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로드 오브 머니-131화 (131/315)

# 131

131. 도깨비가 회장으로 있는 그룹엔 덤비지 마라 (1)

매시간 이명선의 방을 드나들던 박승양은 오후 2시부터는 아예 눌러앉았다.

오전까지만 해도 순조로웠다.

심지어 점심 무렵에는 화장실 생각이 나지 않을 정도로 편안했었다.

그랬는데, 그랬었는데….

박승양은 엉덩이를 들썩거리며 모니터와 주문을 넣는 이명선의 손을 번갈아 보았다.

타다다다닥. 탁!

미칠 일이다.

저 키보드 소리 몇 번에 박승양의 고래 심줄보다 질기고 피보다 아까운 돈 1천7백억 원이 훌렁 날아가는데 그 속도가 점점 빨라지고 있었다.

지수나 쑥쑥 올라가면 그나마 좀 나으련마는 320.05를 찍은 뒤로 밀리기 시작한 지수는 현재 스코어 319.65로 주저앉았다.

타다다다닥. 탁!

‘흐이! 씨!’

1천9백억이 또 훌렁 날아가는 순간, 박승양은 오금이 찌릿찌릿 저렸다.

화장실을 가고 싶고, 가야 하는데 당최 저 살벌한 싸움을 놔두고 어떻게 자리를 비울 수 있겠느냐는 말이다.

‘이게 내 돈이 아니면 진짜 재미있는 구경이었을 텐데!’

심지어 박승양은 말도 안 되는 엉뚱한 생각마저 했다.

타다닥. 타닥. 타다다닥. 타다닥. 탁. 타다닥. 탁.

그가 몸서리를 치는 동안 이명선은 선물 주문에 맞춰 빠르게 옵션을 찍어대고 있었다.

기가 막힌다, 이명선!

박승양은 그녀의 손놀림을 보며 감탄을 꿀꺽 삼켰다.

선물 주문을 넣기 무섭게 그 숫자 곱하기 2만큼의 옵션 주문을 그것도 여섯 개의 포지션에 찔러 넣는 이명선의 저 정교하고 빠르며 환상적인 손놀림을 좀 보라지.

‘아! 저것도 다 내 돈이구나!’

그나마 옵션은 끽해야 몇 억 원대 수준에서 들어가는 꼴이라 마음이 한결 가뿐했….

타다다다닥. 탁!

박승양의 생각을 알 길 없는 이명선은 대뜸 또 선물 매수주문을 찍었다.

2시 35분에 벌써 1조 가까운 돈이 매수 포지션에 박힌 터라 주문이 가능한 남은 예치금은 1조7천억 원이었다.

타다다닥. 탁. 타다다다닥. 탁.

또다시 고래 심줄 같은 돈이 두 번이나 연속해서 들어가면서 남은 예치금이 단박에 1조4천억대로 줄어들었다.

이러다가 예치금이 모자라겠는데?

물론 천중명이 그냥 지켜보지는 않겠다만, 그래도 아차 하는 순간에 예치금이 지수가 쭉 밀리면 손실이 최소 천 억대에서 조 단위일 테고, 최악에 탈탈 털려서 빈손으로 나와야 한다.

‘흐이!’

박승양은 결국 사타구니를 오므린 희한한 자세로 화장실로 향했다.

**

궁지에 몰린 황채산의 집중력은 무서웠다.

“지금!”

그의 지시에 직원이 매도 주문을 넣기 무섭게 황채산은 연달아 직접 매도 주문을 찍어 넣었다.

“그렇지!”

두 개의 매도 주문이 이어지는 바람에 이명선이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면서 지수는 계속 아래로 밀려나고 있었다.

황채산은 확실히 여유를 되찾은 얼굴이었다.

“속도 조절해 봐! 어디까지 들어오나 보고서 막판에 털어먹자!”

심지어 그는 지수가 내려가는 속도마저 조절했다.

‘개새끼야! 최대한 따라와라. 아예 영혼까지 탈탈 털어주마.’

미국의 발표에 황채산의 활약이 더해지자 코스피 선물지수가 하방으로 자리 잡은 상황이었다.

‘개미와 기관은 대세를 따라오거든. 그걸 만들어내는 게 실력이야. 바람을 탄 시장 분위기가 얼마나 무서운가를 제대로 가르쳐주마.’

모니터를 노려보던 황채산의 시선에 딜링룸의 직원이 넣은 매도 주문 3,500개가 떠오른 직후였다.

