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로드 오브 머니-65화 (65/315)

# 65

065. 어떻게 된 거야? (1)

병원에 먼저 도착한 덕분에 잠시나마 윤만석을 볼 수 있었다.

승합차에서 실려 내려온 그는 얼굴의 왼쪽 전체와 오른쪽 손목, 발목에 피에 흠뻑 젖은 붕대를 감은, 처참한 몰골이었다.

“수술실로 바로 올라가! 혈액형 체크하고!”

의식을 차리지 못한 윤만석을 이동 침대에 올린 유헌우가 의료진들과 함께 수술실로 달렸다.

응급실에 서 있던 천중명이 시선을 돌렸을 때였다.

지리산 아래에서 곽대출에게 눈알을 뽑힐 뻔했던 남자가 고개 숙여 인사했다.

“어떻게 된 거야?”

“실장님 전화로 연락이 있었습니다. 집 앞으로 나오라고 해서 나갔을 때 이미….”

“데려온 놈들은?”

“모르는 얼굴이었습니다. 정신을 잃기 전에 윤 실장님께서 절대 문제를 일으키지 말라는 지시를 하셔서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천중명은 더 묻지 않았다.

누가 이랬는지 대강 알고 있다.

왜 이런 일이 벌어졌는지는 모르지만 말이다.

“윤 실장님을 지키는데 다른 문제가 있나?”

“없습니다. 경찰에 신고할까 염려돼서 병원에 오지 못했었는데 그 점을 해결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응급치료는 누가 한 거야?”

“저쪽에 있는 동료가 했습니다.”

누군지 얼굴이나 봐두자는 심정으로 고개를 돌린 천중명의 눈에 가방을 멘 황성규가 들어왔다.

“일이 있어서 가볼 테니까 윤 실장님의 의식이 돌아오면 연락 부탁해.”

지시를 마친 천중명은 황성규의 앞으로 걸음을 옮겼다.

“응급수술에 들어갔습니다. 더 있어 봐야 당장은 도움 될 일이 없으니까 근처에 커피전문점으로 자리를 옮기죠.”

천중명의 제안에 황성규가 앞섰고, 곽대출이 뒤따랐다.

어딘가에 비서실 직원이 있겠지 싶었는데 지금은 그런 걸 신경 쓸 때가 아니었다.

병원을 나서서 5분쯤 걷자 한가한 커피전문점이 나왔다.

”회장님이 되신 기념으로 커피는 제가 내겠습니다.“

“그럼 오늘은 황 선생님이 사는 커피를 감사하게 마시죠.”

그렇게 주문대로 움직였던 황성규가 석 잔의 커피를 가지고 돌아왔다.

그가 자리에 앉은 다음이었다.

“말씀하셨던 자료입니다.”

황성규는 쑥색 배낭에서 서류철 두 개를 꺼내 건네주었다.

“하나는 지난번에 말씀하셨던 조세원 청장의 약점이 될 만한 내용이고, 다른 하나는 평창동 근무자들을 파악한 자료입니다.”

천중명은 우선 국세청장 조세원의 서류철을 펼쳤다.

투기로 보이는 부동산 매입, 차명 계좌, 친인척의 취직 청탁 관련 내용이 앞쪽의 세 페이지에 자세하게 적혀 있었다.

이 정도면 그럭저럭 깨끗한 수준이란 생각에 픽 웃은 천중명이 페이지를 넘긴 다음이었다.

뭐야? 이건 또?

빠르게 내용을 살핀 천중명이 고개를 들었다.

“이게 사실입니까?”

“그렇습니다.”

“유전자 검사나 뭐 그런 걸 해봐야 하지 않나요?”

“조근득의 사진과 혈액형, 그리고 조근득이 성장하는 과정에서 생활비가 들어간 내역을 살펴보면 의심할 여지가 없습니다. 그 외에 조세원이 조근득의 집을 방문한 이력을 참고하시면 됩니다.”

질문을 던지지는 않았지만, 곽대출은 몹시 궁금한 눈치였다.

“뒤를 보시면 그 외에도 다른 살림을 한 곳 더 차렸습니다.”

궁금해하던 곽대출마저 ‘다른 살림을 또 차려?’ 하는 표정으로 시선을 던지고 있었다.

“급한 상황이 있었는지 5년 전에 태어난 여자아이의 산부인과 기록에는 조세원이라는 본명을 보호자로 적어놓았습니다.”

