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로드 오브 머니-95화 (95/315)

# 95

095. 다가오는 어둠 속에서 (2)

노란불이 점멸하는 삼거리에 들어선 직후에 화물 트럭이 달려들었다.

미련하다고 욕을 먹지만, 그래도 장만섭은 도깨비 출신이었다.

이를 악물고 트럭을 노려보았을 때 기사는 분명 이쪽 승용차를 노려보고 있었다.

“우아-아악!”

장만섭은 조수석 바닥을 힘껏 디딘 상태에서 상체를 있는 힘껏 뒤로 밀었다.

콰드드드드등!

모터로 움직이는 그의 등받이가 뒤로 젖혀지는 순간,

콰자-자자자자작!

트럭이 승용차의 중간 부분을 들이받았고,

퍼어-엉! 퍼엉! 퍼어-엉!

그와 동시에 에어백이 사정없이 터졌다.

끄등! 끄드드등!

트럭에 받힌 채로 5미터 이상을 끌려간 트럭이 도로 난간에 걸리고서야 멈춰 섰다.

“쿨럭!”

장만섭은 트럭에 밀려 파고든 승용차의 오른쪽 문에 밀린 채로 피를 토해냈다.

“야! 야, 이놈아!”

천호득의 놀란 눈 아래에서 그는 마음이 놓인 프랑켄슈타인처럼 힘없이 웃었다.

웃음이 나와? 이 미친놈아!

천호득은 얼이 빠져 당장 말을 꺼내지 못했다.

달려드는 트럭을 보며 “어? 어?” 하는 순간에 조수석 등받이를 힘으로 넘긴 장만섭이 천호득과 문 사이로 상체를 밀어 넣었다.

“총수…님. 괜찮으십…니까.”

“나는 괜찮으니까 말하지 마!”

“커헉! 컥!”

“피 봐! 야! 야, 이놈아! 이놈이 이거!”

이제야 정신이 든 운전 직원이 신음을 토해내며 몸을 돌렸다.

이은명은 옆으로 쓰러져 의식이 없었다.

“내리지 마십시…오.”

“뭐?”

“경찰이 올 때까지…. 여기에 계십시오.”

입으로 피를 게워내면서도 장만섭은 물을 먼저 마실 때의 고집스러운 눈을 하고 있었다.

“알았다. 네가 시키는 대로 할 테니까 이제 그만 말해.”

“총수님…. 미련해…서 죄송했습니다.”

“이눔아-아!”

천호득이 거꾸로 처박힌 장만섭의 머리를 무릎에 올릴 때 이은명이 신음을 토해내며 겨우 상체를 들었다.

차들이 멈춰 섰고, 사람들이 달려오고 있었다.

“총수님! 사모님!”

이은명이 앉은 운전석 뒷좌석을 열기 위해 운전기사가 달려들었고, 도와주러 달려온 남자 둘이 비틀어진 문짝에 매달렸다.

무슨 힘이 있었을까?

장만섭은 천호득의 허벅지 옷깃을 꽉 움켜쥐었다.

“알았다니까. 내가 안 내린다고. 경찰이 올 때까지. 그러니까 제발 좀 이눔아! 아효, 이놈 이거. 이 피를 어떻게 해? 왜 그랬어? 왜?”

이마와 오른쪽 볼, 입 아래쪽이 피범벅인 장만섭의 얼굴을 천호득이 소매로 조심스럽게 닦았다.

“야, 이눔아! 다 늙은 나를 뭐에 쓴다고!”

이은명은 이제야 상황이 이해됐다.

그 짧은 순간에 조수석 등받이를 넘긴 장만섭이 승용차의 문짝과 천호득 틈에 상체를 끼워 넣었던 모양이었다.

“내리지 마! 경찰이 올 때까지 절대 내리면 안 돼!”

피범벅인 장만섭의 머리를 매만지며 천호득이 건넨 말이었다.

“이눔이 내리지 말라고 했어. 아직도 내 바지를 붙잡고 있다고.”

멍한 상태여서 그런지 이은명은 언제부터 천호득이 이렇게 감성이 풍부한 사람이 되었나 하는 엉뚱한 생각을 했다.

