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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화

드디어 이 시간이 찾아온 건가.

제 1 마왕과 함께 루시퍼가 모습을 드러냈다.

[‘제 1 마왕, 바엘’이 폐허가 된 마을을 찾아옵니다.]

루시퍼, 역시 이 게임 내에서 최강의 보스라 불릴만한 녀석이다. 앞서 만난 녀석들과 포스가 다르다.

물론 오라의 크기로만 따지자면 앞서 만난 세 대 악마가 더 높다고 볼 수도 있지만,

오라로 측정할 수 없는 무언가가 느껴진다.

“김천재, 네가 원하던 시간이 찾아왔다.”

루시퍼의 외침에 모두가 얼어붙었다. 폐허가 된 마을을 향해 공격해오던 녀석들도 움직임을 멈추고 그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 네가 원하던 시간이겠지.”

내 대답에 악마 부하들이 어쩔 줄을 몰라 했다. 괜히 심기를 건드려서 좋을 것 없다는 듯한 반응이다.

내 대답에 제 1 마왕 바엘이 크게 웃어 보였다.

저 녀석은 대체 무엇인데 저런 모습을 하고 있는 걸까?

마치 어린아이와 같은….

‘음?’

어디선가 많이 본 얼굴이다. 내가 기억을 다듬으며 생각하고 있자 유소라가 크게 소리쳤다.

“아아!”

“…… 아는 얼굴이에요?”

“저, 저건…. 제가 예전에 일러 작업했던 캐릭터예요!”

유소라가 작업했던 캐릭터.

그녀의 대답과 동시에 저 녀석의 얼굴이 누구와 같은지 떠올랐다.

‘…… 스펙터.’

그 빌어먹을 자식과 똑같이 생겼다. 얼마나 비슷했는지 왼쪽 눈 아래 박혀있는 점마저 똑같았다.

“소라 씨, 사장이 최강이라고 했던 녀석이 저놈 맞아요?”

“마…. 맞아요. 확실해요.”

그렇다면 보통 녀석은 아니겠구나. 최소 루시퍼 이상의 힘을 가지고 있을 게 뻔하다.

최종 보스로 선택하지 않은 이유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한 가지는 확실해졌다.

‘……’

우리는 모두 죽을 것이다.

한 명 막기도 벅찬데 저 둘이 동시에 쳐들어올 줄이야. 운영진들이 드디어 미친 건가? 어떻게 이런 시련을 우리에게 줄 수 있는가.

한순간에 조금의 희망도 없어 보이는 라운드가 되어 버렸다.

아니지, 모든 이들에게 진짜 멸망을 보여주게 되어 버렸다.

“루시퍼, 무서워서 친구를 데려온 거냐?”

“…… 맞아.”

아니지! 악의 대장이라면 그렇게 말하면 안 된다. 혼자서도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단독으로 싸운다고 말해야 한다.

“내가 겁나서 친구를 데려왔다고?”

“그래.”

“…… 그래?”

응.

이제 내 잔꾀는 안 통한다.

저 녀석도 학습 능력이라는 게 있으니 내 패턴을 외웠겠지.

지군 녀석이 펑! 하는 소리와 함께 원숭이로 변했다.

“다들 미안, 나 먼저 도망가볼-”

팍!

정우가 지군의 머리를 주먹으로 내리찍었다.

“지금 우리가 전선에서 떠나면 이 게임은 종료야.”

“…… 아니! 그래도 이건 아니지 않나? 나는 그냥 게임 밖으로 안 나가고 여기서 살도록 할게. 생각해보니 NPC들하고 오순도순 사는 것도 나쁘지 않은 것 같아.”

“저 녀석들 손에 죽을래? 내 손에 죽을래?”

“…… 죽고 싶은 사람이 세상에 어디 있어?”

스르륵-

정우가 검을 들었다.

“그래서 내 질문에 대한 답은?”

“…… 살고 싶으니 싸우도록 할게.”

“오케이.”

지군이 남게 되었으니 작전에는 변함이 없다. 하지만 큰 문제가 너무나도 많다.

현재 우리가 가진 전력을 루시퍼에게 쏟아부을 경우 바엘 녀석이 남게 되고,

반대로 바엘 녀석을 잡는다면 메인 보스인 루시퍼가 남게 된다.

결국 어느 쪽으로 가더라도 힘이 부족한 상황.

“…… 후우.”

[지옥의 악마들이 본격적인 침공을 시작합니다.]

시스템 메시지가 나타남과 동시에 악마들의 종류가 크게 바뀌었다.

대부분이 오라를 사용할 줄 아는 중형, 대형 몬스터로 변하고, 착용하고 있는 장비들이 전부 전설급으로 바뀌었다.

한 마리 한 마리가 전부 보스급이라고 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다.

“스켈레톤, 정렬!”

내 외침에 스켈레톤 병사들이 마을 앞에 진을 쳤다.

