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로드 오브 머니-240화 (240/315)

# 240

240. 너희도 마찬가지야 (1)

신상훈은 파크 피터슨과 함께 다카르 랠리에 참가할 지경리온 트럭을 살폈다. 사막과 거친 산길을 달리기 위해 일반적인 트럭과는 비교할 수조차 없는 커다란 타이어를 달았고, 운전석과 같은 높이로 화물칸에 커버를 만들었다. 외관 전체에 윤활유, 엔진첨가제, 심지어 음료수 광고 등을 부착해서 화려해 보이기까지 했다.

목 위까지 올라올 정도로 커다란 타이어를 하나씩 만져가며 신상훈은 트럭을 한 바퀴 돌았다.

모두 세 대의 트럭이 랠리에 참가한다.

그러나 역시 주는 유해 물질을 배출하지 않는 눈앞의 트럭이었다. 15일간 1만 킬로미터를 달린다. 하루에 650킬로미터 가량을 달려야 하는데, 매일 성적을 매겨 종합 등수를 결정하기 때문에 트럭의 경우 150킬로미터의 속도를 유지해야 선두권을 노릴 수 있다.

‘잘 부탁한다.’

신상훈은 트럭의 몸체를 어루만지며 다시 한 바퀴를 걸었다. 블루크루드를 사용하는 엔진에 지경전자에서 특별하게 공급한 배터리를 장착했다.

드라이버의 능력이 승부를 결정짓는 중요한 요인이라 테스트에서부터 손발을 맞췄다. 그리고, 마지막 테스트를 마친 아론도 지안테 역시 우승을 자신할 정도로 만족감을 표시했다.

“멋진 녀석입니다.”

잠자코 신상훈을 지켜보던 파크 피터슨이 아들을 대하는 아버지의 얼굴로 트럭을 올려다보았다. 실제로 이 트럭에는 스웨덴어 ‘미트(Myt, 신화)’라는 이름도 붙여주었다.

“하이브리드 엔진, 12단과 후진 4단 기어, 최고 속도 210킬로미터, 리터당 4킬로미터가 넘는 연비, 아홉 가지 안전장치.”

마치 아들을 자랑하는 아버지처럼 파크 피터슨이 트럭의 장점을 쭉 나열했다.

“압권은 배터리를 이용한 주행입니다. 아론도와 같은 베테랑이 들떠 하는 것은 오랜만에 보았습니다. 게다가 배터리가…….”

신상훈이 빠르게 고개를 젓자 파크 피터슨이 말을 삼키고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우리는 우승할 겁니다. 지경과 리온이 함께 만들어내는 첫 번째 신화(Myt)가 눈앞에 있습니다.”

그는 자부심 넘치는 얼굴로 엄청난 체구를 자랑하는 ‘신화’를 바라보았다.

“이럴 때 사진 한 장 찍는 건 사장님과 우리 연구원의 특권입니다.”

파크 피터슨이 콧수염을 늘이며 웃은 뒤에 휴대 전화기를 꺼내 들었다.

“어떤 포즈를 취할지 기대하겠습니다.”

잠시 망설이던 신상훈은 전투기의 이륙을 지시하는 유도요원처럼 운전석을 향해 오른손 엄지를 치켜세웠다.

다음은 파크 피터슨의 차례였다.

그는 신상훈을 바라본 자세로 양손 엄지를 세웠다.

짧은 휴식 같은 사진 찍기가 끝난 다음이었다.

“굳이 내전이 가라앉지 않은 아프리카를 다시 선택한 게 걸리긴 합니다. 차라리 전처럼 남미에서 했으면 좋았을 텐데요.”

파크 피터슨이 걱정거리를 늘어놓았고,

“잘 될 겁니다.”

신상훈이 한마디 말로 그의 걱정을 밀쳐냈다.

**

류효양은 다섯 대의 트럭을 돌아보며 커다랗게 숨을 들이마셨다. 이번에 거양자동차는 모두 여섯 대의 트럭을 출전시킨다. 거금을 들여 유럽의 베스트 드라이버를 스카우트했고, 그 때문에 잡음이 있었지만, 그럭저럭 잘 넘겼다.

세 대만 출전시키는 지경리온이라면…….