다른 사람의 고통이나 아픔을 전혀 이해하지 못했던 냉혈한 천호득이 장만섭의 머리를 매만지며 어쩔 줄 몰라 하고 있었다.

위이잉! 위이잉! 위이잉!

사고가 난 지 10분이 지나서 순찰차가 다가왔다.

**

천중명은 직원들이 올린 이메일 중에서 곽대출이 진하게 표시해 놓은 제목의 메일들을 읽고 있었다.

어쩜 회사에 이런 일들이 있었던 건지.

천중명이 심각한 표정으로 내용을 읽을 때 노크도 없이 문이 벌컥 열렸다.

“회장님. 윤만석 씨가 전화했었습니다. 용인 별장이라면 아신다고 총수님께서 교통사고가 났었답니다.”

천중명은 여직원을 무섭게 노려보며 지금 들은 말을 정리했고, 곧바로 일어나 재킷을 집었다.

“바로 내려갈 테니까 차를 현관 앞으로 대기시켜!”

“예, 회장님.”

천중명은 급하게 집무실을 뛰쳐나갔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간 천중명은 현관 앞에서 기다리던 승용차에 몸을 실었다.

“용인으로! 처인구! 일단 출발해! 서둘러!”

부속실 직원에게 들은 모양이었다.

거칠다 못해 과격할 정도로 도로에 뛰어든 승용차가 곧바로 속도를 높였다.

뒷자리에 앉은 천중명은 우선 윤만석의 번호를 눌렀다.

- 예, 회장님.

“어떻게 된 겁니까?”

- 저와 통화를 하시던 중에 교통사고 같은 거친 소리가 울렸고, 더는 연결이 되지 않습니다.

간략하게 질문에 답한 윤만석이 다시 통화 내용을 알려주었다.

“지금 가고 있어요. 도착하는 대로 상황을 알려주세요.”

- 네, 회장님.

통화를 마친 천중명은 부속실에 다시 전화를 넣었다.

“근처 병원 응급실을 수배해 봐. 총수님이 어디 계신지, 그리고 경찰서에 문의도 해보고. 얻은 내용 있으면 바로 알려줘!”

전화를 끊은 뒤에 천중명은 숨을 내쉬며 창밖을 보았다.

몸이 좌우로 흔들릴 정도로 승용차가 거칠게 달리고 있었지만, 지금 천중명이 운전했다면 이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는 않았을 일이었다.

빌어먹을 어둠!

이런 거나 미리 보여주든가!

화가 치밀었지만, 당장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

구급대가 달려오고 나서야 이은명이 앉은 운전석 뒷문이 뜯겨 나갔다.

“괜찮으세요? 나오실 수 있어요?”

몸을 반쯤 안으로 넣은 구급대원이 연신 질문을 던졌는데 천호득은 울 것 같은 눈으로 답을 하지 못했다.

의식을 잃었다.

힘이 빠진 채 옆으로 넘어간 장만섭의 고개를 무릎에 올려놓고 있어서 알 수 있는 일이었다.

그런데도 어떻게 이럴 수 있는 건지.

미련하기 그지없는 놈이 아직도 천호득의 허벅지 옷자락을 꽉 움켜쥐고 있었다.

“이눔을…. 이눔을 먼저 봐줘.”

상태를 확인한 구급대원이 이은명을 내리게 한 뒤에 뒷좌석으로 들어왔고, 다른 한 명은 운전석을 통해 승용차에 올라왔다.

안전벨트를 풀고 상태를 살핀 구급대원들이 장만섭을 옮기려 했을 때였다. 그때까지도 장만섭은 천호득의 허벅지 옷자락을 놓지 않고 있었다.

“분명히 의식이 없는데 왜 힘이 안 빠지지?”

“일단 빼내 봐! 서둘러!”

결국, 구급대원 둘이 달려들어 힘껏 당기고 나서야 장만섭의 손아귀에서 천호득의 옷자락을 빼낼 수 있었다.

덩치나 작은가.

천호득이 실려 나온 뒤로 장만섭을 꺼내기 위해 구급 대원 한 명과 경찰 한 명이 더 달려들었다.

