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로드 오브 머니-184화 (184/315)

# 184

184. 우리가 해결하면 되지 (2)

그룹 비서실과 홍보실로 언론사의 문의가 쏟아지고 있어서 천중명의 행보에 관심이 쏠릴 수밖에 없었다.

천중명은 지하 주차장으로 움직여 곽대출이 준비한 차에 올라 본사 건물을 나섰다.

“오전 내내 일반 전화는 아예 불통이라고 생각할 정도였어, 회장님.”

“손도운 개발자가 일부러 그런 것도 아니고 어쩌겠냐.”

지하 주차장을 빠져나오자 건물의 입구에서 뉴스를 촬영하고 있는 기자와 방송카메라가 보였다.

“용인은 왜 가셔?”

기자들의 눈을 피하자 편해진 자세로 핸들을 잡은 곽대출이 질문을 건넸다.

설명이 길 것도 없었다.

천중명은 과거에 있었던 일을 설명해주었다.

“그러니까 죽은 놈이 천봉서, 천상기와 짜고 그랬다는 거 아냐?”

“혼자서 뭘 결정하고 해낼 강단은 없었거든. 오늘 기계를 분해해 보면 어떤 형태로든 결과가 나올 거고, 천상기가 뭔가를 알고 있다면 왜 기계가 미국에서 죽었다는 천수아의 집에 있었는지 알게 되겠지.”

“후-. 뭔지는 모르겠지만 시원하게 뚫렸으면 좋겠네.”

곽대출의 대꾸가 바로 천중명의 심정이었다.

“어둠은?”

“아직. 나도 마음의 준비는 했는데 여태 뭔가 없는 걸 보면 그냥 넘어가는 거 같지? 커버를 벗겨내는 바람에 그런 능력이 없어졌는지도 모르고.”

승용차가 도심을 벗어나면서 속도를 높이고 있었다.

급한 결제를 마쳐놓아서 마음이 그나마 홀가분했다.

지이이잉. 지이이잉.

용인으로 향하는 천중명의 휴대 전화기가 울었다.

“여보세요?”

- 총수님께서 점심 먹자고 부르셔서 백화점 가요. 떡국 드시고 싶으시대요.

“어쩌지? 난 용인으로 향하는 길인데?”

- 나만 부르신 거 같아요. 오후에 시간 내라고 하신 것도 그렇고요. 중명 씨.

허선영이 뭔가 결심한 음성으로 천중명을 불렀다.

- 나, 이번만 말할게요. 중명 씨, 아버지 일로 힘들게 해서 미안해요. 염치없지만, 꿋꿋하게 버텨볼게요.

“고마워.”

곽대출이 힐끔 천중명을 바라보았다.

- 왜 중명 씨가 그래요. 후. 아무튼, 나 자신감 가득 채워서 들어갈게요.

“그래.”

통화를 마친 천중명은 곽대출에게 허선영의 각오를 간단하게 알려주었다.

이런 아픈 이야기에 대꾸할 말이 뭐 있겠나.

곽대출은 아쉬운 얼굴로 입맛만 다셨다.

**

손도운은 에어 공구를 놔두고 볼트를 일일이 렌치를 이용해 조심스럽게 풀었다.

그렇게 풀어낸 볼트를 순서대로 늘어놓는 것은 아예 기본 중의 기본이었다.

끼르륵. 끼륵. 끼륵.

후배 박삼종이 옆에서 볼트를 함께 풀어내고 있었다.

오전에 있었던 소란을 알고 나서는 절대 비밀을 지키겠다는 다짐을 단단히 받아두었다.

아래의 볼트를 풀었고, 다시 중간, 그리고 위의 볼트를 순서대로 풀어낸 손도운과 박삼종은 옆을 감싼 거대한 커버를 둘이 들었다.

끄득! 끄드득!

이전에도 한 번 검토했었다고 들었다.

누군가 분해했을 거라 생각했고, 옆에 있는 박삼종이 대강의 원리를 알고 있는 터여서 큰 부담은 없었다.

커버를 벗겨낸 다음이었다.

“우와.”

전기선을 연결한 백열전구로 안을 비춘 박삼종이 감탄사를 쏟아냈다.

식빵 크기의 타원형 탱크 다섯 개 있었는데 그것들이 작은 관을 통해 여러 가지 장치들과 복잡하게 연결돼 있었다.

그 외에 둥그런 회전판 세 개를 벨트와 연결해 놓았는데 손도운이 당장 용도를 알기는 어려웠다.

