 의논 중이고, 오늘 오후에 답이 있으리란 이메일을 받았습니다.”

참담한 표정으로 윤병지가 말을 이었다.

“형이 확정되면 주 외곽의 환경이 조금은 나은 교도소로 이감되도록 손을 써 볼 생각입니다.”

“알겠습니다.”

환경이 낫다는 거지, 윤세계에게는 여전히 지옥일 텐데 그걸 굳이 말릴 이유는 없었다.

“회장님. 대송그룹의 회장단 회의에서 제가 임원을…….”

“원하시는 분이 있으면 교체하세요.”

어려워서 말을 잇지 못하는 윤병지에게 천중명은 원하는 답을 주었다.

“독단은 안 되지만, 적어도 임원들을 움켜쥘 강단은 필요합니다. 의견을 들으시되 끌려가지 마세요. 보고서를 파고 또 파서 그 안에 감춰진 의도를 보시고, 계열사가 원하는 것들을 파악하세요.”

윤병지가 진지하게 듣는 앞이었다.

“그런 뒤에 정당한 지시를 이행하지 않거나, 반항하는 임원이 있다면 과감하게 정리하세요. 윤병지 회장님이 힘겹게 한 그 결단이 해당 계열사의 직원들을 살리고, 나아가 기업을 바르게 만듭니다.”

입을 움찔거렸던 윤병지가 고개를 숙여 천중명의 지시를 받았다.

“윤병지 회장님.”

“예, 회장님.”

“그룹의 회장이 일관되게 원칙을 지켜나가는 것이 임원들에게 가장 두렵게 다가갑니다. 불편한 눈초리, 모함, 형제를 이용하는 야비함, 중간 간부들을 이용한 여론, 그 모든 것이 윤병지 회장님께 달려들 겁니다.”

“명심하겠습니다.”

“이겨내세요. 대송그룹을 지키고, 직원들이 행복한 기업이 되도록 더 강해지세요. 부탁드립니다.”

“왜 제게 그런 말씀을…….”

고개를 숙인 윤병지는 만감이 교차해 눈시울을 붉혔다.

이런 사람에게 달려들었으니 시작부터 승패는 이미 결정 난 것과 다름없는 일이었는데 그걸 대송과 윤성일, 윤세계는 몰랐다.

**

윤성일은 영장실질심사를 거쳐 결국 휠체어를 탄 채 구속되었고, 연이어 우세환과 안소곤 역시 구치소에 구속, 수감되었다.

하루 만에 찾아온 변호사는 감형 없는 37년의 서류를 윤세계에게 내밀었다. 그녀의 나이 67세에 출소해 추방형식으로 한국으로 돌아갈 거란 현실에 직면한 윤세계는 먼저 서럽게 흐느꼈고, 마지막에 서류에 이름을 적어넣었다.

참담한 얼굴로 윤병지가 비자금의 규모, 조성 과정, 그리고 예금계좌를 밝히면서 무려 13명의 회장과 부회장, 임원이 구속되었다. 그 빈자리를 윤병지는 상무급과 부장급을 승진시켰는데 이것으로 대송그룹의 비자금 사건은 대강 마무리되었다.

그날 밤에 천중명은 곽대출을 불러 단둘이 움직였다.

재킷을 벗었고, 정장 바지에 목과 소매의 단추를 풀었으며, 소맷귀를 팔뚝까지 걷었다.

“회장님도 이런 날이 있으셔?”

“그냥 몇 시간이라도 옛날로 돌아가 너랑 둘이 편하게 있고 싶었다. 왜?”

“오! 날카로우시기까지.”

곽대출의 농담에 천중명은 웃음 대신 가볍게 숨을 내쉬었다.

“마음에 걸리시는 거지?”

“윤성일 회장이나 윤세계가 안 된 것도 있지. 그런데 꼭 그것 때문만은 아냐.”

“그럼 뭐 때문에 이러셔?”

“이런 일이 터지면 교도소에 들어가도 좋으니 몇조 원 가져보고 싶다는 사람들이 생기는 게 걸려서 그러지. 50조 원에 37년? 그럼 나는 5조 원만 먹고 3년 살면 되는 거잖아?”

“솔깃합니다?”

“미친놈.”

둘이서 킬킬거린 다음이었다.

“우린 안 그러잖아, 회장님아?”

시선을 힐끔 주었던 곽대출이 앞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절박한 사람들의 심정을 무시하지는 말자. 그게 옳든, 옳지 않든 돈, 돈, 저 돈을 가족에게 줄 수만 있다면 나는 교도소에서 죽을 수 있다는 사람들도 있을 테니까.”