타다다다닥.

황채산은 4,300개의 주문을 찍고는 엔터키에 손을 올린 채 대기했다.

화면에 이명선이 넣은 매수주문 4,300개가 떠오르는 순간이었다.

직원이 넣은 3,500개의 주문이 사라진 직후에,

타악!

황채산은 엔터기를 세차게 때렸다.

“됐어!”

그가 입력한 매도 주문 4,300개가 떠오르며 지수가 또다시 아래로 내려갔다.

황채산은 주먹을 불끈 쥐었다.

코스피 선물지수는 318.90으로 밀려 있었다.

**

이명선은 얼음 속에 갇힌 사람처럼 온몸이 떨렸다.

잘하고 싶었다.

지금 남은 예치금을 가지고 천중명의 바람대로 327.50을 만들고 싶다. 그러나 서너 개의 매도 주문이 줄줄이 나와서는 지수를 끌어내리는데 당최 혼자서는 방법이 없었다.

목이 갈라진 것처럼 말랐고, 1초 만이라도 어깨의 긴장을 풀어보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타다다다다닥. 탁. 타다다닥. 탁.

두 번이나 주문을 넣었는데도 또다시 매도가 튀어나와 지수를 끌어내렸다.

한 방에 예치금 전부를 때려 넣으면 잠깐 지수를 올릴 수는 있겠다.

그런 다음에는?

쭉 내려가는 지수를 멍하니 바라보고만 있어야 한다.

‘회장님께 계획이 있을 거야. 알고 계실 거야. 오후에 꿋꿋하게 버티라고 하셨어.’

지금은 옵션 매수 따위 신경도 쓰지 못했다.

그저 선물 매도에 맞춘 매수 주문을 넣는 것과 그럴 때마다 남은 예치금이 얼마나 되는지를 체크하기 바빴다.

**

파생상품 펀드매니저 10년 차면 은퇴를 앞둔 퇴물 취급을 받는다.

낮에는 코스피 지수 선물을, 밤에는 뉴욕의 선물을 확인하는 밤낮 없는 생활을 10년쯤 하고 나면 집중력과 체력이 급격하게 떨어지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명예로운 퇴임을 앞둔 파생상품 10년 경력의 주광술은 손으로 얼굴을 쓸어내렸다.

좋았다, 오늘 오전까지는.

상승 일변도의 지수도 그렇고, 무엇보다 원·달러 환율, 금값, 유가, 코스피와 코스닥 지수까지 모든 것이 상승을 가리키는 하루였다.

그러던 것이 2시 이후에 벼락을 맞은 것처럼 흔들리더니 지금은 318.50까지 밀리고 말았다.

“하아.‘

주광술은 길을 잃은 채 모니터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주식과 파생상품에서 유명한 격언이 있다.

청산할 때까지 이익도 손해도 아니다.

사놓은 주식이 1억을 벌었더라도 팔아서 통장에 현금이 꽂히기 전까지는 실제 이익이 아니라는 말이었다.

언제 떨어질지 모르니까 그렇다.

멋지지? 염병할!

당장 손익계산으로 주광술이 이끄는 팀은 470억의 손실을 보았지만, 청산하지 않았으니 아직 손실 확정은 아니었다.

“아니, 왜?”

주광술은 모니터를 노려보며 볼멘소리를 쏟아냈다.

언제부터 기관의 펀드매니저가 이렇게 새우가 돼서 느닷없이 벌어진 고래 싸움에 등이 터지게 되었느냐는 말이다.

그냥 등만 터지면 말을 안 한다.

무려 회사 운용자금 470억 원이라는 돈도 함께 터진 꼴이었다.

매도와 매수가 시원시원하게 치고받는 모습?

보기에는 좋다. 심지어 재미도 있었다.

그런데 내가 돈을 벌고 있을 때나 좋은 거지, 오전 내내 140억 넘는 수익을 얻었답시고 히죽거리다가 느닷없는 폭탄을 맞은 꼴이라 툭툭 나오는 주문을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죽을 맛이었다.

“장 마감까지 30분 남았습니다.”

3시였다.

딜링룸의 7년 차 사수가 주광술을 바라보았다.

“일단 지켜봐. 지금 어설프게 따라갔다가 더 얻어맞으면 정말 복구할 방법도 없다.”

지시를 건넨 주광술은 긴장할 때 나오는 버릇대로 왼손 엄지와 검지를 이용해 코를 잡아당겼다.

