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5화
“전원 자리로 이동한다.”
내 명령에 모두가 바삐 움직이기 시작했다.
네 마리의 용이 나왔으니 지금부터 우리는 계획해 놓은 대로만 움직이면 된다.
“마이클, 각 부대의 장들에게 무전 날리고, 너는 정우하고 고티 데리고 같이 남쪽으로 이동하도록 해.”
“알겠숩니다.”
삐빅.
마이클이 무전기에 입을 가져다 대고 크게 말했다.
“영기조, 서쪽을 맡아 주시기 바랍니돠.”
-알았다, 즉각 움직이도록 하지.
“대원강, 동쪽을 맡아 주시기 바뢉니다.”
-롸져댓.
“준철킴, 남쪽에 있는 병력은 벙커 위치를 고수하고 저희가 도착할 때까지 방어태세로 전환해주시기 바뢉니다.”
-알겠다.
모든 무전을 마친 마이클이 정우와 고티를 데리고 폐허가 된 마을의 남쪽으로 이동했다. 지금 우리를 공격하기 위해 찾아온 이 드래곤들은 사실 적군이 아니라 아군으로 만났어야 하는 자들이다.
물론 스토리 노선을 우리가 다른 방향으로 탔기에 적으로 만났지만, 그래도 이 전투의 끝은….
“지군, 너는 동쪽으로 이동해서 강대원을 지원해줘.”
“알았어, 그럼 우선 동쪽에 대기하고 있을게.”
“따로 신호주지 않는 이상 자리를 지키고 있도록 해. 그리고 리나, 당신은 루시퍼와의 대결이 있을 때까지 다시 마나를 충전하고 있어.”
리나가 기분 좋게 윙크를 하더니 손가락으로 동그라미를 만들어 보였다.
“드래곤은 혼자서 상대하게?”
내가 고개를 끄덕였다.
“충분해.”
“…… 알았어. 나야 뭐, 쉴 수 있으면 좋지 뭐.”
“…… 소라 씨, 소라 씨는 리나 씨 옆에 붙어서 다음 명령을 기다리세요.”
유소라가 주먹을 불끈 쥐며 대답했다.
“알겠습니다!”
준비는 완벽하다.
네 마리의 드래곤도 오라의 크기를 보니 내가 아는 녀석들과 다를 바 없고.
-쿠워어어어어!
드래곤들이 울음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북쪽에서 상대해야 하는 녀석은 ‘그린 드래곤’. 땅의 속성을 가지고 있는 몸이 단단한 녀석.
큰 약점을 가지고 있다든가, 우리 모두가 위험해질 만한 스킬을 사용하는 놈은 아니다.
그저 다른 드래곤에 비해서 방어력이 높고 단일 개체를 대상으로 한 공격력이 무시무시하다는 것뿐.
“…… 아이언 메이든.”
아이언 메이든 주문이 녀석의 몸을 감싸 안았다. 동시에 앞서 만든 장어 악마들과 스켈레톤 전사들이 전방을 향해 뛰었다.
쿠궁!
녀석이 꼬리를 휘두르자 앞서 달리던 스켈레톤 병사들이 박살나고 장어 악마들이 한 방에 날아갔다.
녀석들은 아무런 대미지가 없는지 제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다시 드래곤을 향해 뛰었다.
물리적인 공격에는 대미지를 입지 않기에, 이번 라운드에 적합한 리바이브 대상.
-키에에에엑!
나는 장어 병사들 사이에 스켈레톤 전사들을 계속 섞어 보냈다.
아이언 메이든 주문이 들어간 이상 복수 대미지를 중첩 시키는 것이 승리의 열쇠.
쿠궁! 쿠궁!
그린 드래곤이 몸을 크게 흔들며 마을을 향해 다가온다. 공격 보낸 스켈레톤 전사의 숫자가 적어서 그런가? 움직임을 막을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의외의 행보를 보였다.
“…… 1열. 전부 공격해라.”
부대의 제일 앞에 서 있는 스켈레톤 전사들이 동시에 뛰었다.
그 수만 하더라도 백 마리가 넘는데, 얼마나 많은 대미지가 쌓일지 기대된다.
-쿠워어어어!
스켈레톤 전사들이 그린 드래곤의 다리와 꼬리를 타고 올라탔다. 열심히 검과 도끼를 휘둘러보았지만 큰 대미지를 주지는 못했다.
역시 이 게임 내에서 방어력이 제일 높은 몬스터답다.
머리 위에 있는 생명력 게이지가 꿈쩍도 하지 않는다.
등에 매달린 스켈레톤 전사의 수가 많아지자, 그린 드래곤이 하늘 위로 높이 날아올랐다가,
땅을 향해 곤두박질쳤다.
쿠구구궁!
