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화
지군이 물었다.
“천재 형, 스켈레톤을 만드는 것보다 그냥 계속 시체를 쌓아서, 루시퍼랑 대결할 때 싸우는 건 어때?”
내가 고개를 저었다.
“그건 안 돼. 녀석은 이미 내 기술을 전부 간파하고 있어. 시체 폭발하고 아이언 메이든은 녀석에게 통하지 않아.”
“…… 알았어.”
루시퍼는 이미 내가 사용하는 기술 대부분을 알고 있다. 뻔한 공격은 통하지 않을 것이 분명하고, 지금 우리에게 남은 희망이란 신의 무기를 사용해서 단번에 녀석을 제압하는 방법뿐.
‘……’
지금 이곳에 모인 모든 플레이어가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
‘나를 제외하고.’
녀석을 처리할 진짜 무기는….
“김천재! 우리는 이제 이동하도록 한다!”
조영기의 외침에 내가 고개를 끄덕였다.
“경계를 늦추지 말라고.”
“알았어!”
그가 엘프와 드워프를 이끌고 마을 내에 열려있는 게이트를 통해 다른 장소로 이동했다.
[3단계, ‘멸망, 그 찬란한 이름으로’]
세 번째 단계를 시작하는 메시지창이 나타났다.
나는 스켈레톤 마법사를 마을 밖으로 내보내며 리나에게 소리쳤다.
“마법사 부대, 전방으로 이동!”
리나가 고개를 끄덕이더니 마법사 부대를 데리고 마을 밖으로 향했다.
-쿠워어억!
어둠의 게이트에서 몬스터들이 몰려나오기 시작했다.
해상에 있는 생명체들이 악마로 변하여 이족 보행을 하고 있다.
광어, 우럭, 넙치, 오징어, 상어.
몸에서 물이 아닌 푸른 액체를 흘리며 걸어온다.
이번 전투는 너무나도 상대하기 쉬운 놈들이다. 과거, 조영기 혼자서 전부를 막아낼 정도로 치명적인 약점을 가지고 있으니 말이다.
물리적인 공격은 통하지 않지만.
마법 공격에는 한없이 약해지는 종족.
얼음과 돌, 불.
세 가지 속성이나 취약하니 마법사들에게는 가지고 놀기 딱 좋은 몬스터였다.
‘오라의 크기가 저렇게 크면 뭐하나….’
대미지를 배로 입는데.
“리나, 이번 라운드는 네게 맡기도록 하지.”
“…… 알았어!”
리나가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전방에 섰다. 그러곤 녀석들을 향해 손을 뻗고 볼 마법을 빠르게 시전했다.
“파이어 볼, 파이어 월, 파이어스톰!”
원형의 불꽃 한 방이 날아가 게이트 앞에 터진 후.
쾅!
불꽃 벽이 그들의 앞을 가로막았다.
화르르륵!
그리곤 물고기 녀석들이 다가오는 방향으로 큰 불꽃 바람이 불어 녀석들을 덮쳤다.
쿠르르르르-
-키에에엑!
-캬악!
-쿠오오….
리나 혼자서 막는 게 가능하다고 생각될 정도로 너무나도 일방적인 싸움이었다.
위이이이이잉-
기계 돌아가는 소리가 들린다.
[‘에이도스’의 분신이 폐허가 된 마을에 도착합니다.]
‘드디어 왔구나.’
피유웅-!
로봇 수십 대가 바람을 가르며 날아와 우리 근처에 착륙했다.
철컹!
그 안에서 강대원이 환하게 웃으며 모습을 드러냈다.
“천재 씨!”
“오셨군요.”
“죄송합니다. 말씀하신 물건들을 준비하느라 조금 늦었습니다.”
“괜찮아요, 딱 필요할 때 도착해주셨는걸요.”
그들을 확인한 마이클이 뛰어왔다. 녀석은 이제부터 이들을 지휘해서 중요한 임무를 진행해야 한다.
“마이클, 위치는 알고 있지? 이 맵의 북쪽 끝이야.”
“확인 완료! 그럼 출발하도록 할까요우?”
“그래, 늦어도 되니까 확실하게 처리해줘.”
“걱정하지마세요우. 목표는 오박사, 맞지요우?”
“…… 맞아.”
마이클이 내 등을 툭 치더니 환하게 웃으며 강대원의 로봇 위에 올라탔다.
“좌표를 찍어줄 테니 이동합시돠.”
강대원이 환하게 웃으며 로봇 내에 설치되어 있는 레이더를 켰다.
“말씀하시면 바로 출발하도록 하겠습니다.”
“오케이….”
* * * * *
마이클이 강대원의 로봇 부대와 함께 서울 맵의 북쪽 끝으로 이동했다.