이 기계를 만든 이는 어떤 생각을 했을까?

미라클을 개발한 직후의 손도운과 다를 바 없이 사업계획서와 이 기계를 들고 이곳저곳을 찾아다녔을 거다.

오늘 손도운이 이렇게 분해하게 된 것을 보면, 성태환이란 개발자는 이 기계로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한 채 불우하게 생을 마감했을 확률이 높았다.

대개 개발자들이 그런 것처럼 말이다.

‘만약 이퓨얼을 20년 전에 개발하신 거라면 알아볼 사람이 없었을 것 같네요. 이렇게 제게 왔습니다. 조심해서 살피고, 개발하실 때의 노력과 소망이 헛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 알아보겠습니다.’

손도운은 묘하게 울리는 감동을 누르며 휴대 전화기를 들어 내부의 모습을 담았다.

“어때? 알 수 있겠어?”

“대강은요.”

휴대 전화기를 내린 손도운의 질문에 박삼종이 답했다.

“이 아래를 막아놨네요. 이 관을 통해서 물을 공급받을 거예요. 이게 1번 탱크일 텐데 정수기 역할을 하고, 2번 탱크로 넘어와서 수소를 추출한 뒤에 3번, 여기에 있는 이산화탄소와 결합해서 4번으로 넘어가는 거죠.”

“그럼 여기 5번은?”

“초창기 모델에서 개량한 것 같은데 그걸 잘 모르겠어요. 전에는 분명 탱크가 네 개밖에 없었거든요. 이 뒤로 엔진이 있을 것 같은데요? 안쪽에 공간이 그만큼 있잖아요.”

박삼종은 정신이 완전히 팔린 사람처럼 기계에서 시선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두 가지를 해결해야 했어요. 가장 큰 문제는 처음 구동하고 난 뒤에 어떻게 자체적으로 이 기계를 계속 돌리느냐였는데, 그 해결책으로 아예 엔진을 내부에 탑재한 모양이네요.”

장갑을 벗은 박삼종이 식빵 크기의 1번 탱크를 조심스럽게 만졌다.

“원래보다 커진 것도 아예 이퓨얼로 방향을 틀면서 그에 맞는 엔진을 만드느라 그런 모양인데요.”

“두 번째 해결해야 하는 문제는 뭐였어?”

“자동차 실린더의 문제와 비슷했어요. 고온, 압축, 그 상태에서 분리한 수소를 배기가스처럼 빼내는 거요. 그때 폭발이 꽤 있었어요.”

박삼종의 설명을 들은 손도운이 신음처럼 한숨을 내쉬었다.

“자동차 실린더를 그대로 쓴다고 해도 냉각을 고민해야 했는데 추출한 수소를 바로 이산화탄소와 적정비율로 계속 혼합해야 하니까 쉽지 않았거든요.”

그 당시가 떠올랐는지 박삼종이 먹먹한 눈으로 기계를 바라보았다.

“선생님이 마지막이라고 내부를 혼자 조립하셨는데 그 기계의 폭발이 평소와 전혀 달랐어요. 임신 중이던 사모님이 크게 다치셨고, 저도 그 뒤로 작업실을 나왔습니다.”

성태환을 떠올린 것처럼 박삼종은 쉽게 움직이지 못했다.

처음 기계를 보았을 때의 놀라움과 달리 막상 커버를 열자 눌러두었던 당시의 감회가 피어오르는 모양이었다.

“5번 탱크에 뭔가 비밀이 있겠다.”

“그럴 것 같죠? 앞에서 조사했는데 시장성이 없다고 했었다면서요?”

“우리가 해결하면 되지.”

적당한 말로 박삼종을 다독인 손도운이 연장을 들고 움직였다. 반대쪽 커버를 벗겨볼 생각이었다.

**

윤만석과의 통화를 마친 천중명은 곽대출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점심 먹고 가자.”

“마음 급할 텐데 왜 그러셔? 나 때문이면 그냥 가.”

“천상기에게 뭘 물어보려고 한다니까 윤 실장이 해준 조언이야. 점심 먹은 뒤에 약을 먹는데 비몽사몽 할 때 질문하라고.”

“그런 방법이 있었네!”

대꾸를 쏟아낸 곽대출이 자신 있게 앞쪽에 있는 가게를 가리켰다.

“저기로 갑니다, 회장님아.”

“그래.”

