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23
223. 행동에는 책임도 따르는 법이니까 (2)
리온자동차의 주행 테스트 도로를 내려다보는 메인 통제실에 신상훈, 연구소 연구원들, 그리고 생산 라인의 책임자들이 모였다.
크르르릉.
거친 엔진 소리를 내며 달리기 시작한 트럭이 속도를 높이는 동안, 모여선 이들은 멀리서 달리는 트럭과 바로 앞쪽의 모니터에 찍힌 수치를 번갈아 확인하느라 연신 고개를 들었다 내렸다.
철컹! 크아아앙!
300톤 이상의 화물을 감당하는 트럭이 속도를 높였다.
배기가스가 나오는 곳에 설치한 장치가 연속해서 데이터를 전해주고 있었는데 공기 중의 질소 함량 외에 아직 다른 유해물질은 나오지 않고 있었다.
가벼운 흥분이 데이터의 수치를 지켜보는 이들 사이를 떠돌 때였다.
신상훈이 무전기를 들었다.
“드라이빙 느낌은 어때요? 힘이 달린다거나 처지는 느낌은 없어요?”
띠루룩.
“그런 문제점은 전혀 느껴지지 않습니다.”
연구소장 파크 피터슨이 양손을 움켜쥔 다음이었다.
“속도를 높이세요. 20분입니다.”
띠루룩.
“예.”
신상훈의 지시에 드라이버가 확신에 찬 답을 전했다.
그 직후였다.
크아아아아앙!
이전과 다른 엔진 음을 터트리며 트럭이 확연하게 속도를 높였다.
“우와-.”
유해물질이 전혀 나오지 않는 것을 확인한 연구원들의 탄성이 터져 나왔다.
**
일요일까지 앓고 난 천상기는 월요일부터 다시 굴을 까기 시작했다. 그날을 계기로 강갑수는 천상기가 일을 마치고 나면 함께 허리 깊이의 바다에 들어가 걸었다.
그 단순한 운동에서 천상기는 놀라운 효과를 얻었다. 이틀 뒤부터 거짓말처럼 평소에 걸을 때도 절뚝이지 않았고, 통증도 별반 느끼지 못했다.
“상기야! 야식 먹자!”
강갑수가 지랄을 떨어댄 효과인지 우두머리도 천상기를 받아들여서 지금은 저녁 8시쯤이면 다 함께 모여 야식을 먹는다. 주로 라면이나 국수를 비벼 먹었는데 특이하게 오늘은 수육이었다.
두툼한 돼지고기를 된장, 커피, 마늘을 넣은 물에 푹 삶고, 그 물에 낙지와 문어, 전복을 넣어서 데친 뒤에 푸짐하게 썰었다.
김치도 있었다.
“뭐하냐? 눈치 볼 것 없다. 얼른 먹어.”
넉넉한 권유를 받은 천상기가 젓가락으로 돼지고기와 낙지를 푸짐하게 집어서 왼손으로 받치고는 고개를 젖혀가며 입에 넣었다.
맛 죽이지, 달 동그랗게 빛나며 바다에 길게 부서지지, 모닥불 운치 있게 타오르지, 천국이 따로 있겠나 싶었다.
천상기가 세 번째로 젓가락을 움직여 고기와 전복을 입에 넣었을 때였다.
“상기야. 내일 오전에 갑수 나간다.”
우두머리가 뜻밖의 소식을 전해주었다.
씹던 속도를 뚝 떨어트린 천상기가 여물을 씹는 소처럼 천천히 입을 놀리며 강갑수를 바라보았다.
“일이 생겼어. 한 달 정도 걸릴 것 같은데 그 뒤에 올 수 있으면 올게. 얼른 먹어.”
여기에서 뭐 얼마나 큰 정 들었다고, 사람이 살다 보면 헤어지기도 하고, 또 그러다가 다시 만나고 하는 거지.
수육을 배터지게 먹은 천상기는 봉지 커피를 탄 스테인리스 밥그릇을 들고 언젠가 뛰어내리라고 꼬드겼던 바위에 걸터앉았다.
