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7화
이 스킬은 사용하게 되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예상치 못한 상황에 쓰게 되는구나.
모두가 마을로 돌아가고 나와 레드 드래곤만이 남았다. 나는 뼈로 장벽을 만드는 ‘본 월’ 스킬을 사용하여 녀석의 공격들을 막아냈다.
녀석이 꼬리를 휘두르면 뼈로 만든 계단을 타고 올라가 피하고,
불을 뿜으면 뼈로 벽을 겹겹이 쌓아 막아냈다.
내가 상공으로 고개를 돌려 본 드래곤의 위치를 확인했다.
아직도 사탄과의 대결이 끝나지 않았다. 저 녀석만 없었어도 레드 드래곤을 손쉽게 제압할 수 있었을 텐데.
“……”
뭐-.
이 모든 시련을 이겨내고 승리를 가져와야 김천재 답겠지?
쿠웅!
레드 드래곤이 커다란 발로 나를 향해 걸어온다. 나는 뒤로 물러서지 않고 낫으로 땅을 긁으며 녀석에게 소리쳤다.
“이 세계를 지킨다는 녀석이 악마와 손을 잡다니-”
-인간보다는 낫지.
“악마가 인간보다 낫다니, 너도 완벽하게 타락했구나. 다른 드래곤들이 너와 소통하지 않는 이유를 알겠군.”
-마음대로 생각해라. 나는 내 방식대로 이 세계를 지켜야겠다.
“겨우 인간을 멸살시키는 것이 네가 생각한 이 세계를 지키는 방법이냐?”
-…… 이 세계는 인간에 의해서 조금씩 썩어가고 있다.
“썩은 건 이 세계가 아니라 네 생각이야.”
-너희들은 자연을 더럽히고 많은 생명을 없앤 장본인이지.
“없어진 만큼 새로운 생명이 생겨났어. 더러워진 자연은 시간이 흐르면 다시 되돌아올 테고.”
-돌아오지 못하기에 우리가 직접 나서게 된 것이다. 어리석은 인간 녀석….
역시 대화가 통하지 않는 녀석이다.
쿠궁!
녀석이 또 한 걸음 내 앞을 향해 걸어왔다. 움직임이라도 느리면 시간을 끌어볼 만한데, 지금은 그럴 여유가 되지 않는다.
“…… 레카, 저 녀석은 네 상대다.”
레카가 창을 빙글빙글 돌리며 레드 드래곤의 앞으로 나왔다. 레드 드래곤이 콧방귀를 뀌었다.
둘을 오라만 놓고 비교하자면 이제 막 게임을 시작한 플레이어와 마지막 레벨에 도달한 상위 플레이어 정도의 차이. 절대로 이기지 못할 대결이라 생각될 만큼이다.
레드 드래곤은 레카를 보며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르고 덤비는 것처럼 느껴졌을 것이다.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이 능력을 사용하기 전까지는 말이다.
“스켈레톤 조합, 올 인 원.”
[시스템 메시지]
[숨겨진 스킬 발견!]
[‘김천재’ 플레이어가 조건을 만족하여 ‘스켈레톤 올 인 원.’ 스킬을 습득합니다!]
내 명령어에 시스템이 반응했다.
“스켈레톤 올 인 원, 모든 힘을 레카에게 공유한다.”
[‘스켈레톤 올 인 원.’ 스킬을 사용합니다.]
[‘김천재’ 플레이어 수하에 있는 모든 스켈레톤 병사들이 ‘레카’ 소환수와 결합을 시작합니다.]
투드드드드드득.
주위에 있는 스켈레톤 병사들의 몸이 분해되며 레카에게로 날아갔다.
하나둘씩 달라붙기 시작한 스켈레톤 병사들의 뼛조각들이 레카의 덩치를 점점 부풀어 올렸다.
단순히 뼈가 달라붙는 것이 아니라 레카의 신체 구조에 따라 변형되며 날아온다.
마치 단단한 뼈가 고무처럼 느껴질 정도로 탄력이 있어 보인다.
타다다당!
뼈가 레카에게 부딪칠 때마다 경쾌한 소리와 함께 오라가 증가한다.
나는 커지는 레카를 보며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래.’
이 정도면 레드 드래곤과 견주어 볼 만하지.
[‘스켈레톤 올 인 원’ 스킬이 완료되었습니다.]
[소환수 레카의 능력치가 흡수한 스켈레톤의 비례하여 증가합니다.]
강한 전류가 흐른다.
강철로 만들어진 스켈레톤을 재료로 삼아서 그런가? 레카의 몸이 더욱 단단해 보였다.
덩치만 보자면 앞서 상대한 거인, 비홀더에 가깝고.
오라의 크기를 보자면 레드 드래곤보다 조금 우세하거나 비슷한 급으로 보인다.
레드 드래곤이 레카의 모습을 보더니 뒤로 한 걸음 물러났다.
쿵!
-이 녀석은….
내가 좋은 미소를 지으며 레드 드래곤에게 말했다.
“그 녀석은 이제부터 네가 상대해야 하는 적이야.”
부웅- 쾅!
레카의 주먹이 레드 드래곤의 머리를 강타했다.
