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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그인 더 아포칼립스-215화 (완결) (215/215)

215화

“이곳에서 기다리겠습니다.”

군인이 선착장에 배를 정착시키며 내게 말했다. 나는 고개를 좌우로 저으며 그에게 대답했다.

“아뇨, 기다리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럼 어떻게 하면 되겠습니까?”

“돌아가도록 하세요. 김준철 소령님께 지금까지 고마웠다고 전해주세요.”

“……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그대로 마을로 복귀하시면 됩니다.”

“저희가 떠나면 어떻게 돌아오시려고요?”

“저희는 돌아가지 않아요.”

“……”

“그동안 수고하셨습니다.”

내가 군인의 어깨를 툭 치자 그가 굳은 표정으로 경례를 했다.

“혹시 모르니 하루에 한 번씩, 해가 지는 시간에 이곳에 보트를 보내도록 하겠습니다.”

“…… 알겠어요. 그럼 이만.”

나는 군인들에게 손 인사를 한 후 자리를 떠났다. 이제 이 게임에서 나가게 되었는데 굳이 저곳으로 돌아갈 일이 있겠는가?

정우가 어깨를 으쓱이며 내게 물었다.

“이제 어디로 가면 되는데?”

“…… 시작 점. 집으로 돌아가야지.”

우리는 이 게임의 첫 라운드, 왔던 곳을 다시 돌아가며 그동안의 상황을 보았다.

누군가 주위를 정리해놨는지 좀비와 그들에게 습격받은 사람들의 사체가 사라져 있었다.

“천재야, 이것 봐라.”

정우가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곳을 보니 도보에 반짝이는 발자국이 보였다. 마치 형광색 페인트로 칠해놓은 듯한 은은한 무늬.

“…… 따라 가보자.”

발자국을 따라서 가는 길은 우리 모두가 알고 있는 곳이다. 마이클이 신난 표정으로 콧노래를 부르며 유소라에게 어깨동무했다.

“드디어 돌아가는 거예요우.”

“…… 저기, 마이클 씨.”

“눼?”

“암내나요. 손 좀 치워주세요.”

“요우 쉣! 쏘리 소라유 너무 신나서 오늘 씻는 걸 깜빡했네요우.”

“어제도 안 씻으셨잖아요.”

“어제도 깜빡했구요우.”

“그제는요?”

“…… 천재 킴? 빨리 갑쉬다.”

나는 괜히 웃으며 녀석의 등을 쳤다. 유소라가 내 옆으로 바짝 붙으며 내게 물었다.

“천재 씨.”

“…… 예.”

“이제 이 게임에서 나가면 어떻게 하실 거예요?”

“뭘요?”

“게임에서 나가면…. 저희는 어떻게 되는 거죠?”

“게임에서 나가면요?”

나도 모른다.

생각해 본 적이 없다. 우리가 어떻게 되는지는. 다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이곳보다는 나은 세상으로 나아간다는 것이다.

“이 모든 것이 진짜 게임이었다면 내가 왜 참가하게 됐는지 알아볼 테고, 신의 장난이었다면 그 신이라는 자를 찾아가야겠죠? 이 게임 속에서 저희가 한 것처럼.”

“…… 그렇군요.”

“소라 씨는 게임에서 나가면 어떻게 하실 건데요?”

“…… 저는 모르겠어요. 그냥…. 저희가 진짜 이 게임에서 나갈 수 있는지 실감이 안 나서 천재 씨에게 물어본 거예요.”

“……”

“이곳에서 나가려고 하니 뭔가 기쁜데 씁쓸하네요.”

세상 모든 일에는 이유가 있다.

우리가 이 게임에 들어온 이유도 분명히 있다. 그게 무엇인지 아직은 모르겠지만 말이다.

“저는 그냥 여기서 나가면 뭐…. 돈 벌어서 집 사고 차 사고. 그동안 못해본 연애 좀 하면서 즐겁게 살 거예요.”

“아…. 연애요?”

“예, 좋아하는데 지금까지 막대한 사람이 있거든요. 나가면 같이 차 한잔 마시자고 말해볼 생각이에요.”

“차 한잔…. 굉장히 아저씨 같네요.”

“그렇죠? 제가 좀 아저씨 같습니다. 하하….”

터벅. 터벅. 터벅.