“저쪽으로 가십시오, 총수님.”

“저놈 나오는 것 보고 움직일 테니까 나는 여기에 그냥 두게.”

연락을 받은 모양이었다.

경찰관이 천호득과 이은명의 곁에서 기다려주었다.

“그쪽을 좀 낮춰! 그래야 나가지!”

마침내 장만섭이 찌그러진 차에서 나왔고, 곧바로 구급차에 실렸다.

“이제 가셔야 합니다.”

“그러세.”

이동용 침대에 실린 천호득과 걸어서 움직인 이은명이 같은 구급차에 올랐다.

요란한 사이렌 소리와 함께 차가 출발한 다음이었다.

보호자석에 앉은 이은명이 천호득의 손을 조심스럽게 잡았다.

“아프네.”

“어디가요? 다친 곳이 있어요?”

“그게 아니라 사람을 잃는 게 이제 아파. 젊은 시절에 모질 게 산 죗값을 다 받았다고 생각했는데 아직 멀었겠어.”

이은명은 대꾸 없이 천호득의 손을 다독여주었다.

**

용인으로 가는 길에 연락을 받은 천중명은 천호득이 있다는 병원으로 방향을 틀었다.

제법 큰 병원이었다.

차가 멈추기 무섭게 병원 건물로 뛰어든 천중명은 아예 계단을 달려 3층으로 올라갔다.

꽤 넓은 병실에 천호득과 이은명이 침대에 누워 있었고, 그 옆에 윤만석과 대원 한 명이 있었다.

“아버지!”

천호득은 오른쪽 이마에 거즈를 붙인 것 외에 크게 다친 곳은 없어 보였다.

“이 사람아. 그룹을 맡은 사람이 이런 일에 뛰어다니면 어떻게 회사가 돌아가?”

맥이 쭉 빠진 천호득의 음성이 아프게 들렸다.

“어머니는요?”

천중명은 옆 침대에 누운 이은명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검사 결과로는 아무 이상 없다는데 일단 안정하라고 해서 이러고 있어. 그보다는 장 비서가 크게 다쳤어.”

그러면서 이은명은 장만섭이 그 짧은 순간에 의자의 등받이를 눕혀가며 천호득을 지켜냈다는 이야기를 전해주었다.

천중명은 윤만석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가보고 올 테니까 아버지를 부탁합니다.”

“염려 말고 다녀오십시오. 제가 장 비서만큼 총수님 곁을 지키겠습니다.”

눈으로 인사한 천중명은 곧장 병실을 나섰다.

“미안하지만, 교통사고로 들어온 환자가 한 명 더 있는데요. 장만섭이라고.”

“네, 이쪽으로 오세요.”

천호득이 지경그룹 총수라는 사실을 알아서인지 3층의 간호사는 아예 천중명의 앞을 먼저 걸었다.

“원장님. 오늘 교통사고 환자분 때문에 오셨어요.”

간호사의 안내를 받은 천중명은 원장실로 들어섰다.

“장만섭 씨, 보호자 되십니까?”

“예. 상태가 어떻습니까?”

차트를 확인한 원장이 질문했고, 천중명이 바로 답을 건넸다.

“지금까지 확인된 것으로는 오른쪽 어깨 탈골이 있고 쇄골과 3번, 4번 늑골이 부러졌습니다. 그에 비하면 외상은 크게 신경 쓸 수준은 아닙니다.”

의사는 엑스레이 사진을 형광판에 걸었다.

“늑골이 부러지면서 폐를 찔렀습니다. 외과 과장이 직접 응급수술을 진행 중인데 앞으로 세 시간 정도면 결과가 나올 겁니다.”

“많이 위험합니까?”

“수술 경과를 봐야 합니다. 입으로 피를 토하는 것이 걸리기는 하는데 환자의 체력이 워낙 뛰어나서 그 점을 기대하고 있습니다.”

세 시간 뒤에 결과를 보자는데 더는 할 말이 없었다.

“설명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결과가 좋아야지요. 수술 끝나는 대로 알려드리겠습니다.”

