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5
085. 아직 시작도 안 했는데? (1)
유진교가 나가고 난 뒤, 천중명은 결재서류에 집중했다.
보고서란 무섭다.
첫날은 내용을 파악하기 급급했었는데 하나하나 꼼꼼히 살피다 보면 곳곳에 묻어있는 작성자의 의도가 천중명에게 전달되었다.
공명심에 사로잡혀 매출만 극대화하겠다는 보고서가 있는가 하면, 뒤로 무언가 거래가 있는 것이 아닌가 싶은 의심스러운 보고서도 있었다.
‘이거 봐?’
새로운 기술이라고 결재를 올렸는데 실제로 담당 임원은 내용을 잘 모른 채 복잡한 자료만 잔뜩 올려놓은 보고서를 보며 천중명은 연필로 보류라는 글씨를 적어놓았다.
그룹 전체로 보면 크지 않은 금액일지 몰라도 이런 식으로 다른 사람의 공을 가로채거나 퇴직금 대신 한몫 챙길 의도가 드러난 보고서에 얌전히 사인할 마음은 없었다.
지이잉.
그때 휴대전화기가 울려서 천중명은 시간을 먼저 확인했다.
9시 40분이니 유진교가 나가고 한 시간 반을 훌쩍 넘긴 시간이었다.
[강성학원에 대한 세무조사 기사가 포탈에 게재되었습니다.]
최만호의 보고였다.
천중명은 잠시 보고서를 두고 모니터로 시선을 옮겼다.
[강성학원. 고강도 세무조사]
제목은 나쁘지 않았다.
마우스를 움직이자 국세청이 ‘강성학원을 세무조사한다’는 내용과 함께 이유가 제법 상세하게 적혀 있었다.
기사는 모두 세 개 항목으로 나뉘는 치밀함도 있었다.
국가보조금의 전횡, 이사장과 가족들의 횡령, 그리고 그 외에 개인 비리였는데 기사만 읽다 보면 천하에 이렇게 사악한 인간들이 있을까 싶은 정도였다.
천중명은 마지막으로 기사에 달린 댓글들을 하나씩 읽었다.
모조리 사형시키라는 과격한 댓글부터 평생 교도소에 넣어두라는 기사, 이 기회에 사학재단을 모조리 조사해야 한다는 내용이 거의 대부분이었다.
“강승애, 당신은 우선 여기까지.”
천중명은 시선을 내려 보고서를 당겼다.
“기대해, 천상기. 너는 이제부터 시작이니까.”
픽 웃은 천중명은 보고서로 시선을 내렸다.
**
쓰러졌던 강승애는 좀비처럼 일어섰고, 산산이 부서진 정신을 악착같이 추슬렀다.
방법을 찾아야 했다.
당장 세무조사를 당하는 현장에 뛰어가 봐야 추한 모습만 카메라에 담긴다.
첫 번째 해결책인 천중명은 독한 인간이다.
계산이 빠른 데다 천호득에게 딱 달라붙어 회장 자리를 얻어내는 간교함마저 갖췄다.
그런 인간을 직접 상대하는 것은 위험한 일이어서 작은 테이블 앞에 겨우 앉은 강승애는 결국 천호득을 떠올렸다.
누가 뭐라 해도 정답은 역시 노인네밖에 없었다.
어제는 너무 늦은 시간이라 천중명과 마주쳤다만, 지금 달려가면 단둘이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 테고, 그렇게만 된다면 어느 정도는 얻어낼 자신도 있었다.
스위트룸이었다.
거울을 들여다 본 강승애는 우선 급한 대로 티슈를 뽑아 사우나에서 받은 마사지 덕분에 윤기 자르르 흐르는 얼굴을 닦아냈다.
이 정도면 적당하고.
다음으로 그녀는 다시 양손을 들어 머리를 마구 비볐다.
그리고는 마지막 자존심인 립스틱만 입술에 발랐다.
우우웅. 우우웅.
휴대전화기가 수시로 울었고, 중간, 중간에 연달아 문자를 보냈지만 그녀는 쳐다보지도 않았다.
