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로드 오브 머니-72화 (72/315)

# 72

072. 무슨 짓을 하려는 거야? (3)

접견실을 나온 천중명은 집무실을 향해 걸었다.

“본부장과 기획실장이 대기 중입니다. 그 외에 경제인연합회, 기재부, 문체부, 핸드볼협회에서 회장님과의 통화나 면담을 신청했습니다.”

그 짧은 순간에 부속실 직원이 보고한 내용이었고,

“공중파 2개, 언론사 여섯 곳에서 인터뷰 요청이 있었으며, 해외 경제 전문 채널 세 곳에서도 역시 인터뷰가 가능한지 의사를 타진해 왔습니다.”

연달아 책상에 앉을 때까지 추가로 보고를 전했다.

“그걸 부속실에 신청하나?”

“홍보실에 접수된 요청 중에서 통화하시거나 만나볼 필요가 있다고 판단되는 사안들만 우선 부속실로 전합니다.”

직원은 방금 보고했던 내용이 간추려진 보고서를 천중명의 앞에 놓아주었다.

면담 신청 기관, 담당자, 연락처, 목적, 예상 소요 시간 등이 순서대로 쭉 적혀 있었다.

“궁금하신 내용이 있으시면 기획실장이 올라와 별도로 보고 드리게 됩니다.”

자료를 살피던 천중명의 시선을 끄는 것이 있었다.

핸드볼협회였다.

천봉서의 장례식에서 들었던 바대로라면 이건 지경건설로 가야 할 부분이었다.

“생각해 보고 결정합시다. 본부장님과 기획실장 들어오라고 하고, 나는 물을 좀 부탁해. 그냥 물병 채 가져다줘.”

“알겠습니다.”

부속실 직원이 나가고, 숨 돌릴 틈 없이 유진교와 기획실장 최만호가 들어왔다.

아직 오전 업무를 보는 중이었다.

그룹의 총수라는 직책이 제대로 하려면 정말 눈 깜박일 틈조차 없는 자리이고, 반대로 유진교와 최만호에게 알아서 하라고 던져주면 적당히 놀고먹으면서도 해볼 만한 일이었다.

“앉으세요.”

천중명은 두 사람에게 소파를 가리키고 상석에 앉았다.

부속실 직원이 천중명의 옆에 물병과 컵을, 유진교와 최만호 앞에는 국산 차를 놓아주었고, 거기에 약과와 한과 몇 개를 세 사람 앞에 따로 내놓았다.

“기다리셨던 이유는요?”

“회장님.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은 한 번 더 고려해 보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말과 함께 유진교는 결재판을 천중명의 앞에 펼쳐놓았다.

“말씀하신 대로 바로 진행할 경우, 적자로 돌아서는 계열사가 나오고 이는 해당 임원들의 인사고과에 반영됩니다.”

천중명은 올라온 보고서를 천천히 넘겼다.

“인원을 감축해야 하는 계열사나 부서도 있습니다. 이 점도 참고하셔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지경화장품과 지경디자인, 냉동창고와 달리 그룹 전체의 정규직 전환은 아무래도 충격이 꽤 있을 일이었다.

천중명이 입술을 모은 채로 보고서에 집중할 때였다.

“대교건설 오상구 회장이 방문을 요청했습니다. 회장님께서 어떻게 처리하면 좋을지 판단해 주시면 그대로 실행하겠습니다.”

최만호가 기다렸던 이유를 전했다.

“일단 시간을 벌었으면 싶은데 괜찮을까요?”

“그럼 우선 한 달가량 시간을 두겠습니다. 다만, <오늘의 아침> 같은 경우는 운영에 타격이 커서 적으로 돌아설 확률이 높아집니다.”

“그럼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폐간시켜 버리세요.”

다부진 천중명의 답이었다.

최만호는 놀란 눈치인데 반해 유진교는 덤덤한 표정이었다.

“저를 잘 알고 계시니 두 분에게는 솔직하게 말하겠습니다. 아직 모르는 것이 많은 내가 함부로 결정을 내리면 손실이 발생하고 그 손실은 고스란히 직원들에게 돌아갑니다.”

보고서에서 시선을 든 천중명은 천천히 말을 이었다.

“작은 것에서 시작할 생각입니다. 언제고 잘못되었다고 판단되는 부분은 말씀해 주시면 싶습니다. 대신 우리가 가야 할 방향은 분명합니다. 지금까지와 달리 새로운 그룹을 만들 겁니다.”