파도가 잔잔해서 바위 때리는 소리도 없는 밤이었다.
저 바다를 쭉 달리면 육지가 나오고, 그곳에 가면 도시도 있고, 화려한 조명과 호화스러운 삶도 있을 게다.
후루룩.
뜨거워진 스테인리스 그릇을 입에 가져간 천상기가 요란하게 커피를 마신 뒤에 눈가를 닦았다.
씨발. 사람 하나 나간다는데 왜 눈물이 나는 건지. 함께 나가고 싶어서가 아니라 강갑수가 여길 떠난다는 것이 아쉬워 운다는 게 말이나 돼?
후루룩.
커피는 또 왜 이렇게 맛있냐?
“에효-!”
천상기는 바다를 바라보며 기다랗게 한숨을 내쉬었다.
까맣게 탄 얼굴, 그보다 더 검게 탄 목덜미, 거칠어진 손마디, 이게 건강해진 건지 추해진 건지 당최 감도 잡히지 않았다.
“가져가, 이 새끼야!”
그때 뒤편에서 우두머리의 날 선 음성이 들려서 천상기는 어깨를 움찔했다.
“우리가 언제 돈으로 살았냐? 가서 병원비에 보태.”
누가 아픈가?
후루룩.
반쯤 식은 커피를 마시며 천상기는 우두머리가 있는 방향으로 귀를 쫑긋 세웠다.
**
거양자동차의 류효양은 삼합회 강북 책임자 가등섭 앞에 공손한 태도로 마주 앉았다.
호리호리한 체형의 가등섭은 눈이 부리부리했다. 거기에 또 어울리지 않게 큰 코와 날카롭게 뻗친 입술을 지녀서 얼핏 보면 옛날 영화에 나오는 잔인한 성격의 환관을 연상시켰다.
“그러니까.”
음성 역시 그 어딘가를 잘린 남성처럼 묘하게 얇았는데 그 속에 담긴 섬뜩한 느낌이 류효양의 목줄을 움켜쥔 것처럼 거북하게 귀를 파고들었다.
“지경전자의 메모리와 화장품을 얻어온 대신에 한국에 가서 망신을 당하고 왔다?”
“망신이라기보다는 지경그룹 천중명 회장의 성격이 워낙 강해서….”
“그게 망신이 아니다?”
번득 치켜뜬 가등섭의 눈과 묘하게 날이 서 있는 얇은 음성에 류효양은 하던 말을 꿀꺽 삼켰다.
“생각해 보니 망신이었습니다.”
“흥! 그렇게 몇 푼 돈을 벌었답시고, 내 자리를 넘봤다니? 흐호호호! 흐호호호호!”
찌릿찌릿한 느낌의 웃음을 터트렸던 가등섭이 뚝 표정을 자른 뒤에 류효양을 정면으로 바라보았다.
“대송자동차도 그의 손에 넘어갔지?”
“그렇습니다.”
“유해물질을 배출하지 않는 트럭으로 랠리에서 우승하겠다고 발표했고?”
“예, 부총재님.”
앞에 놓인 찻잔을 든 가등섭이 뚜껑을 반쯤만 열어놓은 상태로 마신 뒤에 다시 내려놓았다.
“내일부터 대송자동차의 중국 현지 법인의 생산과 판매를 중단시키겠다.”
류효양이 화들짝 놀란 눈으로 가등섭을 바라보았다.
“그렇게 된다면 지경의 천중명은 생산이 멈춘 공장과 매장 직원들의 급여를 생으로 지불해야 하지. 서비스센터는 말할 것 없이 계속 돌려야 하고.”
이렇게까지 하는 이유가 뭘까?
류효양이 머리를 팽팽 돌릴 때였다.
“거양자동차의 트럭으로 랠리에 참가해.”
생각지도 못했던 가등섭의 지시가 떨어졌다.
“사막을 달리던 트럭이 멈추는 데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 지경리온의 트럭이 멈춰선 그 랠리에서 우리 중국의 기술로 만든 트럭이 가장 먼저 들어오면 어떨 것 같은가?”