**
천상기는 목적한 바를 손에 넣기 위해 천호득과 천봉서에게 납작 엎드리는 근성이 있었다.
그러나 그런 면만 보고 그를 과소평가하면 큰코다친다.
천상기는 원래 지고는 못사는 스타일이었다.
지금의 굴욕을 꿀처럼 삼키는 한이 있더라도 최후의 승자가 되겠다는 것이 천상기의 좌우명이리만치 그는 목적을 향해 일관되게 나아가는 뚝심이 있었다.
“차를 준비해.”
[어떤 차로 준비할까요?]
“야, 이 멍청아! 그룹 본사에 갈 거니까 타고 갈 차를 준비하라고! 처마시는 차 말고, 타고 갈 차! 승합차!”
일이 꼬이려니까 별게 다 속을 썩인다.
해결 방법은 천중명 밖에 없었다.
지금의 천호득은 이빨 빠진 호랑이에 뒷방 늙은이여서 실권이 전혀 없다.
그러니 먼저 천중명을 찾아가서 천봉서에게 하듯 고개 숙이고 매달릴 생각이었다.
다음으로 천중명이 천호득을 사자가 어금니 아끼듯 하니까 이제부터 효자의 탈을 뒤집어쓰고 기회를 엿볼 계획이었다.
천중명이 자리에 없을 수도 있었다.
그렇다면 더 좋다.
비참한 몰골도 로비나 부속실에 딸린 작은 소파 옆에서 기다리면 그림이 더 잘 나올 테니까.
너, 이 새끼!
진짜 두고 보자.
천상기는 이를 악물었다.
**
어떻게 도착했는지 모른다.
평창동의 정문에 차를 세운 강승애가 운전석에서 내렸는데 직원들은 앞에 손을 모은 자세로 멀뚱멀뚱 바라볼 뿐 움직이지 않았다.
“뭐하는 거야?”
“들어가실 수 없습니다.”
정문을 등지고 선 직원이 무표정한 얼굴로 내놓은 답이었다.
“미쳤어? 너 잘리고 싶어?”
“회장님의 지시입니다.”
“회장? 어떤 회장?”
“천중명 회장님입니다.”
강승애는 눈에 불이 확 올라오는 것을 초인적인 의지로 참았다.
“내가 지금 아버님께 전화해서 허락받으면 되지?”
강승애가 전화기를 뽑아 들었을 때였다.
정원으로 향하는 계단에서 프랑켄슈타인을 닮은 장만섭이 성큼성큼 내려왔다.
무섭다, 저렇게 무식한 인간은.
저런 괴물 같은 인간이 막무가내로 쫓아내면 힘으로는 당할 방법도 없었다.
“들어오시랍니다.”
그러나 강승애의 염려와 달리 장만섭은 오히려 문을 열어주었다.
몸을 비켜주는 직원들을 독한 눈으로 째려본 강승애는 곧바로 저택 안으로 들어섰다.
장만섭을 따라 걸었고, 천호득이 지켜보고 있을지 모를 1층 서재를 향해 힘겨운 눈빛도 한 번 던져줬다.
거실로 향하는 문을 들어섰을 때, 천호득은 소파의 상석 옆에 있었다.
“무슨 일이냐?”
숨을 한 번 커다랗게 들이마신 강승애는 장만섭, 이은명, 그리고 두 명이 메이드가 보는 앞에서 거실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용서해 주세요.”
“그런 말 할 생각이면 돌아가.”
이 정도 반응은 예상했었다.
“세무조사만 덮어주시면 다시는 찾아뵙지 않고, 조용하게 그 사람 아이 키우며 살겠습니다. 아버님. 한 번만 도와주세요.”
수천 개의 바늘이 평창동 거실의 천장에서 내려와 지켜보는 이들의 정수리를 찌르는 것처럼 바라보기조차 고통스러운 모습이었다.
“저희 아버님도 병원에 계세요. 마지막으로 부탁드립니다. 이번 한 번만…. 흐윽. 흐으윽. 도와주세요, 아이들을 봐서라도…. 아버님.”