간신히 몸에 달라붙어 있던 스켈레톤들이 단 한방에 전부 떨어져 나갔다.
-쿠웨에에엑!
녀석이 다시 꼬리를 휘둘렀다.
내 스켈레톤들은 모두 박살난 지 오래, 장어 악마들이 다시 한번 날아갔다.
투두드드득-
“크으으으….”
쓰러진 장어 악마들이 다시 몸을 일으켜 세웠다. 그린 드래곤의 물리적인 공격을 버텨낼 수 있는 유일한 존재.
‘역시 굉장해….’
-쿠오오오오!
그린 드래곤이 포효했다.
그 여파로 근처에 있는 모든 이의 생명력 게이지가 조금씩 떨어졌다.
드래곤의 포효 또한 대미지를 가지고 있는 기술이라는 건가?
‘허허….’
그 전과는 설정이 조금 다르군.
상공에서 전투 중인 본 드래곤과 사탄, 둘의 상황을 지켜보던 나는 모든 스켈레톤 병력들을 향해 소리쳤다.
“전 병력, 공격!”
-쿠오오!
* * * * *
폐허가 된 마을의 동쪽.
거대한 레드 드래곤이 불길을 내뿜으며 천천히 다가온다.
투두두두두두- 쾅!
강대원과 그의 로봇들이 한시도 쉬지 않고 총구에 불을 뿜었다. 미사일도 몇 방이나 쏘았는지, 그로 인한 매캐한 연기가 주변을 덮을 정도다.
“피해라!”
강대원이 무전기를 향해 외치자 로봇들이 동시에 날아올랐다.
부웅-
레드 드래곤의 꼬리가 지면을 크게 훑자,
쿠구구구궁-
꼬리가 지나온 자리에 커다란 화염이 피어올랐다.
화르르르륵!
삐빅.
-명령 대기 중.
로봇들이 레드 드래곤의 주위를 날아다니며 다음 공격을 준비했다. 강대원이 무전기에 귀를 기울인다.
건물 위에 대기 중인 지군이 손을 올려 궁수들에게 신호를 주더니.
“일발 발사!”
탕!
지군의 궁수 부대가 동시에 활시위를 당겼다. 수백 발의 화살이 비처럼 쏟아진다. 오라를 담고 있어서 그런지 촉끝이 반짝였다.
-쿠워어어어!
투두두두두두!
활의 촉이 드래곤의 피부를 뚫어내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순간적으로 시야를 가리는 데는 성공했다.
이 순간을 노린 지군이 강대원에게 무전을 날렸다.
삐빅.
“지금입니다!”
지군의 무전을 받은 강대원이 레드 드래곤의 미간을 향해 레이저 포인트를 찍었다. 모든 로봇 기체의 총구가 그곳을 향했다.
누가 뭐라고 할 틈도 없이 총구가 불을 뿜었다. 그들은 오라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굉장한 위력이었다.
드래곤의 생명력 게이지가 빠른 속도로 깎여 내려갔다. 지군이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궁수들을 향해 다시 명령했다.
“일발 장전, 쏴!”
궁수들이 다시 활시위를 당겼다. 쏟아지는 화살들이 레드 드래곤의 머리 위로 떨어진다.
“모두 공격을 멈추지 말도록! 이제부터 녀석에게 시야를 주면 안 된다!”
* * * * *
폐허가 된 마을의 서쪽.
엘프와 드워프들의 진형을 꾸려 천천히 드래곤을 향해 다가선다. 조영기와 김연희도 전방에 서서 그들을 따랐다.
그들은 다른 방향과는 다르게 전투의 방식이 달랐다.
무력으로 짓누르는 것이 아닌, 대화를 통한 협상을 하려 했다.
벌써 눈이 붉어져 분노에 가득 찬 드래곤에게 이야기를 하려 한다니?
다른 이들이 보면 미친 짓이라고 할 만큼 목숨을 걸어야 하는 일이었지만.
엘프들에게는 아니었다.
엘프 여왕이 공손하게 고개를 숙이며 블루 드래곤에게 말을 걸었다.
“오랜만입니다.”
그들은 초면이 아닌 듯 서로 경계를 풀었다. 블루 드래곤의 붉은 눈이 가라앉으며 푸른색으로 돌아왔다.
“오랜만이군.”
드래곤이 정신 파동으로 대답을 하자 엘프 여왕이 활짝 웃었다.
“그동안 잘 지내셨나요?”
“…… 그랬으면 이곳에 오지 않았을 것이야.”
“아…. 그렇군요.”
엘프 여왕이 블루 드래곤의 앞으로 한 발자국 더 다가가 말을 이었다.
“블루 드래곤, 당신이 이곳에 온 이유를 제게 말해주실 수 있나요?”