어쩐지 일이 너무 쉽게 풀려서 오히려 맥이 빠지는 느낌이었다.

“멀리 갈 것도 없네요.”

“네?”

“지경건설을 정리하는 일이요.”

“예.”

황성규가 말귀를 알아듣고 답을 한 건지, 형식적인 답을 내놓은 것인지는 알기 어려웠다.

조세원의 서류철을 곽대출에게 건네준 천중명은 남은 하나를 펼쳤다.

평창동에 근무하는 직원들을 조사한 내용이었다.

가족 관계부터 월수입, 통장 내역이 쭉 기록되어 있었다.

“이름 앞에 표시한 세 명을 살펴보십시오. 평창동에서 일하는 직원 중 그 세 명만이 3개월 단위로 현금을 통장에 넣고 있습니다.”

“확실히 의심스럽긴 하네요. 여기에 기록된 대로라면 다음 입금까지 한 달 정도 남은 거고요?”

“현금을 건넨 사람의 경우에는 동선을 추적해서 현장을 잡아내야 하는데 그것까지는 시간이 부족했습니다.”

천중명은 표시된 세 사람의 자료를 한 번 더 살핀 뒤에 서류철을 곽대출에게 넘겨주었다.

조세원은 이 정보에 어떻게 반응할까?

천중명이 생각을 정리하기 위해 커피를 한 모금 마셨을 때였다.

“회장님. 윤 실장의 일을 어떻게 아셨습니까?”

황성규의 묵직한 질문이 넘어왔다.

곽대출이 슬쩍 눈치를 살핀 직후였다.

“감각이 날카로워질 때가 있습니다. 설명하기 어려운데 그런 느낌이 들면서 윤만석 실장님이 떠올랐습니다.”

“그러셨군요.”

황성규가 전혀 믿지 않는다는 눈으로 답을 꺼내 놓았다.

하긴, 천중명도 왜 이러는지 모르는 일을 그가 어떻게 받아들이겠나.

“이만 일어나시죠. 저는 평창동에 가서 윤 실장님의 일을 말씀드리고, 여기 의심스러운 직원 셋을 만나봐야겠습니다.”

“알겠습니다. 필요하신 정보가 있으면 연락 주십시오.”

천중명이 자리에서 일어났고, 곽대출과 황성규가 따라서 몸을 일으켰다.

**

지경그룹의 기획실장 최만호는 자리에 앉은 이후로 내내 사무적인 태도였다.

“실장님. 저희 모든 기자를 동원해서 지경그룹에 도움이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그러니 광고만큼은 선처해 주십시오.”

‘오늘의 아침’ 대표는 다리 잡힌 메뚜기처럼 연신 상체를 앞으로 숙였고, 그 옆에 있는 전무와 편집국장은 굿당에 나선 무당처럼 계속해서 최만호를 향해 고개를 조아렸다.

“말씀을 이해하지 못하셨나본데 광고는 홍보실에서 처리하는 업무입니다.”

“그걸 제가 왜 모르겠습니까? 그러나 총수님께….”

최만호의 눈꼬리가 매섭게 번득였다.

“제가 또 실수했습니다. 새로 자리에 오르신 회장님! 우리 천자 중자 명자 회장님께 청을 드리려면 아무래도 실장님께서 나서주셔야 하지 않겠냐, 이런 의미로 드리는 말씀입니다.”

“다른 말씀 드리긴 어렵고, 제 연봉이 16억쯤 됩니다.”

“예. 실장님께선 충분히 그럴 자격이 있으십니다.”

“앞으로 7년쯤 더 근무하다가 퇴직한다고 가정하면 대략 110억 좀 넘게 받을 것 같습니다.”

“무슨 말씀이십니까? 퇴직이라니요? 그 뒤에 계열사를 책임지셔야 하지 않겠습니까?”

기획실장 최만호의 심사를 거스르지 않으려 ‘오늘의 아침’ 대표는 연신 장단을 맞춰댔다.

“회장님께 나섰다가 직장을 잃으면 대표님께서 110억 정도를 제게 주시겠습니까?”

“예?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총수님께서 몹시 진노하셨고, 새롭게 신설되는 본부의 초대 본부장인 유진교 본부장께서 직접 보고받는 내용입니다. 그런 일을 제가 무마하려 들면 어떤 결과가 나오겠습니까?”

‘오늘의 아침’ 대표는 말을 잊은 사람처럼 보였다.

