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로그인 더 아포칼립스-203화 (203/215)

203화

Z와 X, 두 가지의 바이러스 뒤엉켜 새로운 힘을 만들어 낸다.

비말 혹은 공기 감염이 아닌 직접적인 주사로만 가능한 방법.

‘감염된 오지명 박사’의 몸이 점점 커지며 근육이 부풀어 올랐다.

조금 전까지 사망선고를 맞은 자라고는 생각할 수 없을 만큼 얼굴이 생기를 되찾았다.

죽은 자의 뇌를 강제로 활성화 시켜 움직이게 만드는 무서운 능력.

“크으으으으…. 깜둥이 녀석!”

오지명이 인간의 언어를 사용해서 대화했다. 오로지 신음만을 흘리는 일반적인 좀비와는 다르다.

연구진들은 마이클과 오 박사를 번갈아 보더니 오히려 마이클의 뒤로 도망치려 몸을 돌렸다.

누가 괴물인지는 척 보기만 해도 알 수 있는 상태.

괴물에 씹혀 고통스럽게 죽는 것보다는 깔끔하게 총에 맞아 죽는 것이 더 나은 선택.

[숨겨진 스토리 발견]

[‘감염된 오지명 박사’를 마주하게 되었습니다.]

[‘오지명 박사’의 기억 속에 있는 파편을 발동시켜 스토리 영상을 재현합니다.]

“뭐, 뭐입니까. 이건 들어본 적 없는!”

쉬이이이익-

마이클의 눈앞에 안개 커튼이 쳐졌다. 이 상황은 김천재에게도 들어보지 못한 특수한 일.

“…… 뭐.”

어차피 스토리 화면이 시작된 이상 이곳에서 도망갈 방법은 없다.

그 사실을 깨달은 마이클이 고개를 끄덕이며 이 상황을 즐겼다.

“렛츠 스타트!”

촤르르륵-

안개 커튼이 쳐지며 게임의 초반부인 첫 번째 라운드와 두 번째 라운드 사이로 넘어왔다.

피난민들이 군인들과 함께 강북으로 넘어가고 있다. 그들 사이에 끼어서 이동 중인 오 박사와 그의 연구진들.

멸망 시나리오가 진행되기 전까지 그저 평범한 의약품 회사의 연구진으로 있던 그의 인생이 뒤바뀌는 날이다.

-모두 조금만 더 힘내주시기를 바랍니다!

보트에 몸을 납작이 엎드리고 숨을 죽인 채 이동하는 사람들.

반대편에서 아무런 반응이 없는 것으로 보아 플레이어들의 게임이 시작되기보다 더 앞선 시간인 것 같다.

마이클은 주변을 빠르게 둘러보며 상황을 파악하기 시작했다.

“…… 저건 뭐쥐?”

거대한 박쥐 한 마리가 하늘을 날아 이동하고 있다. 물론 녀석을 발견한 자는 마이클 말고 아무도 없었다.

정신을 차리고 주변을 살필 수 있는 사람이라고는 군인들이 끝인데, 그들마저 해상에서는 좌우 앞뒤를 보느라 바쁘지, 상공까지 쳐다볼 여유는 없었다.

마이클이 허공을 가르며 날아가 박쥐를 확인했다.

“사탄!”

행렬보다 먼저 폐허가 된 마을에 도착한 사탄이 어둠 속에 몸을 숨겼다가, 피난민들이 도착해서 소란스러운 틈을 타 인간으로 변신해 대열에 합류했다.

“오, 오지명 박사님 아니십니까?”

어여쁜 숙녀로 변한 사탄이 오지명의 손을 맞잡았다.

때마침 그들 옆에 있는 군인 중 한 명이 그 모습을 보았다. 사탄이 군인의 눈치를 슬쩍 보더니 다시 대화를 시작했다.

“오지명 박사님 맞으시죠?”