3시 10분까지만 지켜본다.

그때도 분위기가 계속 하방이면 목숨 걸고 하방으로 몰방이다. 딜링룸 은퇴를 앞둔 그는 마치 죽음을 각오한 노병처럼 보였다.

**

3시 정각이었다.

이명선은 마침내 손을 내려놓고 멍하니 모니터를 바라보았다.

더는 주문을 낼 여력이 없었다.

박승양이 오늘 넣은 2조 원과 어제 남겨둔 7천억 원까지 모조리 주문했기 때문이었다.

‘이대로 끝나는 건가?’

여기에서 지수가 6포인트만 더 낮아지면 오늘 박승양의 계좌가 탈탈 털리면서 한 푼도 건지지 못한다.

주문을 멈춘 이명선은 무심결에 고개를 돌려 옆자리에 앉은 박승양을 바라보았다.

사람이 참.

기름에 튀긴 무를 씹었다가 이빨을 모두 잃은 승냥이가 있다면 꼭 지금 박승양의 표정이나 눈빛 같겠지 싶었다.

“나 아직 1조 더 있는데?”

그는 심지어 넋이 나간 얼굴로 혼잣말을 지껄이고 있었다.

그리고 그사이에 지수는 1포인트나 내려갔다.

4조라는 감도 안 잡히는 돈이 탈탈 털리는 데까지 고작 5포인트 남았다.

“내 방 금고에 수표로 있어서 지금 다녀오면 늦는데?”

박승양은 실성한 사람처럼 보이기도 했다.

“이명선 과장. 나 1조 더 있다고.”

“네, 회장님.”

그사이 지수가 또 1포인트 내려갔다.

“지금 포지션을 털면 얼마나 건져?”

“1조6천억 정도 남습니다.”

“흐히히히. 1조6천억? 많은 돈이다. 그렇지?”

이명선은 대꾸도 못 했다.

“나 왜 화장실이 안 급하지?”

“회장님?”

“아! 나 찌라시 찍으러 가야 하는데?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200만 원. 신용이 부족해도 200만 원. 카드 대납. 이런 거 찍으러 가야 하는데.”

그사이 또 지수가 1포인트 떨어지면서 이제 3포인트 남았다.

“햐! 또 떨어졌다.”

박승양의 양쪽 입가에서 침이 떨어지고 있었다.

**

황채산은 이제야 표정을 되찾았다.

“개새끼가 말이지!”

그는 득의양양한 표정으로 모니터를 노려보며 커다랗게 숨을 내쉬었다.

“어떻게 할까요?”

“이대로 밀어붙여. 철부지 회장의 돈 4조가 부수입으로 생기는 건데 마다할 게 뭐 있어?”

황채산의 지시에 직원들이 다시 모니터를 노려보았다.

“어디서 까불어? 까불기를!”

황채산이 지닌 예치금은 아직 2조 남은 상황이었다.

**

모니터를 노려보고 있던 천중명은 시간을 확인한 뒤에 휴대 전화기를 들었다.

번호를 찾아 통화 버튼을 누른 다음이었다.

- 네, 회장님. 이명선입니다.

이명선의 답이 있었고, 옆에서 “천중명 회장님이다! 전화도 해준다!” 하는 박승양의 넋이 나간 듯한 말소리도 들렸다.

“이명선 씨. 계좌번호 부를 테니 적으세요.”

천중명은 계좌번호를 불러주었고, 이어서 비밀번호도 알려주었다.

“2조5천억을 넣은 지경의 계좌입니다. 지금이 8분이니까 10분부터 장 마감까지 다 매수주문 넣으세요. 오늘 이명선 씨는 예정대로 327.50만 만들어주면 됩니다.”

- 네, 회장님.

전화를 마친 천중명은 다시 번호를 눌렀다.

- 네, 회장님. 곧 지경전자의 상장 발표가 있을 예정입니다.

상황을 계속 확인하던 유진교의 보고가 먼저 있었다.

“주식회사 지경의 연결 계좌를 이용해 지경전자의 상장 발표 직후부터 코스피 지수 선물을 매입합니다. 오늘 종가까지 2조 원을 매입해 주세요.”

- 2조 원입니까?

“그렇습니다.

- 회장님. 다시 여쭙겠습니다. 주식회사 지경의 손실은 그룹 계열사의 손실과는 전혀 다른 충격이 있습니다. 그래도 매입을 지시하십니까?

“매입하세요.”