걷다 보니 어느새 우리가 살았던 빌라 앞에 도착했다. 사방이 전투의 흔적으로 초토화가 되어 있다.

김준철의 도깨비 부대가 깨부수고 들어간 창문마저 그때와 같다.

나는 조심스럽게 안으로 들어가며 주변을 살폈다. 긴장감으로 가득 찬 그때와는 다르게 모든 것이 아무렇지도 않게 느껴졌다.

차가운 시멘트벽에서 흘러나오는 찬 기운이 우리를 반겼다.

“혹시 모르니 모두 경계태세로 움직이도록 해.”

내 말을 들은 모두가 서로 거리를 벌리며 사방을 살폈다. 물론 이곳에서 나오는 몬스터 중 우리에게 이길 수 있는 존재는 없지만.

‘그래도….’

-크으으으으….

안에서 신음이 들려온다.

나는 소리가 들려오는 방향으로 천천히 걸었다. 1층에서 2층으로, 2층에서 3층으로, 3층에서 4층으로.

올라가는 내내 열려있는 방을 전부 확인했지만, 아무것도 없었다.

과연 이곳 어디에 게임에서 나가는 길이 있다는 말인가?

4층에서 5층으로 가는 길 마정우가 내게 물었다.

“천재야.”

“어?”

“나 어디로 가면 되는지 알겠다.”

“…… 응? 어디로?”

“우리 이 건물 안에서 못 가본 곳이 어딘지 알고 있냐?”

이 건물 안에서 우리가 가지 못했던 곳. 나는 제일 밑층부터 위층까지 천천히 떠올리며 생각해 보았다.

그때의 일들이 생각난다.

모두 겁에 질려 공포에 떨던 시간. 바이러스에 감염되지 않으려 발버둥치고, 건물주를 내 소환수로 삼아 루시퍼를 잡은 그 순간까지.

“…… 아! 거기구나.”

“생각났어?”

“그래, 우리가 가보지 못한 곳.”

우리가 이 건물 안에서 문을 열지 못한 장소는 단 한 곳이다.

‘…… 옥상.’

우리는 곧장 옥상을 향해 걸었다. 올라가는 길, 비릿한 냄새가 코를 찔러왔다. 아직 치우지 못한 좀비의 시체들이 썩어 더욱 고약하다.

내가 담배를 꺼내 물며 정우에게 물었다.

“한 대 피울래?”

“노, 이제 담배 끊으려고.”

“그래?”

“그래. 게임에서 나가면 건강하게 오래 살아야지.”

“…… 그래.”

나는 입에 물었던 담배를 괜히 강하게 깨물어 찌그린 후 땅에 뱉었다.

퇘엣-!

‘이제 이런 냄새를 맡을 일도 없으니….’

* * * * *

옥상으로 통하는 문 앞에 도착한 나는 천천히 손을 뻗어 손잡이를 잡았다.

철컹.

열린다.

그때와는 다르게 결계가 우리를 막지 않았다.

[환영합니다.]

옥상으로 들어가는 입구에 나타난 메세지가 굉장히 간단하다.

푸른색의 글씨로 메시지 창에 나타나 있는 ‘환영합니다.’라는 글자.

별것 아닌데 가슴이 설렌다.

끼이이이이익-

문을 열자 늦가을 저녁이 생각나는 정도의 차가운 바람이 불어왔다.

빵-! 빵빵-!

차의 경적이 들린다.

많은 사람이 재잘거리는 음성과 도시를 비추는 높은 빌딩의 불빛이 눈에 들어왔다.

모두가 서로를 번갈아 보며 기쁜 미소를 지었다. 나는 고개를 살짝 끄덕인 후 앞장서서 옥상으로 올라갔다.

[시스템 메시지]

[멸망의 땅: 라스트 게임, 10년 후]

[게임의 끝에 도착하신 ‘김천재’ 님의 그룹을 축하드립니다.]

“…… 허허.”

지금 우리 눈앞에 펼쳐진 광경은 스토리 이후, 10년이 지난 시간을 보여주는 것 같다.

인류는 다시 잃어버린 자리를 되찾기 시작했다. 멸망하기 전의 모습으로 돌아오는 데 걸린 시간은 너무나도 짧게 느껴진다.