이런 처지가 서글퍼서인지 실제로 눈물도 나왔다.
강승애가 손가락 안쪽으로 눈물을 찍어낼 때였다.
“죽은 내 아들을 데려와. 그럼 도와주마.”
정나미 뚝 떨어지는 천호득의 음성이 달려들었다.
“힘들겠지? 그럼 윤 실장의 손목과 발목을 다시 붙여놔. 그렇게만 해도 도움을 주마.”
강승애는 이를 꽉 깨물었다.
사람이 무릎까지 꿇고 매달리는데 어찌 이리 잔인할까?
그래! 그렇게 살았으니 큰아들 죽고 집안은 이렇게 콩가루가 된 거지!
천호득을 한두 해 겪은 강승애가 아니어서 이미 도움받기는 틀렸다는 것을 분명하게 알았다.
강승애는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총수님은 뭘 그렇게 제대로 사셨다고 저한테 이러세요? 죽은 우리 그이에게 총수 자리 넘겨주셨으면 다들 행복했을 거 아니에요!”
참았던 울분이 터지자 강승애의 눈에 불길처럼 독기도 피어났다.
“아끼던 딸 죽고, 그거로도 모자라서 큰아들 저렇게 보내고서도 모르시겠어요? 총수님이 다 이렇게 만들었잖아요!”
“내가 잘못 살아서 이렇게 된 것은 내가 알아서 받는다. 그러니 너는 너대로 네 몫을 받아들여.”
“당신들은 잃은 게 없잖아! 돈도 그대로고! 집도 그대로 있고! 그룹도 손에 쥐고 있잖아! 나는! 죽은 사람 애들 키워야 하는 나는 어쩌라고! 어떻게 하라고! 뭘 내놔야 할 거 아냐!”
저러다 혹시 달려들까 싶어서 장만섭이 천호득의 뒤로 움직였는데 당장 강승애는 눈에 보이는 것이 없었다.
“사람이 어떻게 그렇게 잔인할 수 있어! 죽었어도 자식이잖아! 그 사람이 남긴 새끼들이 불쌍하지도 않아!”
“지금의 네겐 어떤 돈이 가도 남아나질 않는다.”
“줘봐! 주고서 그런 소리를 해! 제대로 뭐라도 주고 그러라고!”
힘 빠진 천호득의 한숨이 들린 다음이었다.
“저 여자를 내보내. 행여나 손톱만큼 다치기라도 하면 일 키울 테니까 그 점에 주의해서 정문에 데려다주고 와.”
“예에, 회장님.”
내내 지켜보던 장만섭이 독한 표정으로 강승애에게 다가섰다.
천호득은 물론이고, 이은명, 강승애마저 장만섭의 눈을 보며 섬뜩한 느낌에 몸서리를 칠 때였다.
자세를 낮춘 장만섭이 거짓말처럼 강승애의 발목을 잡은 뒤에 그걸 위로 불쑥 들었다.
콰당!
“뭐하는 거야!”
엉덩방아를 찧었다가 거꾸로 들린 강승애가 흘러내리는 치마를 붙잡은 채 지른 고함이었다.
머리칼이 아래로 흐트러진 데다, 피까지 쏠린 그녀의 얼굴은 차마 바라보기 어려운 지경이었다.
“문 좀 열어주십시오.”
한 손에 발목 하나씩을 잡아들고도 팔을 쭉 뻗어낸 장만섭의 부탁에 메이드 한 명이 질린 얼굴로 문을 열어주었다.
“야, 이 미친 새끼야!”
다리를 위로 들린 닭처럼 처참한 몰골로 강승애가 들려 나간 다음이었다.
조용하게 움직인 이은명이 천호득의 왼쪽 어깨를 아기 달래듯 조심스럽게 다독여주었다.
“중명이가 만난다는 아이는 어때? 결혼하라고 하고도 정작 나는 본 적이 없어.”
뜬금없이 나온 천호득의 질문에,
“착한 아이예요.”
이은명의 답이 있었다.