- 네, 회장님. 바로 지시하겠습니다.

유진교의 답을 들은 천중명은 휴대 전화기를 내려놓고 모니터를 바라보았다.

그사이 지수는 느긋한 속도로 1포인트 더 내려가 있었다.

“처음부터 전력투구하면 중국에서, 일본에서, 그리고 미국에 지원을 요청할 거잖아, 황채산. 어디 앞으로 남은 20분에 얼마나 당겨오는지 보자. 아마 그전에 털릴 것 같다만.”

천중명은 픽 하고 웃었다.

“혹시 다시 기회가 온다면 앞으로 도깨비가 회장으로 있는 그룹엔 덤비지 마라.”

웃음을 지운 천중명이 시간을 확인했다.

정확하게 오후 3시 10분이었다.

**

발표는 간단하고 함축적이었다.

“지경그룹은 목요일 발표할 그룹 차원의 두 가지 사업에 필요한 자금 조달을 위해 지경전자를 상장하기로 하였으며, 본 증권사와 삼장 회계법인이 주관사가 되어 이후의 일정을 진행할 예정입니다.”

간단한 발표와 달리 파급력은 절대 간단하지 않았다.

**

타오르던 모닥불에 거대한 얼음물을 드럼통째 부으면 꼭 지금 황채산의 딜링룸 꼴이 되겠지 싶었다.

“뭐야!”

황채산의 비명 같은 놀란 소리가 들린 직후에 매수주문이 물밀 듯 밀려들었다.

“뭐냐! 뭐냐고!”

그가 악을 쓰면서 직원들이 키패드에 매달렸지만, 상황은 역부족이었다.

“매도해! 있는 대로 하라고!”

이미 시간은 3시 14분이었다.

“지경전자 상장 발표가 있었습니다! 언론에 목요일에 있을 지경의 사업에 관한 추측 기사가 잔뜩 올라와 있습니다!”

“미친 소리 하지 말고! 추측 기사에 매수가 이렇게 몰릴 수가 있어?”

“블루크루드 생산, 한국에 LTE급 와이파이 전면 무료 개방입니다.”

직원의 말이 끝나는 순간에 지수가 2포인트나 불쑥 올라갔다.

“매도하라니까!”

“예치금이 부족합니다.”

불쑥 고개를 들었던 황채산이 급하게 전화기를 집어 들었다.

한국의 코스피 지수 선물을 만지는 데 5조 원 이상이 필요한 상황을 어디 상상해 본 적이나 있겠나.

“322.60입니다!”

“받아라. 받아.”

황채산이 주문처럼 말을 쏟아낸 다음이었다.

“여보세요? 홍콩의 황입니다. 한국의 상황이 급변해서 예치금을 부탁합니다. 당장은 3조면 됩니다. 그리고 그쪽에서도 직접 주문을 넣으세요! 나, 황채산입니다!”

그가 영어로 다급한 말을 계속해 쏟아냈다.

“323.70입니다.”

“그건 모르겠고 시간이 급하다니까요!”

“324.90입니다! 한국의 기관이 전부 매수세로 돌아섰습니다. 325.10입니다!”

“예! 지금이요!”

황채산은 집어 던지듯 휴대 전화기를 내려놓았다.

“지금 매도 주문이 들어올 거야!”

그가 급하게 말을 뱉어내는 순간이었다.

325.55, 326.30, 326.95, 327.45, 328.20.

325.50에 도달했던 선물지수가 느닷없이 산꼭대기를 향해 치솟는 비행기처럼 솟구쳤다.

“뭐야?”

“프로그램 매수가…, 들어왔습니다.”

직원의 숨죽인 듯한 답변이 있었고,

“우리 포지션은? 이렇게 되면 우리 포지션은?”

이어진 황채산의 질문에 누구도 대꾸하지 않았다.

3시 20분 동시호가에 멈춘 코스피 선물지수는 329.90이었고, 황채산의 선물계좌는 이미 탈탈 털린 뒤였다.

지금은 선물시장에 100조를 퍼부어도 이미 털린 황채산의 돈을 복구시켜 주지는 못한다.

“이게 말이 돼? 내가 귀신에 홀린 건가?‘

직원들은 책상에 고개를 숙인 자세로 움직이지 않았다.

“우리 돈? 우리 돈이 다 날아갔다고? 5조나 되는 돈이?”

황채산의 공허한 질문만이 적막한 딜링룸을 떠돌았다.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