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9화
루시퍼의 마지막 발악.
분노 모드에 돌입한 녀석의 몸이 갑자기 타오르며 미칠 듯한 오라를 내뿜었다.
중력이 강해진 듯 다리가 무거워진다.
마이클의 신성한 영역이 줄어들며 루시퍼의 어둠 영역이 늘어난다.
우리 모두가 두 주먹을 꽉 쥐고 녀석의 행동을 지켜보았다.
“김…. 천…. 재. 이 빌어먹을 새끼!”
쉬이이이익-
형상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빠른 속도로 놈이 날아온다.
콰직!
내가 반응했을 때는 이미 루시퍼가 내 등 뒤에 서 있었다.
‘아….’
세상이 기울어진다.
아니지, 내 목이 기울어져 땅에 떨어지고 있는 것이다. 단 일격에 루시퍼에게 목을 내어 주었다.
털- 썩.
모든 것이 가로로 보인다.
내 몸이 가만히 서 있다.
눈은 껌뻑여졌다.
소리도 들리고.
나를 쓰러뜨린 루시퍼가 우리 그룹원들을 하나둘씩 잡기 시작했다.
콰드득- 콰직!
속수무책으로 쓰러진다.
-억!
돼지같은 목소리로 보아 지군이 쓰러졌다.
-크윽…. 루시퍼 이 개자식!
정우의 악에 받친 목소리다.
-사…. 살려주세요, 악!
이번에는 겁에 질린 유소라다.
-이겼다고 생각하지 마라. 곧 너도 사라지게 될 것이 크악!
리나가 고통에 비명을 질렀다.
그렇다.
이 게임 내에 있는 모든 존재, 아무도 이길 수 없는 무적에 가까운 힘.
그 누구도 막을 수 없는 상태의 루시퍼가 바로 지금의 녀석이다.
나는 천천히 눈을 감았다가 뜨며 녀석을 지켜보았다.
아직 생명력 게이지가 바닥을 치지 않아 살아있나 보다.
아프다는 생각조차 들지 않았다. 이 게임을 처음 시작할 때만 하더라도 약간의 통증에 엄살을 부렸었는데.
이제는 목이 떨어져 나가도 덤덤해지다니.
‘하하….’
우리 그룹원들을 전부 처리한 루시퍼가 마을을 향해 날아간다.
그 이후의 사건은 내 머리 뒤에서 일어난 일들이라 정확히 보지는 못했다.
그래도 한 가지는 확실하다.
녀석이 마을을 전멸시키고 있다는 것.
-크악!
-시, 실패야?! 실패냐고! 고인물이 저 녀석을 잡는- 크헉!
-살려줘!!!
비명이 들려온다.
우리가 루시퍼 사냥에 실패했다며 몇몇 플레이어들이 원망하는 소리도 들려왔다.
나는 입을 꾹 다물고 눈을 감았다. 그저 이대로 생명력이 다 하기를 기다릴 뿐.
‘후우….’
와르르르르르!
시간이 지나자 내가 소환한 스켈레톤 병사들이 무너져 내렸다. 드디어 죽음에 문에 들어섰나 보다.
다시 눈을 떠보니 온통 검은 화면만이 가득했다. 게임 종료를 알리는 건가?
이대로 죽어도 큰 문제는 없지만….
내 눈앞에 [The End]라는 글자가 노란색으로 나타나 있다. 왠지 이 모든 일이 아무것도 아니었던 것처럼 끝날 것 같다.
‘……’
마이클, 지금이다.
* * * * *
삐빅.
대성당 안에 있는 마이클의 무전기가 울렸다.
-크아아악 살려줘!
“…….”
마이클이 굳게 닫혀있는 성당 문 앞으로 가서 귀를 대었다. 비명이 계속해서 울린다.
-멸망을 보여주마!
루시퍼의 목소리도 같이 들려왔다.
마이클이 침을 꿀꺽 삼키더니 성당의 창문 가까이 다가갔다.
혹시라도 들킬까 봐 자신 있게 고개를 내밀지는 못하고, 그저 눈만 살짝 걸칠 정도로 밖을 보았다.
한 번의 무전이 끝난 후 다시 들려오지 않는다.
잠잠해졌다.
“…… 오케이.”
