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로드 오브 머니-70화 (70/315)

# 70

070. 무슨 짓을 하려는 거야? (1)

강승애는 가파른 내리막길을 브레이크 없는 자전거에 탄 채 질주하는 느낌이었다.

돌이키고 싶어도 지금은 평지에 도착해 속도를 줄이든가, 아니면 넘어져서 고꾸라지는 것, 둘 중 하나밖에 선택지가 없었다.

[지경그룹은 M&A 설에 휘말린 지경건설의 주가 상승에 우려를 나타냈으며, 선량한 투자자들이 이에 현혹되지 않도록 주의를 당부했습니다.]

[신임 회장이 출근한 첫날 나온 첫 번째 업무가 경고 메시지라서 시장이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는데요?]

죽은 천봉서의 집무실에 있는 네 대의 TV를 향해 강승애는 눈살을 찌푸렸다.

경제 방송과 주식 전문 채널에서의 최대 화제인 지경건설을 놓고 앵커와 패널들은 잠든 사람을 발견한 모기떼처럼 흥분한 음성이었다.

[지경건설은 오늘도 장 시작과 동시에 상한가를 기록했습니다. 이렇게 되면 어제의 상승폭까지 더해져서 30만 원을 돌파해서 사상 최고가를 경신했고, 시가총액이 8조 원을 넘어선다는 계산이 나옵니다.]

[경영권을 놓고 사망한 전 지경건설 회장의 미망인 강승애 이사장 측과 지경그룹 차남 천상기 회장, 다시 신임 지경그룹 총수인 천중명 회장의 삼파전이 벌어진 건데요.]

[그렇다면 지경그룹은 그룹 차원에서 인수를 포기했다는 의미일까요?]

[그건 좀 더 지켜봐야 하겠습니다. 산이 높으면 골이 깊은 법이라서 어떤 식으로 결론이 나든, 상투를 잡은 투자자는 손실이 엄청날 것이라는 점만은 분명해 보입니다.]

안경을 쓴 앵커와 뚱뚱한 패널은 손에 쥔 떡밥을 지지고 볶느라 심지어 기쁜 얼굴이었다.

[오늘 상한가에 지경건설 주식을 매입한 분들은 하루가 정말 길겠습니다. 아? 네?]

방송을 진행하던 앵커가 갑자기 귀에 꽂힌 리시버를 왼손으로 눌렀다.

[오! 사태가 심상치 않습니다. 지경그룹이 또다시 경고 메시지를 전달했다는 소식입니다. 선량한 투자자들은 지금에라도 지경건설의 투자를 고려하라는 강력한 메시지라고 합니다.]

달각.

강승애가 리모컨 버튼을 누르자 앵커와 패널이 물고기처럼 뻐끔거리기만 할 뿐 소리가 전혀 나오지 않았다.

그러나 화면 아래로, [지경그룹 건설주 매입에 경고]라는 붉은 바탕에 흰색 글씨가 올라와 있어서 붕어들이 뭐라고 떠드는지 충분히 알 수 있었다.

강승애는 앉아 있는 책상의 면을 손으로 쓰다듬었다.

시가총액 8조 원을 넘어선 회사다.

부친인 강종환이 남부럽지 않은 부를 일궜다고 하지만, 교육부니 학부모협의회니 굽실거릴 곳은 여전히 많았다.

이 회사와 전자를 먹는 순간에 강승애의 집안은 준재벌의 반열에 오르고, 2년 정도 알차게 운영하면 재벌 소리를 듣는 집안이 된다.

거의 다 왔다.

바람피우는 남편을 받아들이며, 성공을 위해 달려온 시간이었다. 그런데도 알지 못할 불안감이 강승애를 계속 괴롭히고 있었다.

지금 주식을 모두 팔면 돈을 벌지 않을까?

강승애는 고개를 저었다.

시장이 얼마나 무서운 곳인데.

강승애가 매도하는 순간에 주가는 단숨에 폭락할 거고, 곧바로 하한가에 감당하지 못할 물량이 쌓인다.

게다가 어지간한 주식은 모두 천상기의 손아귀에 있었다.

우우웅. 우우웅.

그때 강승애의 휴대전화기가 울었다.

“네.”

- 나다. 방금 뉴스를 보니까….

“저도 봤어요. 신경 쓰지 마세요.”

