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로드 오브 머니-126화 (126/315)

# 126

126. 어디쯤에서 고개 숙이는지 보자(1)

월요일 오전 10시, 기관의 파생상품을 거래하는 딜링룸의 분위기는 한마디로 당혹, 그 자체였다.

책상에 대략 6개의 모니터를 놓는다.

아래로 네 개, 그 위로 두 개를 얹는 구조였는데 대개 기본적으로 현물 거래인 코스피와 코스닥의 차트, 거래량, 달러, 엔화, 유로화의 환율, 금 시세, 유가 등의 정보를 띄운다.

거기에 지수 시세, 외국인, 개인, 기관의 주문량, 선물과 옵션의 포지션별 변화를 모두 표시할라치면 6개의 모니터도 모자랄 판이었다.

“이거 미친 거 아냐?”

투자증권의 10년 차 펀드매니저인 주광술은 모니터를 보며 혀를 내둘렀다.

“이거 남부증권이라고 그랬지?”

“예, 남부증권의 박승양 계좌에서 줄기차게 매수 주문이 들어오고 있습니다. 예치금은 2조 원입니다.”

정보를 빼낸 직원의 보고를 들으며 주광술은 모니터를 확인했다.

“선물 한 계약당 콜옵션 0.03, 0.05, 0.09, 0.10, 0.15, 0.20, 이렇게 두 계약씩 매수하고 있는 거 맞지?”

워낙 빤한 질문이라 대꾸도 없었다.

“미치겠네, 진짜!”

주광술은 거칠게 자신의 머리를 흐트러트리며 짜증을 벌컥 냈다.

옵션 0.01은 천 원짜리 옵션이라는 의미이고, 0.10은 만 원짜리라는 뜻이다.

가격이 문제가 아니었다.

“뭐 이런 ABC도 모르는 매수가 있어?”

도대체 의도를 이해하기 어려운 주문이었다.

선물이 올라갈 거라고 예상해서 매수를 한 것까지는 이해한다. 그렇다면 가격이 급격하게 빠질 때를 대비해서 옵션은 반드시 풋 포지션을 뒤에 깔아야 한다.

그런데 남부증권의 주문은 선물도 매수, 옵션도 콜을 선택했다.

이건 마치 ‘목요일에 마감은 반드시 315.50 위에서 끝난다! 까불지 말고 잘 따라와.’ 하는 경고로 보일 지경이었다.

그것뿐이면 말을 안 한다.

동시호가에서부터 매도와 매수가 치열하게 치고받는데 당최 끼어들 엄두조차 나지 않는 분위기였다.

“야! 매도는 어디인지 확인했어?”

“아무래도 홍콩물고기 계좌가 앞선 것 같고, 화서투자증권이 지원하는 모양새입니다.”

“하! 나 참!”

주광술이 고개를 흔들었다.

그가 하루에 담당하는 거래량은 대략 2천억 원 수준이었다. 주식 담당 펀드매니저들이 주식을 매입하면 주가가 고꾸라질 때를 대비해서 선물지수와 옵션으로 손해를 최소화할 포지션을 정하는 것이 그의 임무였다.

그러니 오늘 주식 거래량에 따라 얼른 포지션을 정해야 하는데 주광술은 이 살벌한 바닥에 당최 뛰어들 엄두가 나지 않았다.

어떤 방식으로든 결정을 내야 한다.

띠르르. 띠르르. 띠르르.

그때 그의 책상에 있는 전화기가 울었다.

“딜링룸 주광술입니다.”

전화를 받은 그가 힐끔 모니터를 노려보았다.

“예, 상무님. 오늘 아무래도 제대로 싸움 붙었습니다. 벌써 우리 하루 거래금액을 넘어서서 함부로 뛰어들기도 어렵습니다.”

보고를 전한 주광술이 상대방의 말에 집중했다.

“일단 포지션을 좀 털어낼까 생각 중입니다. 이러다가 한쪽으로 급격하게 꺾이면 감당하기 어렵습니다.”

상대방도 비슷한 의견인 모양이었다.

“예, 상무님. 그리고 죄송하지만, 남부증권 박승양 회장의 계좌에 예치금이 얼마나 들었는지 확인 좀 해주십시오. 윤곽이 나와야 대책을 세울 텐데 깜깜한 상태로는 꼼짝도 못 하겠습니다.”

주광술이 상무에게 아쉬움을 전하고는 수화기를 내려놓았을 때였다.