“…… 제가 오지명인 것은 맞긴 한데, 박사는-”

“역시! 바이러스 관련 의약품을 만드시는 분 맞지 않나요? 제가 병원에서 간호사로 일할 때 팸플릿으로 뵈었던 것 같아요!”

“…… 팸플릿? 아니, 우선 의약품을 만드는 사람이 맞긴 한데.”

“여러분! 이분은 바이러스에 관한 연구를 진행하며 의약품을 만드는 분입니다. 저희에게 희망을 안겨 주실 분이에요!”

“자, 잠깐만-”

-뭐라고?

-그럼 지금 좀비 바이러스에 대한 백신을 만들 수 있는 건가?

-바, 박사님을 빨리 군인들에게 소개해드려! 한시라도 빨리 백신하고 치료제를 만들어야 해!

오 박사가 난처한 표정으로 손을 저었다.

“자, 잠시만요 저는-”

그를 따라온 연구진 중 한 명이 앞으로 나서더니 오지명에게 귓속말로 말했다.

“오지명 씨, 잘하면 저희에게 좋은 기회가 될 것 같아요.”

“…… 예?”

“우선 저 사람들이 시키는 대로 해보도록 하죠. 저희가 바이러스에 관한 연구를 한다고 하면 분명 정부에서도 제일 안전한 곳으로 저희를 옮겨줄 겁니다.”

“……”

오지명이 사탄과 군인을 번갈아 보았다. 그리곤 좋은 미소로 고개를 끄덕이며 그들에게 말했다.

“안녕하십니까, 저는 오지명 박사라고 합니다.”

같이 이동하던 군인 중 높아 보이는 자가 그의 앞으로 다가와 손을 내밀었다.

방탄 헬멧에 반짝이는 별이 두 개 달려있다.

“안녕하십니까. 저는 지금 이 부대를 통솔하고 있는 방수혁 소장이라고 합니다.”

방수혁 소장의 대답을 끝으로 다시 안개 커튼이 쳐졌다.

촤르륵!

마이클이 지금까지 본 화면을 다시 떠올리며 머리를 긁적였다.

“소장…. 김준철이 소령……. 계급 차이가 큰데…. 왜 김준철이…?”

그의 독백이 끝나기도 전에 새로운 스토리 화면이 시작되었다.

마이클이 두 뺨을 쳐서 정신을 번쩍 차리며 다시 눈에 힘을 주었다.

각종 플라스크가 진열되어있는 냉동고의 앞으로 이동되었다.

오지명이 난처한 표정으로 연구진들과 대화를 했다.

“또 실패야…. 어떻게 해도 답이 나오지 않아…. 이대로 간다면 치료제는커녕 백신도 확실하지 않겠어.”

좌절하는 그에게 다른 연구진이 말했다.

“너무 신경 쓰지 말게나. 어차피 백신과 치료제가 나오지 않더라도, 우리는 이곳에서 안전하게 생을 마감할 수 있어.”

“…… 자네 그게 무슨 말인가?”

“연구도 중요하지만 자네 건강부터 챙기라는 말이지. 지금 몇 날 며칠이나 잠도 자지 않고 계속 여기 있지 않나?”

“……”

“전부 자네를 위해 하는 말이니까 너무 부정적으로 듣지만은 말아줘.”

동료 연구진으로 보이는 자가 오지명의 어깨를 툭툭 치더니 자리를 떠났다.

“하아….”

오지명이 벽에 기대어 머리를 잡았다. 그러곤 땅이 꺼지라고 한숨을 쉬며 냉동고의 문을 두드렸다.

투욱- 투욱-.

“대체 왜….”

망연자실하고 있는 그의 뒤로 누군가 다가와 어깨를 주물렀다.

“오지명 박사님?”

“…… 어? 다, 당신은 저번에…?”

인간 숙녀로 변한 사탄이 해맑게 웃으며 그의 옆에 섰다.

“왜 이렇게 풀이 죽어 계세요?”

