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3
053. 망나니 새끼 좋은 일만 하는 거 아냐? (1)
천중명과 곽대출의 표정만 봐도 대가리 숫자에 꿀리지 않는다는 것쯤 짐작할 만한 일이었다.
“들어가셔.”
짧은 한마디 말을 던진 곽대출이 우르르 몰려 있는 조직원들을 향해 뛰듯이 다가갔고,
휘익!
천중명은 얕디얕은 담장을 훌쩍 넘어서 마당에 서 있는 조직원들을 향해 걸었다.
“뭐여?”
길게 말 나눌 게 뭐 있겠나.
이미 막아선 놈들이 비키란다고 비킬 것도 아니고.
콰작! 퍼억! 부웅! 퍼버벅!
“뭐해, 이 새끼들아! 죽여!”
곽대출이 달려간 곳에서 섬뜩한 소리와 고함이 터져 나왔다.
와락! 퍽!
앞으로 달려든 천중명은 가장 앞에 있던 놈의 울대를 뾰족한 주먹으로 찍었다.
“꺽!”
상체를 수그린 놈의 대가리가 천중명의 앞으로 불쑥 다가온 순간이었다.
시간을 끌수록 곽대출이 위험했다.
그럴 리 없겠지만, 스치는 회칼에 동맥이라도 끊기면 특작부대 도깨비 아니라 세상없어도 인생 끝나는 거였다.
잔인할 거다.
턱!
천중명은 앞으로 기울어진 놈의 목덜미를 손으로 눌렀다.
철퍽!
놈이 엎어진 직후였다.
콰악!
왼쪽 날갯죽지를 발로 밟은 천중명은 엎어진 놈의 왼쪽 손목을 양손으로 붙잡았다.
“뭐하는 거야! 이 새끼야!”
지켜보던 놈들이 놀라서 고함을 지를 때였다.
휘이이익!
천중명은 잡고 있던 손목을 무를 뽑듯 허리를 세우며 위로 쭉 뽑았다.
드드득!
“끄아아!”
“야, 이 미친 새끼야!”
우르르!
멍하니 바라보던 놈들이 달려드는 순간이었다.
천중명은 오른쪽 발로 대걸레의 봉을 부러트리듯 덜렁거리는 팔의 중간을 세차게 옆으로 걷어찼다.
콰자자작!
“끄아! 끄아아아아!”
휘익!
그 직후에 천중명의 얼굴을 노리고 주먹이 날아들었다.
부웅!
미식축구에서 태클하듯 몸을 날리는 놈도 있었다.
화악! 꽉!
날아드는 손목을 잡아챈 천중명은 몸을 눕히다시피 기울여 왼쪽 무릎을 거칠게 들었다.
콰자작!
슈퍼맨처럼 날아오던 놈의 얼굴이 무릎에 제대로 찍혔고,
휘익! 휙!
“아! 아아!”
붙잡은 오른팔을 커다랗게 돌리자 주먹을 날렸던 놈의 몸뚱이가 반 바퀴를 돌아 등을 보인 채 숙였다.
콰작! 터억!
천중명은 놈의 목덜미를 팔꿈치로 찍었다.
철퍽!
이번 놈도 바닥에 엎어졌다.
콰악!
천중명이 어깻죽지를 밟는 순간이었다.
“어어! 아악! 아아악!”
조금 전의 잔인했던 장면을 기억하는 놈이 놀라서 비명을 질러댔다.
“야, 이 씨발…!”
지켜보던 놈들이 주춤거리며 달려들려는 순간이었다.
휘이익! 드득!
“으아! 으아아아!”
“뭐가 이 씨발 이렇게 안 빠져!”
천중명은 아예 손목을 몸에 붙이다시피 하고는 몸을 홱 일으켰다.
휘익! 드드득!
“끄으아아아아!”
두 번에 걸쳐 어깨를 완전히 잡아 뺀 천중명이 시선을 들었다.
씨익.
“하지 마! 하지 말라고, 이 새끼야!”
손까지 뻗으며 말리는 놈을 바라보며 천중명은 오른발을 들었다.
콰자자자작!
“끄아아-!”
대걸레의 봉보다도 쉽게 팔뚝이 부러졌고, 팔이 부러진 놈은 고통을 이기지 못해 정신을 잃었다.
부웅! 퍽! 퍽퍽! 콰작! 콱! 콱! 콱!
천중명의 뒤에서 섬뜩한 소리가 계속 이어지고 있었다.
“끄아아-! 내 눈! 내 누-운!”
곽대출이 엄지로 심하게 찌른 정도 될 거다.
