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0
140. 경고를 해줘야 하지 않겠습니까? (4)
판도를 든 남자와 곽대출의 싸움은 살벌했다.
쉑! 쉑쉑! 쉑! 쉐에엑!
무술을 정식으로 배웠구나 싶을 정도로 남자의 판도를 휘두르는 솜씨는 매서웠다.
휙! 휙휙! 휙!
그러나 상대 역시 만만치 않은 도깨비 출신 곽대출이었다.
날카롭게 움직이는 판도 사이로 곽대출은 상체를 불쑥 들이밀었다가 뒤로 젖혔고, 그럴 때마다 구부린 엄지로 조직원의 눈을 노렸다.
쉑! 쉑쉑쉑쉑쉑쉑!
빗발치는 것처럼 판도가 떨어져 내리자,
휘익! 터억!
뒤로 밀리던 곽대출이 책상을 짚고 몸을 띄웠고,
쉐에에엑!
그런 곽대출의 등을 노리고 조직원이 거세게 판도를 내리찍었다.
콰작!
책상에 판도가 박힌 순간이었다.
책상 건너편에 내려선 곽대출이 마치 스프링을 발에 매단 사람처럼 그대로 튀어 올랐다.
콰악! 퍽! 퍼버벅!
판도를 뽑기는 늦었다.
뒤로 물러난 조직원과 곽대출이 마침내 맨손으로 붙었다.
조직원은 확실히 무술을 익힌 동작을 펼쳤는데, 곽대출은 또 그런 남자를 무식할 정도로 우직하게 따라붙었다.
곽대출의 어깨와 등, 옆구리가 흥건할 정도로 핏물이 배어 나왔고, 조직원은 푹 팬 눈언저리와 볼, 목덜미에서 피를 줄줄 흘리고 있었다.
터억!
뒤로 밀리던 남자의 등이 벽에 닿는 순간,
와락!
곽대출이 무섭게 달려들었고,
터억!
그 짧은 틈을 노리고 조직원이 곽대출의 발목을 옆으로 걷어찼다.
휘청.
발목이 걸린 곽대출의 몸이 옆으로 기우는 순간, 조직원의 주먹이 매섭게 날았다.
휘익! 와락!
기울어지는 상태에서도 곽대출은 팔꿈치를 거세게 휘둘렀다.
퍼억! 콰작!
곽대출은 명치를 정통으로 맞았고, 조직원은 목덜미를 팔꿈치에 제대로 찍혔다.
그나마 팔꿈치로 턱을 갈긴 반동으로 곽대출이 몸을 세운 것이 멋졌다.
두 사람 모두 고통을 이기기 위해 인상을 찌푸리면서 다시 주먹을 날렸다.
퍼억!
상체를 비튼 곽대출은 옆구리를 맞았고,
콰자작!
조직원은 또다시 왼쪽 턱을 제대로 얻어맞았다.
휘처-엉!
벽에 기대지 않았다면 조직원은 분명 뒤로 자빠졌을 게 분명했다.
휘익! 콰작! 휙! 콰작!
그런 조직원의 턱을 곽대출은 두 번이나 더 제대로 갈겼다.
휘이익! 털썩!
결국, 판도를 휘두르던 조직원이 옆으로 쓰러졌고, 그 바로 뒤에 경찰차의 사이렌 소리가 요란하게 들려왔다.
“허억! 허억!”
그런데도 곽대출은 넘어진 조직원의 상체를 깔고 앉았다.
“뭐야?”
남은 조직원이 달려드는 것을 이번엔 서상현과 유비캅 직원이 막아섰다.
“은혜도 따따블!”
꽈악!
곽대출은 겨우 정신을 차리는 조직원의 얼굴을 양손으로 다부지게 움켜쥐었다.
“원수도 따따블!”
콱! 콰악!
“끄으윽! 끄윽!”
곽대출의 양손 엄지가 조직원의 두 눈을 파고들면서 핏물이 주륵 올라왔다가 눈물처럼 관자놀이를 타고 귀 위로 흘러내렸다.
“도깨비가 모시는 회장님을 노린 죄도 따따블!”
꽈아악! 꽈악!