부웅- 콰직!
이어 창날이 레드 드래곤의 꼬리를 자르고.
부웅- 쿠구구궁!
발차기가 복부에 박히며 드래곤이 지면을 뒹굴었다.
-크허억!
압도적인 전투다. 오라의 크기가 비슷해서 그래도 막상막하의 대결이 펼쳐질 줄 알았는데. 전투 능력의 차이가 완전히 달랐다.
하긴 같은 능력치라면 도마뱀보다 전사 쪽이 훨씬 전투에 능하겠지.
한방에 한 칸씩, 레드 드래곤의 생명력 게이지가 줄어들었다. 나는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고개를 흔들며 계속해서 공격할 것을 명령했다.
“없애버려.”
“알겠습니다, 주군.”
동굴에서 말하는 것 같은 큰 울림 통.
부웅- 쾅!
레카의 거대한 주먹이 레드 드래곤의 머리를 내리치는 순간.
[시스템 메시지]
[동쪽의 수호자 ‘레드 드래곤’이 사라졌습니다.]
[‘레드 드래곤’의 정수가 대지에 흡수되어 모든 플레이어의 체력이 증가합니다.]
레드 드래곤이 빛나는 가루가 되어 천천히 땅에 스며들었다.
내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
-이야아아아아! 김천재 최고다!
플레이어 중 노인이 엄지를 치켜들며 내게 소리를 질렀다.
내 전투를 지켜보던 자들이 손뼉을 쳐주었다. 나는 머리를 긁적이며 모두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이제 드디어 마지막 전투입니다! 모두 준비해주세요!”
* * * * *
네 마리의 드래곤이 전부 쓰러지자 루시퍼가 몸을 풀기 시작했다.
천천히 마을을 향해 날아온다.
본 드래곤를 상대하던 사탄이 공간을 열어 루시퍼의 옆으로 자리를 옮겼다.
“루시퍼 님!”
“…… 바엘은?”
“위치가 파악되지 않고 있습니다.”
“…… 알았다.”
[‘대악마 루시퍼’가 폐허가 된 마을을 향해 오고 있습니다.]
[모든 플레이어는 대기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녀석의 위치를 확인한 나는 김준철을 향해 소리쳤다.
“마을의 모든 입구를 막고 있는 방어벽을 철거해주세요!”
김준철이 고개를 끄덕이더니 무전으로 부하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이제 시작될 싸움은 피라미들을 상대하는 것과는 다르다. 한 번만 실수해도 이 게임 자체가 끝날 수 있을 만큼 위험한 전투.
드디어 마지막 전투라고 생각하니 긴장감에 손이 떨린다. 녀석과의 거리가 가까워질수록 숨이 막힐 듯이 가슴이 답답해져 왔다.
나는 녀석의 모든 공격기를 파악하고 있다. 그리고 그 스킬들이 어느 정도 거리에서 내게 피해를 줄 수 있는지와 얼마만큼의 살상력을 가졌는지.
천천히 날아오던 루시퍼가 움직임을 멈추고 나를 바라보았다.
“김천재, 지금이라도 내 밑으로 들어오면 살려주도록 하지.”
내가 중지를 들어 보였다.
“빠큐.”
“…… 이 시간 이후로 너희들은 모두 사라지게 된다.”
“두 번 빠큐.”
“정말 살고 싶지 않은 것이냐?”
“세 번 빠큐!”
“…… 빌어먹을 여우 녀석!”
본 드래곤이 사탄을 향해 고속으로 날아왔다. 사탄이 두 손을 크게 젓자 공간이 뒤틀리며 본 드래곤을 다른 공간으로 보냈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며 조용히 있었다. 어차피 리콜 능력으로 다시 불러내는 것은 식은 죽 먹기.
오히려 녀석들의 반응을 보는 데 집중했다.
우리가 모두 숨을 죽이고 대기하고 있자, 루시퍼가 높이 날아오르며 오라를 강하게 뿜었다.
“크으으으으으!”
대지가 흔들릴 정도로 강력한 힘이다. 플레이어 중 몇은 정신을 잃고 그대로 쓰러졌다. 녀석의 범위 안에 있는 모든 이의 생명력 게이지가 천천히 깎여 내려가기 시작한다.
[시스템 메시지]
[열네 번째 라운드의 메인 게임이 시작됩니다.]
[‘멸망의 땅’에 계신 모든 플레이어들은 세계의 존속을 위해 대악마 루시퍼를 막아주시기 바랍니다!]
“…… 지군! 베트남 플레이어들은?!”
“아이 쉬벌! 무전했는데 쌀국수가 아직 안 익어서 못 온대!”
“…… 어? 그게 무슨 소리야. 그게 말이 돼?”
“무슨 소리긴 녀석들이 우리를 배신하고 안 온다는 말이지!”
“갑자기?! 아까까지만 해도 온다면서.”
“아오…. 이래서 쌀국수 녀석들을 믿는 게 아니었는데!”
녀석들이 지금 나타나주면 완전 땡큐인데, 역시 외국 플레이어들은 믿지 못하겠구나.