진짜 눈을 파내면 저따위로 눈을 찾는 소리조차 지르지 못한다.
천중명의 뒤쪽을 살피던 놈들이 얼이 빠진 얼굴로 주춤거리며 물러났다.
아무래도 여길 지키던 이놈들과 자동차로 달려온 놈들이 다른 조직이 아닌가 싶은 모습이었다.
“뭐해, 이 새끼들아! 막아! 담가버리라고!”
도로에서 현관 앞으로 고함이 날아들었다.
저녁으로 넘어가는 시간이었다.
도심보다 유독 붉게 피어나는 저수지 근방의 노을 아래에서였다.
파란 잔디가 깔린 정원에서 여섯 놈이 회칼을 뽑아 들고 있었다.
천중명은 현관을 향해 똑바로 걸었다.
주춤주춤.
그대로 밀려 나간 여섯 놈이 현관에 올라서는 턱에 걸려 자꾸만 주춤거렸다.
콰자작!
“끄아아!”
뒤에서 비명이 터질 때였다.
그쪽을 힐끔 보았던 조직원 한 놈이 인상을 버럭 쓰며 천중명을 향해 달려들었다.
휘익!
짧은 궤적으로 배를 노렸다.
휙! 꽈악!
칼을 든 놈의 손목을 잡아챈 천중명은,
퍽! 퍽퍽! 퍽! 퍽!
단숨에 눈과 턱선 바로 안쪽, 목젖을 뾰족한 주먹으로 찍었다.
홰액!
그리고는 놈이 들고 있던 회칼을 뺏어서 날이 아래로 가게 들었다.
핏! 피윳! 핏! 피윳! 핏핏! 피윳!
한번 칼질을 시작하면 목표물의 전투능력이 상실될 때까지 칼날을 떨어트리지 말라고 배웠다.
실제로 그렇게 6년을 훈련했다.
“끄으으으!”
천중명은 오른팔과 어깻죽지, 옆구리가 회칼에 너덜너덜해진 놈의 팔을 향해 자세를 낮췄다.
‘또 뭘 하려고…?’
현관에 몰린 쥐새끼들이 고양이의 다음 동작을 보는 것처럼 놀란 눈들이 잡힌 놈과 천중명을 보고 있었다.
휘익!
천중명은 체중을 실어서 피범벅인 놈의 오른팔 팔뚝을 무릎으로 내리찍었다.
뚜두둑!
“끄아-! 끄아아! 끄아악!”
“야, 이 개새끼야! 사람이 왜 그렇게 잔인해!”
이런 깡패 새끼들이 뭐라는 건지?
웃음이 픽 나오는 고함이 있었다.
콰작! 퍽! 부으응! 퍼억!
“맞았어! 저 새끼 대가리 맞았어!”
곽대출이 머리를 맞은 모양이었다.
시간을 끌 틈이 더더욱 없었다.
와락!
이를 악문 천중명은 현관 앞에 몰린 쥐들을 향해 뛰어들었다.
피윳! 핏핏! 피잇! 피윳! 핏핏핏! 피윳!
놈들은 찔렀고, 천중명은 닥치는 대로 갈랐다.
옆구리가 뜨끔했고, 허벅지를 비켜나간 칼질이 있었다.
핏핏! 피잇! 핏핏핏핏! 피윳!
그러나 거기까지였다.
털썩!
턱 바로 아래와 어깻죽지가 피로 뒤범벅된 놈이 벽에 기댄 채 주저앉는 것으로 현관 앞은 모두 끝났다.
“허억. 헉.”
숨이 가빴다.
아무래도 천중명의 몸뚱이가 이런 싸움에 익숙하지 않아서 그런 것 같았다.
손잡이를 붙잡은 상태에서 엄지로 고리를 눌러야 열리는 현관이었다.
찰칵. 끼이익.
문을 연 천중명은 안으로 들어갔다.
거실은 나름 깔끔했다.
소파, 바닥의 러그, 깔끔하게 닦인 바닥, 노을에 물든 창틀이 그랬다.
“어디 계세요! 얼른 나오세요!”
고함을 지른 천중명이 구둣발로 거실에 들어섰을 때였다.
끼익.
나무가 비틀리는 소리와 함께 주방 오른쪽의 문이 열렸다.
“중명…아?”
언젠가 천중명의 휴대전화기에서 보았던 사진 속의 여자였다.
그때의 아름다움에 세월의 무게와 그만큼의 외로움을 얹어놓은 중년 여자가 천중명을 놀란 눈으로 보고 있었다.
옆구리와 허벅지가 베였고, 오른손에 피 묻은 회칼을 거꾸로 들었으니 놀랄 만도 하겠다.