쾅!
마이클이 문을 박차고 나갔다. 루시퍼가 고개를 천천히 돌려 그를 바라보았다. 성당 안은 시스템상 악한 기운이 들어오지 못하는 유일한 장소.
덕분에 지금까지 놈에게 들키지 않고 숨어있을 수 있었다.
마이클이 입꼬리를 올려 싱긋 웃더니 지팡이를 머리 위로 높이 들었다.
“신의 부름!”
[‘마이클 비치’ 플레이어가 ‘신의 부름’ 스킬을 사용합니다.]
[전방 1km 내에 있는 사망자들을 신의 힘으로 다시 일으켜 세웁니다.]
[‘신의 부름’으로 부활한 자들은 성스러운 기운에 힘입어 30초간 무적 상태로 전환됩니다.]
빛나는 가루가 빠르게 퍼져 나가며 사망자들의 몸을 덮었다. 마이클을 기준으로 쓰러진 자들이 한둘씩 일어나기 시작했다.
루시퍼가 고개를 돌려 일어나는 자들을 확인하더니 마이클을 향해 빠르게 날았다.
“이 빌어먹을 깜둥이 녀석!”
마이클이 지팡이로 루시퍼를 가리키며 미간을 찌푸렸다.
“입조심 하라구욧, 천사의 찬가.”
지팡이 끝에서 빛이 뿜어져 나오며 천사들이 빠르게 날았다. 압도적인 힘으로 플레이어들을 제압하던 루시퍼가 한방에 뒤로 날아갔다.
아무리 강하더라도 빛 앞에선 어둠은 기울어지기 마련.
이 틈을 노린 김천재와 그의 그룹원들이 뒤를 잡았다.
“지금이다!”
* * * * *
마이클의 능력으로 깨어난 우리가 루시퍼의 등을 잡았다.
동시에 덤벼들었으나 먼저 공격에 성공한 것은 녀석이었다. 우리의 격이 닿기도 전에 루시퍼의 손톱이 정우와 지군의 복부 앞에 도착했다.
“…… 네 공격은 우리에게 닿지 않는다.”
캉!
반짝이는 가루가 루시퍼의 손톱을 튕겨냈다.
30초.
루시퍼의 공격이 우리에게 닿지 않는 시간. 우리는 이 시간을 활용해서 녀석을 이길 방법을 찾는 것이다.
이게 바로 저번 게임에서 전멸하면서 알아낸 루시퍼 공략법.
리나가 루시퍼의 공격을 그대로 받으며 주문을 외쳤다.
“백사 봉인!”
촤르르르르륵-!
마나 사슬이 날아가 루시퍼의 몸을 묶었다. 정면 승부였다면 분노한 상태의 루시퍼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지만.
공격하는 순간에는 녀석도 움직임이 멈추기에 가능한 방법이었다.
“크아아악!”
또다시 루시퍼를 묶었다.
정우와 지군이 신의 무기를 사용해 녀석의 가슴을 다시 뚫어냈다.
콰직!
-키야아악!
강한 오라가 뿜어져 나와 정우와 지군이 튕겨져 나갔다. 리나도 이번에는 버티기 힘들었는지 그대로 기절하듯 쓰러졌다.
아직 정신이 남아있는지 마나 사슬은 사라지지 않았다.
정우와 지군이 무릎을 붙잡고 억지로 몸을 일으켜 세우며 루시퍼를 향해 달렸다.
녀석의 생명력 게이지가 80프로 미만으로 보인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 생명력을 깎아내린다면.
‘…… 지금이다.’
정우와 지군이 시간을 끌어줄 수 있는 바로 지금이 내가 숨겨온 힘을 사용할 때.
“본 스트라이크.”
[히든 명령어 입력으로 인해 숨겨진 스킬 개방이 됩니다!]
[‘본 스트라이크’ 분해된 스켈레톤 병사로 무기를 만들어 적에게 강력한 일격을 가합니다.]
[스켈레톤 뼈 숫자에 따라 대미지가 증가합니다.]
투두두두두두두두!
내 사망과 동시에 무너졌던 스켈레톤 병사들의 뼈들이 천천히 공중에 떠오른다.
[‘제3의 눈’이 손을 벌벌 떨며 감탄사를 내뱉습니다!]