듣기에는 솔깃하다만, 그 안에 담긴 내용이야 어디 그런가, 그나저나 왜 이렇게까지 하는 거지?
류효양의 시선에 담긴 의문을 알아챈 것처럼 가등섭은 고개를 끄덕였다.
“대송자동차의 중국 내 생산설비와 판매망을 가져올 생각이다. 어차피 우리와 합작한 기업들이니 지경이 포기한다면 자연스럽게 우리 것이 되지 않나?”
“부총재님. 랠리에 우승한다면 그걸 가져올 수 있습니까?”
“이런!”
1인용 의자의 오른쪽 팔걸이에 몸을 기대고 있던 가등섭이 고개를 저었다.
“우리 땅에서 우리의 자본이 절반이나 들어갔고, 우리 인민이 생산하는 공장이니 당연하게 우리 것이어야 맞지 않나?”
질문에 대한 답치고는 황당한 내용이어서 류효양은 대꾸도 꺼내지 못했다.
“우리는 대송과 계약을 맺었지, 지경그룹과 합작을 했던 게 아니거든. 그러니 허가를 취소할 수 있어. 그러나 대국인 우리가 그런 명분으로만 대송의 시설을 가져오는 것은 곤란하지.”
“예, 부총재님.”
“랠리에 참가한 트럭에 불이라도 나면 좋지 않겠나? 안전에 심각한 문제가 생겨서 드라이버가 사망하면 더 좋고. 지경의 기술을 지켜본 결과, 더는 합작을 유지하기 어려운 수준이라는 명분이면 충분할 것 같은데?”
거북하게 귀를 파고드는 가등섭의 목소리가 류효양을 자꾸만 찍어 누르는 느낌이었다.
‘천중명 회장이 저런 터무니없는 이유를 받아들인다고?’
생각을 들키지 않으려 류효양은 표정과 눈빛 관리에 애썼다.
“우선 내일부터 생산과 영업을 중단할 테고, 만약 유지비를 지원하지 못하겠다고 하면 재산권을 동결한 뒤에 압류하는 절차를 밟겠다.”
“예, 부총재님.”
부리부리한 가등섭의 눈이 답을 요구하고 있어서 류효양은 얼른 고개를 숙였다.
“트럭을 준비하고 참가 신청을 마쳐.”
“그렇게 하겠습니다.”
“오래 살고 싶다면 양서평과 거리를 두는 게 좋아.”
“명심하겠습니다.”
고래 싸움에 낀 새우의 심정으로 류효양은 또다시 고개를 숙였다.
가등섭과 양서평 중 누가 더 무서울까.
자리에서 일어서며 류효양의 머리에 떠오른 질문이었다.
당장 눈앞에 있는 인간이 무섭지.
문을 나서며 떠오른 질문에 대한 답은 그랬다.
“후-.”
당의 명령과 지시가 절대적인 세상에서 기업을 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화평굴기(和平崛起)와 일대일로(一帶一路)의 한 마디에 3만 개가 넘는 기업이 생겨나고, 끝없는 지원을 받는 곳이 중국이었으며, 세계적인 기업으로 성장하더라도 당의 지시 한 번에 사라지는 세상에서 류효양은 힘이 없었다.
류효양은 양서평보다는 가등섭이 조금 더 무서운데, 솔직히 멀리 떨어져 있는 천중명이 가장 두려웠다.
자동차를 생산하는 회사들은 천중명을 모를 수가 없다.
리온자동차를 인수한 후에 대송자동차그룹마저 적대적인 방법으로 움켜쥔 인물이었다.
가등섭의 건물 현관을 나선 류효양은 뿌연 하늘을 바라보았다. 잠시 가려졌다고 해서 태양이 없다고 생각하면 곤란하다. 이 흙먼지가 가라앉거나 바람에 쓸려 가면 찬란하게 빛나는 태양을 이길 것이 세상에 없는 탓이었다.
**
1차 테스트는 완벽한 성공이었다.
크르르릉. 철컹. 크르릉. 끼이익.
