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로그인 더 아포칼립스-211화 (211/215)

211화

아누와 파우스트가 서로를 마주 보고 있다. 어떻게 된 일인지 모르겠지만, 바엘과 손을 잡은 녀석이 천상의 끝인 회랑에 도착하다니.

대체 어떻게 된 일일까?

우리는 숨을 죽인 채 둘의 대화를 들었다.

-나를 찾아온 이유가 무엇이지?

전지전능한 존재의 물음.

이 질문을 들은 나는 단번에 많은 생각이 머릿속에 스쳐 갔다.

신이라고 해서 모든 것을 알고 있지는 않다. 그리고 그들이 만들어 놓은 인과율의 흐름이 그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즉- 그들의 존재가 곧 이 세상의 존재 이유는 아니라는 것.

파우스트가 정중히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다.

“당신께 부탁을 하러 왔습니다.”

-…… 그날과 같은 시간을 만들어 달라는 것인가?

“알고 계시군요?”

-그래.

“…… 신께서도 이미 알고 계시겠지만. 벌써 셀 수 없이 그 시간을 만들려 해봤는데…. 제 힘으로는 안 되더군요.”

아누를 감싸고 있는 빛이 반짝거렸다.

-돌아가라. 네 뜻은 이루어지지 못한다.

“그 말씀은 제 부탁을 들어주지 못한다는 것인가요?”

-그래, 어찌하여 인간이 역사의 도표에 끼어들려 한단 말인가.

“끼어드는 것이 아닙니다. 그저 제가 원하는 시간이 다시 한번 왔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을 뿐-.”

-이야기는 여기까지 하도록 하지. 돌아가도록 하라.

키이이이이익-.

땅이 열리며 회랑 밑으로 가는 길이 나왔다. 파우스트가 차가운 표정으로 밑을 슬쩍 보더니 아누에게 말했다.

“다시 한번 부탁드리겠습니다.”

-이곳은 인간이 올 수 있는 곳이 아니다.

“저는 인간이기를 포기했습니다. 그리고 천사들도 태초에는 전부 인간이었지 않습니까?”

-그럼 천사가 되어서 다시 나를 찾아오거라.

“저는 죽으면 천사가 됩니까?”

-……

순간 눈앞이 번쩍이더니 파우스트의 몸이 회랑 밖으로 이동되었다. 말로 해서 통하지 않자 무력을 사용한 것 같은데, 이 사실에 파우스트가 크게 화를 내며 땅을 찼다.

쿵!

“빌어먹을.”

항상 침착해 보이는 녀석이 이렇게까지 화를 낼 줄이야.

‘그나저나….’

둘의 이야기에서 나는 알 수 있었다.

파우스트는 이 세상이 셀 수 없이 많이 반복될 정도의 역사 속에서 계속 살아왔다는 사실을.

게다가 이 세상을 만든 두 개의 혼돈, 티아마트와 아누를 전부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었었다니.

그것도 신이 예측하지 못하는 시간을 만들어서 말이다.

파우스트는 아무래도 내가 생각 한 것보다 더욱 대단한 녀석인 것 같다.

신의 대항마라 생각될 정도로.

파우스트를 발견한 천사 경비병들이 빠르게 몰려들었다. 파우스트는 그들의 움직임이 우스운 듯 손을 크게 저어 전부를 날려버린 후.

부웅-

그들의 우두머리인 메타트론만을 불러 이야기를 꺼냈다.

쉬익-.

“메타트론, 너는 곧 사라지게 될 것이다.”

메타트론이 창을 크게 휘둘러 반격해보려 했지만, 그의 공격은 파우스트의 손바닥에 간단하게 막혔다.

팍.

“인간이 어째서….”

“들어라. 너희들이 신이라 부르는 저 존재는, 머지않아 너희를 버릴 것이야.”

“이…. 자식이! 신성모독이다!”

“신성모독? 하…. 뭐, 그렇다고 하지. 네가 뭐라고 하든지 너는 곧 죽게 되어있어. 그때가 되면 내가 한 말을 꼭 기억하도록 해라. 너희들을 만든 창조주는 변덕쟁이라는 것을.”

파우스트가 주먹에 힘을 모아 메타트론의 갑주를 강하게 내리찍더니.

캉!

공간의 뒤틀리며 다른 장소로 사라졌다.

피슉-.

메타트론이 구겨진 갑주를 어루만지며 독백했다.

“…… 저자는 무엇이지.”

이어 하얀 안개가 빠르게 회전하더니 우리를 다른 장소로 이동시켜 놓았다.

잠시 쉴 시간도 없이 계속해서 스토리 화면이 보인다.