[‘게임을 지켜보는 자’들이 기대하는 눈빛으로 김천재 님을 지켜봅니다.]
떠오른 뼈들이 소용돌이를 치며 내 앞으로 모여든다. 나는 낫을 머리 위로 들어 모여드는 뼈들을 천천히 컨트롤 해 보았다. 내 손이 가는 방향대로 뼈들이 움직인다.
모두의 시선이 나를 향한다.
플레이어들이 입을 떡하니 벌리고 그저 지켜볼 뿐이다.
심지어 우리 그룹원들에게도 말하지 않은 스킬이니, 루시퍼를 상대하던 정우와 지군도 황당한 표정을 지을 뿐이었다.
지군이 루시퍼 가슴에 박힌 창을 강하게 누르며 말했다.
“저, 저게 뭐야.”
정우가 검 손잡이를 굳게 쥐더니 눈을 껌뻑이며 대답했다.
“…… 모르겠는데. X나 강한 건 확실하네.”
원래의 계획대로라면 정우와 지군이 생명력을 깎아놓고, 내가 마무리를 하는 형식이었는데.
혹시 몰라 지금까지 숨겨왔다.
완벽한 승리를 위해.
투두두두두.
지금까지 아무에게도 들키지 않았기에.
투두두두둑.
아무도 이 능력에 대한 정보를 얻지 못했으니.
투두두둑.
녀석은 이 스킬을 막을 방법이 없다.
루시퍼가 정우와 지군을 상대하는 사이, ‘본 스트라이크’는 근방에 있는 모든 뼈를 사용하여 거대한 드릴 모양의 오라덩이가 되었다.
“…… 루시퍼, 내가 네게 주는 마지막 선물이다.”
루시퍼가 본 스트라이크를 보더니 두 눈을 천천히 감았다.
“…… 제길.”
위이이이이잉- 콰광!
* * * * *
끝났다.
이번에는 녀석이 자폭할 타이밍 자체가 나오지 않았다. 지금까지도 리나의 봉인 스킬이 녀석의 몸을 휘감고 있으니까.
본 스트라이크, 단 한방에 루시퍼의 생명력 게이지가 바닥을 쳤다.
모든 것이 계획대로 되었다.
이겼다는 기쁨에 온몸에 닭살이 돋으며 전율이 느껴졌다.
터벅. 터벅. 터벅. 터벅.
나는 쓰러져 있는 루시퍼의 앞으로 다가가 손을 질끈 밟았다.
“끝이야.”
루시퍼가 미간을 찌푸리며 나를 보았다.
“…… 내가 진 건가.”
“졌지. 완벽하게.”
“…… 후우.”
녀석의 입에서 하얀 연기가 뿜어져 나온다.
나는 담배 한 개비에 불을 붙여 한 모금 마신 후, 녀석의 입에 꽂아 주었다.
“마셔 봐.”
“……”
쓰읍.
녀석이 담배를 깊게 들이마신 후.
푸후-
천천히 내뱉으며 담배를 옆으로 흘렸다.
“어때?”
“…… 죽음에 가까운 맛이군.”
“그렇지? 나도 죽게 되면 꼭 한 대 피우면서 죽으려고.”
루시퍼 녀석은 어이가 없는지 웃어 보였다. 나는 녀석의 목에 낫을 겨누고 작게 속삭였다.
“마지막으로 할 말은?”
“…… 없다.”
“그럼 길게 말하지 않으마. 잘 가라, 수고했다.”
내가 낫을 크게 휘둘러.
“죽음의 낫.”
[‘죽음의 낫’ 발동]
[체력이 15% 미만인 적의 생명을 단 방에 앗아갑니다.]
콰직!
녀석의 목을 베어냈다.
[시스템 메시지]
[열네 번째 라운드의 메인 보스 ‘대악마 루시퍼’가 사라졌습니다.]
[게임 내에 존재하는 모든 Z 바이러스가 사라지며 멸망의 기운이 물러가기 시작합니다.]
‘……’
루시퍼가 사라졌다.
갑자기 하늘이 맑아지며 지옥으로 연결되어 있는 게이트가 닫히기 시작했다.
악마들이 방황한다.