두 사람 모두 익히 짐작할 만한 내용이었다.

“내가 너무 직선으로 향해서 돌아가자는 것은 받아들이겠습니다. 그러나 방법이 없다는 생각은 버리세요. 지금처럼 비정규직이란 편법으로 인건비를 쥐어짜는 방식에 의지한다면 우리는 오래 견디지 못합니다.”

생각이 많아진 모양이었다.

유진교와 최만호 모두.

“경력이 쌓인 직원을 밀어내고 새로운 직원을 채워서 언제까지 견딜 것 같습니까? 임원은 실적에 따라 보상하고, 직원은 안정적인 삶이 가능하게 대우할 때 우리 모두 발전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회장님 말씀은 잘 알겠습니다. 그러나 각 계열사가 자체적으로 조직을 다시 구성할 시간이 필요합니다. 정규직으로 전환하게 되면 인원을 줄여야 할 부서가 반드시 나옵니다.”

유진교가 이렇게 이야기할 정도라면 임원들의 고민은 훨씬 크다는 의미였고, 반드시 일정 수준의 감원이 있으리란 예고와 같았다.

천중명이 전혀 원하지 않는 방식이었다.

“그건 저도 좀 더 고민하죠. 그리고 말이 나온 김에 의논하고 싶은데 임원들은 어떻게 할까요? 고충이 크다는 말도 들었고 그렇게 해서는 안정적인 유지가 힘들 것 같아서 묻는 겁니다.”

유진교의 고민을 천중명은 분명하게 보았다.

“본부장님? 편하게 말씀하세요.”

“그룹을 파악하는 데 시간이 꽤 필요하시리라 봅니다. 그렇다면 당장은 변동 없이 출발하시고, 계열사별로 충분한 여유를 가지고 판단하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어렵게 꺼낸 의견이었다.

“알겠습니다. 그렇다면 본부장님의 의견대로 당장은 큰 임명이 없는 것으로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회장님.”

임원들을 대표한 인사처럼 유진교가 감사의 뜻을 표했다.

그가 느꼈던 부담이 얼마나 컸는지를 알 것 같은 인사였다.

“그 외에 내가 대표를 맡았던 화장품과 냉동창고, 지경디자인의 경우인데요. 어차피 상장사들도 아니고, 실적 때문에 매각까지 고려했던 회사들입니다.”

천중명은 생각하던 바로 꺼냈다.

“지금까지는 CI와 디자인을 관장했던 그룹 디자인 부서와 지경디자인을 통합할 생각입니다. 그리고 지경디자인의 대표이사에 허선영 씨를 임명할 생각입니다.”

“알겠습니다, 그렇게 발령 내도록 하겠습니다.”

역시 결정 난 부분에 관해 유진교는 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그럼 일어서겠습니다.”

두 사람이 자리에서 일어났고, 바로 부속실 직원이 들어와 잔을 정리했다.

“거기 약과 하나만 놔줘.”

“따로 준비해 들릴까요?”

“아니. 그냥 하나만 줘 봐요.”

천중명은 약과를 하나 들고 책상으로 걸어갔다.

윤기가 자르르 흐르는 게 꼭 먹어보고 싶었다.

“아! 지경디자인에 연락해서 고 상무 들어오라고 해줘.”

“예, 회장님.”

문이 닫히자 거실 창을 향해 선 천중명은 약과를 한입 베어 물었다.

“염병.”

욕이 절로 나왔다.

약과가 이렇게 맛있을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자 절로 나온 욕이었다.

**

천호득은 이상하게 심통 맞은 얼굴이었다.

“거기!”

“예, 총수님.”

계속 “야!”라든가, “야, 인마!”로 부르다가 이은명의 간곡한 조언에 바꾼 호칭이 “거기!”였다.

“너 병원에서 아침이라고 사 왔던 김밥, 그거 가격이 얼마나 하는 거냐?”

“소고기 김밥이라 조금 비쌌습니다. 3천5백 원입니다.”

“그냥 3천5백 원?”

“예, 회장님. 일반 김밥은 2천5백 원인데 그래도 회장님 드실 거라 좀 비싼 거로 주문했습니다.”

천호득이 기가 막혀 웃을 때였다.

“김밥이 드시고 싶어요? 얼른 준비할까요?”