이번에는 메타트론과 파우스트가 인간의 세계에서 만나는 장면이 보였다.

강물이 흐르는 어느 숲속인 것 같은데 정확한 위치까지는 모르겠다.

내가 알 수 있는 것은 오직 둘만이 저곳에 있다는 사실.

파우스트가 낚싯대를 흔들며 메타트론에게 인사했다.

“왔나.”

메타트론이 신성한 빛을 뿜으며 그에게 다가왔다.

“나를 부른 이유가 무엇이지? 그리고 천상에는 언제 왔다 간 것이냐.”

“…… 언제 왔다 갔는지는 영업비밀이라 말해줄 수 없겠고. 너를 부른 이유는 앞으로의 일을 말해주기 위해서야.”

“앞으로의 일?”

파박. 파바바박!

파우스트가 낚싯대로 물고기를 낚았다. 힘차게 날아오른 연어 한 마리가 허공을 가르며 땅으로 툭, 떨어졌다.

파우스트는 펄떡이는 물고기를 보더니 해맑게 웃으며 메타트론에게 말했다.

“어때? 이 녀석 바보같이 가짜 파리에 낚였지.”

“…… 쓸데없는 이야기를 하려면 돌아가도록 하겠다.”

“쓸데없는 이야기라니? 이 가짜 파리가 얼마나 중요한 이야기인데.”

“가짜파리?”

“그래, 가짜 파리.”

메타트론이 고개를 숙여 연어 입에서 튀어나온 가짜 파리를 보았다.

파우스트가 엉덩이를 털고 일어나더니 연어를 강 속으로 던져 주었다.

그리곤 가짜 파리를 빙글빙글 돌리며 말을 이었다.

“히야…. 이 가짜 파리가 물의 흐름을 타고 들어가서 대어를 낚았잖아?”

“……”

“진짜도 아닌데 말이야. 맞지?”

메타트론이 파리를 계속해서 응시하더니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지옥에 있는 그 녀석을 말하는 건가.”

파우스트가 손가락을 튕겼다.

딱!

“그럴 수도? 하하하하! 그 녀석도 파리는 파리지. 맞아, 파리야.”

“……”

“여어 메타트론, 나는 지금 흘러가는 강 속에서 가짜 파리를 사용했잖아?”

“…… 그래.”

“근데 말이야…. 강이 아니라, 역사 속에 저런 가짜 파리가 끼어있다면 어떻게 될까?”

“……?!”

파우스트가 가짜 파리 모형을 메타트론에게 건네어 주더니 활짝 웃으며 말했다.

“그 파리의 주인이 누구인지 알면 너도 참 재밌을 텐데.”

탁! 탁!

파우스트가 메타트론의 어깨를 강하게 두 번 두드리고는 자리를 떠났다.

메타트론은 그에게 건네어 받은 파리를 강하게 쥐어 부수더니.

콰득!

낮게 독백했다.

“가짜 파리…. 그럼 진짜는 따로 있다는 말인가.”

갑자기 화면이 멈추며 근엄하고 따뜻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전부 알고 있었다.

‘…… 음?’

아누의 목소리다.

우리에게 무슨 말을 전하고 싶은 것일까? 갑자기 화면에 대해 설명을 하듯 그가 말을 하기 시작했다.

-모든 것을 알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막지 못했다.

‘뭘 막지 못했다는 거지?’

물어보려 했지만, 입이 벌어지지 않았다. 그저 듣고 있을 수밖에 없을 뿐.

-혼돈이 찾아온다.

‘혼돈이 찾아온다고?’

-선과 악의 힘으로는 혼돈을 막을 수 없다.

‘대체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네.’

안개 커튼이 빠르게 회전하며 내 시야를 전부 가렸다.

그리고 아누의 말이 이어졌다.

-앞으로 찾아올 혼돈을 막을 방법은 단 한 가지.

‘…….’

-혼돈으로, 혼돈을 막도록.

‘…… 무슨 개 소리지?’

쉬이이이익-.

안개 커튼이 쳐진다.

동시에 다음 스토리 화면이 보이기 시작했다.

장소를 보니 또다시 대회랑의 정상인 아누가 있는 장소다.

강렬한 빛이 두 존재를 비추고 있다.

부우우웅- 쾅!

“크허어억!”

당하는 사람은 파우스트다.

파우스트가 바엘에게 일격을 당해 그대로 쓰러졌다.

털썩.

바엘은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파우스트의 가슴에 손톱을 꽂아 넣었다.

스으으윽- 팍!

그러고는 파우스트의 목을 잡아 비틀었다.

“이제 끝이다.”

파우스트가 피 섞인 침을 바엘의 얼굴에 뱉더니.