“나오세요. 여기 있으면 위험해요.”
“중명이? 중명이 맞지?”
“예.”
천중명은 분명하게 답했다.
“그대로 나오세요. 짐은 나중에 챙길게요. 얼른요.”
밖에서 터진 고함과 욕설이 거실로 뛰어와 천중명의 모친을 협박하고 있었다.
당황한 얼굴과 걸음걸이로 모친이 움직였다.
천중명은 모친의 반걸음쯤 앞에서 현관문을 밀어냈다.
“세상에…!”
밖을 본 모친이 손을 들어 입을 막았다.
기괴하게 팔이 비틀어진 놈과 피투성이인 놈들이 현관 앞에 늘어져 있었고, 마당 밖의 도로에는 대가리가 터져 피를 흘리는 곽대출이 남은 세 명과 마주 서 있었다.
머리뿐이 아니었다.
곽대출의 어깨와 옆구리, 등이 길게 갈라져서 피가 배어나고 있었다.
“가자!”
천중명이 부르자 곽대출이 천천히 뒤로 물러났고, 또 그 간격만큼 대치했던 세 놈이 주춤대며 다가왔다.
천중명은 모친의 상체를 안다시피 하고는 낮은 울타리의 정문을 나섰다.
눈을 부여잡고 신음하는 놈들, 팔이 부러져 어쩔 줄 모른 채 꼼짝도 못 하는 놈들이 바닥에 널브러져 있어서 모친은 걸음을 옮기는 것조차 힘들어 보였다.
주춤주춤.
곽대출이 천중명의 앞까지 물러났다.
“우리 직원이거든요. 잠깐 함께 계세요.”
천중명은 곽대출의 목덜미를 잡아서 모친의 옆으로 당겼다.
“차를 준비해!”
와락!
그리고는 움찔거리는 세 놈을 향해 달려들었다.
“이야-아!”
핏! 피윳! 핏핏핏핏! 피윳! 핏!
고함을 지르며 달려들던 놈이 칼질을 당할 때마다 감전된 것처럼 몸을 떨다가는 철퍼덕 뒤로 주저앉았다.
와락! 피윳! 핏! 피잇! 핏핏!
천중명은 상체만 비틀어 좀 더 가까이 있던 왼쪽 놈의 몸뚱이를 갈랐다.
“걱정 마시고 차로 가세요. 대표님이 칼 휘두르면 당최 상대할 사람 없습니다.”
저 미친 곽대출 새끼!
저걸 위로라고 지껄이는 건지.
“가시자니까요. 보세요. 저도 머리에 구멍 난 데다, 여기저기 칼 맞았는데도 멀쩡하잖아요.”
야, 이 도라이!
피윳! 핏핏! 핏핏핏핏핏! 콰다당!
마지막 남은 놈이 승용차의 조수석 문짝에 부딪혔다가 바닥에 널브러지며 더는 서 있는 놈이 없었다.
“후.”
천중명이 돌아섰을 때 모친은 완전히 질린 얼굴이었고, 곽대출은 피가 쏟아지는 머리통을 손으로 누른 채 뿌듯한 표정이었다.
천중명은 시선을 돌려 피범벅인 오른손과 거기에 들린 날이 좁고 기다란 회칼을 보았다.
휙! 땡깡!
더는 들고 있을 필요 없어서 버렸다.
“가세요. 가면서 말씀드릴게요.”
천중명은 뒷좌석으로 움직여 모친을 태웠고, 다시 앞으로 움직였다.
“조수석으로 타. 머리 좀 감추고. 그대로 고속도로 타면 신고 들어간다.”
곽대출이 조수석에 앉았고, 그 뒤에 천중명이 운전석에 올랐다.
“이거라도 쓰세요.”
모친이 손수건을 곽대출에게 내밀었다.
“괜히 버리게 됩니다.”
“괜찮아요. 받아요.”
부으응.
차가 출발해서 몸이 흔들리는데도 모친은 손수건을 계속 곽대출에게 내밀고 있었다.
“감사합니다.”
결국, 곽대출이 손수건을 받아서 머리의 상처를 눌렀다.
“대표님. 방지병원이라고 있거든요. 논현동에서 역삼동 가는 방향에요. 그리 가시지요. 거기 가면 탈 없이 치료됩니다.”
곽대출에게 눈짓으로 답한 천중명은 국도를 빠르게 빠져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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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고를 들은 천상기는 잠시 멍했다가 곧바로 불같이 화를 뿜어냈다.
“내가 뭐라고 했어! 어지간해서는 안 된다고 했잖아! 전문가라면서! 열여섯 놈이 가서 고작 한 놈에게 쥐어 터졌다는 게 말이 돼? 말이 되냐고!”