선물지수 315.50에 매도 2,300개의 주문이 한 번에 올라왔다.

“우-!”

하루에 한 번쯤 외국인 매도나 매수가 이 정도로 나온다.

그렇지만 지금처럼 아침부터 줄기차게 이런 식으로 나온 적은 결단코 없었다.

딜링룸의 펀드매니저들이 탄성을 지른 직후였다.

곧바로 매수 주문 2,700개가 올라와서는 매도 주문을 다 잡아먹고도 400개의 잔량을 올려놓았다.

“흐아-.”

정말이지 기가 막혀서 나온 탄식이었다.

만기를 앞둔 월요일에 이런 일이 생긴다고?

이건 마치 고개를 슬쩍 내민 홍콩물고기의 몸통을 가물치가 덥석 잘라 먹는 느낌이었다.

“주문 넣지 마.”

그의 지시에 딜링룸의 펀드매니저들이 손을 내리고 시선을 주었다.

“오늘은 일단 지켜봐. 어설프게 달려들었다가 얻어맞으면 이거 복구 못 한다.”

주광술의 눈빛은 그만큼 무서웠다.

다들 눈치를 살피며 모니터를 지켜보았을 때였다.

315.50 매도에 4,500개의 주문이 떠올랐다.

“어후-!”

“감정싸움이야? 뭐야?”

놀란 소리가 채 가시기도 전이었다.

이번엔 매수 5,000개의 주문이 보란 듯이 올라왔다.

“홍콩물고기와 가물치 싸움에 괜히 우리 등이 터지게 생겼네. 야! 가서 커피나 뽑아와.”

아예 책상에서 몸을 뗀 주광술의 요구에 막내가 얼른 자판기를 향해 달렸다.

**

홍콩의 딜링룸에 있던 황채산은 이해할 수 없다는 얼굴로 모니터를 들여다보았다.

“저 미친년이 또 콜옵션 매수했어?”

“예. 이번에도 선물 매수 뒤에 콜옵션을 매수했습니다. 포지션도 똑같고, 2배수인 것도 같습니다.”

황채산은 고개를 삐딱하게 틀고서 포지션을 노려보았다.

“선물지수가 올라서 끝난다는 확신이 없으면 불가능한 일인데? 그만큼 자신 있다는 거야?”

그가 혼잣말을 쏟아냈을 때였다.

“차라리 선물지수를 올리면 어떻습니까?”

주문을 담당한 직원 한 명이 조심스럽게 질문을 던졌다.

가뜩이나 독이 오르고 있던 황채산이었다.

“푸후-.”

그는 뜨거운 숨을 쏟아낸 뒤에 인상을 잔뜩 찌푸린 채로 질문을 던진 직원을 노려보았다.

“야, 이 새끼야! 여기에서 지수 선물이 위로 달려가면 어떤 일이 생겨?”

“예?”

“선물이 5포인트만 올라가도 프로그램이 자동으로 코스피 200에 해당하는 주식을 매입하게 돼 있잖아! 프로그램 매수! 너는 펀드매니저란 인간이 그것도 몰라!”

질문을 던졌던 직원이 아차 하는 얼굴로 고개를 떨구었다.

“생각을 좀 해! 생각을! 프로그램 매수 잡히면 우리랑 손잡은 곳도 자동으로 주식을 사게 되는데! 그런 상황에서 우리가 선물을 때리겠다고 하면 당장 손실을 감당해야 하는 그쪽에서 협조하겠냐고!”

황채산의 고함에 딜링룸이 조용하게 변했다.

“후우.”

뜨거운 숨을 뱉어낸 황채산은 다시 모니터에 시선을 주었다.

“이 미친년이 도대체 어떤 명령을 받은 거야? 누구 남부증권에 아는 사람 없어? 워낙 조그만 증권사라 신경도 안 썼더니!”

“제가 그쪽 임원을 한 명 아는데 남부증권 회장이 직접 관리한답니다. 박승양 회장까지 도끼눈을 뜨고 나와 있어서 그쪽 임원들도 딜링룸은 아예 접근조차 못 한답니다.”

“사채업자가 느닷없이 미친 것도 아니고! 예치금 규모만 알아도 좀 쉽게 갈 텐데.”

황채산은 뒤통수를 왼손으로 긁어 내렸다.

속이 답답할 때 나오는 그의 버릇이었다.

점심시간이 지나면 그 빌어먹을 삼합회에서 사람을 보낸다.

