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4화
끊임없는 사격 음이 들려온다.
강대원과 그를 따라온 자들이 로봇에 달린 모든 화기를 이용하여 총공세를 펼쳤다.
10여 초 정도 지났을까.
오 박사의 연구실이 초토화되었다. 이곳에 건물이 있었다고 생각하지 못할 만큼 박살이 났다.
그 중앙에 결계를 펼치고 몸을 웅크리고 있는 마이클이 보였다.
[시스템 메시지]
[숨겨진 임무, ‘오 박사의 연구실’ 스토리가 완료되었습니다.]
[보상으로 게임 내에 있는 모든 NPC에게 X 바이러스 치료제를 지급합니다.]
“…… 오케이.”
마이클이 자리에서 천천히 일어나 모두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강대원과 그의 부하들이 공격을 멈추고 천천히 착륙했다.
끼이이익- 쿵!
창이 열리며 강대원이 소리쳤다.
“어떻게 되었습니까?”
“…… 미션 컴플릿.”
“오오! 오 박사라는 자는 잘 처리하셨습니까?”
“저기 조각난 살덩이가 오 박사예요우.”
강대원이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찢어진 고깃덩이를 보며 침을 꿀꺽 삼켰다.
“다행이군요.”
임무를 마친 그들이 연구실 근처를 배회하며 무언가를 찾는다.
그들의 목적은 보라색 액체가 담겨 있는 플라스크. 한둘씩 모이기 시작한 플라스크가 곧 서른 개가 넘었다.
“마이클 씨! 이 정도면 충분하지 않겠습니까?”
“천재 킴이 최대한 많이 챙겨오라고 했어요우.”
“최대한 많이라…. 그래도 눈에 보이는 건 전부 챙긴 것 같은데요.”
“흐음…. 하늘에서 한 번만 봐주시겠습니꽈?”
강대원이 고개를 끄덕이더니 로봇과 함께 날아올랐다.
삐빅, 삐빅, 삐빅.
레이더에 무언가가 감지되었다.
강대원이 시선을 돌려 화면을 보더니 고개를 갸웃거렸다.
“…… 으음?”
화면에는 인간보다 수십. 아니 수백, 아니 수천 배 이상 큰 생명체가 감지되었다.
꿀꺽.
“이…. 이게 뭐지.”
강대원이 레이더의 위치를 확인하더니 생명체가 감지된 방향을 확인했다.
빙산에 가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위험을 감지한 그가 빠르게 착륙하며 마이클에게 소리쳤다.
“마이클 씨! 빨리 타십시오!”
“우우움?”
마이클도 위기를 감지했는지 자신도 모르게 높이 뛰어올라 로봇에 탑승했다.
덜컹!
마이클을 태운 강대원이 높이 날아올랐다.
삐빅.
“전원 상공으로 이동하도록!”
그의 무전과 동시에 로봇들이 날아올랐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 쿠구구궁! 소리와 함께 빙산이 갈라지며 거대한 고래 한 마리가 연구실이 있는 장소를 입으로 박살냈다.
콰광!
“…… 저, 저게 뭡니꽈?”
“고…. 래? 아니! 고래가 크기는 하지만 어찌 저리 클 수 있단 말이지?”
그들이 고래와 거리를 벌리며 예의주시했다. 앞서 본 거인들은 애기처럼 느껴질 만큼 너무나도 컸다.
전투 의지가 사라질 정도로 말이다.
“대원강.”
“예?”
“저거…. X 바이러스 고래인 것 같습니돠.”
“X 바이러스 고래?”
“예스, 저 녀석 콧구멍에서 물을 뿜을 때 보라색 액체가 섞여 나오고 있어요우.”
“……”
그렇다.
오박사의 연구실 배수구를 통해 흘러내려 간 X 바이러스가 주변 생물들을 변이시키고 있던 것이다.
이 사실을 알게 된 마이클은 강대원에게 즉시 폐허가 된 마을로 돌아갈 것을 부탁했다.
* * * * *
“헬파이어!”
화르르르륵!
마법사 플레이어들이 세 번째 단계에 나온 몬스터들을 전부 처리했다.
[시스템 메시지]
[열네 번째 라운드의 3단계 종료]
“전원 마을로 복귀하도록!”
리나가 마법사들을 데리고 마을로 복귀한다. 나는 그들을 지나 시체들이 있는 곳으로 이동해 리바이브 주문을 사용했다.
물리적인 공격이 통하지 않는 물고기들이야말로 다음 단계에서 유용하게 쓸 수 있는 최고급 자원이니까.
“리바이브.”
수십 종류의 물고기들이 내 목록 창에 나타났다.