“그게…. 연구가 생각보다…. 아니! 당신은 여기에 어떻게 들어온 거지?”

연구실은 폐허가 된 마을에서도 멀리 떨어져 있는 장소. 그런 곳에 아무런 방호복조차 없는 여자가 돌아다니고 있다니.

오지명은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의 반응과는 다르게 숙녀는 침착하게 대답했다.

“아버지가 군인인데 이곳에 잠깐 들른다고 해서 따라왔어요.”

“아…. 그래도 이곳은 바이러스가 있을 수 있으니 방호복은 입고 다녀야 합니다.”

“에이- 그냥 걷기만 한다고 이곳에서 감염될 거였으면, 이미 폐허가 된 마을은 좀비 밭이 되었어야죠.”

“……”

“그나저나 왜 이렇게 힘이 없으세요? 연구가 잘 안 돼서 그런 거예요?”

그녀가 집요하게 묻자 오 박사가 고개를 끄덕였다.

“예, 생각보다 연구 진행 속도가 많이 느립니다.”

“흐음…. 왜죠?”

“아무래도 처음 보는 형태의 바이러스이다 보니, 백신과 치료제를 만드는 방법의 종류, 경우의 수가 너무 많아서요.”

“…… 그 약을 만드는 데 얼마나 걸릴 것 같은데요?”

“수학적으로 따지면 끝이 없습니다. 아마 제가 죽기 전에 못 만들 수도 있어요.”

사탄으로 변한 여자가 어깨를 으쓱거렸다.

“그럼 경우의 수를 줄이면 되잖아요?”

“…… 예?”

“경우의 수를 줄이라고요. 굳이 백신을 만들어야 하나요? 어차피 죽을 사람은 죽을 텐데. 차라리 치료제에 몰두하세요.”

오 박사가 그녀의 대화에 귀를 기울였다. 이미 정신이 흐트러진 그는 일반인이 내는 의견에도 솔깃해질 만큼 나약해져 있었다.

스토리 화면이 빠르게 돌아가기 시작한다.

오 박사가 계속해서 연구하고, 가끔 연구실에 방문하는 사탄에게 조언을 듣고 있다.

마이클이 머리를 긁적였다.

“흐음….”

이어서 보이는 화면에는 오 박사가 같이 실험을 진행하던 자들을 연구실에서 추방하고,

새로운 자들과 함께 연구를 진행하는 장면이다.

그의 목적이 달라지는 시점이 이때부터다. Z 바이러스의 백신과 치료제를 목표로 하던 그의 머리에는 이미 ‘제로 프로젝트’.

모든 인간이 사라졌다가 다시 나타나는 인류 멸망의 계획을 위한 연구가 진행되고 있었다.

바로 그게 Z 바이러스의 변형 형태, X 바이러스이고.

이 모든 것이 사탄에 의해 계획된 일이었다.

오 박사와의 대화를 마친 사탄은 어둠의 공간으로 들어가 루시퍼에게 보고했다.

“루시퍼 님, 곧 있으면 그 녀석이 연구에 성공할 것 같습니다.”

루시퍼가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인간의 손으로 인류를 멸망시킬 수 있겠군.”

“인간이란 참으로 어리석군요. 자신의 목에 검을 겨누는 꼴이라니.”

“…… 그건 악마와 천사도 똑같아질 수 있는 상황이지. 일이 마무리될 때까지 방심하지 말고 녀석을 잘 관리하도록 해라. 내가 만든 Z 바이러스에 면역이 있는 놈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어.”

사탄이 고개를 푹 숙이며 대답했다.

“알겠습니다!”

마이클이 둘의 대화를 듣더니 허탈한 표정으로 기침을 뱉었다.

쿨럭-.

“아뉘! 그럼 Z도, X도 전부 악마들이?!”

그의 짜증 섞인 소리와 함께 스토리 화면이 다른 화면으로 넘어갔다.

다음 장면은 너무나도 눈에 익는 곳이 나왔다. 지금 마이클이 서 있는 바로 그 연구실이다.