원장과 인사한 천중명은 그 길로 현관으로 내려갔고, 곧장 병원 정문을 나서 바깥쪽의 벤치에 앉았다.

아직 알아보지는 않았지만, 어쩐지 평범한 교통사고가 아니었을 거란 생각에 속이 답답했다.

“후.”

숨을 길게 내쉰 천중명이 담배에 불을 붙인 직후였다.

부속실과 비서실 차량이 줄줄이 들어섰고, 차에서 내린 곽대출이 보였다.

“회장님!”

“앉아.”

달려온 곽대출은 직원들의 눈을 의식해서인지 천중명의 앞에 서 있었다.

“앉아, 인마.”

“예.”

천중명이 건넨 담배를 받은 곽대출이 조심스럽게 불을 붙였다.

“수술 중이란다. 늑골이 부러지면서 폐를 찔러서 피를 토했다고 하고. 그놈이 사고 직전에 힘으로 의자를 넘기면서까지 총수님을 지켜냈단다.”

할 말이 없는지 곽대출은 담배 연기만 길게 뿜어냈다.

“일은 어쩌고 달려왔어?”

“교통사고 소식을 들었는데 기분이 묘하더라고, 회장님. 그래서 일단 달려왔습니다.”

“하긴, 만섭이가 저렇게 됐는데 너랑 내가 곁을 지켜주지 않는 것도 이상하다.”

그렇게 담배를 피우고 나서, 천중명은 다시 병실로 향했고, 곽대출은 수술실을 향해 움직였다.

**

천상기는 이제야 하늘이 돕는 느낌이었다.

“그 곰 같은 새끼! 에이, 재수 없는 새끼! 정말 잘 됐다! 사람이 꼭 한 대로 벌을 받거든. 나를 그렇게 짐짝 들듯 들더니 결국 벌을 받는구나! 벌을 받아!”

그 뒤로도 “뒈지면 연락 줘.” 따위의 몇 마디를 더 쏟아낸 뒤에야 천상기는 통화를 마쳤다.

“이런 기회를 놓치면 나 역시 박무일과 다를 바가 없어요.”

중얼중얼 말을 지껄이며 천상기는 번호를 찾아 통화 버튼을 눌렀다.

“어! 나야. 더 볼 거 없어. 오늘 중으로 작업 들어가. 그래. 밤이고 뭐고, 손쓰고 난 뒤에 바로 연락해. 그럼 나머지는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

통화를 마친 그는 연달아 다른 번호를 또 눌렀다.

“여보세요? 서 기자? 납니다. 오늘 일이 벌어질 것 같은데 준비하세요.”

서수미가 하는 말을 듣던 천상기가 가볍게 웃었다.

“신임회장이 효자 흉내는 엄청 내거든. 그러니까 이럴 때 사고가 연달아 나와 줘야 효과가 크지. 그래요. 잘 부탁해, 서 기자.”

전화가 끊긴 것을 확인한 천상기는 또다시 번호를 눌렀다.

“박 전무. 그거 어떻게 됐어? 내일 중으로 됐으면 좋겠는데. 그래. 우리 다시 영광을 찾아야지. 안 그래?”

기분 좋게 통화를 마친 천상기가 휴대전화기를 책상에 내려놓았다.

“어디, 연타석으로 한번 당해 봐라, 이 개망나니야. 사망사고에 금융사고 터지면서 휘청할 때 약혼녀를 비롯한 주변 사람들이 마약을 했다는 보도가 딱!”

말끝에 천상기는 엄지와 중지를 튕겨서 ‘딱!’ 소리를 요란하게 울렸다.

“세상 혼자 사는 게 아니란 거 알게 될 거다. 그리고 내가 회장이 되면 넌 죽게 돼. 그래야 나처럼 뒤에서 노리는 일이 없지.”

모처럼 기분이 좋아진 천상기는 양팔을 머리 뒤로 돌려서 의자에 깊게 몸을 기댔다.

“휠체어를 2년씩 타고 다니라고? 에라, 이 개새끼야!”

천상기는 이미 모든 것을 거머쥔 사람의 표정이었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