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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3화

피슉! 소리와 함께 우리 모두가 천상으로 이동했다. 정우가 화들짝 놀라며 몸을 떨었다.

“뭐, 뭐야. 이거 어떻게 한 거냐?”

내가 어깨를 으쓱거리며 대답했다.

“저 녀석 능력이야.”

파우스트가 장난기 가득한 얼굴로 윙크하더니 대회랑 안으로 걸음을 떼었다.

터벅. 터벅. 터벅.

계단을 올라가는 발걸음이 무겁다. 혹시라도 이 녀석이 혼돈을 멈출 수 있는 자가 아니면 어떻게 하지? 라는 생각이 머릿속에 계속해서 맴돈다.

물론 아닐 확률은 극히 낮지만, 그래도 여기까지 와서 임무에 실패하면….

쿠궁!

갑자기 회랑이 크게 흔들리며 모래 먼지가 쏟아져 내렸다. 빛나는 가루가 섞여 있어 반짝인다. 파우스트가 손을 흔들어 모든 먼지를 없애버리더니 내게 말했다.

“천재 씨, 혼돈이 끝난 후의 세상. 믿고 맡겨도 되겠습니까?”

“아니, 나를 믿지는 마. 그런 세상 맡을 생각 없거든.”

“…… 푸하하하! 역시 천재 씨 답네요.”

회랑의 끝에 도착하기 전 내가 녀석에게 물었다.

“근데, 나랑 같이 밥을 먹자고 한 이유가 뭐야?”

“…… 그냥이요. 그냥 같이 먹고 싶었습니다.”

“그냥?”

“예.”

“참 특이한 놈일세…. 정말 이유가 없었어?”

“이유라…. 있을지도 모르지요. 하지만 그 질문에 대한 답은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지금은 그냥이라고밖에 말할 수 없네요.”

“그냥이라….”

운영진들이 이런 이벤트를 넣어 둔 이유가 무엇일까? 나는 곰곰이 생각하며 그의 뒤를 따랐다.

회랑의 끝에 가까워지자 지군과 고티 그리고 조영기가 내 뒤로 바짝 붙으며 거리를 좁혔다.

먼저 도착한 파우스트가 천장을 향해 손가락을 긋자 문이 열리며 또다시 뒤엉킨 빛과 어둠이 보였다.

“그럼 올라가도록 하겠습니다.”

파우스트가 가볍게 점프를 뛰자, 우리 모두의 몸이 붕 뜨며 날아오르기 시작했다.

[시스템 메시지]

[‘혼돈을 끝낼 자’가 천상의 끝에 도착하였습니다.]

[주어진 임무를 시간 내에 성공하신 김천재 님의 흐름이 ‘사자의 서’에 새로이 기록됩니다.]

하얀 구름과 흑색 구름이 뒤엉켜 거대한 사람의 모습이 되더니 우리 앞으로 다가왔다.

파우스트가 그를 보며 작게 웃음을 띠더니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이 세상의 새로운 혼돈이여. 인사드리겠습니다.”

-…… 파우스트.

머리에 울리는 소리를 들어보니 어둠보다는 빛에 가깝다. 거대한 구름이 손을 뻗어 파우스트에게 빛과 어둠을 조금씩 흘렸다.

우리는 숨을 죽이고 둘의 대화를 들었다.

“어떻게, 이제 저의 부탁을 들어주시겠습니까?”

-……

“들어주신다면 이 혼돈을 끝내도록 하지요.”

-그 시간은 다시 오지 않는다.

“당신의 힘이라면 충분히 오게 할 수 있습니다.”

-같은 역사를 되풀이할 수는 없어.

“…… 제가 원하는 시간까지만 같은 길을 걸을 수 있게 해주십시오. 그 후에는 상관없습니다.”

파우스트의 부탁을 마지막으로 정적이 흘렀다. 마치 시간이 멈춘 듯 느껴졌다.

소용돌이치던 빛과 어둠이 잠시 일그러져 보이더니, 갑자기 구름의 색상이 짙어지며 바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파우스트…. 모든 일들이 너의 장난이었던 것인가….

파우스트가 고개를 저었다.

“장난이라니요. 저는 당신이 원하는 대로 혼돈으로 만들어주었을 뿐인데 말입니다?”

-전부 보았다. 혼돈 속 네놈의 과거와 현재를.

“보셨나요? 하하…. 잘하셨습니다. 이 기회에 당신이 얼마나 어리석은 존재였는지 알 수 있겠군요.”

-지금의 나는 모든 것을 알 수 있다. 너의 미래까지.

“그런가요? 그럼 제가 앞으로 어떻게 되는지 좀 알려주시겠습니까? 아누께서 저의 부탁을 들어주실 것인지 아닌지 도통 알 수가 없어서 말이에요.”

거대한 구름이 주먹을 쥐더니, 그대로 파우스트를 향해 뻗었다.

쿠르르르르-!