폐허가 되어버린 도시가 겨우 십년이라는 시간 만에 이렇게까지 발전하다니.

옥상에 도착한 우리는 휘둥그레진 눈으로 건물 밖 주변을 살펴보았다.

도시가 멸망하기 전 그때로 다시 돌아온 느낌이다.

가슴이 빠르게 두근거린다.

모두가 아무 말 없이 도시를 지켜보았다. 다들 행복한 얼굴로 도시를 거닐고 있다.

위이이잉-.

갑자기 귀에 공명이 일었다.

그리곤 홀로그램 화면이 치지직 거리는 소리와 함께 사람 한 명을 만들어냈다.

“안녕하십니까, 여러분. 이곳까지 오느라 수고 많으셨습니다.”

나는 눈살을 찌푸렸다.

홀로그램이 만들어 낸 자는 다름 아닌 이 게임의 최고 빌런, 스펙터.

꼬마 녀석이 우리에게 정중히 고개를 숙이며 말을 이었다.

“다들 게임을 재밌게 즐기셨나요?”

정우가 검을 휘둘러 녀석을 반으로 갈라냈다.

쿵!

“이 시벌럼이 뭐라는 거야.”

나는 정우의 어깨를 뒤로 밀며 고개를 저었다.

“진정해.”

“하…. 참.”

갈라졌던 스펙터가 다시 원래의 상태로 돌아오며 활짝 웃었다.

“이제 여러분은 이 게임 밖으로 나가실 차례인데요. 준비는 되셨습니까?”

역시!

“게임에서 나가면 어떻게 되는 거지?”

“…… 원래의 세계로 돌아가는 것이지요. 왜요? 싫으십니까?”

나는 어깨를 으쓱거리며 녀석에게 대답했다.

“아니. 빨리 돌려보내 줘.”

“하하하하, 알겠습니다. 그럼…. 모두 바닥에 누워서 몸에 힘을 빼고, 눈을 감아주시겠습니까?”

“뭐? 여기 누으라고?”

“예. 그냥 편하게 누워서 온몸에 힘을 빼주시기 바랍니다. 그러곤 눈을 감은 후 수를 열까지 세어 주세요. 아차차! 이 모든 일은 네 분이 동시에 해주셔야 합니다.”

나는 모두에게 눈치를 준 후 천천히 뒤로 누웠다. 다들 나를 보며 똑같이 따라 한다. 이어 손을 들어 손가락으로 숫자를 센 후.

3, 2, 1.

눈을 감았다.

[LOG OUT]

* * * * *

캄캄하다.

주위의 소리가 사라지듯 점점 작게 들려온다. 콧속에 베인 좀비의 고약한 썩은 냄새가 사라지고 달달한 향이 퍼진다.

갑주가 마치 깃털처럼 가벼워지고 감고 있는 눈앞이 살짝 환하게 보이기 시작하더니.

위이이이이잉-

철컹!

“…… 응?”

-우와아아아아아아아!!!

환호성이 들려왔다.

몇만 명이 동시에 소리를 치는 것처럼 쩌렁쩌렁하다.

천천히 눈을 떠보니 내가 안마 의자 같은 곳에 누워 있다.

“…… 캡슐?”

캡슐이라는 단어를 나도 모르게 말함과 동시에, 갑자기 많은 일이 머릿속에 떠오르기 시작했다.

“…… 하아.”

내가 안도의 한숨을 내뱉었다. 지금 내 앞에 펼쳐진 게임 대회 경기장.

모든 것들이 생각난다.

다다다다다다-!

푸른색 캡 모자에 귀에 이어폰을 꽂은 여자가 마이크를 내게 들이밀며 물었다.

“김천재 씨, 정신을 돌아오셨습니까?”

“…… 예.”

“게임에 들어가기 전 기억은 나시는지요?”

게임으로 들어가기 전 기억.

캡슐에서 눈을 뜸과 동시에 생각났다.

나는 고개를 크게 끄덕이며 그녀에게 대답했다.

“…… 예.”

“다행이군요! 혹시라도 기억제세동기에 문제가 생겼을까 봐 걱정했는데요.”

“전부 기억납니다.”

내가 이 게임에 참가하게 된 이유와 계기. 그리고 어떻게 해서 내 기억을 지웠는지까지도.

-우와아아아아!