“법무팀에서 검토를 끝낸 뒤에 본부장님께서 결재하시면 바로 소송에 들어갑니다. 제가 감히 말씀드리는데 이번 일을 돌이킬 수 있는 분은 회장님밖에 없습니다.”

최만호가 어쩌지 못한 상황이란 것은 분명했다.

그러나 내내 고개를 조아렸는데도 최악의 결과가 나온 것이 분한 모양으로 ‘오늘의 아침’ 대표는 볼을 씰룩거렸다.

“그동안의 친분을 생각해서 한 마디만 더 드리자면 이번 일로 그룹을 건드릴 생각은 절대 하지 마십시오. 대표님과 여기 편집국장님의 친인척들이 모조리 직장을 잃을 수 있습니다.”

대표의 표정을 읽은 최만호의 날카로운 경고가 있었고,

“저도 사람인데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하겠습니까? 그저 일을 이렇게 만든 그 모자란 기자가 떠올라서 그만 표정이 좋지 못했습니다.”

‘오늘의 아침’ 대표는 얼른 고개를 깊숙하게 조아렸다.

**

평창동으로 갈 줄 알았던 천중명은 곽대출과 함께 익숙한 잠실 앞의 한강공원으로 향했다.

주차장에 차를 세우기 무섭게 검은색 승용차 한 대와 승합차 한 대가 들어와 멀찍이 주차하는 모습이 분명하게 눈에 들어왔다.

“뭐 마셔?”

“내가 사오면 되지, 회장님도 참.”

“너, 목 안 마르지? 나도 그러니까 우리 그냥 담배나 하나 피우자.”

“그것도 괜찮고.”

멀찍이 서 있는 비서실 차량을 돌아보며 곽대출이 나직하게 꺼낸 답이었다.

벤치에는 자리가 없었다.

그래서 천중명은 주차장 바깥으로 쭉 세워놓은 낮은 돌기둥에 곽대출과 함께 앉았다.

습관처럼 곽대출이 담배를 꺼냈는데 천중명은 고개를 저었다.

“이걸로 피워.”

그리고는 담배를 꺼내 하나를 건네주었고, 라이터를 켜서 불을 켜주었다.

‘저기에서 보고 있는데 어쩌려고 그래?’

쭈뼛한 곽대출이 비서실 차량을 눈짓으로 가리켰다.

“불부터 붙여.”

더는 버티기 뭐했는지 곽대출이 라이터에 고개를 기울였고, 천중명도 물고 있던 담배에 불을 붙였다.

어떻게 흘러가는지 몰랐던 하루의 허리 아래쯤이 눈앞에 펼쳐져 있었다.

마스크를 하고 걷는 사람, 자전거를 타는 사람, 어깨와 허리를 감싸 안은 연인, 대낮에 불콰해서 벤치에 길게 누워 자는 사람들까지, 한강은 그 많은 사람의 뒤에서 묵묵하게 흘렀다.

“회장이 되니까 지랄 같다.”

다리를 꼬고 돌기둥에 앉은 천중명은 한강을 향해 혼잣말처럼 입을 열었다.

“좋지, 회장! 지경그룹 어딜 가도 굽힐 일 없는 데다, 유 전무는 본부장, 너는 이사 만들고. 그런데….”

말을 쏟아내던 천중명은 곽대출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내 편이 없어지는 거야. 회장 대우한답시고 유 전무가 느닷없이 딱딱하게 변하더니, 너는 맥이 탁 풀린 얼굴로 언제 떠날지를 간 보고 있고.”

곽대출의 시선이 주차장 바닥을 향해 떨어지고 있었다.

“지금도 그렇잖아. 둘째가라면 서운해하던 독종 곽대출이 시선을 떨어트리는 거.”

“내가….”

말을 꺼냈던 곽대출이 잠시 뜸을 들였다.

“너도 알다시피 가방끈이 짧잖냐. 괜히 이사라고 깝죽대봐야 명문대 나온 부장에게 망신이나 떨게 될 거고, 그런 일들이 회장인 너를 얕보이게 하는 건 아닐까 싶어서 그래.”

천중명은 고개를 끄덕였다.

“돌아가자.”

“그래.”

멈칫했던 곽대출이 담배 끝의 불똥을 튕겼다.

그의 눈에서 감출 수 없는 서운함이 피어났다.

한 번쯤 말려주길 바랐을 거다.

