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로드 오브 머니-199화 (199/315)

# 199

199. 이왕이면 확실하게 (1)

비록 파벌을 형성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송문철은 지경증권사의 회장으로 2년을 보냈다. 그런 그가 심복이 없다면 말이 안 되는 소리였다.

더불어 최근에 불쑥 나타난 신임회장이 그와 독대했고 그 뒤에 아침 일찍 연달아 본사로 부른 일을 임원들은 모두 안다.

그런 그가 소위 심복 세 명을 회장실로 불렀다.

“내가 작업 하나 할 게 있거든. 일주일간 호텔에서 외부와 연락을 끊어야 하는데 나를 도와줄 사람이 있나?”

증권사 회장이 외부와 연결을 끊고 할 작업이라는 게 소위 작전 말고 뭐가 있겠나.

회장이 다녀갔고, 본사로 부른 뒤에 작전 지시가 내려왔다.

그렇다면 이건 신임회장의 지시로 내려온 작전이었다.

“회장님. 제가 우리 팀원 데리고 들어가겠습니다.”

심복 셋 중 한 명인 최상중 상무가 재빠르게 지원하자 나머지 두 명이 입맛을 다셨다. 주식 거래라면 누가 뭐래도 최상중이 원톱이었다.

“팀원들에게는 비밀로 하고, 현금 줄 테니까 스위트룸 두 개 예약해서, 컴퓨터 전부 새로 세팅하고 거래 프로그램 외에 메신저부터 외부와 연결할 방법을 전부 차단해.”

“맡겨주십시오.”

최상중이 고개를 숙이며 답을 한 다음이었다.

“거기 두 사람은 입 조심해. 이거 말 나가면 수습할 사람 없다. 무슨 뜻인지 알지? 우리 전부 날아가.”

“염려하지 마십시오.”

소위 임원이란 사람이 ‘우리 전부 날아가.’란 말뜻을 모를 수는 없었다.

“최 상무는 바로 일 준비하고.”

“예, 회장님.”

세 사람이 나가자 송문철은 책상으로 걸음을 옮겼다.

“어후!”

그런 뒤에 그는 가슴에 손을 올린 채 커다랗게 숨을 내쉬었다.

세상에, 진짜 대송자동차그룹을 적대적 인수하는 거야?

그 일을 가장 최전방에서 맡아놓고도 송문철은 당최 실감 나지 않았다.

그룹간 적대적 인수합병의 신호탄이 될 수 있었고, 아니면 지경의 독주체제를 구축하는 계기가 되는 사건이었다.

“하아, 진짜! 대송을 적대적으로?”

송문철은 자꾸만 받아들여지지 않는 현실을 혼잣말로 떠들었다.

**

외부로 나갔던 전충호는 3시간 뒤에 돌아왔다.

“확실합니다. 윤만석이라고 강승애에게 당했던 퇴물이 그곳에 있습니다. 천상기의 처방전도 확인했습니다. 오지은이라는 예전 천중명 회장의 여자가 그곳에 있는 것도 분명합니다.”

그는 사진 여러 장을 윤성일의 책상 위로 조심스럽게 내려놓았다.

용인 주택의 모습, 마당의 테이블에 앉은 윤만석, 그리고 갑갑한 얼굴로 걷는 오지은, 그 외에 대원들의 모습이 담긴 사진이었다.

“남부증권의 사건은?”

“정치권에서 워낙 민감하게 덮어서 증거가 별로 없습니다. 특히 남부증권은 당일의 CCTV 기록을 삭제할 정도였습니다.”

“항구에서 있었다던 사건도 그렇게 덮었어?”

“어촌계장이 완전히 틀어쥐었습니다. 어떻게 수습했는지 질문을 슬쩍 건네기 무섭게 횟집에서 쫓겨났답니다.”

“돈으로 바르고 위에서 찍어 눌렀겠지.”

윤성일이 전충호의 보고에 의견을 덧붙였다.

“천상기의 상태는 어때? 그가 다시 경영에 나온다면 문제가 될 수준인가?”

처방전을 살핀 윤성일의 질문이었다.