곽대출이 뜨락이라는 버섯 모양의 지붕을 한 돌솥밥 집을 가리켰다. 주차장에 차를 세운 곽대출이 안내하는 것처럼 걸어서 안으로 들어갔다.

“우리 전복 영양밥 두 개랑 게장, 파전 주세요.”

곽대출은 이미 이곳을 꽤 방문해 본 모양인지 주문에 거침이 없었다.

“주 과장하고 데이트 코스야. 여기가.”

의심스러운 눈초리의 천중명을 향해 곽대출이 시원하게 답을 내놓았다.

“언제고 회장님, 선영 사모님, 주 과장하고 나, 이렇게 넷이서 여행이라도 하루 다녀오고 싶은데 어렵겠지?”

“너야 그렇다 쳐도 주 과장이 불편하지 않겠냐? 중명 씨, 이렇게 부르라고 한들 그러기도 힘들 거고.”

그런 장면을 상상했는지 곽대출이 킬킬거리며 웃었다.

잠시 후, 나온 음식들은 정말 좋았다.

특히, 파전이 이렇게나 맛있는 음식이었나 싶을 정도여서 천중명도 잠시 걱정을 놓고 정말이지 마음껏 먹었다.

식사를 마치고도 아직 30분 정도의 여유가 있는 터라, 식사를 마친 천중명은 곽대출의 데이트 코스를 따라 근처의 커피전문점으로 자리를 옮겼다.

저수지를 바라보며 커피를 앞에 두었고, 담배도 입에 물었다.

오후 1시를 10분쯤 남겨둔 시간이었다.

“기분이 어떠셔?”

“뭐가?”

담뱃재를 털어낸 곽대출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실종된 아버지의 유품일 수도 있잖아. 그런 기계를 분석하는 거니까 혹시 마음이 힘들지는 않을까 싶은 거지.”

“별로.”

천중명은 바로 고개를 저었다.

“내가 그 입장이라면 어땠을까 싶다. 너라면 어떻게 할래? 주 과장이 폭발로 다쳤어. 그래서 누군가 지켜줘야 해. 그런데 개발품을 성공시키겠답시고 전혀 돌보지 않는 거야.”

천중명은 냉정한 얼굴로 대꾸를 꺼냈다.

“총수님과 윤 실장이 얽혀 있지 않았다면 오늘 분해해 본 뒤에 부숴버렸을지도 몰라. 저 기계 때문에 적어도 두 사람은 죽은 거잖냐. 우리 어머니, 윤 실장 아들, 거기에 추가하자면 천수아, 그리고 개발한 양반.”

천중명은 끝까지 아버지란 호칭을 꺼내지 않았고, 곽대출은 그걸 얼추 이해하는 얼굴이었다.

어머니가 병원에서 외롭게 죽었다는 소식을 전해준 것이 곽대출이었으며, 천중명과 단둘이 장례를 치른 장본인이어서 그런 모양이었다.

“천수아는 어떤 관계인 거지?”

“물어보면 알겠지. 전에 천봉서와 천상기가 천수아를 죽였다고 했었거든. 총수님이 만약 그때의 독기를 지금도 지니고 있었다면 나랑 어떤 모습일지 상상도 안 된다.”

담배를 끈 천중명은 커피를 마셨다.

몸이 바뀐 뒤로 천봉서가 죽었고, 윤만석이 약을 쓴 것을 계기로 천호득이 꺾였다. 그 뒤로 삽시간에 여기까지 달려오더니 이제는 느닷없이 어둠을 만들어냈던 기계가 나타난 꼴이었다.

그것도 이전에 죽은 두 사람, 윤만석의 아들과 천수아의 일을 엮어서 말이다.

“가자.”

“예, 회장님.”

둘은 차에 올라타서 천상기가 있는 집으로 향했다.

구불구불한 도로, 풀, 야산, 뜬금없이 나타나는 식당들을 바라보며 천중명은 최근에 벌어졌던 일들을 하나씩 떠올렸다.

어색하기만 했던 회장이란 직책과 일상이 어느 틈에 몸에 꼭 맞는 옷처럼 자연스러워졌다.

좋지. 지경그룹 회장.

고작 하루 주가가 상한가를 기록했다는 이유로 주식 평가 금액이 1조 원씩 불어나고.

원하면 연예인과 잠자리도 가능하고, 10억 원이 넘는다는 자동차쯤 가볍게 주문할 수 있는 능력 있는 데다, 마음에 드는 직원을 좋은 자리, 높은 위치에 꽂아줄 힘도 있으니까.

그것뿐이겠나.