- 다들 걱정돼서 내게 전화를 하는데 계속 매입하라고 해도 되는 거냐? 주가가 벌써 30만 원을 넘었어. 지금 사는 사람들은 1천 주만 사도 3억이 넘는다.

“대신 내일도 상한가면 하루 만에 9천만 원을 넘게 버는 거잖아요.”

- 상한가에 물량이 조금씩 나오고 있어. 정말 괜찮겠지?

“아빠!”

짜증이 벌컥 난 강승애가 독기를 목소리에 가득 담았다.

- 왜 소리를 지르고 그래? 걱정되니까 그렇지.

“재벌이 되기가 어디 쉬워요? 지경건설만 한 회사를 인수하려면 돈이 얼마가 필요하겠어요? 정 그렇게 걱정되시면 지경그룹 세무조사나 신임 회장 상속에서 문제 될 만한 뭔가를 좀 찾아보세요.”

- 그게 어디 쉽니. 알았다.

통화를 마친 강승애는 커다랗게 들이마신 숨을 단숨에 내쉬었다.

뭐가 어디에서부터 꼬인 거지?

천중명, 그 인간 때문이야!

천중명의 모습을 떠올리는 순간, 강승애는 타고 있던 자전거가 좀 더 빠른 속도로 쏟아져 내려가는 느낌에 눈살을 찌푸렸다.

**

천상기는 의심 가득한 눈으로 모니터를 노려보았다.

경고와 동시에 주식이 하나둘 쏟아져 나왔다.

아직 상한가에서 밀리지는 않았고, 커다란 수량은 없었다.

그러나 거대한 댐에서 부서진 시멘트 조각처럼 단주나 10주 단위의 물량이 끊이지 않고 나오고 있었다.

“개미 새끼들.”

원래는 이렇게라도 물량을 확보할 수 있다는 사실에 감사할 일이었다.

“이 새끼가 무슨 생각이지? 설마 공매도를 하겠다는 건 아니지?”

제정신을 가진 놈이라면 그런 결정을 할 리도 없고, 또 주변에서 그걸 지켜볼 리도 없었….

천상기는 퍼뜩 유진교를 떠올리며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게다가 천호득의 숨겨진 비자금이 시장으로 달려 나온다면?

“그럴 리가 없어.”

천상기는 고개를 저어댔다.

미치지 않은 다음에야 이런 장에 외상 매도를 하고서 가격 상승 폭만큼 손해를 감당할 이유가 없었다.

우우웅. 우우웅.

그때 천상기의 휴대전화기가 울었다.

“예, 회장님.”

천상기는 일부러 여유 있는 음성으로 전화를 받았다.

- 천 회장. 그룹이 저렇게 나오는데 괜찮겠어요?

명동과 대치동의 사채를 악착같이 거머쥔 송도상인 박승양이었다.

- 신임 회장의 출근 첫날 나온 경고라면 그냥 블러핑으로 이러는 건 아닐 것 같은데 이래도 계속 갈 겁니까?

“회장님. 제 동생입니다. 그놈의 성격을 제가 다 아는 데다, 막말로 손해가 나면 제가 다 변제하기로 했는데 그걸 뭘 걱정하십니까?”

- 지금 상태에서 하한가 두 번이면 저축은행이나 시행사로는 손해를 메울 길이 없어요. 그건 알지요?

“나 천상기입니다. 천상기요.”

- 그걸 누가 모르나? 은퇴하신 총수님의 성격이 자식 죽는 것쯤 돌아보지도 않는 양반인 게 문제지.

박승양은 노골적으로 천상기를 협박하고 있었다.

“일단 매입하십시오. 문제가 생기면 그때 매도하셔도 회장님이라면 충분히 먼저 빠져나오실 것 아닙니까?”

- 내가 시간별로 족보를 뽑고 있거든요. 개미들이 열 주 단위로 매도하는 거야 이해하는데 만약 강승애 이사장 쪽에서 매도 물량이 나오면 나도 이거 던집니다. 그렇게 알고 있어요.

“그쪽 물량은 어차피 나오는 족족 회장님께 가잖습니까?”

- 에이. 전문가라는 분이 왜 이래요? 그쪽 쪼진이가 얼마나 붙었는데. 우리 쪽에 넘긴 물량의 30퍼센트는 될 거야. 그러니까 그거 단속시킵시다. 이번 일은 우리 천 회장이 주포라는 거 잊지 마시고.