“끄아아아-!”
비명만큼이나 곽대출에게 깔린 남자의 모습 역시 처절했다.
누구도 입을 열지 못하는 사무실에서 곽대출이 천천히 일어섰고, 버티고 있던 두 명의 조직원을 향해 몸을 돌렸다.
“우리가 경찰을 해결하고, 돌아가겠다. 우리 형님과 천중명 회장이 합의한 내용이다.”
그사이 문자를 받았는지 남은 조직원 한 명이 말을 던지고는 양쪽 눈에서 피를 철철 흘린 채 누워 신음하는 바닥의 남자를 보았다.
황채산의 귀를 멋지게 잘랐던 그는 한국에 날아와서 결국 곽대출에게 두 눈을 잃었고, 더는 활동할 수 없는 몸이 되었다.
“얼른 데리고 꺼져.”
말을 뱉어낸 곽대출이 주머니를 뒤지자, 뒤에 있던 유비캅 직원이 얼른 담배를 권해 주었다.
찰칵.
“후우-.”
피가 묻은 손으로 담배를 잡은 곽대출이 연기를 길게 내뿜은 다음이었다.
“우리 선배님들에게서 서울구경이라는 전설적인 무용담을 들은 적은 있는데 도깨비는 눈알을 파내는 훈련이 있었나 봅니다.”
곁으로 다가온 서상현이 바닥에 널브러진 조직원들을 돌아보며 감탄처럼 건넨 말이었다.
“김일성 눈깔 빼기라고 들어봤습니까?”
“예전에 아이들이 놀 때 하는 우스갯소리 아니었습니까?”
“북파공작원과 첩보부대 도깨비들의 훈련에서 나온 말입니다.”
답을 한 곽대출은 피가 말라붙기 시작하는 손을 움직여 담배를 입으로 가져갔다.
**
난리가 따로 없었다.
어떻게 처리했는지 구급차가 날아와 죽은 놈과 움직이지 못하는 놈들을 태웠고, 그나마 움직이는 놈들이 승용차와 승합차로 떠나도록 경찰은 주변을 정리하는 수준에서 일을 마쳤다.
천중명과 장만섭은 급하게 응급치료를 마쳤다.
갈라지고 찢어진 옷을 벗었는데 장만섭은 자고 갈지 몰라 준비한 옷이 있었고, 천중명은 이은명이 준비했던 천호득의 옷 중에서 그나마 큰 걸 골라 입었다.
쏴아아아-. 쏴아아아아-.
밀려온 파도가 길게 늘어진 뒤에 모래 사이로 사라지는 모습을 천호득은 휠체어에 앉아 오래도록 바라보고 있었다.
해가 기우는 시간이었다.
바닷가의 노을이 천호득을 붉게 물들였을 때, 대강 치료를 마친 천중명은 천호득의 옷을 입고 그의 뒤로 움직였다.
저벅. 저벅. 저벅. 저벅.
작은 백사장이 천중명의 걸음을 소리로 천호득에게 알려주고 있었다.
“그렇게 치료해서 되겠어?”
“예.”
시선도 돌리지 않은 천호득의 질문에 천중명이 무겁게 답을 했다.
붉고 커다란 태양이 구름과 하늘과 바다와 백사장과 천호득을 핏빛으로 물들여 놓은 것을 보며 천중명은 나직하게 숨을 내쉬었다.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더 속이지 말자.
솔직하게 털어놓고, 홀가분하게 떠나자.
처음에 내 것이 아니었던 것처럼 아무것도 욕심내지 말고.
“놀라서 그런지 어깨와 목이 아파.”
그런데 천중명의 말을 못 들었는지 천호득은 엉뚱한 말을 꺼냈다.
“드릴 말씀이….”
“목하고 어깨가 아프다니까.”
혹시 못 들었나 해서 다시 꺼낸 천중명의 말을 천호득이 뚝 잘랐다.
“안 주물러 줘?”
천중명은 한숨을 길게 내쉰 뒤에 천호득에게 바싹 다가가서 그의 목과 어깨를 주물렀다.
그리고 알았다.
그가 울고 있었다는 것을.