그 모습을 포착한 플레이어들이 다 같이 덤벼들어 녀석들을 처리했다.
나는 쓰러진 루시퍼 앞에 털썩 주저앉아 주위를 둘러보았다.
짝.
짝짝, 짝짝짝짝짝
-우오오오오오!
환호가 들려온다.
[김천재 님이 멸망의 땅 최강자 타이틀을 얻으며 이 땅의 역사를 지닌 ‘사자의 서’에 기록됩니다.]
[‘제3의 눈’이 말없이 손뼉을 칩니다.]
[‘게임을 지켜보는 자’들의 환호성이 게임 내에 울려 퍼집니다!]
하아!
드디어 끝인가.
내가 땅에 떨어진 담배를 주워 입에 물자, 정우가 옆으로 다가와 앉았다.
“있냐?”
“…… 어, 여기.”
내가 주머니에서 담배를 한 대 더 꺼내어 녀석에게 건네어 주었다.
쓰읍, 푸후-.
“이 새끼, 이제 끝난 거 맞지?”
“…… 맞아. 드디어 끝났네.”
“이제 이 게임에서 나갈 수 있는 건가?”
“…… 그건 아직 모르지.”
터벅. 터벅.
지군이 다가와 쭈뼛거리며 내게 말했다.
“나도 한 대 줘봐.”
“너는 담배 안 피우잖아?”
“…… 지금 펴야 할 것 같아. 나도 초월자 그룹원이잖아.”
내가 싱긋 웃으며 담배를 꺼내어 지군에게 주었다. 녀석이 콜라 마시듯 연기를 크게 들이마시더니 코로 뿜으며 콜록거렸다.
“커헉! 고, 고통스러워.”
“아직 어린애구만.”
“뭐래….”
상황을 정리한 조영기와 김연희를 데리고 우리 앞으로 걸어왔다.
“김천재, 끝난 건가?”
“그런 것 같아.”
“그럼 엘프와 드워프는 그들의 자리로 보내도록 하지.”
“…… 그래.”
조영기가 기분 좋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더니 엘프와 드워프가 있는 곳으로 돌아갔다.
이어 강대원이 박살난 로봇들과 함께 찾아와 우리에게 인사를 하더니 다음에 다시 보자며 메카니아로 돌아갔다.
모두가 돌아가며 나를 찾아와 인사한다. 마치 이 게임의 마무리가 되었다는 것을 확신하듯 말이다.
‘…… 흐음.’
모든 이와 인사를 마친 우리는 마을을 정비하기 시작했다.
모든 것들을 원래 있었던 그 상태로. 마치 게스트하우스에서 다음에 올 사람이 사용할 수 있도록 물건들을 정리하듯이 말이다.
루시퍼와의 대결 이후, 마을에 머무는 동안 다들 우리 그룹을 보며 최초의 게임 종료자라고 이야기했다.
아직 새로운 시스템 창이 나타나지 않았고, 게임도 종료되지 않았는데 말이다.
게다가 풀리지 않은 이야기들이 여럿 있기에, 게임이 끝났다고 생각이 들지 않는다.
그저 이 게임의 최종 목표인 루시퍼가 쓰러졌을 뿐.
‘사실 이대로 게임이 끝났으면 좋았을 텐데….’
그래도 한 가지는 확실해졌다.
…… 멸망.
이 세계가 멸망할 위기에서는 벗어났다는 것이다.
이때까지만 하더라도 나는 알지 못했다.
루시퍼 이후의 이야기, ‘멸망의 땅: 라스트게임’에 새롭게 추가된 스토리가 한 가지 더 있다는 것을.
[플레이어 여러분 전원 수고하셨습니다.]
[이 게임의 마지막 라운드인 열다섯 번째 라운드에서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 * * * *
스으으윽- 팍!
바엘이 파우스트의 목을 잡아 비틀었다.
“이제 끝이다.”
파우스트가 피 섞인 침을 바엘의 얼굴에 뱉더니,
퇘엣!
미간을 찌푸리며 눈을 찡끗거렸다.
“강해졌구나, 오늘은 여기까지 하도록 하지.”
피슉!
파우스트가 사라졌다.
바엘이 빈손을 강하게 쥐었다 피며 이를 갈았다.
“이 생쥐 같은 새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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