이어 김준철과 나머지 플레이어들이 바리게이트를 이용해 동쪽 문과 서쪽 문, 남쪽 문을 봉쇄하고,

철컹!

모든 병력을 북쪽으로 이동시켰다.

대병력이다.

마을의 반을 가득 채울 정도로 많은 플레이어들이 모였다.

가지각색의 직업을 가지고 장비를 착용하고 있어 격의 차이를 알 수 있었다.

나는 대성당의 꼭대기로 이동해 확성기를 켰다.

“이제부터 이 마을 내에 있는 모든 자는 내 지휘하에 움직이도록 한다. 김리아, 지군. 둘은 앞서 계획한 대로 플레이어들을 이끌어 주도록.”

김리아와 지군이 플레이어들을 정리하며 각자 맡은 위치로 보내기 시작했다.

궁수와 마법사는 전부 건물 위쪽이나 벽 바로 뒤에 몸을 숨길 수 있도록 하고,

전사와 사냥꾼, 암살자 또는 각종 근접 계열이 직업들은 전방에 배치시켰다.

-힐러들은 세 명씩 묶어서 흩어져 주세요!

그날과 같은 풍경이 펼쳐지기 시작한다. 이 게임의 마지막이라며 모든 유저들이 ‘폐허가 된 마을’에 모였던 멸망의 날.

내가 루시퍼와 영혼의 대결을 나누었던 그때 말이다.

우리의 움직임을 파악한 루시퍼가 소리쳤다.

“전원- 공격하라!”

루시퍼가 손을 뻗자 악마들이 마을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쿠워어어어!

“…… 12시 방향 마을을 향해 오는 적 부대 발견! 궁수 대기, 마법사 대기, 전사 대기.”

모두가 숨을 죽이고 악마들이 다가오기를 기다린다.

나는 녀석들의 거리가 가까워지기를 지켜본 후, 김준철의 부대가 있는 곳을 향해 소리쳤다.

“전차!”

-표적 확인, 장전 끝, 조준 끝!

“…… 쏴!”

콰과광!

전차가 불을 뿜었다.

진격해오는 악마들의 머리 위로 포탄이 비처럼 쏟아져 내렸다. 굉음과 함께 적들이 쓰러진다.

현대적인 무기라 대형 몬스터에게는 큰 피해를 주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빠른 스피드로 달려오던 중형급과 소형급들은 꽤나 많이 처리되었다.

“계속 쏴!”

계속해서 포탄이 쏟아진다.

루시퍼의 부하들은 앞서 상대해보았기에 어느 정도의 숫자인지 알고 있다.

앞으로 한 시간만 잘 버텨내면….

“마이클!”

마이클이 내게 윙크를 하더니 무전기를 켰다.

삐빅.

“야쿠자, 전투가 시작되었다. 이동을 시작하도록.”

무전기 반대편에서 조영기의 걸걸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삐빅.

-알았다, 현 시간부로 모든 병력을 이동시키도록 하겠다.

“롸져댓.”

대화를 마친 마이클이 무전기의 채널을 돌리더니 다시 어딘가로 신호를 보냈다.

삐빅.

“마이클 송신.”

삐빅.

-강대원 수신.

“전원 준비되었는지?”

-준비 완료, 신호 주면 바로 투입 가능.

“…… 전투 시작. 약속된 장소로 이동하도록.”

-알겠다. 현 시간부로 메카니아의 모든 병력을 이동시키도록 하겠다.

“롸져댓.”

삐빅.

* * * * *

드르르르르륵-

악마들이 쏟아지는 포탄을 막기 위해 공성 병기를 가져왔다.

겉으로 보기에는 나무로 만들어진 탑으로 보이는데, 방어력이 얼마나 높았는지 포탄의 충격이 전부 흡수되었다.

쾅!

흔적조차 남지 않는다.

생김새로 보아 지옥에 있는 세계수의 뿌리를 잘라서 만든 것 같다.

거인들이 탑을 밀며 마을 앞으로 진격해온다.

포탄이 막힌 것을 확인한 나는 김준철의 부대를 향해 크게 소리쳤다.

“중지!”

내 외침에 사격이 중지되었다.

이어 전방에 있는 김리아를 향해 소리쳤다.

“궁수 부대, 화염 화살 준비!”

-화염 화살 준비!

궁수들이 복명복창하며 화살에 불을 붙였다.

화르륵!

“발사!”

-발사!

타다다탕!

동시에 날아오른 화염 화살이 악마들의 머리 위로 쏟아졌다. 녀석들에게는 큰 피해가 없었다.

내가 노리는 것은 오로지 저 탑뿐.

“계속해서 쏴라!”

녀석들이 준비한 공성 병기에 불이 붙었다. 어차피 지옥에서는 꺼지지 않는 불꽃을 내뿜던 녀석, 이렇게 조금의 불길만 스치더라도 다시 활활 타오를 것이다.

-키에에에엑!

화륵!