나는 그중 한 종류만을 선택해 살려냈다.
[‘감염된 장어 전사’ 30기를 소생합니다.]
장어 전사들이 축 처진 몸을 일으켜 세우며 내게 경례를 했다.
나는 나머지 병력들을 전부 스켈레톤으로 만든 후 다시 마을 내로 복귀했다.
점점 마을 안이 가득 차 간다.
그래도 이 게임 내에 있는 메인 도시 중 제일 큰 수준의 크기인데, 이렇게까지 꽉 찰 줄이야.
“지군! 다음 단계가 마지막인 거 알고 있지?”
지군이 창날에 묻은 피를 닦아내며 내게 대답했다.
“당연하지. 이제…. 정말 끝나가네.”
루시퍼가 우리를 내려보고 있다.
지금쯤이면 녀석의 부하 중 한 명이 X 바이러스 플라스크를 들고 복귀해야 했는데, 스토리에 이상이 생겼나?
마이클도 복귀하지 않는 것이 왠지 불길하다.
“조영기 쪽과는 계속 무전하고 있지?”
“어, 엘프와 난장이 녀석들 생각보다 부상자가 많다던데.”
“…… 어쩔 수 없지. 초반 라운드에 나오는 놈들이니…. 그래도 생각보다 잘 싸웠어.”
“하긴.”
“정령의 숲에는 잘 도착했대?”
“조금 전에 도착했다고 무전 왔었어. 그쪽은 문제 생길 일이 없으니 너무 걱정하지 마.”
“…… 알았다.”
내가 담배를 한 개비 꺼내 물었다. 어느새 옆으로 다가온 정우가 라이터에 불을 켜며 내게 물었다.
“드디어 마지막이네.”
“…… 그러게. 네 번째 단계만 끝나면 바로 루시퍼와 대결이니까 말이야.”
그렇다.
네 가지 단계를 모두 마치면 루시퍼가 직접 움직이기 시작한다.
그때가 되면 우리는 녀석을 처치하고, 드디어 이 게임의 마지막을 볼 수 있게 된다.
우리는 담배를 태우며 마이클의 복귀를 기다렸다. 어차피 X 바이러스가 도착하지 않는 이상 루시퍼도 더 이상 움직이지 않을 테니.
체력을 회복할 시간은 충분하다.
전투를 치르고 돌아온 마법사들이 땅에 주저앉아 휴식을 취했다. 얼마나 지쳤는지 고개를 들지도 못할 정도인가보다.
하긴, 대부분이 저레벨 플레이어들인데 높은 라운드의 몬스터를 상대했으니 고생했지.
회복 계열의 직업을 가진 자들이 모여 마법사들에게 회복 마법을 사용해주었다.
-상처가 있으신 분은 치유를 해야 하니 따로 말씀해주시고, 너무 지쳐서 말도 못 할 정도인 분들은 그냥 고개를 내리고 있어 주세요!
김리아가 솔선수범해서 움직인다.
역시 갖가지 스킬을 전부 배우는 드루이드 직업을 데리고 오니 크게 도움이 된다.
소환부터 시작해서 회복, 치유, 버프, 변신 마법까지 능통하니.
‘…… 뭐, 컨트롤이 힘들어서 전직하는 사람은 극히 적지만.’
[시스템 메시지]
[숨겨진 임무, ‘오박사의 연구실’ 스토리가 완료되었습니다.]
[보상으로 게임 내에 있는 모든 NPC에게 X 바이러스 치료제를 지급합니다.]
“…… 오!”
마이클이 오 박사 처리에 성공했다. 생각보다 늦기는 했지만 그래도 실패하지 않았으니 다행이다.
“리나! 마법사들은 후방으로 이동해서 회복하도록 하고. 마정우, 전방으로 전사들을 배치해. 지군, 너는 궁수들 위치만 다시 한번 확인해주고 나랑 같이 마을 앞으로 이동한다.”
-오케이!
* * * * *
최첨단 로봇 기체 수십 대가 마을 위로 날아올랐다. 그중 제일 큰 로봇이 마을 광장 앞에 내리더니 강대원과 마이클이 나왔다.
철컹!
나는 그 앞으로 달려가 마이클을 반겨 주었다.
“수고했어, 다친 데는 없고?”
마이클이 당당한 표정으로 내게 경례 포즈를 취했다.
“임무 완료우!”
“그래, 대원 씨도 수고하셨어요.”
강대원이 작게 목례하더니 내게 말했다.
“뭘요, 그나저나 천재 씨.”
“예?”
“저희가 이곳으로 돌아오기 전, 이상한 놈들을 봤는데 괜찮을까요?”
“…… 이상한 놈?”