퇘엣!

미간을 찌푸리며 눈을 찡끗거렸다.

“강해졌구나. 오늘은 여기까지 하도록 하지.”

피슉!

파우스트가 사라졌다.

바엘이 빈손을 강하게 쥐었다 피며 이를 갈았다.

“이 생쥐 같은 새끼….”

번쩍. 번쩍.

바엘의 머리 뒤에서 빛이 번쩍였다.

-감히 어둠의 존재가 이곳까지 발을 들이다니.

“…… 아누, 드디어 당신을 볼 수 있게 되었군.”

-나를 만나려 했는가?

“크흐흐흐흐…. 그렇지. 이날을 오랜 시간 동안 꿈꿔왔다.”

바엘이 천천히 몸을 일으켜 세우더니 아누를 향해 걸었다.

쿠구구구구-

이번에도 아누가 회랑의 밑으로 연결되어 있는 문을 열었다. 바엘이 가볍게 날아오르더니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내려가라는 건가?”

-너는 이곳에 있으면 안 될 존재. 신성한 회랑에서 나가도록 해라.

“…… 싫다면?”

-직접 내보내 주마.

순간 눈앞이 또다시 번쩍였다. 파우스트를 회랑 밖으로 이동시킨 그 능력이다.

‘…… 뭐지.’

빛이 사그라짐과 동시에 나는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파우스트조차 날려 보냈던 아누의 능력이, 바엘에게는 통하지 않았던 것이다.

바엘이 고개를 천천히 틀며 입꼬리를 올렸다.

“하아…. 혼돈 속 빛이여. 미안하지만 당신의 힘은 내게 통하지 않는 것 같군.”

-……!!!

“파우스트 녀석이 나를 왜 이곳으로 데리고 왔는지 모르겠지만. 아- 주 고마워.”

펄럭-. 펄럭-.

바엘이 날개를 펄럭였다.

-사라져라.

또다시 빛이 바엘의 몸을 휘감았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이번에도 아누의 공격이 그의 몸에 닿지 못했다.

보이지 않는, 아주 얇은 결계가 그를 지켜주는 것으로 보인다.

“…… 아무래도 나는 사라지지 않을 것 같군.”

-이 무슨…. 어떻게!

“오늘, 빛은 사라진다.”

바엘이 빛을 향해 뛰어들었다. 그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어둠이 뒤섞이며 강하게 휘몰아쳤다.

쿠구구구궁!

굉음과 함께 주변에 있는 새하얀 구름들이 조금씩 검게 물든다.

갑자기 천둥이 내리치고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크아아아악!”

빛 속에서 바엘이 고통의 포효를 내질렀다.

-안 돼!

아누의 외침이 들려온다.

빛과 어둠이 회오리치며 하늘을 덮기 시작한다. 서로 합쳐지지 못하는 것이 서로를 밀어내며 강력한 힘을 내뿜었다.

동시에 회랑의 하부로 내려가는 입구가 닫히며.

쿵!

공간이 봉쇄되었다.

* * * * *

모든 장면이 끝나자 하얀 안개 커튼이 걷히며 모든 것이 원래대로 돌아왔다.

[시스템 메시지]

[현 시간부로 스토리 화면이 종료됩니다.]

우리 눈앞에 빛과 어둠이 소용돌이치고 있다. 이곳에 처음 도착했을 때 아누라고 생각한 존재.

지금 다시 본 저자는 아누가 아니었다.

목소리가 전혀 다른 존재.

“…… 바엘?”

내 질문에 빛과 어둠이 동시에 움찔거렸다.

-김천재….

“당신을 무엇이라 불러야 하지? 아누? 바엘?”

-나는…. 둘 다 아니다….

“…… 그럼?”

소용돌이치는 빛과 어둠이 내 쪽으로 천천히 움직이며 다가왔다. 나는 피하지 않고 그대로 서서 녀석을 기다렸다.

과연 아누와 바엘 중 어느 쪽에 가까운 존재일까? 나를 공격하지 않으려는 것은 확실한데.

-나는 그저 하나의 혼돈. 아누도 바엘도 아니다.

다행이다.

혹시라도 어둠에 더 가까운 존재였으면 모두가 염려하는 사태가 일어났을 수도 있다.

루시퍼 이후에 힘이 빠진 상태에서 녀석을 상대할 수는 없으니….

“…… 그럼 혼돈이여. 내 질문 한 가지만 하도록 하지.”

혼돈이 움직임을 멈추고 내게 대답했다.

-말해라.

“당신이 우리를 이곳으로 부른 이유가 무엇이지?”

로그인 더 아포칼립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