지하철로 따지면 겨우 열 정거장 정도를 이동한 거리인데, 그들이 이동하는 동안 계절이 세 번이나 바뀌었다.
화창하다가, 더웠다가, 추웠다가.
마지막으로 도착한 장소는 북극이라고 생각될 만큼 빙하가 가득 차 있고 눈이 거세게 내리는 곳이었다.
날씨가 얼마나 추웠는지 이동하는 도중 얼어있는 동물들이 몇 눈에 띄었다.
오 박사는 왜 이런 곳에 연구실을 지은 것일까, 라는 질문에 대한 답은 공식 홈페이지에 나와 있었다.
영하의 온도로 내려가면 Z 바이러스가 살아남기 힘든 조건이 된다나 뭐라나….
쉬유우우우웅-
빠르게 날던 로봇들이 커다란 이글루 하나를 발견하더니 속도를 늦추었다.
“…… 저기, 저 건가?”
마이클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강대원이 로봇 중 하나에게 순찰 명령을 내리고 답을 기다렸다.
삐빅. 삐빅. 삐빅.
레이더에 아무것도 잡히지 않았다. 생명체를 감지하는 물건이라고 들었는데 저 이글루 안에는 아무것도 없는 것 같다.
[‘에이도스’가 이글루 안에서 무언가의 움직임을 포착합니다.]
생명체가 없는데 움직임이 포착되었다. 마이클과 강대원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게 대체 무슨 일인가?
강대원이 만든 레이더에 잡히지 않을 정도로 발전된 기술을 오 박사가 사용했단 말인가.
그들은 의문에 대해 깊게 생각하지 않고 이글루 근처에 착륙했다.
쿠궁!
기체가 무거웠는지 로봇들이 착륙할 때마다 둔탁한 소리와 함께 땅이 갈라졌다.
“……”
눈치를 보던 강대원이 물었다.
“이제 어떻게 하면 되겠습니까?”
마이클이 눈알을 굴리다가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저 안에는 이 로봇이 들어갈 수 없으니, 내가 직접 정찰을 돌고 오겠읍니다.”
“혼자 괜찮으시겠습니까? 저희 정찰 로봇을 보내도 되는데요.”
“괜찮읍니다. 혹시라도 일이 생긴다면 신호를 줄 테니. 이글루를 사격하도록 하십시요우.”
강대원이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마이클 씨가 안에 있는데 사격하라고요?”
“예스, 주저하지 말고. 탕탕!”
“…… 알겠습니다.”
강대원은 똑같은 말을 여러 번 하는 남자가 아니다. 의문이 생긴다면 직접 해결하는 스타일.
그걸 알기에 김천재도 어리숙한 마이클과 함께 보낸 것이다.
끼이이이익-쿵!
로봇의 문이 열리며 마이클이 뛰어내렸다.
“그럼, 다녀오겠읍니다.”
“무전기는 챙기셨습니까?”
“예스, 채널 7번.”
“…… 조심하십시오.”
쿠웅-.
로봇의 문이 닫히고, 마이클이 이글루 안으로 향했다. 다큐멘터리에서 보던 이글루의 크기는 그저 사람 몇 안에 들어가서 쉴 정도였는데.
지금 이곳에 있는 오 박사의 이글루는 연구실로 사용 중인 건물이라 굉장히 컸다.
사실 겉모습만 이글루고 안에는 완전한 시멘트 연구실이다.
계속해서 안을 향해 걷던 마이클이 좀비를 발견했다.
-키에에엑!
보라색 액체를 입에서 뿜어내는 좀비. 형태를 보아 개조하다가 실패한 녀석이 철창에서 도망나온 것 같다.
마이클은 최대한 조용히 끝내기 위해, 총을 사용하지 않고 적을 주먹으로 때려 눕혔다.
팍!
주먹 한 방에 좀비의 머리가 세 바퀴 돌며 쓰러졌다.
털썩.
“…… 이지.”
-키에에에엑!
안에서 또 다른 언데드 몬스터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마이클이 고개를 좌우로 꺾으며 몸을 풀더니 녀석들을 향해 손가락질했다.
“컴온.”
-키에에에엑!
* * * * *
오 박사가 침을 질질 흘리며 컴퓨터 앞에서 신음을 내고 있다.
그의 옆으로 바이러스에 감염된 연구원들이 비틀거리며 고개를 떨었다.
“바바바바, 박사님…. 저희는 이제…. 어떻게 되는 겁니까….”
오 박사가 심장을 움켜쥐고 독백하듯 그들에게 대답했다.
“제길…. 이렇게…. 내 연구가 이렇게 될 줄이야….”
“살려…. 주십시오….”