“예, 저희가 가져온 이 플라스크.”
강대원이 보라색 액체가 든 플라스크를 들어, 내게 보여 주었다.
“그 연구실 근처에서 이 바이러스에 감염된 생명체들이 많이 보였어요.”
“연구실 근처에 바이러스에 감염된 생명체?”
그게 뭐지?
강대원이 손을 크게 휘저으며 말을 이었다.
“상상도 하지 못할 만큼 커다란 고래가 바이러스에 감염되어 저희를 공격하려 했습니다.”
“…… 고래가 바이러스예요?”
“예, 경로는 모르겠지만…. 하여튼 감염체의 존재는 확실합니다.”
완성품인 이 X 바이러스와는 다르게, 그 전에 만들어진 것들은 Z 바이러스와는 다르다.
직접적인 터치가 없었을 때는 전파가 되지 않을 텐데 어떻게 된 걸까?
“…… 우선 알겠습니다.”
내가 모르는 X 바이러스의 감염체들. 게임에 얼마나 큰 영향을 끼칠지는 모르겠지만 현재는 우리에게 큰 걸림돌이 되지 않는다.
어차피 지금 여기 모인 자들은 이 게임의 끝에 와있다.
결과가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 왔나.”
사탄이 먼 곳에서부터 날개를 펄럭이며 날아오고 있다.
공간 이동 능력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저런 모습을 보인다는 것은, 확실하게 다음 단계로 넘어가는 장면을 보여 주려는 것.
사탄이 보라색 액체가 들어있는 플라스크를 루시퍼에게 보여주며 무언가를 말하고 있다.
루시퍼는 그 액체를 입에 넣어 단숨에 삼키더니,
-크어어어억!
입안에서 가스를 뿜어냈다.
보라색 가스가 오라와 섞여 하늘로 날아간다. 루시퍼가 손을 빙글빙글 돌리자 구름이 휘몰아치며 가스와 뒤섞인다.
콰르릉!
번개가 쳤다.
이어 비가 쏟아진다. X 바이러스가 섞인 불투명한 비가 거세게 쏟아지며 우리 쪽을 향해 다가온다.
[4단계, ‘끝을 향해 달려가는 어둠의 기운!’]
네 번째 단계를 시작하는 메시지창이 나타났다. 이번 라운드의 끝으로 이어진 게임이다.
나는 하늘을 올려보며 작게 속삭였다.
“브레스.”
본 드래곤이 커다란 울음소리와 함께 비구름을 향해 브레스를 날렸다.
콰르르르르-!
마을을 향해 이동하던 구름이 산산이 조각나며 이동을 멈추었다.
루시퍼가 본 드래곤을 보더니 이를 갈았다.
“저 녀석이!”
그래도 본 게임이 시작되기 전까지는 녀석이 직접 움직일 수 없다.
시스템이 정해놓은 룰이니까.
사탄이 본 드래곤을 향해 날았다. 싸울 생각인 것 같은데 과연 상대되려나?
“녀석을 없애.”
-쿠르르르!
본 드래곤과 사탄이 구름 높이에서 전투를 시작했다. 루시퍼에게 큰 힘을 받았는지 생각보다 잘 싸우고 있다.
위이이이이잉-
루시퍼의 발밑에 있는 게이트가 빠르게 돌아가기 시작한다. 대군이 이동할 수 있을 만큼 크기가 점점 커졌다.
드디어 본격적인 게임이 시작되었다.
그 안에서 본 드래곤만큼 커다란 덩치의 용들이 한 마리씩 모습을 드러냈다.
처음에는 초록색, 그다음에는 노란색 그리고 파란색, 빨간색.
서로 다른 원소의 힘을 가지고 있는 드래곤들이다.
눈동자가 검게 변한, 루시퍼에 의해 악에 물든 녀석들.
원래는 이 땅을 지키는 수호신 같은 자들이지만, 천상의 존재들이 사라져 악에 물들었다는 설정이다.
-쿠어어어어!
게이트에서 나온 드래곤들이 높게 날아오르더니 마을의 네 방향 문으로 자리를 이동했다.
불, 물, 바람, 땅.
빨강, 파랑, 노란, 초록.
녀석들이 순서대로 동, 서, 남, 북의 입구 앞에 자리를 잡았다.
위치를 확인한 나는 무전기를 들고 루시퍼의 입을 주의 깊게 쳐다보았다.
이제 명령을 내리면….
“네 마리의 드래곤들이여, 이 땅을 없애려는 존재들을 모두 멸살하도록 하라.”
[시스템 메시지]
[이 땅을 지키는 네 마리의 용이 ‘폐허가 된 마을’을 공격하기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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