“약으로 봐서는 피해의식과 그로 인한 공격성이 있는 환자라고 추정했습니다. 경영에 참여하는 문제는 질문하지 못했습니다.”

“피해의식이야 당연히 생기겠지. 이도 저도 다 뺏긴 채 구금됐는데 누군들 그걸 맨 정신으로 견디겠나. 알았다. 일단 나가 있어.”

“예, 회장님.”

전충호가 나가자 윤성일은 노트북을 만져서 내부통신망에 올라온 자료를 살폈다.

대송자동차 그룹은 1년 매출이 100조에 달하는 회사였다.

자동차에 할부금융, 부품 판매업이 걸려 있었고, 부품을 납품하는 공장들의 숫자만 50개가 넘는다.

좋지, 지금은.

그러나 자동차 엔진을 덮은 보호막이 날아가는 것처럼 대송을 둘러싸 주던 주변 환경이 하나씩 바뀌는 것이 문제였다.

100조 원의 매출에서 영업이익이 5조 원 조금 넘는데 그 이익금 중 3조6천억 원이 국내에서 발생한 수익이라는 것이 치명적인 약점이었다.

해외와 차별되는 국내 제품의 가격과 품질도 고민거리였다.

이제는 수입차와 가격마저 대등해져서 경쟁력이 떨어진다.

이런 상황을 빤히 짐작하면서도 지경은 리온을 인수했다.

천호득이라면 몰라도 인터넷에 올라올 정도로 낯간지러운 짓을 해대는 신임회장은 양보와 공생을 모른다.

언제고 자동차의 안전을 외치며 윤성일의 목에 칼을 들이밀지 모르는 위험한 인물이었다.

“크흠.”

윤성일은 입가를 매만지며 스마트폰에 시선을 주었다.

이게 하늘이 준 기회인지, 악마의 꼬드김인지 확신이 서지 않는다. 그렇지만 이제는 결정을 내려야 할 때였다.

마음을 굳힌 그는 스마트폰을 들고서 번호를 눌렀다.

[사랑한다 말해주세요. 정신을 못 차릴 거야.]

당최 저 대기음만 들으면 윤성일이 정신을 못 차릴 지경이었다.

- 회장님. 박승양입니다.

굵직한 대꾸가 있었다.

“천상기 회장을 만나게 해줄 수 있겠소?”

- 일정을 알려주시면 바로 조치하겠습니다. 대신 용인으로 움직이셔야 합니다. 나머지는 제가, 이 박승양이 회장님을 위해 다 알아서 하겠습니다.

하여간, 이 승냥이는 참 상대하기 어렵다.

저러다가 언제 이빨을 들이댈지 몰라서 그렇다.

“내일 점심시간이 적당하겠소.”

- 주소를 보내드릴까요? 아니면 그리 바로 오시겠습니까?

“함께 가면 어떻소?”

- 그럼 내가 11시까지 회장님께 도착하겠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박승양이 말꼬리를 늘이며 윤성일의 관심을 붙들었다.

- 아닙니다. 내일 뵙고 말씀하시지요.

그런 뒤에 그는 또 맥없이 통화를 마쳤다.

얼마를 줄 거냐는 질문을 삼켰으리라.

박승양은 그런 인간이니까.

마음을 굳힌 윤성일은 다시 인터폰에 손을 뻗었다.

“전 실장 들어오라고 해.”

[네, 회장님.]

내일을 준비할 때였다.

**

통화를 마친 박승양은 천중명과 곽대출을 바라보았다.

휴대폰의 볼륨을 있는 대로 키운 후 살짝 귀에서 떼고 한 통화여서 윤성일의 음성을 천중명과 곽대출 모두 고스란히 들었다.

“물었습니다, 회장님.”

천중명을 보며 박승양이 비릿한 미소를 그려냈다.

“멋진 계획이 있습니다.”

그러면서 그는 5분에 걸쳐 생각해둔 건지, 지금 떠오른 건지 모를 계획을 떠들었다.

‘야비해질 자신 있어?’

천호득의 질문이 천중명의 귓가를 맴돌았다.

‘깨끗하게 하는 적대적 인수가 있을 것 같아? 적대적 인수합병은 온갖 방법을 동원해야 하는데.’