이은명이 끼어들었고,

“너무 고급스러운 거 말고, 이상하게 거칠게 만든 그게 먹고 싶어서 그래. 너, 나랑 그 김밥 좀 사러 가자.”

“병원 앞에 말씀이십니까?”

“그래!”

“예, 총수님.”

장만섭이야 시키는 대로 다 하는 인간이지만, 이은명이야 어디 그런가.

“탈 나시면 어쩌려고 그러세요? 얼른 만들어드릴게요. 어차피 한두 개 드시면 더 드시지도 못할 텐데요.”

“사서 들를 곳도 있어. 그러니까 다른 소리 말아. 얼른 담요나 하나 준비해 줘.”

이 고집을 당장 이은명은 못 꺾는다.

결국, 휠체어를 안다시피 든 장만섭이 천호득을 챙겼고, 아무래도 불안한 이은명이 함께 가는 조건으로 셋이서 평창동을 나섰다.

저택 앞에는 승합차가 기다렸다.

장만섭은 너무나 손쉽게 휠체어를 불쑥 들어서 승합차에 올려놓는 괴력의 소유자여서 타고 내리는 것이 불편할 일도 없었다.

“어디로 가십니까?”

“이 친구가 말하는 병원 앞 식당에 갔다가 방지병원에 들를 거다.”

“예, 총수님.”

승합차가 출발하고 나서야 이은명은 천호득이 왜 무리한 고집을 피웠는지 알았다.

윤만석이 보고 싶었던 모양이었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말을 하지는 않지만, 보통 사람들이 먹는 김밥 사 들고 가서 잠시라도 같은 처지로 마주하고 싶은 마음에 고집을 피웠던 게 분명했다.

나이 들어 주변에 아무도 남지 않고 외로울 때 꼭 옆에서 지켜달라던 당부가 이만큼 분명하게 느껴질 일이 있을까?

외로워서, 오래 함께했던 사람을 끝내 잊지 못해서 천호득 평생에 단 한 번도 쳐다보지 않던 김밥을 사서 찾아갈 거라고 누가 생각이나 했겠나.

이은명은 안쓰러운 표정을 감추기 위해 애꿎게 천호득의 다리를 덮은 담요를 정리했다.

**

지경디자인 고상득 상무는 과연 남달랐다.

“회장님! 만세! 만세! 만만세!”

집무실이 쩌렁쩌렁 울리도록 만세삼창을 외치면서도 얼굴색 하나 변하지 않는 저 뻔뻔함, 진심에서 우러나온 듯 눈까지 붉어지는 저 근성, 그런 뒤에 고개를 돌리고 손으로 입과 코를 막는 감동적인 마무리까지.

“앉아요.”

“회장님. 저는 처음 뵐 때부터 오늘 같은 날이 있을 거라고 분명하게 믿었으며….”

“차 드세요. 약과가 맛있어요. 그것도 하나 드시고.”

“예, 회장님.”

얼른 그의 입에 오미자차와 약과를 물린 천중명은 그룹 디자인실과의 통합, 새 대표로 허선영을 임명할 거라는 내용을 알려주었다.

“고 상무를 믿고 낸 발령이니까 잘 좀 도와줘요.”

“이 한 몸 다 바쳐서 사모님을 반드시 지켜내겠습니다.”

이런 모습이 고마운 반면에 고상득은 오래 마주하고 싶지 않은 사람이기도 했다.

우우우웅. 우우우웅.

그때 천중명을 구해주는 듯한 전화가 울렸고,

“여보세요?”

[기획실장입니다, 회장님. 공매도를 시작했습니다. 주가 변동과 공매도 물량은 컴퓨터 주식 관련 항목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최만호의 보고가 있었다.

“고 상무님. 내가 또 일이 생겨서 시간이 좀 그런데 미안해서 어쩌지요?”

“회장님! 그룹을 보십시오! 저는 회장님을 이렇게 뵌 것만으로도 더할 수 없이 감사합니다! 그럼 바로 일어나겠습니다!”

고상득이 나가고 나자 천중명은 곧바로 책상으로 움직였다.

최만호 실장의 말대로 주식란을 찾았고, 종목란에 지경건설을 입력했다.

현재가, 매수호가, 매도호가, 거래량, 그 외에 오른쪽 하단에 공매도 수량과 증권사별 거래량이 따로 정리되어 있었다.