그리고 그때 장만섭이 돌아왔다.
“이놈아! 사람을 그렇게 들면 어떻게 해!”
“죄송합니다. 총수님께 대드는 것을 보고 화가 치밀어서 그랬습니다. 용서하십시오.”
우렁우렁한 음성으로 고개를 숙이는 장만섭을 보며 천호득은 고개를 저었다.
“너는 정말 생각이 없어?”
“앞으로 조심하겠습니다.”
다시 고개를 숙이는 장만섭을 보며 천호득은 슬프게 웃었다.
“점심 먹고 외출할 테니까 그렇게 알아.”
“예, 총수님.”
장만섭이 답을 하는 것으로 평창동은 다시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왔다.
천호득의 속을 알 수는 없지만 말이다.
**
오전 내내 결재서류를 파고들던 천중명은 고개를 들고는 픽 웃었다.
들어서는 천상기의 표정만 봐서는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처지라고 해도 믿을 수밖에 없는 수준이었다.
자리에서 일어난 천중명은 소파의 상석으로 움직였다.
“오늘은 쓸데없는 놈들 안 데려왔어?”
“네가 데리고 다니지 말라며.”
기도 안 차는 대꾸에 천중명은 그저 웃기만 했다.
“차 좀 주지.”
“네, 회장님.”
소파 하나를 밀어내고 휠체어의 자리를 잡아준 부속실 직원이 나간 다음이었다.
“무슨 일이야?”
천중명이 물었고, 대꾸 대신 천상기는 풀이 죽은 표정을 먼저 보여주었다.
“내가 잘못했다.”
사과를 전한 천상기가 얼른 고개를 떨궜다.
할 수만 있다면 연말 연기대상을 가슴에 안겨주고 싶은 명연기였다.
침묵이 흐르는 사이 부속실 직원이 들어와 오미자차와 한과를 놓아주었다.
“형.”
기다렸다는 듯 천상기가 화들짝 고개를 들었다.
“사람은 절대 쉽게 안 변해.”
“나도 알아. 나한테 화가 많이 났을 거라는 것도 알고….”
천상기는 순순히 천중명의 말을 받아들였다.
“다른 사람은 속일 수 있을지 몰라도 나한테는 안 통해. 그러니까 헛수고하지 말고 돌아가.”
“말이 너무 심하다.”
“나한테는 안 통한다니까.”
“화낼 거라고 각오하고 왔어. 어떤 욕을 먹더라도 이제는 새사람이 돼보고 싶어서. 저축은행과 시행사 모두 가져가. 나는 당분간 사업에서 손 떼고 아버지 모시는 일에 전념할게.”
대꾸가 없는 천중명을 힐끔 본 천상기가 다시 시선을 떨군 뒤에 입을 열었다.
“내가 뭐 할 말이 있겠냐. 모두 네 뜻에 맡기겠다는 말을 하러 온 거야. 대신 아버지 뵙는 것만 허락해주라. 언제까지고 그렇게 있을게.”
머뭇대던 천상기가 갑자기 올라온 서러움을 이기려는 것처럼 엄지와 검지로 눈을 문질렀다.
“네가 새사람이 됐다고 인정할 때까지 얌전히 지내면서 부족했던 내 모습을 되돌아볼게. 그리고 혹시 그때쯤 기회를 준다면 다시 일하는 거고, 아니라면 나는 그냥 그렇게 살게. 진짜 바라는 거 없어.”
천상기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이번에 주식으로 번 돈도 다 건넬 테니까 아버지 옆에서 내가 뭘 잘못하고 살았는지 반성할 기회를 주라.”
천중명은 한숨을 내쉰 뒤에 고개를 끄덕였다.
“차 마셔요.”
“고맙다….”
간헐적으로 나오는 울음을 억지로 누르며 찻잔을 잡았던 천상기가,
“흐으으. 흐으.”
잔을 들고는 서러운 울음을 터트렸다.
“그만 울고 차 마셔.”
“그래. 내가 다 잘못했다. 흐으으.”