그 안에서 천둥이 치며 강력한 기운을 뿜었다. 파우스트는 눈 하나 깜빡하지 않고 그대로 구름 속으로 몸을 집어넣으며 크게 소리쳤다.

“저에게 이런 공격은 통하지 않습니다!”

쾅!

굉음과 함께 구름이 사방으로 흩어지며 사라졌다. 파우스트가 분해되는 빛과 어둠 사이에서 주문을 외우며 빠르게 날았다.

그가 등에 메고 온 거대한 십자 관을 땅에 내려놓자,

쿠웅.

빛과 어둠의 소용돌이가 다시 한번 휘몰아치며 색상이 밝게 변했다.

-파우스트.

“오셨군요. 저의 제안은 한 번 생각해보셨습니까?”

-…… 다시 말하지만 같은 역사는 되풀이되지 않는다.

“부탁을 들어주지 않는다는 말씀입니까?”

-…… 그래.

파우스트가 한숨을 푸욱 내쉬며 나를 보았다.

“천재 씨.”

“…… 왜?”

“뒤를 부탁드리겠습니다.”

“뭐?”

“당신은 할 수 있을 겁니다.”

“뭘?”

“저는 새로운 역사를 만들 테니, 당신은 그 길을 걸어주십시오.”

“…… 응?”

파우스트가 싱긋 웃더니 갑자기 빛과 어둠 사이로 높이 날아올랐다.

무엇을 하는지 전혀 이해하지 못하겠다. 우리 모두가 그를 멀뚱히 쳐다보기만 했다.

‘새로운 역사를 만든다고?’

위이이이잉-

공간이 뒤틀어지기 시작했다.

파우스트의 얼굴에서 웃음이 사라지며 굳게 변하였다.

[시스템 메시지]

[‘빛과 어둠’이 강하게 소용돌이치기 시작합니다.]

[천상에 있는 모든 플레이어들은 혼돈에 휘말려 들지 않도록 조심해주시기 바랍니다.]

“으으으으-!”

몸이 날아갈 것 같은 강풍이 불어온다. 우리 모두가 상체를 낮게 숙이며 상황을 살폈다.

파우스트가 몸에서 강렬한 빛을 내뿜으며 ‘혼돈’ 속으로 몸을 집어넣었다.

녀석이 가져온 십자관까지 같이 빠져들어 간다. 마치 SF영화 속 블랙홀 속으로 들어가는 우주선이 떠오른다.

[‘혼돈’ 속으로 새로운 빛이 섞이기 시작합니다.]

[강렬해진 빛의 힘으로 인해 혼돈 속 어둠이 빠져나가기 시작합니다.]

빛과 어둠의 소용돌이에서 흑색이 점점 밀려나기 시작했다. 팽팽했던 둘의 힘에 파우스트가 들어감으로써 금이 가고 있다.

우리는 무기를 굳게 쥐고 변화를 지켜보았다.

굉장하다.

마치 은하수를 떠올리는 광경이다. 혼돈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파우스트가 엄지를 치켜들더니 나를 향해 소리쳤다.

“천재 씨! 기회가 된다면 언젠가. 언젠가 찾아가도록 하겠습니다!”

내가 바람에 의해 헝클어지는 머리를 뒤로 쓸어 넘기며 멍하니 녀석을 쳐다보았다.

그리고 나도 모르게 ‘그래.’라고 마음속으로 대답했다.

위이이이이잉-.

빛과 어둠의 소용돌이가 순간적으로 수축되며 작아지더니,

쿠웅!

굉음과 함께 큰 폭발이 일며 강렬한 빛이 주변을 감싸 안았다. 눈을 감았는데, 그 안으로 자그마한 어둠이 보인다.

까만 인간의 형태가 발버둥치고 있다. 조금씩 녀석의 몸이 녹아내리고 있다.

파우스트의 모습을 띠고 있는 빛이 내려와 녀석의 몸을 짓누른다.

이어 어둠이 사라지자 녀석이 나를 보며 웃었다.

따스하다.

녀석이 나를 향해 뭐라고 말하는 것 같은데, 입 모양만으로는 알 수가 없었다.

‘…… 뭐라고?’

이른 아침 새의 지저귐처럼 짹짹거리듯 들려올 뿐 알아듣기가 힘들다.

‘다시 말해봐.’

-쯔즈즈즈.

‘조금만 더 크게.’

-쯔쯔쯔쯔.

‘뭐라고?’

-천재 씨……

‘이제 들린다. 좀 만 더 크게.’

-천재 씨….

‘어, 말해.’

-…… 새로운 세상에서 봅시다.

* * * * *

빛이 사라지자 천상의 하늘을 가득 채웠던 먹구름이 사라졌다. 새하얀 구름 사이로 빛기둥이 쏟아져 내린다.

천천히 눈을 뜨니 회랑의 옥상에 내가 가만히 서 있었다.

주변을 둘러보았다.