루시퍼가 오라를 뿜는 동시에 게이트가 빠르게 회전하며 지옥의 악마들이 수없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우리는 마을의 중앙, 대성당이 있는 곳으로 자리를 옮겨 녀석들을 막아내기 시작했다.
여기까지는 우리 모두가 알고 있는 스토리.
“…… 가자.”
새로운 초월 그룹.
마정우, 유소라, 지군, 리나.
그리고 나.
우리 다섯이 루시퍼를 향해 뛰었다.
두두두두두-!
우리를 발견한 루시퍼가 고속으로 낙하하며 ‘악(惡)’ 속성의 스킬을 사용했다.
[루시퍼가 악 속성 최강의 스킬 ‘다크 블레이드’를 시전합니다.]
저번 게임에서 단 한방에 마을에 있는 플레이어 절반을 몰살시켰던 미친 대미지를 가진 스킬.
다크 블레이드.
녀석의 검은 오라로 만들어진 검이 쥐어졌다. 저 스킬을 막을 수 있는 능력은 내게 없다. 녀석의 전력이 들어간 힘이라 신의 무기로도 막기에는 역부족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눈도 깜빡하지 않았다.
“…… 김연희!”
지금까지 조용히 있던 김연희가 미소를 보였다.
“오_____________ 케이!”
김연희 암살자 특유의 가벼운 몸놀림으로 높게 뛰어올랐다. 방향이 루시퍼가 날아오는 곳과 정확히 일치했다.
그녀를 발견한 루시퍼가 석연찮은 표정으로 다크 블레이드를 휘둘렀고.
“비켜라!”
그의 공격을 예측하고 있던 김연희는 단검을 휘두르며 크게 소리쳤다.
“웨폰 브레이크!”
[‘웨폰 브레이크’ 스킬을 사용합니다.]
[100%의 확률로 적의 무기를 깨트립니다.]
쿠웅- 캉!
순간적으로 폭발이 일며 김연희가 튕겨 나갔다. 덕분에 루시퍼의 다크블레이드가 완벽하게 소멸되었다.
어떻게 아냐고?
‘…… 녀석의 손이 비어있다.’
루시퍼가 빈손을 접었다 폈다 하더니 분노한 표정으로 김연희를 보았다.
“이건 또 뭐냐!”
검을 잃은 녀석이 마법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검은 원형의 구가 소용돌이치며 우리를 향해 날아온다.
“정우야!”
“알았어!”
마정우가 우리를 제치고 달려가 검으로 원형의 구를 검으로 받아쳤다.
쾅!
검은 연기가 사방으로 퍼지며 모두의 시야를 가렸다.
이 순간이다.
우리 작전의 첫 기회이자 녀석을 단숨에 끝낼 수 있는 일격을 가할 타이밍.
“리나!”
내 외침에 리나가 높이 뛰어오르며 루시퍼를 향해 봉인 주문을 외웠다.
“백사 봉인!”
촤르르르르륵!
마나 사슬이 사방으로 뻗어 나가 루시퍼의 몸을 묶었다.
취익!
“뭐, 뭐야, 이건!”
루시퍼가 당황스러워하는 사이 유소라가 영혼 물고기를 만들어 루시퍼를 향해 날렸다.
“물어!”
-키에에에엑!
영혼 물고기들이 피라니아처럼 이빨을 드러내고 빠르게 날아간다.
“이게 뭐냐고!”
루시퍼가 마나 사슬을 풀어보려 크게 발버둥 쳤다. 그가 움직일수록 사슬은 더욱 강하게 조여왔고.
놈이 당황스러운 표정으로 우리를 쳐다보았다.
“뭐긴 너를 끝낼 비장의 무기지. 가라, 지군!”
한 마리의 독수리로 변해 하늘을 날고 있던 지군이, 다시 인간의 모습으로 변하더니 루시퍼를 향해 빠른 속도로 떨어졌다.
“뒤져, 이 시벌럼아!!!!”
지군이 기합을 넣으며 루시퍼의 우측 가슴을 향해 메타트론의 창을 꽂고.
콰직!
마정우가 빠르게 달려가 높이 점프를 뛰더니 루시퍼의 좌측 가슴을 향해 미카엘의 검을 꽂았다.
콰직!
-크아아아악!
완벽하다.
단 치의 실수도 없이 우리의 공격이 모두 정확하게 명중했다.
루시퍼 머리 위에 있는 검은 생명력 게이지가 순간 반 토막이 났다.
나는 이 순간 이후에 벌어질 상황을 전부 알고 있다. 그러기에 뒤에서 상황을 지켜보기만 했다.
“어떠냐, 루시퍼!”
루시퍼의 눈이 붉게 충혈 되었다. 무섭다. 정말 무섭다. 녀석의 표정이 너무나도 무서워서 마주 보고 있고 싶지 않을 정도다.
녀석이 이를 바득바득 갈며 우리에게 말했다.
“이렇게 한다고 내가 끝날 줄 아느냐!!!”
내가 낫을 빙글빙글 돌리며 녀석에게 말했다.
“끝나야지. 라스트 게임인데, 끝나지 않으면 되겠어?”
“크으으으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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