수육, 묵은지, 홍어가 모인 것도 아닐 텐데 뭔 삼합이라고.

“일단 1조5천억까지 밀어. 오늘은 그 정도에서 승부 내는 거로 하고, 안 되면 내일 포지션을 움직여 보게.”

“예.”

“우선 4,500개 주문!”

황채산의 지시가 떨어지기 무섭게 앞쪽의 직원이 키패드를 두드렸다.

타다다닥. 탁.

모니터의 시황판에 매도 주문 4,500개가 떠올랐다.

‘어떻게 나올 건데?’

황채산이 주문을 확인한 직후였다.

매수 주문 5,500개가 불쑥 올라와서 매도주문을 완전히 잡아먹었다.

“매도 4,700!”

타다다닥. 탁.

다시 직원이 키패드를 입력했고, 매도 주문이 쌓였다.

황채산이 마른침도 삼키기 전이었다.

이번엔 4,900개의 매수 주문이 삽시간에 매도 주문을 삼켜 버렸다.

이 정도라면 더 볼 것 없다.

너의 계획을 알고 있다.

해볼 테면 해보고 아니라면 이쯤에서 물러서라는 경고와 같았다.

삼합회랑 야쿠자에게 이번 계획은 그냥 넘어가자고 말하라고?

손목이 한 열 개쯤, 발목이 여벌로 두 개쯤 있으면 그래도 되겠다.

황채산은 마른침을 꼴깍 삼켰다.

어쩐지 머리를 내밀 때마다 대가리가 무섭게 생긴 사채업자 박승양이 날카로운 이빨로 그의 몸뚱이를 잘라먹는 착각마저 들 지경이었다.

“매도 주문 만 개 넣어!”

“1만 개입니까?”

“그래. 1만 개!”

타다다다닥. 탁.

딜링룸의 직원들이 긴장된 표정으로 매도 주문을 확인한 순간이었다.

“이거 완전히 미친년이잖아!”

황채산이 곧바로 분통을 터트렸다.

매수 주문 13,000개가 바로 떠서는 매도 주문을 삼켜 버렸기 때문이었다.

**

10시였다.

한 시간에 한 번쯤 들른다던 박승양이 결국 이명선의 딜링룸으로 조심스럽게 들어왔다.

“이쪽 볼 것 없어! 거래에 신경 써! 장 마감까지는 이명선 과장이 이 방에서 대장이야! 대장! 거래가 끝난 뒤에야 내가 회장이지, 거래 중에는 이명선 과장이 지휘관이라니까!”

행여 시선을 뺏을세라 급하게 말을 늘어놓은 박승양이 먼저 종이컵을 키패드 멀찍이 내려놓은 뒤에, 소리가 나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의자를 빼서 옆에 앉았다.

달달한 커피향을 맡으며 박승양이 모니터를 보았을 때였다.

매도에 4,500개의 주문이 올라오기 무섭게,

타다다닥. 탁.

이명선이 5,500개의 주문을 넣었다.

마치 슬쩍 고개를 내미는 홍콩물고기의 몸통을 가물치가 잔인하게 뜯어 먹는 것처럼 보여서 박승양은 얼른 허벅지에 힘을 주고는 다리를 오므렸다.

선물 315.50에 5,500 주문이면 도대체 돈이 얼마야?

얼추 500억? 맞아? 대략 그 정도 주문이 저 키패드 몇 번에 사라진 거야?

‘흐이, 씨!’

사람 참 구차해진다.

천하의 박승양이 시세판을 보며 쪼그라들다니 말이다.

타다닥. 타다닥. 타닥. 타다다닥.

박승양의 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이명선은 곧바로 콜옵션 매수 주문을 넣었다.

이명선이 옵션 주문을 마친 순간이었다.

불쑥 매도 주문이 만 개가 떠올랐다.

이건 또 돈이 얼마냐?

박승양은 소름이 쫙 돋는 것과 동시에 등골이 오싹했다.

타다다다닥. 타닥.

‘매수 1만3천? 도도도돈이? 돈이 얼마냐? 이게?’

박승양은 이런 경험 처음이었다.

주가조작이야 아무리 지랄을 떨어봐야 박승양의 손바닥 안에서 놀았고, 금액도 천억을 넘는 일은 거의 없었다.

게다가 나중에 구속되면 됐지, 실패할 일은 없었다.

‘이러다 속옷 사러 가겠네, 정말!’