“예.”

쪼진이라는 말을 들은 천상기의 표정이 좋지 않았다.

- 천 회장. 혹시 모찌할 물량 좀 있어요? 이거 아무래도 수상한데 펀드 애들에게 미리 먹여서 주가 떨어질 때 받게 하지?

“또 그러신다. 나오는 족족 다 보내드리는데 모찌가 어디 있어요?”

- 그렇군요. 알았습니다. 고생합시다.

통화는 그렇게 끝났다.

“에이, 병신들!”

휴대전화기를 내려놓으며 천상기는 욕을 뱉었다.

‘너만 알고 있어. 이거 갈 거 같으니까 조금만 사 봐.’

이런 말에 알음알음으로 달려들어서 주식을 사는 사람들을 ‘쪼진이’라 부른다.

“교육자 집안이라는 게 뭔 일을 이따위로 해!”

그렇게 말조심하라고 당부했는데 강승애 쪽에서 말이 심하게 샌 모양이었다.

“이것들이 생각보다 현금이 없는 것 아냐?”

천상기는 쓴 입맛을 다셨다.

반대로 따지면 입소문이 날 것을 따질 겨를도 없이 전력투구한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후우.”

벌써 4천억 원을 넘어섰다.

매입 금액이 그렇고, 그동안 오른 주가를 감안하면 쥐고 있는 주식의 총액은 이미 6천억 원을 훨씬 상회하는 수준이었다.

이대로 펀드 매니저에게 주식을 넘기고 남는 수익금을 먹는 방법도 있었다.

박승양도 그 생각으로 모찌를 운운했을 게 틀림없었다.

그러나 지금은 줄 모찌도 없을뿐더러 주가에 불붙기 전에 줘서 해결해야 탈이 없지, 자칫했다가는 주가조작세력으로 몰려서 천상기는 한 방에 끝난다.

“이쯤에서 임총을 때려?”

혼잣말을 뱉어냈던 천상기는 고개를 저었다.

아직 물량이 부족했다.

적어도 3퍼센트 정도는 더 걷어야 그나마 안정권이라 그렇다.

덜컥 임시주총을 신청했다가 권리행사 확정 시점 전에 지경그룹이 공개 매수라도 발표하면, 천상기는 또 그 한 방에도 인생 부러질 공산이 컸다.

“도대체 무슨 짓을 하려는 거야?”

천상기는 이상하게 무릎이 욱신거려서 인상을 찌푸리며 허벅지 아래쪽을 주물렀다.

방법이 필요했다, 천상기다운 방법이.

이쪽에서도 저쪽에서도 절대 손해나지 않을 천상기의 천재적인 사업 감각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시기였다.

**

천중명이 제1접견실로 들어갔을 때, <오늘의 아침> 일행은 완전히 기가 꺾인 얼굴이었다.

어마어마한 규모에 놀라고, 부속실 직원들의 태도와 분위기에 두 번 놀라고, 자리가 사람을 만든 건지는 몰라도 그곳의 주인인 천중명이 들어설 때의 냉정한 눈빛에 세 번 놀랐다.

“앉으세요.”

“예, 감사합니다.”

둥근 테이블에 둘러앉는 1인용 소파였다.

제1접견실의 콘셉트는 식물원쯤 되겠다.

숫제 나무를 심어놓은 것처럼 커다란 화분들이 즐비한 가운데 원탁 테이블과 1인용 소파가 있었다.

거리나 가까운가?

어지간한 목소리가 아니라면 바로 옆에 앉아도 알아듣기 어려울 정도로 넓었다.

명함이 주르륵 건너왔는데 천중명은 따로 명함을 건네지 않았다.

“회장님에 오르신 걸 축하드립니다.”

“현충기 기자님이시죠?”

“예, 기억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원래는 이런 사이가 아니었는데 알아봐 준 것이 고마워서 현충기는 가슴이 두근거리고 있었다.

“그때 기사 작성할 때 밥 한번 먹자고 했었는데 이렇게 돼서 유감입니다.”

“무슨 말씀을요? 잊지 않고 만나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리고 있습니다.”