류효양은 또다시 숨을 커다랗게 들이마신 뒤에 천천히 내뱉었다. 유해 물질을 전혀 배출하지 않는 트럭을 선보인다더니 세 대의 트럭으로 랠리에 참가할 줄은 몰랐다.

‘자신감 넘치는 것은 좋지만, 자만에 사로잡히면 끝이지.’

천중명을 떠올린 류효양이 입가에 미소를 그려냈다.

가등섭이 한 번만 손을 써 준다면, 그게 아니어도 다섯 대의 트럭이 지경리온자동차의 메인 트럭을 막아서는 동안, 1번 트럭 ‘황금룡’이 앞서 달린다면 승리가 허툰 계산만은 아니었다.

포장되지 않는 땅을 누비고, 과적이 일상화된 중국의 환경을 이겨낸 트럭이었다. 게다가 규정에 어긋나지 않는 선에서 충분하게 보강도 해두었다.

달랑 세 대인 지경리온 트럭이 중간에 멈춰 서기라도 하는 날이면 느긋하게 달려도 거양자동차의 승리였다.

그 덕분에 리온자동차의 기술과 블루크루드 생산기술까지 덤으로 가져온다면?

“흐하하하.”

그는 모처럼 큰소리를 내며 웃었다.

전화위복이라더니, 류효양은 더 말할 나위 없이 창창한 미래를 바라보는 심정이었다.

**

해가 지고 어둠이 완전히 깔린 뒤였다.

호텔에 들어가 씻고 난 천호득과 천상기 역시 조양회의 기자회견과 류효양의 발표를 모두 보았다.

“왜 표정이 그렇게 안 좋아?”

“보고 싶은 사람이 생각나서요.”

“누군데?”

설마 오지은은 아니겠지, 하는 눈으로 천호득이 바라본 뒤였다.

“갑수라고 섬에 있던 동생뻘인 남자인데요. 그냥 그 녀석이 이상하게 마음에 걸려서요.”

호기심이 동한 천호득의 얼굴을 본 천상기가 말을 이었다.

“사실 그 친구가 저를 이렇게 돌려줬거든요.”

그렇게 천상기는 강갑수가 배려해주었던 일들과 그때의 심정을 흐름대로 천호득에게 들려주었다.

“그럼 회장에게 부탁해 봐.”

“나중에요, 아버지.”

“그래, 그럼. 나는 잔다.”

“예, 주무세요.”

피곤한지 눕자마자 천호득은 또 바로 코를 골았다.

‘살아서 다시 보자는 의미였다고?’

혼자 침대 앞의 테이블에 앉은 천상기는 바깥을 바라보며 강갑수를 떠올렸다. 아버지를 보내드리고 울적했는데 마침 적당한 일자리가 나왔다고 했었다. 강갑수 자신에게 어울리는 일이라고도 했다.

‘나 잘산다. 그러니까 꼭 한번 보자. 네게 한 약속대로 이렇게 잘살고 있으니까 진짜 살아서 꼭 한번 보자.’

누가 알려준 것도 아닌데 천상기는 저 다카르 랠리에 강갑수가 합류했다고 확신했다.

‘너 잘못되면 다시 옛날처럼 살 거다. 그럼 나 죽이러 올 거 아냐. 그렇게라도 꼭 볼 거니까 너도 약속 지켜.’

창밖의 어둠을 가득 품은 유리에 강갑수의 까맣고 강인한 얼굴을 그려낸 천상기가 바보처럼 웃었다.

**

새로운 날의 아침에 가장 먼저 천중명을 찾은 것은 양서평과 조양회였다. 접견실에 천중명이 들어서자 평소처럼 두 사람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런 뒤에 의아할 정도로 공손하고 깊숙하게 상체를 숙여 인사했다.

“앞으로 회장님으로 모시겠습니다.”

굳은 표정 옆에서 조양회가 인사의 의미를 밝혔다.

“앉읍시다.”

“감사합니다, 회장님.”

천중명이 앉기를 기다렸다가 자리에 앉은 양서평은 조직의 보스를 대하는 간부처럼 상체마저 꼿꼿하게 세웠다.

부속실 직원이 차를 가져다준 뒤였다.

“양 부총재. 나는 조직의 보스가 아닙니다. 그러니 그런 태도가 나는 불편해요. 대신 계열사 회장으로 생각하고 대할 테니까 우리 좀 더 편안하게 이야기 나눴으면 좋겠습니다.”