오지명 박사와 다른 이들의 행색을 보아하니 오래전 이야기는 아닌 것 같다.

-오지명 박사님! 드디어 X 바이러스가 완벽하게 완성되었습니다!

연구원이 보라색 액체가 담긴 플라스크를 들고 기쁜 표정을 지었다.

“수고했네…. 다들 수고했어!”

X 바이러스는 이미 퍼진 상태인데 무엇을 더 성공시켰다는 말인가?

라는 생각으로 마이클이 오지명 앞에 있는 서류들을 읽었다.

내용은 간단했다.

X 바이러스 같은 경우에는 전파 경로가 간접 접촉 말고는 없었는데, 이번 연구로 인해 비말을 통해 퍼트릴 수 있게 된 것이다.

모두가 기뻐했다.

인류 멸망의 씨앗을 만들어놓고 말이다.

그들의 기쁨도 잠시, 갑자기 굉음과 함께 연구실의 문이 열리더니.

쾅!

숙녀로 변한 사탄이 찾아왔다.

“…… 박사님. 연구는 끝나셨나요?”

오지명이 손을 크게 저으며 소리쳤다.

“나, 나가세요! 여기는 방호복을 입지 않으면 위험합니다! 아니, 경비는 왜 문을 열어 준거야?!”

“박사님, 저는 괜찮아요.”

“예?”

“저는요…. 저는…. 벌써 괴물이거든요.”

숙녀가 씨익 웃더니 천천히 살가죽이 벗겨지며 그 안에서 사탄이 모습을 드러냈다.

위협적인 검은 오라가 방안에 가득 차오른다. 연구진들이 살기에 눌려 오줌을 지리며 주저앉았다.

오지명 박사가 손을 벌벌 떨며 뒤로 물러났다.

“뭐…. 뭐야 너….”

“내가 누구인지는 알 필요 없고. 그동안 수고했다, 오지명 박사.”

팍!

사탄이 오지명의 뒤통수를 당수로 때려 기절시켰다. 그리곤 X 바이러스가 담긴 플라스크의 뚜껑을 열어 입에 조금 붓더니,

천장을 향해 크게 쏘아 뱉었다.

“푸웁!”

액체가 사방으로 튀었다.

이어 사탄이 연구진들의 방호복을 전부 박살내고 자리를 떠났다.

마이클이 그 장면을 전부 보더니 고개를 좌우로 저었다.

“이런…. 그래서 이렇게….”

사탄이 연구실에서 나가는 동시에 스토리 화면이 종료되었다.

안개 커튼이 양옆으로 갈리며 원래의 장소로 돌아왔다.

‘감염된 오지명 박사’가 마이클을 노려보고 있다.

“이 깜둥이 녀석이!”

“…… 여기는 마이클, 현 시간부로 모든 화력을 동원해서 거침없이 사격을 시작해주세요우. 빠른 사격 부탁합니다.”

삐빅.

-강대원 수신 완료.

마이클의 무전기 반대편에서 대답이 들려왔다.

처음부터 켜놓고 이동하고 있었는지 아무런 버튼을 누르지 않았는데도 전화기처럼 대화가 되었다.

쿠구구구궁!

갑자기 연구실이 크게 흔들렸다. 천장에서 돌조각이 쏟아져 내린다. 마이클이 지팡이를 땅에 꽂더니 주문을 외웠다.

“성스러운 결계!”

황금빛이 뿜어져 나와 원형의 결계가 그의 몸을 감싸 안았다.

* * * * *

<연구실 밖>

강대원이 모든 로봇에 연결된 연결망을 통해 무전했다.

“사격 개시, 목표물은 연구실. 출력 백 프로, 모든 것을 쏟아낸다.”

연구실을 둘러싼 로봇들이 포구를 전방으로 돌리더니.

위이이이이잉- 철컥.

“발사!”

쾅!

로그인 더 아포칼립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