입술을 뒤튼 행동대장은 애꿎은 뒤통수만 긁었다.
“어떻게 할 거야? 그래놓고도 너희가 강남의 제일 큰 조직이라고 할 수 있어? 뭐야 이게!”
“이따가 여기 오겠습니까?”
“그 새끼가 안 올 것 같아? 더 의기양양해서 오겠지!”
“그럼 그때 아예 작업해 버릴랍니다.”
굵직하고 걸걸한 행동대장의 음성에 천상기가 뾰족한 시선을 던졌다.
“둘이 왔었다고 들었습니다. 여기도 둘이 올 확률이 높으니까 말입니다. 회장님과 말씀 나누시는 동안, 함께 온 놈은 밖에서 작업해버리고 말입니다.”
문을 향해 커다란 눈알을 굴렸던 행동대장이 천상기를 향해 시선을 가져왔다.
“회장님 말씀 끝나시면 동생 분은 밖에 사무실이든, 지하에서든 양쪽 발목을 갈라버리겠습니다. 뒤처리할 때 엘리베이터와 복도, 지하주차장 CCTV만 가려주십시오.”
“16명이 달려들어도 못 한 걸 어떻게 하겠다는 거야?”
확실히 천상기의 음성이 가라앉아 있었다.
“칼침을 전문적으로 놓는 애들이 따로 있습니다. 솔직히 방심했습니다. 그런데 뭐, 이렇게 되면 걔들 불러야 안 되겠습니까?”
“전문가?”
“중국 애들도 좀 있고, 베트남 애들도 있고, 우리 애들 중에도 있습니다. 그냥 맡겨주시면 됩니다.”
“확실해?”
“예, 회장님.”
행동대장의 답에 천상기가 숨을 길게 내쉬었다.
“그놈이 신고하면?”
“용인에서 다친 우리 애들이 맞고소하면 됩니다. 우리가 다쳐서 싸움이 난 거라고 할 테니 수바리만 좀 도와주십시오.”
“아, 이 씨! 용인에서 그년을 잡아왔어야 망나니 새끼가 꼼짝 못 하는 건데, 이게 또 아무것도 없이 만나려니까 불안하잖아.”
“회장님. 맡겨주십시오.”
“알았어. 일단 그 전문가? 전문가란 놈들 수배해 놓고 있어 봐. 박 전무 다시 들어오라고 하고.”
“예.”
고개를 숙여 인사한 행동대장이 방을 나선 다음이었다.
“아, 거 진짜!”
시선을 내린 천상기가 붕대를 퉁퉁 감아놓은 무릎을 내려다보았다.
“아니 이 새끼가 느닷없이 만년 묵은 산삼을 처먹은 것도 아니고 어떻게 저런 놈들을 16명이나 상대하지? 이러다 정말 그 망나니 새끼 좋은 일만 하는 거 아냐?”
천상기가 탄식을 뱉어냈을 때였다.
똑똑똑.
문이 열리고 박무일이 들어섰다.
천상기는 앞의 의자를 가리켰다.
“일이 이상하게 꼬였어.”
“밖에서 대강 들었습니다.”
“느닷없이 총수님이 깨어나질 않나, 그 와중에 미친놈이 깡패 열댓 명을 이기고 에미를 챙겨가질 않나, 어떻게 하면 좋겠어?”
박무일은 별로 상관없다는 투였다.
“우선 계획대로 총수님의 비자금을 터트리시는 게 가장 우선입니다. 그리고 밤에 막내 분이 오면, 얌전히 물러나는 조건으로 허선영까지를 용서하겠다고 협상하십시오.”
“그게 되겠나? 밖에서 벼르고 있는데? 쟤들이 보기보다 자존심 하나로 살아요. 그런 애들이 벼르는 걸 나더러 어떻게 하라고?”
엉뚱하게 천상기는 깡패를 핑계 대고 있었다.
“데려오는 직원만 손보시는 거로 하십시오. 그런 뒤에 동생분과 협상이 성사되면 그렇게 정리하는 거고, 협상이 깨지면 최악으로 가시는 게 좋겠습니다.”
“저놈들이 형사고발을 하면?”
“밖에 있는 조직원들이 공연한 충성심에 일을 저질렀다고 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검찰과 언론을 누가 쥐느냐의 싸움 아니겠습니까?”
“그렇지.”
천상기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얼른 나가서 일 봐요.”
“성과 나오는 대로 연락드리겠습니다.”
일어나 방을 나서는 박무일을 천상기가 흐뭇한 눈으로 바라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