“나라고 이렇게…. 이렇게…. 크헐!”
오 박사가 피를 토했다. 연구진들이 깜짝 놀라 그에게 오려고 했지만, 이미 전신에 힘이 빠져 걸을 수가 없는 상태였다.
모두가 바이러스에 의해 정신이 빠졌다. 곧 있으면 괴물로 변하기 일보 직전인 상태다.
-크에에엑, 크엑!
연구진 중 한 명은 벌써 좀비로 변해서 기이한 움직임을 보였다.
아직 정신을 잃지 않은 연구진들이 공포에 떨며 뒷걸음질을 쳤다.
-으어어어어! 누, 누구 저 녀석 좀 어떻게 해봐!
-몸이…. 몸이…!
-박사님!
신음을 흘리던 오 박사가 옷깃으로 피를 대충 닦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곤 주머니에 있는 주사기를 하나 꺼내어 자신의 팔뚝에 놓았다.
치이이이익-
“…… 모두 미안하다. 나를 도와서 이곳까지 왔는데….”
“박사님! 그, 그건 Z 바이러스 아닙니까? X와 Z가 섞이면…!”
“정말…. 정말 미안하다….”
쾅!
갑자기 문이 열리며 군인 한 명이 들어왔다. 연구진들은 구세주를 보는 듯 눈동자에 힘을 주었다.
그들의 바람과는 다르게 연구소 안으로 들어온 군인이 방아쇠에 손가락을 올렸다.
“…… 다들 죽을 준비 됐어요우?”
마이클, 마이클 비치가 무서운 표정으로 그들에게 총구를 겨누었다.
“저저저, 저 빌어먹을!”
“오케이, 당신 먼저 죽고 싶은 거지요우?”
마이클이 오 박사에게 총구를 겨누었다.
“크으으으…. 그 녀석만 아니었다면…. 그 녀석만 없었다면 내 계획을 성공시킬 수 있었는데!!!”
“입이 길군요우.”
“혀가 길다고 말하려는 거겠지. 이 멍청한 깜둥이 녀석.”
마이클이 미간을 찌푸렸다.
“멍청 깜둥? 노우- 멍청한 건 바로 당신이에요우.”
“…… 녀석이 나를 죽이라고 시키던가?”
“오브 콜스. 미친 늙은이는 저 세상으로 빨리 가야 된다고 했어요우.”
“노인을 공경할 줄 모르는 놈이군.”
철컥.
“노인을 공격할 줄은 아는 놈입니다.”
탕!
마이클이 주저 없이 방아쇠를 당겼다. 순간적으로 모든 장면이 슬로우 모션으로 보이기 시작했다.
빠르게 회전하며 날아간 탄이 오 박사의 이마에 정확하게 명중했다.
피슉- 소리와 함께 두개골이 갈라지며 머리 뒤통수에서 탄이 빠져 나왔다.
김천재가 준 임무에 완벽하게 성공하는 순간이다.
털썩.
오 박사가 쓰러졌다.
그와 동시에 푸른색 메시지 창이 마이클의 눈앞에 나타나며 그의 눈앞을 가렸다.
[메인 NPC ‘오지명 박사’ 가 사망하였습니다.]
[현 시간부로 X 바이러스가 모든 맵에서 사라지며 필드에 나타나는 X 바이러스 감염체 몬스터가 소멸합니다.]
“…… 미션 석세스.”
오 박사가 쓰러지자 연구원들이 허둥지둥하며 어찌할 줄을 몰라 했다. 바이러스에 감염되어 몸을 제대로 지탱하지도 못하면서 마이클을 향해 적대감을 표시했다.
-으아악! 저, 저 사람이 바, 박사님을 죽였어. 살인자다. 살인자야!
-오…. 신이시여…. 제발….
“과학자들도 주님을 믿습니꽈?”
-그, 그게 무슨 질문이야. 우리도 종교를 믿을 수 있는 건 당연한 권리 아닌가?
“그 신이 인간을 포기할 권리도 있는 것 같습니다? 당신들도 곧 죽을 테니 말이다.”
그의 질문에 모두가 입을 꾸욱 다물었다.
그리곤 죽음을 받아들였다는 듯 두 눈을 감고 그대로 고개를 떨구었다.
철컥.
마이클이 총을 장전했다.
그리고 연구진들을 향해 쏘려는 순간.
쿠구구구구구-
갑자기 사망한 오 박사의 몸이 커지기 시작했다.
[‘오지명 박사’의 몸이 바이러스 개조에 성공하여 강화됩니다.]
[멈추었던 세포가 재생되며 생명력이 돌아옵니다.]
[Z 바이러스와 X 바이러스가 섞여 돌연변이를 만들어냈습니다.]
“…… 돌연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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