천중명은 리모컨을 들어서 벽 안쪽의 TV를 켰다.

[증권사에서 지경건설에 대한 공매도 주문이 상당수 나오고 있습니다. 이 주문이 지경그룹이 오전에 내놓았던 경고와 관련 있다고 보십니까?]

[경영권 확보를 위해 한 주라도 더 주식을 확보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봤는데요. 공매도 주문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당장은 판단하기 어렵습니다.]

앵커와 전문가가 뒤쪽에 지경건설의 주가 차트를 펼쳐놓고 흥분하고 있었다.

[주식을 보유한 증권사의 주식을 빌려서 먼저 매도하는 것이 공매도 아니겠습니까? 그렇다면 지경그룹은 반드시 주가가 내려갈 것이라는 확신이 있다는 의미인데요?]

[예. 현재 개인투자자들이 상당히 동요하고 있고, 일선 창구로 많은 문의전화가 몰리고 있다는 소식입니다.]

보도를 보던 천중명은 피식 웃었다.

뒤통수를 얻어맞아 멍할 강승애의 따귀를 때려줄 생각이었다.

리모컨으로 소리를 줄인 천중명은 바로 휴대전화기를 들어 유진교의 번호를 눌렀다.

- 유진교입니다.

“본부장님. 지경갤러리의 이사장 선임을 내가 결정할 수 있죠?”

- 그렇습니다, 회장님. 갤러리의 지분 전체가 그룹 소유입니다.

“그렇다면 지경화장품의 이중성 부사장을 제 대신 대표이사로 발령 내고, 다음으로 지경갤러리의 강승애 이사장을 해임시키세요. 그 자리는 당분간 공석으로 두겠습니다. 건설의 회장실에서 나가도록 조치하시구요.”

- 시장에 충격이 꽤 있을 겁니다.

음성만 들어서는 유진교가 꽤 충격을 받은 눈치였다.

“국세청장과의 면담은 어떻게 됐습니까?”

- 내일 오전으로 조율하고 있습니다. 확정되는 대로 보고 드리겠습니다.

“그럼 일단 내가 말씀드린 것을 바로 조치하고 발표해 주세요.”

- 알겠습니다, 회장님.

통화를 마친 천중명은 다시 번호를 찾아 통화 버튼을 눌렀다.

- 여보세요? 천 회장이신가?

안쓰럽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허세직의 첫마디에는 반가움이 가득 담겨 있었다.

“천중명입니다. 전화가 늦어서 죄송합니다.”

- 한창 바쁠 시기에 번거롭게 해서 오히려 내가 염치가 없지. 저기, 전화로는 그렇고 잠시 보고 의논할 일이 있는데 시간이 좀 되시겠나?

어차피 허선영의 일로 정리가 필요한 상황이었다.

“내일 오전에 제가 다시 전화 드리면 어떻겠습니까? 오후에 뵙도록 시간을 맞춰보겠습니다.”

국세청장과의 약속을 봐서 정할 요량으로 건넨 대꾸였다.

- 그러세. 그럼 내가 전화 기다리겠네.

통화를 마친 천중명은 연이어 번호를 찾아 통화 버튼을 눌렀다.

- 최만호 실장입니다.”

“실장님. 궁금한 게 있어서 그런데요. 공매도 주문을 내는 증권사 중에 남부증권은 없는데 어떻게 된 거죠?”

- 공매도 거래를 안 하는 증권사도 있고, 그룹 차원에서 거래 증권사로 지정하지 않은 곳도 있습니다.

최만호의 답은 바로 나왔다.

“번거롭겠지만 남부증권에 관심 가는 인턴 직원이 있습니다. 지점은 잘 모르겠고, 그 직원이 곤란한 모양인데 혹시나 도움을 줄 부분이 없을까 해서 전화했습니다.”

- 이름을 주시면 제가 확인해 보겠습니다.

천중명은 남부증권과 이명선이라는 이름을 다시 불러주었다.

“그 직원이 실제로 업무에 크게 실수한 부분이 있다면 굳이 나서지 않는 게 좋겠습니다. 다만, 내 상식으로 인턴 직원이 1백 억대 고객을 상대했다는 것이 이상해서 한 번쯤 알아보고 기회를 주었으면 싶거든요.”

- 말 나오지 않도록 잘 알아보고 처리한 뒤에 보고 드리겠습니다.”

“번거롭게 해서 미안합니다.”