상황실 앞에 멈춘 트럭에서 훌쩍 뛰어내린 드라이버가 헬멧을 벗기 무섭게 이쪽을 향해 오른손 엄지를 치켜세웠다.
“와아-아!”
그 직후에 함성이 터져 나왔다.
파크 피터슨이 권투 경기에서 승리한 사람처럼 두 주먹을 위로 치켜들었고, 미션과 그 외 주요 부품을 담당했던 임원들이 운동선수들처럼 손을 맞잡고 함성을 질러댔다.
지경케미컬에서 파견 나온 임원과 직원이 붉어진 눈으로 트럭과 드라이버를 바라보는 옆에서 지경전자의 임원은 직원의 등을 두드려 주고 있었다.
“후-!”
아직 세 번의 테스트가 더 남았지만, 1시간의 주행에서 유해물질이 전혀 나오지 않았고, 출력에 이상이 없었으며, 멈추거나 다른 이상이 발견되지 않았다.
운전을 하다 보면 뒤에서 뭔가 잡아당기는 듯한 거북한 느낌이 드는 현상도 있는데 드라이버가 엄지를 치켜드는 것으로 봐서 그런 일도 없었다.
“총괄사장님!”
뭔가 뭉클해서 아래를 내려다보는 신상훈을 파크 피터슨이 불렀다.
“리온의 기술을 지키면서 늘 이런 날을 꿈꿔왔는데 지경의 기술이…! 내 꿈을 이루어주었습니다.”
신상훈이 자리에서 일어서자 주변에 있던 이들이 모두 시선을 주었다.
“모두 고생 많았습니다. 남은 테스트에서도 최선의 결과가 나오길 희망합니다. 우리, 랠리에서 반드시 우승해서, 커다란 트로피를 함께 듭시다.”
짝짝짝짝짝짝짝짝짝!
지경리온자동차의 1차 테스트를 마친 날이었다.
**
발표는 기습적이었다.
[중국 정부는 지경그룹의 대송자동차 인수와 관련하여 허가와 안전사항을 재점검하기 위해 현지 공장의 생산과 중국 내 판매를 중지시켰습니다.]
심지어 공문 하나 받지 못한 채 현지 공장 책임자의 연락을 통해 내용을 확인했고, 사실은 방송을 통해 확인한 꼴이었다.
[대송자동차와 관련된 허가 사항을 지경그룹에 이전하는 것이 적법한지를 확인하겠다는 중국의 이번 조치가 사실상 지경그룹을 길들이기에 나선 것은 아닌가 하는 의견이 지배적입니다.]
급하게 올라온 유진교와 함께 천중명은 보도 뉴스에 시선을 주었다.
[지경그룹과 중국 현지 공장은 우선 공식발표를 자제하며 진의를 확인하기 위해 애쓰는 모습입니다.]
대강 내용을 들은 천중명은 픽 웃으며 TV의 볼륨을 줄였다.
“정말 죽게 생겼네요.”
“누구를 말씀하십니까?”
“윤성일 회장이죠. 가뜩이나 기회를 엿볼 텐데 저런 소식을 들으면 미쳐 날뛰지 않겠어요?”
말을 마친 천중명은 시간을 확인했다.
오전 9시 15분이었다.
“이런 때 대대적인 리콜을 하게 되면 저쪽에 명분을 주게 됩니다. 결점이 있다고 우리 스스로 시인하는 꼴이니까요. 어쩌면 당분간은 생산이 어려울 수도 있을 테고요.”
“그럼 리콜을 우선 보류하시겠습니까? 그렇지 않아도 주무부서에서 무상 수리 선에서 발표하면 어떻겠느냐는 요구가 계속되고 있었습니다.”
“본부장님.”
“예, 회장님.”
“리콜을 대대적으로, 그리고 엄격하게 시행하세요. 어떤 경우에도, 어떤 이유에서도, 우리는 고객의 안전이 최우선인 자동차를 생산하고 유지 관리할 책임이 있습니다.”
말문이 막힌 사람처럼 멍했던 유진교가 모처럼 뜨거워진 눈으로 고개를 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