“거양자동차와 기술 협력해.”하는 한 마디로 양서평과 류효양의 극진한 대접 속에서 중국을 돌아보고 올 수도 있다.

막말로 기술협력 자금을 3조 원으로 할 테니 2조 원은 비자금으로 준비하라고 해도 류효양은 그 요구를 들어주고도 남는 상황이었다.

“그래서?”

“왜, 회장님아? 뭐?”

천중명이 뱉어낸 혼잣말에 곽대출이 얼른 고개를 돌렸다.

“그냥! 먹지도 못할 돈 때문에 참 억울하게들 산다 싶어서 그렇다. 가족들과 좀 잘 먹고 살자고 아등바등 버는 거 누가 뭐라냐. 그런데 500조 원씩 통장에 꽂아놓고도 눈이 벌게서 돈, 돈 하는 건 아니지 않냐?”

“에이, 꼴통 회장 아니랄까 봐서.”

“뭐, 인마?”

별거 아닌 말로 둘이 킬킬 웃었고, 그 길의 끝에서 용인의 주택이 승용차 앞에 나타났다.

천중명이 차에서 내리자 기다렸다는 것처럼 윤만석이 현관을 나섰다.

“오셨습니까?”

“예. 바로 만나도 될까요?”

“약을 먹은 지 한 시간 내외가 가장 효과가 좋습니다. 지금 보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답을 하는 윤만석의 눈치가 이상했다.

“혹시 다른 약을 썼습니까?”

“생명에는 지장 없습니다.”

역시! 천중명은 의아한 얼굴로 윤만석을 보았다.

“왜 그렇게까지 하신 거죠?”

“죽은 내 아들놈과 연관이 있는지 알아봐 주셨으면 합니다.”

“그런 건 직접 물어봐도 되는 일이잖습니까?”

“회장님께서 밝혀주십시오. 기계에 숨겨진 비밀, 혹시 모를 둘째 형님의 개입까지요. 그게 좋을 것 같습니다.”

현관 앞에서 숨도 쉬지 않은 채 오간 대화의 끝에서 천중명은 나직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하나뿐인 그의 눈에 담긴 염려를 알 것 같아서였다.

아들의 죽음에 어떤 식으로든 천상기가 연관되어 있다면 그 분노를 누를 자신이 없어서 물러서는 눈빛이었다.

윤만석과 고갯짓으로 인사한 곽대출이 천중명을 따라 거실로 들어와서는 천상기의 방문 앞에 섰다.

천중명은 곧장 방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깔끔했다.

정면에 책상, 오른쪽에 침대, 왼쪽 공간에 작은 장과 휠체어, 침대 옆의 의자, 그리고 그 모든 것보다 햇볕이 잘 드는 방에서 풍기는 상쾌한 냄새가 좋았다.

그러나 거기까지였다.

천중명이 침대 옆의 의자에 앉았을 때, 부은 것처럼 볼이 퉁퉁한 천상기에게서 풍기는 눅눅한 홀아비 냄새가 좋았던 방의 느낌을 단숨에 짓밟았다.

침대에 누운 천상기가 졸음이 가득한 눈을 옆으로 돌렸다.

몸 안의 기운을 모조리 빼낸 것처럼 지친 얼굴이었다.

베개에 눌린 머리, 입가에 고인 침, 그리고 생기를 잃어버린 눈으로 천상기는 천중명을 보았다.

“이천의 냉동창고와 지경에 들여오려던 기계 있지?”

천상기는 말귀를 이해하지 못한 얼굴이었다.

“그것 때문에 나한테 공장에 불 지르라고 시켰잖아.”

“그게 왜?”

천상기의 답을 들은 천중명은 천천히 숨을 들이마셨다.

이 인간은 확실히 그 일을 알고 있었다.

“그 기계가 왜 안 들어오지?”

“흥.”

힘 빠진 상태에서도 천상기는 천중명을 향해 코웃음을 던졌다.

“기계가 왜 안 들어오냐고?”

“왜 그걸 나한테 물어.”

겨우 한 마디를 뱉어낸 천상기가 힘겹게 눈꺼풀을 움직인 뒤에 시선을 천장으로 돌렸다.

“그럼 그걸 지금 누구에게 물어봐. 그러니까 솔직하게 털어놔. 기계 왜 안 들어와?”

“확실히…, 수상해.”

이 인간이 지금 뭐라는 거지?

천상기는 힘겨운 얼굴을 하고도 입술 끝만 움직여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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