뭘 그런 사람들까지 신경 쓰느냐는 투로 곽대출이 소리 없이 웃은 뒤였다.

“재벌의 가장 큰 폐해는 죄를 지어도 피해간다는 거야. 아! 돈만 있으면 빠져나가는 거구나. 그럼 나도 어떡해서든 돈만 벌면 죄를 지어도 나중에 그냥 나오겠네. 이런 생각.”

“그거야 어쩌겠어요? 그래도 대다수 선량한 사람들은 괜찮지 않을까, 회장님?”

“그 선량한 사람들을 꼬드기는 거지. 비트코인을 봐. 1만 원에서 200만 원 사이에서 움켜쥐었던 세력들은 2천7백만 원까지 치솟는 동안 먹을 만큼 먹었지. 원하는 것도 남겼고.”

“거기에 비트코인은 또 왜 나오셔?”

“마지막에 들어가서 망한 사람들을 외면하고 수백 배, 수천 배의 수익을 올린 사람들만 바라보게 만들잖아. 그다음이 뭔지 알아?”

질문의 답을 몰라서라기보다는 곽대출에게는 내용이 너무 어려워서 이해하지 못하는 것처럼 보였다.

“과거의 외환 사태는 공포심을 극도로 이용했다면 이번에 거대자본이 이용하려는 건 사람들의 탐욕이야. 그때 들어갔으면, 그때 베팅했으면, 왜 비트코인을 만 원대에 안 샀지? 왜 부동산을 그때 안 샀지? 그리고 마지막에는…….”

“마지막은?”

“FX마진거래가 될 거다.”

“너무 어렵지 않으셔?”

천중명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도 달려들 거다. 투기가 아니라 투자라고 인정받으니까. 하룻밤에 두 배, 세 배, 수익이 나올 테니까.”

“그럼 좋은 거 아니셔?”

“그 모든 게 한순간에 사라진다. 증거금 거래라서 계좌가 0이 되는 마법을 보게 될 거다. 그리고 그때부터 시작이지.”

복잡한 수학 문제를 앞에 둔 사람처럼 집중력을 잃은 곽대출을 둔 채 천중명은 혼자 말을 이었다.

“주택담보 금리가 기준이야. 7퍼센트에 도달하면 기우뚱하고, 9퍼센트가 가면 중산층이 완전히 무너져. 그리고 그때부터 탐욕과 공포, 좌절이 뒤엉키겠지.”

“아후, 회장님. 솔직히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어. 그냥 아는 건 쓸데없이 투기니 투자니 하다가 돈 날리고 이자율 높아지면 집 날린다는 말 아니셔?”

천중명은 픽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나저나 우리 어디 가냐?”

“자자, 복잡한 건 모두 잊고 바람을 쐬러 갑니다.”

“잠실 한강공원?”

“이왕 나온 건데 좀 멀리 가시자구요.”

곽대출이 달린 곳은 용인이었다.

전에 들렀던 돌솥밥 집에서 간장게장에 파전 주문해서 배불리 먹었고, 역시나 바깥에 테이블이 있는 커피숍에 가 커피도 주문했다.

“양서평 부총재랑 조 비서 출국했다는 말씀 내가 드렸나?”

“아니.”

“그럼 박승양 회장이 넘겨준 회사 열다섯 개를 주인영 부장과 직원들에게 배당했다는 말씀은 드렸을까요?”

천중명은 웃으며 곽대출을 보았다.

“그 정도는 알아서 해. 담배나 줘.”

“예, 회장님.”

둘이서 담배를 입에 물고 불을 붙인 다음이었다.

호수를 바라본 채 천중명이 입을 열었다.

“대출아. 진심으로 막아내고 싶다. 아니, 솔직하게 목을 부러트려 주고 싶다.”

“거대자본?”

천중명은 고개만 끄덕였다.

“막으시면 되지. 뭐가 문제야?”

“나만 죽는 싸움이라면, 재수 없게 너까지 휘말리는 것으로 끝나는 싸움이라면 이렇게 걱정하지 않지.”

“설마 정말 목을 부러트리시나?”

담배 연기를 길게 내뱉은 천중명이 곽대출을 보았다.

“너, 선영 씨, 지경그룹, 총수님, 그 모든 것이 흔들리는 마지막 순간에 그것들을 지키라며 저들이 내밀 돈을 과연 내가 끝까지 거절할 수 있을지 그게 가장 무섭다.”

말을 한 천중명이 저수지를 향해 픽 웃었다.

“거절하겠네!”

그리고 그 눈을 본 곽대출이 도깨비 시절의 음성으로 소감을 토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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