왜 이러냐고 달래주길 기대하고, 그런 천중명을 거절하는 연습까지 했을 곽대출이었다.

그런데 천중명은 대뜸 ‘가자’라는 말을 던졌다.

더럽게 서러울 텐데도 곽대출은 고개를 숙여 속마음을 가린 채로 몸을 일으켰다.

“평창동 말고 지리산으로 돌아가자고, 이 멍청아. 가서 우리 송충이답게 솔잎? 그거 무쳐도 먹고, 지져도 먹고, 날로도 먹고, 하여간 그렇게 살자.”

곽대출이 특유의 멍한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뭐해? 가자니까.”

“지금?”

“그럼? 네가 언제 사라질지 모르는데 그걸 알면서 이 잘난 회장 자리에 매달려 있으라고? 개새끼! 사람이 태어나서 처음으로 사랑하는 여자가 생겼는데 그걸 이런 식으로 끊어 놔? 너는 하여간!”

자리에서 일어난 천중명은 고갯짓으로 차를 가리켰다.

“내가 선영 씨 보고 싶을 때마다 산에 올라가 미친놈처럼 뛰어다닐 건데, 그래도 안 되면 네놈 피를 바짝바짝 말려줄 거다. 각오해.”

“장난하지 말고.”

“내가 이러는 게 장난 같냐?”

주춤거리는 곽대출의 눈을 천중명이 매섭게 노려보았다.

“너는, 내가 회장이 되었다고 너를 부끄러워할 놈으로 생각했어? 그래? 그렇게 봤어?”

천중명의 눈에 서린 독기를 보아서 그런 모양이었다.

마주한 곽대출의 눈에도 서서히 독기가 피어나고 있었다.

“개새끼. 모자란 구석이 있으면 그걸 메워서 도와줄 생각을 해야지, 언제 약을 처먹고 쓰러질지, 팔다리가 잘려서 뒈질지 모를 이 바닥에 나 혼자 두고 도망갈 궁리를 해?”

“황성규도 있고, 유진교 본부장도 있잖아.”

“말이 되는 소리를 해라, 곽대출. 하나만 묻자. 네가 반드시 지옥에 가야 되는 상황에서 누군가를 데려갈 수 있다면 나 말고 다른 사람 있냐?”

곽대출의 눈이 단숨에 붉게 물들었다.

“눈깔 빨개지기는! 그럴 거면서 너는 왜 나를 안 믿어? 이 엿 같은 회장 자리 지키자고 내가 널 버릴 거로 생각했어? 에라, 이 개…. 확!”

쏟아대듯 말을 퍼부었던 천중명은 후, 하고 숨을 뱉었다.

“긴말해서 뭐하겠냐. 얼른 가자.”

“장난치지 말고, 이 씨…, 회장님아.”

천중명을 따라 걸으며 곽대출이 나직하게 건넨 대꾸였다.

“넌 이미 천상기에게 찍혔어. 혼자 돌아다니다가 윤만석처럼 팔다리 잘려오는 꼴을 보라고?”

천중명의 거친 말이 건너간 순간 곽대출이 걸음을 멈췄다.

“어떤 새끼가 내 팔다리를 잘라?”

“약 처먹이면? 그래서 쓰러진 뒤에 자르면?”

곽대출은 답을 하지 못했다.

“너는 내가 약 처먹은 뒤에 목이 잘려도 상관없는지 모르지만, 나는 네놈 손목이든 발목이든 잘리는 꼴은 못 보겠다고.”

“이제 와서 내가 공부한다고 뭐가 되겠냐, 이 멍청한 회장님아. 현실을 봐야지. 비서실에, 기획실에, 내가 해줄 수 있는 게 있기나 해?”

“적어도 내가 당할 때 옆에는 있겠지. 그렇지 않냐? 이 치사한 도깨비 새끼야?”

잠시 천중명을 빤히 바라보던 곽대출이 픽 웃었다.

내내 어딘가에 빠트리고 있던 맥을 주워든 눈이었다.

“나는 앞으로 쭉 그렇게 살 거니까 알아서 해. 자! 어디로 갈래, 치사한 도깨비야? 네가 정하는 대로 간다.”

강을 스치고 온 햇살이 천중명과 곽대출을 비추는 가운데,

“평창동으로 가시죠. 더럽게 말 잘하는 도깨비 회장님.”

천중명이 기가 막힌 듯 웃었고, 곽대출이 바보 같은 얼굴로 따라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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