멀리 이어진 바다를 향해 앉은 그의 눈가와 볼이 눈물에 젖어 있었다.
이런 양반에게 당장 아픈 말을 꺼낼 필요 있겠나.
조금 진정된 뒤에 하지.
꾹. 꾹. 꾹. 꾹.
천중명은 말없이 천호득의 목과 어깨를 주물렀다.
“아들이 넷이었다가 둘이 된 건지, 셋에서 둘이 된 건지는 몰라.”
파도 소리에 섞여서 천호득의 힘 빠진 음성이 들렸다.
“평창동의 마당에서도 그랬고, 오늘도 그렇고, 난 그냥 네가 내 잘난 아들이었으면 좋겠어. 더는 잃고 싶지 않아. 아무도.”
울컥 올라온 감정을 천중명이 꿀꺽 삼킬 때였다.
덜덜 떨리는 손을 가슴 위로 든 천호득이 어깨를 눌러주는 천중명의 손을 잡았다.
“쓸데없는 생각은 잊어. 누가 뭐래도 넌 내 아들이야.”
“저는….”
“천중명. 내 막내아들. 그게 싫어? 내가 아버지인 게 싫은데 망치와 칼을 맞아가면서 뭐 하러 지켰어?”
바람에 탄 모래가 눈에 들어가서 그랬을까.
감정을 삼키는 천중명의 눈이 뿌옇게 변하더니 천호득의 뒷모습과 바다와 하늘이 하나로 뭉친 것처럼 보였다.
“내가 또 아들을 잃게 할 거야?”
“죄송합니다.”
“뭐가? 아버지를 목숨 걸고 지켜준 아들이 잘못한 게 뭐가 있어?”
천호득의 떨리는 손이 천중명의 손을 좀 더 꼭 잡았다.
“아버지 맞지? 내가?”
“그래도 되겠습니까?”
“무슨 미친 소리야!”
천호득의 타박이 얼마나 고마웠는지 모른다.
“아버지? 맞지?”
“예.”
“아버지? 맞지?”
“예, 아버지.”
답을 들은 천호득이 아이를 다독이듯 천중명의 손을 두어 번 다독인 뒤에 손을 내렸다.
“엄마는?”
“누워 계세요.”
“많이 놀라기도 했겠지.”
둘이서 잠시 그렇게 있었다.
천호득도, 그의 목과 어깨를 주무르는 천중명도 감정이 많이 가라앉았다.
“아버지가 소원이 하나 있어.”
“뭔데 그러세요?”
바다에서 던진 비린내 섞인 바람이 두 사람을 쓸고 부서진 횟집을 구경하러 달려가는 틈에서 오간 대화였다.
“손자나 손녀 안아보고 싶어.”
천중명은 픽 웃고 말았다.
“그게 그렇게 웃을 일이야?”
확실히 천호득은 독하고 강한 사람이었다.
그는 그사이 슬픔을 모두 털어낸 눈치였다.
“돈을 버는 일이나 살아간다는 건 늘 이래. 오늘처럼 눈에 보이는 칼이나 도끼면 차라리 속이나 편하지. 뒤에서 날아오는 건 찔리기 직전까지 알기도 어려워.”
의미심장한 말을 건넨 천호득이 천천히 주름 많은 목을 돌려 천중명을 바라보았다.
“형을 살려줘.”
“그건 약속드렸잖습니까?”
“형의 주변을 정리해. 상기 주변에 있는 쓰레기들을 정리하지 않으면 회장이 손쓰지 않아도 형은 죽어.”
천호득의 눈을 보며 천중명은 먼저 나직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말끔하게 정리하겠습니다. 그리고 30년이든, 40년이든, 형이 가족으로 돌아오게 하겠습니다.”
“흐헤헤헤.”
힘 빠진 음성이었지만, 천호득은 특유의 웃음을 터트렸다.
붉게 물든 가진항과 참 잘 어울리는 웃음이었다.
**
억울함을 억누르며 박승양은 인상을 심하게 찌푸렸다.
그가 든든한 배경으로 생각하던 정치인과의 통화가 문제였다.
- 사채업자에게 앙심을 품은 조직폭력배의 습격으로 끝내기로 했으니 우리 박 회장이 양보해 주시오.