우리 그룹원들이 잔뜩 긴장한 상태로 주변을 살폈다.

“…… 바엘!”

내 외침에 모두의 시선이 집중되었다. 커다란 원형의 빛 앞에 바엘의 시체가 쓰러져 있다.

생명력 게이지가 회색으로 변한 것으로 보아 사망한 것이 틀림없는데, 이상하게 위압감이 느껴졌다.

나는 놈의 시체 옆으로 다가갔다.

“……”

[시스템 메시지]

[현 시간부로 ‘제 1 마왕, 바엘’이 사망했습니다.]

[보상으로 악마의 정수가 지급됩니다.]

검은 크리스탈 하나가 내 앞에서 빙글빙글 돌았다.

‘또 이건가.’

[악마의 정수를 가지고 ‘사자의 탑’을 방문하여 주십시오.]

[혼돈 속에서 방황하는 존재가 당신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사자의 탑.

그 혼돈 속에서 방황하는 존재. 누구인지는 우리 모두가 알고 있다.

설명이 필요 없을 정도로 유일무이한 자니까.

나는 악마의 정수를 손에 쥐고 빛나는 원형의 구를 쳐다보았다.

“…… 파우스트?”

대답이 없다.

“파우스트? 아누?”

다시 물었지만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쿠구구구구구-

회랑의 밑으로 내려가는 문이 천천히 열리기 시작했다. 나는 슬쩍 밑을 본 후 다시 빛나는 원형의 구를 향해 말했다.

“둘 중 누구인지 모르겠지만 이제 혼돈은 끝난 거지? 맞다면 아무 신호나 좀 줘봐. 아니라면 그냥 내 앞에서 사라지고.”

번쩍. 번쩍.

원형의 구가 크게 반짝였다.

나는 입꼬리를 올려 씨익 웃었다.

“너구나.”

-……

“왜 말을 못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럼 나중에 보자고.”

번쩍. 번쩍.

나는 빛나는 원형의 구를 향해 손을 흔든 후 그룹 원들과 함께 회랑의 밑, 계단으로 뛰어내렸다.

* * * * *

회랑에서의 일을 마무리 지은 우리는 폐허가 된 마을로 돌아와 네 개의 악마의 정수를 챙겼다.

그리곤 지옥으로 향하여 걸음을 옮겼다.

[‘사자의 탑’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나는 사자의 탑 제일 깊은 곳에 있는 백색의 방으로 이동했다. 모두가 나를 에스코트하듯 주변을 살폈다.

이제 우리에게 덤빌만한 적이 남아있지도 않은데, 혹시나 하는 생각에 저러는 것 같다.

특히 지군 녀석이 오버를 떨며 나보다 앞장서 걸었다.

“바, 방금 이상한 소리가 났어.”

“그거 정우가 방구 뀐 거야. 지랄 좀 하지 말고 길 좀 비켜봐.”

“안 돼! 형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어떻게 해? 파우스트에게 전임 받은 사람인데.”

저 오타쿠 녀석, 천상에 다녀온 이후로 저 소리를 입에 달고 있다.

마치 보디가드처럼 나를 집중 방어한다.

나는 녀석의 엉덩이를 걷어차며 짜증을 내었다.

“내가 너보다 강하니까 걱정하지 말고 비키라고. 그리고 여기에는 적이라고 부를 만한 놈이 없으니까 걱정하지 마.”

“…… 혹시 모르잖아. 갑자기 팍! 하고 이상한 녀석이 나타나서 우리를 공격할-”

쾅!

갑자기 벽이 터지며 무언가가 튀어나왔다. 나도 모르게 반사적으로 낫을 휘둘렀다.

동시에 지군의 창과 정우의 검이 같은 곳을 갈라내었다.

콰드득!

이어 조영기의 바위 마법이 정면을 강타하고,

쾅!

고티의 그림자가 주변을 휘감았다.

“…… 사탄?”

순식간에 동강이 난 사탄이 낮게 비열한 웃음을 내뱉었다.

“크하하하….”

“네가 왜 여기 있지?”

“…… 루시퍼 님이 말씀하셨다. 네놈들이 이곳에 올 것이라고.”

“루시퍼가 우리가 여기 올 거라고 말했다고?”

“그래…. 쿨럭!”

녀석이 피를 토했다.

나는 놈의 앞으로 다가가 고개를 숙여 보았다. 어차피 반항할 수 없는 상태의 몸이 되었기에 이렇게 해도 문제는 되지 않는다.

“…… 내가 여기 올 걸 루시퍼가 미리 알고 있었다고?”

사탄이 새빨간 입을 길게 찢어 웃으며 대답했다.

“그렇다, 그리고 이 말을 전하라고 하셨지….”

“…… 무슨 말?”

녀석이 의미심장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곤 우리를 한 번씩 번갈아 보며 확인하더니, 마지막으로 시선을 내게 두고 입을 열었다.

“끝났다고 생각하지 마라. 언젠가 찾아가도록 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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