냉정한 그의 눈빛도 또렷하게 떠올랐다.

“어떠십니까, 회장님?”

계획을 토해낸 박승양이 궁금한 얼굴로 천중명을 바라보았다.

“박 회장님.”

“아무래도 우리 회장님이 하시기에는 조금 지저분하지요. 예. 그렇지만….”

“좋은데요?”

“좋지요. 좋지만…. 예에?”

기껏 방법을 토해냈던 박승양이 당황한 얼굴로 천중명을 보았다.

“거기에 좀 더 붙이죠. 이왕이면 확실하게 하는 게 좋을 것 같으니까요.”

박승양과 곽대출이 눈을 껌벅이며 천중명을 바라보았다.

**

천호득은 아침을 먹고서 옷을 갈아입었다.

평소와 달리 점잖은 정장에 스카프를 둘렀다.

“어디 봐요. 이러니까 멋지세요. 어딜 가시기에 이렇게 차려입으세요?”

“돈을 좀 빌려볼까 하고.”

재킷을 만져주던 이은명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천호득의 얼굴과 눈을 살폈다.

“왜? 내가 치매라도 왔을까 봐 그래?”

“돈을 빌리신다니까 그렇지요.”

“하여간. 큰애 불러.”

이은명이 서재 문을 열고 시선을 주자 장만섭이 조심스럽게 안으로 들어왔다. 송달순까지 셋이서 저택을 나선 천호득은 곧바로 대기하던 승용차에 올랐다.

“산업은행으로 가자.”

“예, 총수님.”

승용차는 곧바로 출발했다.

**

인터넷은행은 첫날 1조3천억 원의 신용대출을 기록했다.

“이 속도라면 내일 중으로 대출이 모두 소진될 것으로 보입니다.”

유진교가 흥분 반, 염려 반의 얼굴로 내용을 전했다.

“10조 원을 더 만들어서 당분간 대출을 계속하세요. 거래가 편한 은행, 공인인증서가 필요 없고, 사고를 책임지는 이미지를 만드는 데 그 정도 대출은 큰 부담이 아닙니다.”

“그렇게 준비하겠습니다.”

천중명의 지시를 받은 유진교가 몇 가지 계열사의 문제를 의논한 뒤였다.

“그럼 저는 이만 일어나겠습니다.”

“본부장님. 알려드릴 것이 있습니다.”

결재판을 덮은 유진교를 천중명이 붙들었다.

“대송자동차그룹을 적대적으로 인수할 생각입니다.”

그리고 지금까지의 준비과정, 의논들을 순서대로 들려주었다.

설명이 끝났을 때 유진교의 첫 반응은 헛기침이었다.

당혹스럽고, 놀랍고, 또 한편으로는 황당해하던 그의 심정이 헛기침 한 번에 정리된 모양이었다.

입을 가렸던 주먹을 내린 그의 표정은 평소처럼 묵직하고 태연했다.

“아무래도 저는 제 수명을 다 못 채울 모양입니다.”

진지한 얼굴로 하는 농담이어서 천중명에게는 마치 유언처럼 들렸다.

“법무팀은 언제 합류시킬 생각이십니까?”

“증권의 송문철 회장이 1차 검토를 한 부분도 있고, 어차피 첫날이 지나면 대강 알려지지 않을까 싶어서요. 거래 전날 법무팀장에게 알리는 게 어떨까요?”

“아니면 제가 개인적으로 언질을 주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습니다.”

그래도 되겠느냐는 투로 천중명은 시선만 주었다.

“인수 대상 기업이야 어차피 나중에 알려질 테니까 서류 검토를 할 기본적인 시간을 주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습니다.”

“그 부분은 본부장님이 판단해서 하세요.”

“예, 회장님.”

결재판을 바라보던 유진교가 고개를 갸웃하고는 시선을 들었다.

“그렇다면 윤 실장에게는 연락해 두셨습니까?”

“어제 이야기 끝냈습니다.”

“윤성일 회장이 정말 그곳에 나타날 거라고 보십니까? 제가 아는 그분은….”

뭔가 짐작 가는 게 있는 사람처럼 유진교는 말끝을 흐렸다.