“그래야지요.”
- 허허. 그러시면 내가 우리 박 회장 곤란할 적에 크게 힘을 쓰겠습니다.
“들어가십시오.”
통화를 마친 박승양은 난장판이 된 사무실을 쭉 둘러보았다.
“뭐가 넷이 왔는데 한 명만 저렇게 깨졌어? 자네는 정체가 뭐야? 깡패야?”
“지경그룹 그룹발전본부 이사 곽대출입니다.”
구조대원이 감아주는 붕대에 어깨를 맡긴 곽대출의 답이 있었다.
“그룹발전본부 곽대출 이사? 그럼 혹시 지난번에 천 회장님과 용인에서 크레인에 매달렸던 그 곽 이사님?”
“예.”
박승양은 화들짝 놀란 눈으로 불쑥 곽대출 앞으로 다가갔다.
“아니! 그럼 그렇다고 말씀을 하셨어야지! 우리 천 회장님의 심복 중 심복이라는 양반이! 그러니까 그 심복 곽대출 이사께서 천 회장님의 지시로 나를 지켜주러 왔다는 말씀이시지?”
마치 이름 앞에 달아놓은 호처럼 ‘심복 곽대출’을 강조한 박승양이 “예.”하는 답을 듣고는 소주를 막 털어 넣은 듯한 표정으로 고개를 들었다.
“카하! 이러니 내가 우리 천 회장님을 안 따를 수가 있어? 나는 이제부터 천 회장님 사람이야!”
과한 혼잣말을 뱉어낸 박승양이 만만한 남부증권 회장을 향해 고개를 홱 돌렸다.
“오늘 우리 곽 이사님이 없었다면 이 박승양이 어떤 꼴이 됐겠어? 증권사의 경비가 이렇게 허술해도 되는 거야?”
솔직히 박승양의 지적이 그다지 틀린 것은 아니어서 남부증권 회장은 아예 말도 꺼내지 못하고 있었다.
“당신은 일단 내가 돈 찾은 다음에 보자고.”
지금 남부증권에서 제정신인 사람은 박승양 하나뿐인 것처럼 보였다.
**
천중명은 천호득의 휠체어를 밀어 횟집으로 향했다.
“저녁 드셔야죠?”
“회는 싫어.”
하긴, 누가 피비린내 가득한 꼴을 보고 난 뒤에 회를 먹고 싶겠나.
“숯불에 고기 구워 먹을까요?”
“회장, 몸이 괜찮겠어? 병원에 가봐야지.”
“고기를 먹어야 얼른 나을 것 같은데요?”
“흐헤헤헤! 그럼 먹어야지!”
가게로 돌아온 천중명은 송달순에게 고기를 구워 먹을 적당한 장소를 준비하라고 지시했다.
아직도 얼굴이 파랗게 질린 운전기사와 송달순이 주차장으로 향한 다음이었다.
“저 조그만 녀석이 아까 프라이팬과 쟁반 던지는 거 봤어?”
“예.”
“내가 잘 뽑았지. 잘 뽑았어.”
천중명을 힐끔 보았던 천호득이 뒤편에 서 있는 장만섭을 향해 시선을 주었다.
“저놈이 가족이라고는 할머니밖에 없는데 이곳에서 혼자 살면서 식당과 민박 청소를 하며 산다고 들었어.”
“그래서 이리 오신 거예요?”
“지난번에 살려준 것에 대해 보답이라도 해주려고 했는데 저놈이 복이 없는 거지.”
답을 한 천호득이 못마땅한 듯 고개를 저었다.
“어머니가 너무 놀라셨으니까 오늘은 저녁 드시고 올라가세요. 제가 사정 알아보고 도움될 수 있도록 할게요.”
“그래. 바쁜 회장이 직접 나설 것 없이 비서실에 지시해.”
“예.”
천중명의 답이 못마땅했던 모양이었다.
천호득이 기분 나쁜 표정으로 시선을 들었다.
“예, 아버지.”
“흐헤헤헤.”
이제야 마음에 드는 답을 들었는지 천호득이 특유의 웃음을 쏟아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