계속해서 함성이 들려온다.

좌우를 보니 내가 나온 것과 똑같이 생긴 캡슐이 좌우로 두 개씩 있었다.

철컹!

문이 열리며 다른 자들도 한 명씩 나왔다. 유소라, 마이클 그리고 마지막으로 마정우.

그들 또한 기억이 천천히 돌아오기 시작했는지 한숨을 크게 내뱉은 후에 어이없는 웃음으로 서로를 쳐다보았다.

그렇다.

우리가 겪은 이 모든 일은 ‘멸망의 땅: 라스트 게임’을 만든 게임사에서 만든 기계로 치러진 글로벌 대회.

모두가 깨어나자 유명 게임 해설진들이 목소리를 높였다.

-드디어 모두가 깨어났습니다! 최종 우승을 차지한 한국 팀, 김천재 씨의 그룹원들이 전부 일어났습니다!

-멈추지 않은 한 달간의 대장정! 그 정점에 도달한 자! 김-! 천-! 재-!

-챔피언을 향해 모두 환호의 손뼉을 쳐주시기 바랍니다!

함성소리와 함께 박수 소리가 관내를 가득 채웠다. 이 정도 사이즈면 야구 경기장 급인데, 이렇게 규모가 큰 대회였었나?

나는 해설진들을 보며 생각했다.

‘저들이 게임 내에서 제 3의 눈이라고 표시되었던 사람들이구나.’

관객들은 ‘게임을 지켜보는 자’로 표시되었을 거고.

터벅. 터벅 .터벅. 터벅.

누군가 내 뒤로 걸어왔다.

“우승을 축하하네.”

“……!!!”

어둠이 깃들어 있는 것만 같은 허스키한 목소리.

빠르게 고개를 돌려보니 루시퍼 녀석이 내게 트로피를 건네어 주고 있었다.

나는 깜짝 놀라 뒤로 한 발자국 물러났다.

“뭐, 뭐요.”

“우승을 축하한다고.”

“당신….”

“음? 아! 크하하하- 걱정하지 말게나. 나는 루시퍼가 아니라 이 게임의 사장인 류시관이라고 하네.”

“……”

“빨리 받아. 무거워서 팔 떨어지겠네.”

나는 루시퍼가 주는, 아니 류시관이 주는 트로피를 받아 들었다.

우리들의 목표인 상금이 적힌 피켓과 함께 말이다.

[상금: 10,000,000,000]

‘백…. 억…. 그래, 이거 때문에 우리가 대회에 참가했었지.’

-우오!

그와 동시에 가까운 곳에 있는 자들이 휘파람을 불며 손뼉을 쳤다.

짝짝짝짝!

이 게임의 운영진들이다.

마정우의 삼촌부터 시작해서 김준철, 오 박사 그리고 파우스트가 순서대로 서 있었다.

게임 속 케릭터들은 전부 저들을 토대로 만든 것이었나?

“…… 허허.”

내가 트로피를 들고 멍하니 서 있자 파란 캡 모자를 쓴 여자가 달려왔다.

“자! 그럼 챔피언의 소감을 들어 보겠습니다. 김천재 씨, 단상으로 올라와 주시죠.”

“아 예…. 예? 응? 무슨 소감이요.”

“게임에서 우승하신 소감 한 말씀 부탁드리겠습니다!”

-우와아아아아!

다시 한번 환호성이 관내를 가득 채웠다. 나는 우리 그룹원들을 한 번씩 쳐다본 후 단상으로 올라갔다.

모두가 보인다.

별것 아니라 생각했던 NPC들부터 조연처럼 게임에 나온 플레이어들까지 지금 내 눈앞에 보인다.

중요한 인물을 제외한 모두가 AI로 게임 내에 저장되었었다고 했었다.

게임에 들어가기 전 들은 설명이지만 이제 와서 떠올려보니 황당하다.

나는 단상 마이크 앞에 서서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아아.

내 목소리가 관내에 크게 울려 퍼진다.

무슨 말을 해야 할까?

모두가 내게 귀를 기울였다.

순간 정적이 흘렀다.

삐이-.

마이크에서 기계음이 났다.

그리고 우웅 소리가 멈추었을 때 나는 조용히 입을 뗐다.

“소라 씨, 차 한잔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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