양서평이 어색하게 웃은 뒤에 상체를 이리저리 뒤틀었다.

“어쩌면 중국 정부의 지시에 정면으로 대항한 꼴이 됩니다. 그 정도 각오는 하고 온 거죠?”

말을 전해 들은 양서평이 씨익 웃었다. 뒤에 올 처벌 따위 전혀 계산하지 않는 우직한 웃음이 섬뜩한 느낌을 풍겨냈다.

“손을 안 뻗으면 모를까, 이왕 하기로 마음먹었다면 제대로 합시다. 양 부총재는 가등섭을 잡고, 조양회 비서는 대송자동차를 거쳐 거양자동차를 손에 쥐고 경제를 움켜줘.”

무식하기 그지없던 웃음을 그려냈던 양서평이 말을 전해 듣고는 굳은 표정으로 각오를 내비쳤다.

“부탁이 몇 가지 있습니다.”

“말씀하십시오.”

“사업 부분에 조직원이 끼어들 수는 없습니다.”

양서평이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천중명의 지시를 받아들였다.

“내가 요구하는 일을 들어주려면 실제로 목숨을 걸어야 할 정도로 위험할지 모릅니다. 그때 가능하면 도움을 부탁합니다.”

양서평이 재미있는 말을 들었다는 투로 웃었다.

“지시를 내리시면 됩니다. 양서평이 어떤 인간인지는 그때 알게 되실 겁니다.”

그리고는 다부진 얼굴로 말을 꺼냈다.

“내일 출국하지? 통역은 어떻게 할 생각이지?”

“어차피 랠리가 끝나야 대송의 공장과 판매시설 문제도 해결될 테니 제가 모시고 가겠습니다.”

“나쁘지 않겠지. 지경리온 임원들과 인사도 할 테고. 그럼 비행편 준비되는 대로 출국하는 거로 하고, 몇 가지 실무는 유진교 본부장과 의논해.”

“예, 회장님.”

그렇게 이야기를 마친 세 사람이 함께 일어섰다.

**

윤병지는 관련 서류를 모두 검토했고, 한쪽으로 몰아두었다. 내일 천중명 회장을 만나서 최종 결재를 받은 뒤에 발표할 예정이었다.

이제 남은 것은 하나뿐이었다.

그는 숨을 고른 뒤에 휴대 전화기를 들어 번호를 눌렀다.

- 헬로우?

“대송의 윤병지입니다.”

- 예, 회장님. 말씀하십시오.

윤세계를 담당한 미국 측 변호사와의 통화였다.

“그쪽 상황을 알아보려고 전화했습니다.”

- 윤성일 회장이 한국으로 송환해 주지 않을까 하는 미련을 버리지 못해서 아직 아직 결정을 못 내리고 있습니다.

“하아.”

- 대개 처음 구속되면 그런 미련을 갖습니다. 지금 당장은 한국으로 송환 정도의 희망이라도 붙들고 싶은 심정일 겁니다.

“방법이 없겠습니까?”

- 송환은 재판 뒤에 정치적으로 풀어야 할 문제여서 함부로 말을 꺼내기조차 어렵습니다. 유일한 방법이 있다면 미국 대통령을 움직이는 것 정도 되겠습니다.

불가능하다는 말을 변호사는 현실성 없는 비유를 이용해 참신하게 표현해 주었다.

- 한국과 달라서 이곳은 1심의 형이 거의 확정적입니다. 그러니 지금은 윤세계 씨가 죄를 인정하고 형량을 조절하는 게 최선입니다.

“미안하지만, 오늘도 한 번 더 가서 설득해 주세요. 마지막에라도 제대로 된 방법을 택하자고, 힘들겠지만 내가 그렇게 부탁하더라고 전해주십시오. 출장비는 따로 지불하겠습니다.”

- 알겠습니다, 회장님. 그리고 윤성일 회장 쪽에서 연락이 오는데 가능한 한 그 부분은 전하지 않겠습니다. 다녀와서 면담 내용을 이메일로 보내놓겠습니다.

“부탁합니다.”

통화를 마친 윤병지는 책상에 놓인 서류를 바라보며 숨을 커다랗게 내쉬었다.

지금까지 얼마나 함부로 살아왔던 걸까?