그런데 이건 뭐 금액도 금액이지만, 당최 결과를 짐작할 수 없으니 사람 환장할 일이었다. 막말로 박승양 나이에 망가지면 누가 거들떠나 보겠느냐 말이다.

박승양은 소리 나지 않게 숨을 천천히 들이마셨다.

‘후아-아.’

지켜보는 사람이 이 정도인데 이명선은 어떨까?

숨소리조차 죽인 채 박승양은 이명선에게 시선을 돌렸다.

‘어쭈?’

독기가 나오는 사람 눈은 확실히 다르다.

그리고 그걸 누구보다 빨리 알아채는 사람이 바로 박승양이었다.

사명감, 투쟁심, 각오, 근성, 승부욕까지, 그녀가 지닌 모든 독한 기운이 모니터를 노려보는 이명선의 눈에서 무섭게 쏟아지고 있었다.

박승양은 오늘 처음으로 승냥이처럼 미소 지었다.

‘그래. 잘한다.’

그런 뒤에 그는 조심스럽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명선의 눈빛이 어떻든 간에 소변이 마려워서 참을 수가 없었다.

**

천중명은 도시락을 두 개 더 주문한 뒤에 유진교와 최만호를 불러 함께 앉았다.

“드시죠.”

천중명이 권하면서 식사가 시작되었다.

“선물거래는 보셨습니까?”

“네. 잘하고 있던데요.”

젓가락으로 밥을 뜨며 주고받은 대화였는데 유진교는 기가 막힌 심정이었다.

점심시간 직전에 확인한 것만 대략 7천억에 가까운 거래가 있었다.

아무리 재벌 회장이라고 해도 어쩌면 저렇게 덤덤할까 싶었고, 이어서 이런 양반에게 대든 조승필이 안쓰러워 웃었다.

“사업 계획서는 어디까지 진전되었습니까?”

“그것 때문에 조금 전에 두 명을 독일과 미국으로 출장 보냈습니다. 미국의 고글에서 LTE급 와이파이를 전 세계에 무료로 공급할 계획을 세웠고, 이미 시험 중에 있어서 협력이 가능한지를 타진할 생각입니다.”

“고글이 거절하면요?”

“기존의 통신망을 개방하는 것은 문제가 없습니다. 그 뒤에 높은 고도에 설치한 와이파이 기지국의 성능을 개선하는 방향으로 진행할 예정입니다.”

고개를 끄덕이는 천중명을 향해 유진교가 다시 입을 열었다.

“설비증설에 대략 5조7천억 원의 비용이 소요됩니다. 게다가 지금까지 수익모델이던 데이터 사용료가 사라지기 때문에 첫해에는 대략 4조 원의 손실이 발생하게 됩니다.”

밥을 삼킨 천중명은 그다지 놀라지 않은 얼굴이었다.

“회원 가입만으로 와이파이를 무료로 개방하고 대신, 지금처럼 개인정보를 취득할 수 있는 동의를 받습니다.”

이미 일요일에 간단하게 의논했던 내용이었다.

“회원들의 소비 패턴, 이동 경로, 주로 사용하는 애플리케이션을 분석해서 우리 계열사의 정보로 사용한다면 당장 투자되는 비용은 전혀 고민할 사안이 아닙니다.”

“예, 회장님. 그렇지 않아도 카드 결제와 내비게이션 애플리케이션을 통해 소비자의 이동 경로와 소비 패턴까지 데이터로 활용할 계획입니다.”

유진교가 답을 한 직후였다.

노크와 함께 부속실 직원이 들어왔다.

“회장님. 방은경 씨라는 분의 전화가 있었습니다. 주식 관련해서 의논드린다고 하면 아실 거라는 메모를 남겼습니다.”

보고를 들은 천중명은 시선을 최만호에게 돌렸다.

“실장님이 연락해서 만나보세요. 돌아가신 큰형님이 남긴 주식을 넘기고 싶어 하니까 적당하게 웃돈을 얹어주는 선에서 정리하시면 좋겠습니다.”

“예, 회장님.”

얼마를 얹어주라는 따위의 지시나 질문은 아예 없었다.

그러나 천중명은 지시를 내렸고, 최만호는 받아들였다.

세 사람 사이에 끈끈한 신뢰가 형성되었다는 증명과 같은 모습이었다.

“얼른 드시죠.”

천중명이 재차 권하면서 세 사람은 식사에 집중했다.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