만나기 직전까지 이렇게 고개를 숙이게 될 줄 정말 몰랐다.

“하시고 싶은 말씀이 있다고 들었는데요?”

“예, 회장님. 그건 저희 대표님께서 직접 말씀하실 겁니다.”

현충기의 시선을 받은 <오늘의 아침> 대표가 얼른 입을 열었다.

“저희 소속 기자가 특종을 하겠다는 욕심에 사로잡혀 그만 커다란 잘못을 저질렀습니다. 회장님과 회장님이 만나시는 분께 씻을 수 없는 모욕을 드린 꼴이지만 넓은 마음으로 기회를 주신다면 피를 찍어 쓰는 기사로 반드시 보답하겠습니다.”

절절한 대표의 말이 끝났음에도 천중명은 잠시 입을 다물었다.

“기사를 쓴 기자 분은 어떻게 됐습니까?”

“기획실장님을 만나 뵌 뒤에 바로 돌려보냈습니다. 곧 인사위원회를 열어서 대기발령을 내릴 예정입니다.”

“그렇다면 현재까지도 아무런 징계를 받지 않은 거군요?”

“예? 그게….”

천중명이 표정만으로 픽 웃는 것을 본 <오늘의 아침> 대표는 마음은 급한데 말이 나오지 않는 얼굴이었다.

“제가 기획기사를 부탁하면 이번의 이 잘못을 만회하실 각오는 있으십니까?”

“회장님. 저희 <오늘의 아침>은 작년 포털 통합 조회수에서 최고를 기록했을 정도로 실력 있는 언론입니다. 기회만 주신다면 정말 제 피부터 뽑겠습니다.”

왼팔을 불쑥 내민 대표가 와이셔츠 단추를 풀어내려는 순간이었다.

“대표님과 우리 현충기 기자님의 뜻은 잘 알았습니다. 바빠서 이만 일어나겠습니다.”

천중명이 자리에서 일어서자 접견실 끝에 있던 직원 두 명이 빠르게 움직였다.

막말로 ‘어? 어?’ 하는 사이였다.

“다음에 연락드리지요.”

간단하게 인사한 천중명이 접견실을 나서버렸다.

서운하기도 하고, 화도 나고, 허탈하기도 하고, 그것들이 모여서 비참하다는 생각을 팔까지 걷어붙였던 대표의 주변에서 솔솔 피워내고 있었다.

“일단 내려가자.”

대표의 말에 일행은 비 맞은 비둘기 꼴을 하고 접견실을 나섰다.

엘리베이터에 오른 다음이었다.

“햐. 두 시간을 기다려서 1분쯤 만났나 봅니다.”

“그룹 총수를 직접 만나는 일이 편집국장 당신의 인생에서 몇 번 있을 것 같아?”

“예?”

“취임 첫 출근날이야. 여기 현 기자 아니었으면 죽었다 깨어나도 당신은 회장님을 못 뵙는 거야. 알아? 그리고 최만호 실장님이 그 시간에 시간을 내준 것도 감사할 일이고.”

때앵.

대표의 말이 끝날 때 엘리베이터의 문이 열렸다.

“우리도 뻔뻔했지. 징계도 없이 회장님을 뵙겠다고 했으니.”

“그렇다고 기자를 내칠 수도 없잖습니까? 그렇게 했다가는 동료를 팔아먹었다고 공동 취재에 끼워주지도 않을 겁니다.”

“그러니까. 누가 자르라고 했어? 대기발령 정도는 괜찮지.”

“신임 회장이 그 정도에서 눈감아 줄까요?”

대표는 이를 잘근잘근 씹고 있었다.

“그것도 안 봐주면 뭐 전쟁이지. 이래도 죽고, 저래도 죽는 거, 소설 아니라 더한 거라도 써서 해보는 거지.”

각오를 뱉은 대표가 휴대전화기를 들었다.

[회장님 뵙고 돌아갑니다. 실장님께서 주실 기쁜 소식을 간곡하게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그러나 그의 각오와는 너무나 다른 문자가 최만호 기획실장을 향해 날아가고 있었다.

“기획기사를 준다는 말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회장님?”

“그냥 해본 말일 수도 있는데 만약 실제로 기사를 요구한다면…. 알지?”

편집국장과 현충기를 돌아보는 대표의 눈에 불이 파랗게 피어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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