천중명이 미안한 인사를 건넨 다음이었다.

- 회장님. 괜찮으시면 기존의 휴대전화기를 부속실에 맡기시고, 개인적인 통화는 새로운 전화기를 사용하시는 게 어떨까 싶습니다.

최만호가 조심스럽게 의견을 전했다.

- 부속실을 통하지 않은 연락처가 많으실수록 회장님의 스케줄 관리와 방문자 통제가 힘들어집니다. 통화도 직접 걸지 마시고 부속실을 통해 연락하시는 게 좋습니다.

최만호가 이렇게 나올 때는 다 이유가 있겠지 싶었다.

“그런 게 있었네요. 알겠습니다, 그렇게 하지요.”

- 받아주셔서 감사합니다.

하나씩 배우는 과정이었다.

일단 원하는 대로 해보고, 아니라고 생각되는 것은 원래대로 돌리면 되는 일이다.

그나마 이렇게 가르쳐주는 사람이 있어서 다행이란 생각도 들었다. 최만호와의 통화가 끝나자마자 곧바로 부속실 직원이 들어왔다.

“회장님. 점심식사는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되었나 싶기도 했고, 이제 반나절 지난 건데 며칠은 이 책상에 앉아 일한 느낌이기도 했다.

“도시락 같은 게 있나?”

“예, 회장님. 일식과 한식, 양식이 있습니다.”

천중명은 픽 웃고 말았다.

불고기, 돈가스 도시락 정도 생각하다가 허를 찔린 기분이었다.

이럴 때 제일 지랄 같은 주문이 아무거나 아닐까?

주인영과 행복할 곽대출을 불러서 둘이 먹어?

천중명이 망설일 때였다.

“알아서 주문할까요?”

센스 있는 질문에 천중명은 의아한 눈으로 부속실 여직원을 바라보았다.

“날씨가 괜찮습니다. 이런 날은 깔끔하게 일식 도시락 드시는 것을 추천해 드립니다.”

“좋겠네. 그거로 부탁해요. 그리고 참. 전화기 하나 부탁해. 이 전화기를 부속실에 맡길 생각인데 중요한 번호 몇 개는 내가 저장할 시간이 필요한데?”

“따로 원하시는 기종이 있으십니까?”

“그런 건 없고.”

“점심 드신 후에 사용하실 수 있도록 준비하겠습니다. 그리고 명단을 주시면 직접 통화하실 분들께는 저희가 문자를 넣겠습니다.”

“그래요. 그렇게 부탁하지.”

“네, 회장님. 점심 준비하겠습니다.”

여직원이 인사를 하고는 부속실을 나섰다.

일이다. 일.

천중명은 휴대전화기를 들어서 이중성 부사장의 번호를 눌렀다.

- 회장님. 이중성입니다.

위치가 사람을 이렇게 바꾸는 모양이었다.

이중성 부사장의 음성이 이전과는 확연히 달랐다.

“혹시 연락받았습니까?”

- 네, 회장님. 기회를 주셨으니 회장님의 뜻에 부합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대표이사가 되었다는 기쁨과 기회를 준 천중명에게 감사하는 마음이 그의 음성에 가득 담겨 있었다.

“손도운 개발자는요?”

- 아예 공장에서 숙식을 해결하며 우리 연구원들과 제품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습니다.

천중명이 흐뭇하게 웃을 때였다.

- 회장님. 문자로 드렸지만, 회장님이 되신 것을 진심으로 축하드리고 저에게 지경화장품을 맡겨 주신 것….

말을 하다가 울컥한 모양이었다.

하기는 일반 사원에서 올라와 한평생을 함께한 회사의 최고 책임자가 되었으니 그럴 만도 하겠다.

“직원이 가장 먼저입니다. 인건비를 줄여서 수익을 내는 대표 이사는 잊으시고, 직원을 제대로 대접하고, 그 이상을 벌어들이는 그런 회사로 만들어주세요.”

-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통화를 마친 천중명은 모처럼 기분 좋게 웃었다.

이중성의 반응이 꼴통 재벌로 향하는 길에서 받은 커다란 선물 같은 느낌이라 그랬다.

휴대전화기를 내려놓은 천중명의 시선에 지경건설의 주가가 보였다.

상한가가 무너져 있었다.

예상보다 효과가 제법 있는데?

지랄 같겠지?

천중명은 소리 없이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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