그에 대한 객관적인 답이 검찰을 피하려 발버둥 치는 윤성일과 미국 법원에 있는 윤세계가 아닐까 싶었다.

**

오전 회의가 아닌 데도 최만호 대송자동차그룹 회장이 최치국 대송장비 회장과 함께 천중명을 찾았다.

“앉으세요.”

두 사람에게 소파를 권한 천중명은 잠시 대송자동차그룹의 전체적인 분위기를 들었다. 부속실 직원이 세 사람의 앞에 차를 놓아준 다음이었다.

“회장님. 리콜에 관한 전체적인 윤곽이 나왔습니다. 어차피 결재를 위해 올리기는 하겠지만, 그 전에 구두로 먼저 설명 드리는 것이 좋을 것 같아서 찾아뵈었습니다.”

최만호가 돌아보자 최치국이 결재판을 꺼내 천중명의 앞에 놓아주었다.

“최치국 회장이 함께 온 것은 대송장비가 제작하는 부품 때문입니다. 베어링과 고무패킹 같은 부품의 단가를 너무 낮춰놓아서 그 부분의 고장 발생이 상당합니다.”

“천 원을 줄여서 들어오는 수입이 얼마나 되길래 이렇게까지 하죠?”

보고서에 적힌 원가 절감 금액을 확인한 천중명의 질문이었다.

“자동차 제조사의 원가 절감 노력을 탓할 이유는 없습니다. 다만, 밴드사에 목표를 정해주고 그 가격에 맞추라는 지시를 내리면 결국 부품에 문제가 생기게 됩니다.”

“흠.”

“해외에서 제작되는 자동차와 수출 물량은 강판, 도금, 부품을 다르게 사용했습니다. 특히 에어백과 조향장치 같은 안전에 직결된 제품이 가장 큰 문제였습니다.”

최만호의 보고를 들으며 천중명은 해당 자료를 천천히 넘겼다.

“그 외에도 엔진의 금형이 깨지는 현상 등, 문제가 상당해서, 조사된 모든 문제점을 리콜하는 데 대략 7조4천억 원이 소요됩니다.”

이 정도 결재를 올리려면 미리 보고하지 않는 게 오히려 이상한 수준이었다.

“대송자동차에 있는 유보금으로 감당할 수준입니다만, 주가 하락과 신뢰도 하락, 수출 감소 등의 추가적인 문제가 연속해서 발생할 테고, 더불어 재무상태가 급격하게 안 좋아질 수 있습니다.”

최치국은 조심스럽게 천중명과 최만호의 눈치를 살폈다.

이렇게 7조 원이 넘는 돈을 리콜에 사용하겠다는 보고를 올리면 그 임원은 살아남지 못한다. 그게 최치국이 아는 그룹의 생리요, 모습이었다.

“항간에는 리콜에 들어가는 시간과 경비를 줄이는 방법으로 금전적 보상을 한다는 소문도 돌고 있습니다. 실제로 그 방법을 택한다면, 줄어드는 인건비로 대략 2조4천억 원은 절약할 것으로 추산하고 있습니다.”

최만호와 최치국이 지켜보는 앞에서 천중명은 보고서를 천천히 다시 살폈다.

“리콜하세요.”

그런 뒤에 내린 지시를 듣는 순간, 최치국은 천천히 숨을 들이마셨다.

예상은 했지만, 저렇게 단숨에 결정할 줄은 정말 몰랐다.

“돈으로 보상해서 사고를 막을 수 있다면 그렇게 하겠습니다. 그러나 고객의 안전을 담보로 편법을 쓴다면 우리는 앞으로 직원들에게 최선을 다하란 지시를 내릴 수 없습니다.”

고개를 든 천중명이 두 사람을 향해 말을 이었다.

“비용이 더 들더라도 제대로 된 부품을 공급하고, 무엇보다 안전이 최우선인 차를 만들어 주세요. 한 가지 더. 같은 품질의 대송자동차는 세계 어느 곳보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저렴하게 판매되어야 합니다.”

“예, 회장님.”

최만호와 함께 답을 한 최치국은 이를 지그시 깨물었다.

고객에게 최고의 제품을 제공하는 기업, 직원에게 자부심 넘치는 지시를 내릴 수 있는 회사, 그가 평생을 꿈꿔왔던 순간이 눈앞에 펼쳐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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