녀석들이 방패막이로 쓰는 탑에 불이 붙었다. 한둘씩 붙기 시작한 공성 병기들이 크게 타오르며 거인들이 밀 수 없게 되었다.

“궁수, 사격 중지! 마법사 부대 앞으로!”

-부대 앞으로!

“아이스 캐논으로 벽을 높게 쌓도록 한다. 얼음 원소를 다룰 수 없는 자는 어스 필드를 사용하여 벽의 두께를 늘리도록, 이해한 자는 바로 대답해라!”

-이해했습니다!

마법사들이 마을로 진입하는 벽을 높게 쌓아 올리기 시작했다.

우리는 시야를 포기하고 전투 반경을 좁혔다.

가까이 붙을 수 없게 되면 녀석들의 원거리 공격이 시작될 테니까.

피융-

쾅!

거대한 화염구가 날아와 마을 벽에 부딪혔다. 쌓아 올리고 있는 얼음벽이 우수수 무너져 내리며 우리 쪽으로 떨어졌다.

쿠구구궁!

-조, 조심해!

-누구 다친 사람 없어? 있으면 힐러를 부르도록 하고 아니면 다시 주문을 외워!

-아이스 캐논!

‘역시 바로 원거리 공격이 시작되는군….’

나는 화염구가 날아온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거대한 지렁이가 포효하고 있다.

[에이션트 웜]

입에 오라를 모아 화염구를 발사하는 고대 종 악마. 거대한 지렁이같이 생겨 얕보는 플레이어들이 많지만, 절대 만만한 녀석이 아니다.

고레벨 플레이어도 저 불꽃에 잘 못 맞으면 한방에 가는 수가 있으니….

“아이스 캐논을 멈추지 마라! 불을 사용할 줄 아는 마법사들은 궁수에게 파이어 애로우를 만들어서 보급하도록 해!”

모두가 맡은 바 자리에서 열심히 움직인다.

내가 명령을 내리면 김리아와 지군이 전방에서 플레이어들을 이끌어 주었다.

“정우야, 너도 곧 준비해야겠다.”

“벌써? 전사 부대는 벽이 무너진 후에 움직이는 거 아니였냐.”

“맞아.”

“…… 설마 이 벽, 오래가지 못하는 거였냐?”

내가 고개를 끄덕였다.

“길어봤자 십분, 혹은 십오 분일 거야.”

“하아…. 오케이.”

정우가 내게 주먹 인사를 하더니 최전방을 향해 자리를 옮겼다.

“소라 씨.”

“네!”

“지금 주사 능력 몇 방 정도 사용 가능한가요?”

“어…. 열 방이요.”

열 방이라.

그렇다면 진짜 중요한 인물에게만 놓아야겠다.

“지속 시간은 몇 분이에요?”

“분으로는 표시가 안 되고, 12시간이라고 되어 있어요.”

“12시간?! 그렇게 길어요?”

“네, 이 무기를 구하고 나서부터 갑자기 길어졌어요.”

역시 신급 무기의 힘은 달라도 확실하게 다르다.

“좋아요, 그럼 소라 씨도 정우랑 같이 전사 부대하고 대기하다가, 벽이 무너지면 제가 말씀드리는 순서대로 주사를 놔주세요.”

“넵.”

“우선 마정우, 지군, 김리아, 김연희, 마이클 이 순서대로 놔주시고요.”

“네.”

“자리를 옮겨서 저, 제 소환수인 레카, 고티, 소라 씨까지. 이렇게 총 아홉 명 놔주시면 됩니다.”

“아홉…. 그럼 하나가 남는데요?”

내가 고개를 끄덕였다.

“마지막 한 방은 남겨 놔주세요. 때가 되면 다시 말씀드릴게요.”

“…… 알겠습니다.”

유소라가 정우를 따라 전방으로 이동했다.

나는 모든 이들의 움직임을 읽으며 적의 동태를 살폈다. 이대로 간다면 첫 번째 시련으로 불리는 ‘악마 퍼레이드’ 타임을 무사히 넘길 수 있다.

곧 있으면 지원군들도 도착할 테니, 벽이 무너지더라도 큰 문제가 없을 것이다.

스토리가 이대로 잘만 흘러간다면, 루시퍼를 처치하는 데는 아무런 문제도 없어 보이는데….

톡, 톡, 톡.

누군가 내 어깨를 두드렸다.

“안녕.”

머리 뒤에서 어린아이의 목소리가 들렸다. 화들짝 놀라서 뒤로 돌아보니 ‘제 1 마왕, 바엘’이 나를 지켜보고 있었다.

‘…… 언제 여기에 온 거지?’

[숨겨진 스토리 발견]

[사자의 서 발동, ‘제 1 마왕, 바엘’을 마주하게 되었습니다.]

[‘최초의 악마’, 바엘의 기억 속에 있는 파편을 발동시켜 스토리 영상을 재현합니다.]

“자, 잠깐-”

쉬이이이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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