비싼 정장 재킷의 소매에 눈물을 닦은 천상기가 오미자차를 한 모금 마시고는 커다랗게 숨을 내쉬었다.
“정말 시행사까지 내가 가져와도 된다는 거지?”
“그래. 뭐든 네 뜻대로 해.”
고개를 끄덕인 천중명은 협탁에 올려놓은 인터폰을 눌렀다.
[네, 회장님.]
“본부장과 기획실장 좀 불러줘요.”
[예, 회장님.]
천상기는 계속 고개를 숙인 자세였다.
“후우.”
그가 감정을 추스르는 척, 긴 한숨을 쏟아낸 뒤였다.
노크 소리에 뒤이어 유진교와 최만호가 들어섰다.
천중명에게 인사한 두 사람은 그 뒤에 천상기를 향해 짧게 고개 숙였다.
“형이 저축은행과 시행사의 운영을 그룹에 맡기겠답니다. 그거 맞지?”
“응?”
“저축은행과 시행사의 운영을 내게 맡긴다며?”
“그래. 처분대로 따를게.”
어차피 덤벼봐야 천중명이 독하게 마음먹으면 지경갤러리의 강승애처럼 천상기야 얼마든지 쳐낼 수 있는 상황이었다.
천상기가 아쉬움 가득한 답을 내놓은 직후였다.
“저축은행과 시행사 역시 임원 전체를 교체하겠습니다. 대표 선임까지 두 분이 애써주세요.”
“알겠습니다, 회장님.”
유진교가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먼저 지시를 받았다.
“강성학원의 세무조사를 다른 언론에서도 취재에 나선 모양새고, 보도 채널에도 이미 두 번이나 방송되었습니다. 참고하십시오.”
한 마디를 덧붙인 유진교가 최만호와 함께 집무실을 나섰다.
“형.”
“응?”
“내가 딱 40년만 지켜볼게. 그때까지 변하지 않으면 기회를 주는 거로 하지. 이제 그만 가 봐.”
천상기의 눈 끝이 고통을 누르는 사람처럼 흉하게 일그러져 있었다.
“야! 사람이 어떻게 이렇게 잔인해! 어쩌면 하나 남은 형한테 이렇게까지 독하고 모질게 굴어!”
“조용히 가. 이제부터 진짜 지옥문이 열릴 건데 벌써 이러면 곤란하잖아?”
천상기는 부들부들 떨기만 했다.
“40년만 꾹 참아. 그때 가서도 변함없으면 내가 기회를 줄 테니까.”
“시행사라도 돌려줘.”
하여간 사람이 참 쉽게도 바뀐다.
천중명은 인터폰의 스위치를 눌렀다.
[네, 회장님.]
“손님 나가신다니까 모셔다드리지.”
인터폰에 지시를 마친 천중명은 천상기를 향해 시선을 들었다.
“시행사는?”
“이미 본부장과 기획실장이 처리하러 갔잖아.”
“그거야 얼마든지 바꾸면 되는 거 아냐!”
부속실 직원이 와서 그의 휠체어를 잡았을 때 천중명은 자리에서 일어섰다.
“앞으로 내가 부르기 전에는 이분의 면담 요청을 받지 마세요.”
“예, 회장님.”
“야! 어떻게 사람을 이렇게 대할 수가 있어!”
고함을 지르는 그를 부속실 직원이 데리고 나갔다.
이것들은 도대체 전에 어떤 사람들을 상대했기에 모든 게 자기들 뜻대로 될 거라는 확신에 차서 사는 거지?
아무렴, 저따위 속임수에 사람이 넘어가길 바랐나?
천중명은 책상으로 옮겨가 결재서류에 고개를 묻었다.
아직 시작도 안 했는데 뭐 이런 일로?
너를 새 인간 만들기 프로젝트를 시작할 생각이거든.
죽는 것만큼 끔찍하겠지만, 혹여 그냥 죽게 되더라도 천봉서와 윤만석에 대한 죗값으로 생각하고 겸허하게 받아들여.
잠시 들었던 잡생각을 천중명은 바로 털어냈다.
오늘도 할 일이 정말 많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