“…… 그 이유는 자네도 알고 있을 것 같은데 말이야.”
“……”
“엘프의 여왕이여. 그나저나 자네가 왜 여기 있는 거지? 이곳은 인간들의 땅. 엘프와 드워프가 있으면 안 되는 곳이네.”
블루 드래곤이 드워프의 왕을 슬쩍 쳐다보더니 고개를 틀어 폐허가 된 마을을 보았다.
“저희는 엘프 헬름을 지키기 위해서 왔습니다.”
“…… 엘프 헬름을 지키는데 왜 이곳에 왔는가?”
“이곳이 무너지면 엘프 헬름도 무너질 테니까요.”
“그게 무슨 말이지?”
엘프 여왕이 신하들로부터 보라색 구슬을 건네어 받더니, 블루 드래곤에게 손을 뻗었다.
“직접 보여드리도록 하지요.”
“내게? 무엇을?”
“…… 이 세계를 지켜줄 분을요.”
블루 드래곤이 커다란 콧구멍으로 거센 바람을 내뿜더니 고개를 숙여 보라색 구슬에 이마를 가져다 대었다.
[‘블루 드래곤’이 엘프 헬름의 기억을 확인합니다.]
* * * * *
페허가 된 마을의 남쪽.
옐로우 드래곤이 높이 날아오르더니 김준철의 벙커를 향해 입을 크게 벌렸다.
-멍청한 인간들, 나를 막으려 하지 마라!
머리에 울리는 커다란 소리에 일반 병사들이 정신을 잃고 그대로 쓰러졌다.
이곳에서 드래곤의 정신 공격을 버텨낸 자들은 오라를 사용할 수 있는 도깨비 부대가 유일했다.
김준철이 대검에 오라를 불어넣고 드래곤을 향해 소리쳤다.
“우리는 당신을 공격하고 싶지 않습니다.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패기 넘치는 그의 외침.
하지만 드래곤은 시큰둥한 표정으로 숨을 크게 들이마셔 광풍을 뿜어냈다.
쿠구구구구-
탱크가 뒤집힐 정도로 강한 바람이었다. 무장한 군인들이 날아가 나무에 꽂힐 정도였으니 얼마나 강했는지는 설명이 필요 없었다.
그래도 다행인 것 한 가지. 벙커는 무사했다. 다른 건물들에 비해 납작하게 설계가 되어 있어 바람에 큰 영향을 받지 않았다.
김준철은 계속해서 드래곤을 설득하려 들었다.
“우리는 절대로 당신들을 공격하려 하지 않습니다!”
-변명하지 마라, 인간들은 이미 이 땅을 더럽히고 멸망의 길로 접어들게 만들었다.
“그, 그건 악마라는 녀석들이-”
-악마들은 인간을 공격했지, 우리의 땅을 더럽히지는 않았다.
“……”
그렇다.
드래곤의 입장에서는 인간이나 악마나 다를 바 없는 존재, 오히려 자연을 어지럽히고 이 땅에 혼돈을 주는 자는 인간이었다.
김준철이 대화를 포기하고 벙커에 무전을 날려 포를 꺼내 들었다.
김천재의 명령은 분명 옐로우 드래곤을 막으라고 했지, 방식을 제시하지는 않았다.
대화가 통하지 않는다면 무력을 사용하는 것이 이곳에서 살아남은 군인의 방식.
김준철이 포 사격을 명령하기 전, 굳은 얼굴로 드래곤을 향한 마지막 외침을 날렸다.
“정말 우리와 싸우고 싶은 건가?! 이 땅을 지키는 방법이 정말 우리를 멸살시키는 것밖에 없나? 인간이 사라지면 이 땅은 어떻게 되는지 알고 있느냔 말이다!”
잠시 정적이 흘렀다.
광풍을 날리려던 옐로 드래곤이 김준철과 눈을 마주치더니 천천히 입을 닫았다.
-너희들이 사라지면 이 땅은 다시 회복을 시작한다. 그럼 잃어버린 자연은 다시 돌아올 테고, 이 세계는 평화를 갖게 될 것이야.
김준철이 고개를 크게 저었다.
“지금 저곳에 있는 악마들이 그 평화를 원한다고 생각하는가? 전혀 아니야! 오히려 인간보다 더욱 멸망을 원하는 자들이라고.”
-자연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나는 인류의 멸망 또한 막지 않는다.
김준철이 미간을 찌푸리고 주머니에서 시가를 한 개 꺼내어 물었다.
치직, 치지지직.
쓰읍. 푸후-.
“이 빌어먹을 도마뱀 새끼, 말이 안 통하는군. 마이클! 협상결렬이다!”
위이이이잉- 철컹!
마이클이 정우, 고티와 함께 모습을 드러냈다.
“도마뱀 사냥을 해보자구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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