“윤세계 양이 망신당한 일에 리온자동차까지 인수하셨으니 윤 회장 성격이라면 충분히 그럴 수 있겠습니다.”

그런 뒤에 그는 씁쓸한 표정으로 생각을 내놓았다.

**

박승양은 짙은 선글라스를 쓴 채 윤성일의 집무실에 나타났다.

선글라스만 썼나?

오른쪽에 배가 불룩하게 나온 가방을 껴안고 있어서 경박하기 그지없는 일수꾼의 모습이었다.

“회장님! 출발하시지요.”

“차라도 한잔하고 갑시다.”

“제가 당뇨를 앓아서요. 아시나? 당뇨? 그런 병을 앓고 있어서요.”

들어서자마자 박승양은 자리에 앉지도 않은 채 윤성일을 재촉했다. 하여간 윤성일이 제공하는 건 물 한 모금도 마시지 않겠다는 투여서 더 붙드는 게 오히려 이상해 보일 참이었다.

“갑시다.”

윤성일은 그 길로 집무실을 나섰다.

부속실의 직원 일곱 명이 일제히 몸을 일으켰고, 수행비서 셋이 그 뒤를 따랐다.

전용 엘리베이터야 윤성일도 당연히 있었다.

비서가 붙들고 있던 엘리베이터에 오른 윤성일은 박승양이 왼손에 끼고 있는 가방으로 시선을 주었다.

툭툭.

“이게 오늘 그 양반을 보는 데 사용하는 요금입니다. 아시죠? 관람료? 뭐 그런 거.”

더 입을 열게 했다가는 비서들 앞에서 망신만 사는 꼴이라 윤성일은 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윤 실장도 불쌍하지요. 여기 손목, 발목을 날렸거든요. 그런 양반을 이제는 문지기로 쓰고 있으니 결과가 좋을 리가 있겠습니까? 하여간 베풀어야 하는데 참 짜요. 짜! 소금!”

윤성일의 처지를 돕는 것처럼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다.

앞쪽의 전용 통로를 통해 빠져나간 윤성일은 기다리던 승용차에 박승양과 함께 몸을 실었다.

부으으응.

목적지나 주소를 묻지도 않았다.

그런데도 승용차는 바로 출발했다.

이미 어디로 가야 하는지 알고 있다는 뜻이었다.

박승양은 서울이 처음인 사람처럼 차장 밖을 두리번거렸다.

그러면서 짙은 선글라스에 가려진 눈을 돌려 룸미러를 노려보았다.

이런 날 일반 운전기사가 운전하지 않는다.

분명 전충호 같은 인물이 나선 것일 테고, 그렇다면 아차하는 순간에 허세직처럼 잡아먹힌다.

박승양은 창밖을 보던 시선을 앞으로 돌리며 등받이에 등을 기댔다.

“날씨 좋네요. 날씨.”

윤성일은 대꾸가 없었다.

“거 뭐더라? 천중명 회장이 뭐 섬뜩한 거 준비한다던데?”

그러나 박승양이 다음에 떠벌인 말에 윤성일의 고개가 슬쩍 돌아왔다.

“중국하고 천중명 회장하고 어떻게 엮였는지 혹시 아시나요? 그거 잘 이용하면 단숨에 날려버리겠던데?”

“중국이라고 하셨소?”

“푸하하하하! 내가 지난번에 남부증권에서 하마터면 캑! 이런 꼴을 당할 뻔하면서 알아봤지 뭡니까. 그쪽이 비밀리에 모이는 모양입니다. 삼합회! 아시나? 중국 조직? 세계적인? 거기 넘버 쓰리랍니다.”

엄지와 새끼손가락을 접은 박승양이 손가락 세 개를 길게 펴서 윤성일에게 보여주었다.

“그 모임에 모델과 연예인이 참석한답니다. 약을 슬쩍? 신나서 즐기는 틈에 천상기 회장이 똬악! 카메라 플래시 팍팍팍! 그동안 벌어진 일 폭로! 삼합회! 마약! 게임 끝!”

박승양의 선글라스에 떠오른 윤성일의 얼굴에서 탐욕이 강렬하게 빛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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