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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화

리나의 외침과 함께 ‘봉인’ 스킬에 의한 마나 고리가 나타나 마르바스의 몸을 묶었다.

“지금이야!”

그 틈을 놓치지 않은 정우와 지군이 동시에 달려들어 미카엘의 검과 메타트론의 창을 마르바스에게 꽂았다.

후드득- 퇴직!

성스러운 빛에 의해 갑주가 으스러지며 날붙이가 천천히 파고 들어갔다. 빛의 오라와 어둠의 오라가 뒤엉켜 서로를 밀어내기 시작했다.

지군과 정우가 온몸에 힘을 주어 버텨냈다. 뒤로 밀려나며 다리가 땅에 파고들었다.

“크으으윽-. 나, 날아갈 것만 같다능.”

“좀만 더 버텨!”

마르바스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오라가 점점 강해진다. 정우가 버티지 못하고 신음을 뱉었다.

-크윽.

지군도 손에 힘이 점점 빠지는지, 마르바스를 뚫었던 창이 조금씩 빠져나오기 시작했다.

마르바스의 생명력 게이지를 보니 끝내려면 아직 멀었는데, 둘의 상태가 좋지 않다.

스켈레톤 병사들을 보내려 해보았지만 오라에 밀려 다가갈 수 있는 녀석이 없었다.

‘…… 직접 나서야 하나.’

내가 달리려는 순간, 뒤에서 대기하고 있던 마이클이 전방을 향해 뛰었다. 그리곤 성스러운 지팡이를 휘둘러 마르바스의 머리통을 내리쳤다.

“이거나 먹어요우!”

팍!

그는 계속해서 내리쳤다.

뭐라도 해보려는 그의 의지가 돋보였다.

그 모습을 본 유소라도 암석 뒤에서 뛰쳐나와 지팡이로 마르바스의 머리를 내리찍었다.

“천재 씨, 저도 합류하겠습니다!”

팍!

어떻게 된 일인지 두 명의 딜러, 전사와 사냥꾼이 날붙이로 공격한 것보다 빠른 속도로 생명력 게이지가 깎이기 시작했다.

정우와 지군이 앞에서 적의 오라를 막아주니, 마이클과 유소라는 마르바스의 간섭을 받지 않아 오히려 큰 대미지를 줄 수 있었다.

절구에 떡을 찧듯 두 개의 지팡이가 마르바스의 머리를 번갈아 때렸다.

놈이 저항해 보려 몸을 틀어 보았지만 정우와 지군이 이를 악물고 녀석의 오라를 버텨냈다.

“김천재!”

정우가 나를 불렀다

고개를 돌려보니 벌써 녀석의 검날이 거의 다 빠져 나와 있었다. 이대로 가면 얼마 지나지 않아 정우가 튕겨 나갈 것이다.

‘…… 어쩔 수 없네.’

루시퍼와 싸우기 전까지 숨겨놓은 기술들을 사용하고 싶지 않았는데, 결국 사용해야 하나.

‘하아….’

어쩔 수 없지.

나는 지금까지 숨겨온 능력 중 하나를 사용하기 위해 스켈레톤 병사들을 집결시켰다.

남아있는 녀석들을 전부 사용해 ‘레전드 스켈레톤’으로 만들자 오십여 마리 정도 되었다.

이 정도면 녀석을 막기에 충분하려나?

“마정우, 지군!”

정우와 지군이 살짝 고개를 틀어 나를 보았다. 내가 낫을 강하게 쥐고 전방을 향해 달리며 스켈레톤들을 불렀다.

“본 월!”

내가 명령어를 외치자 푸른색 화면이 나타나며 축포가 터졌다.

[네크로맨서의 숨겨진 능력 중 하나인 ‘본 월’을 개방합니다.]

[*본 월: 스켈레톤 병사를 희생하여 벽을 만들어 낸다.]

-벽의 강도는 스켈레톤 능력치에 비례함.

-다다다다다!

마르바스 앞에 도착한 내가 땅을 향해 낫을 휘둘러,

쿠드드드득!

마르바스의 등을 긁었다.

[‘본 월’을 시전합니다.]

[김천재 플레이어의 스켈레톤 병사들이 분해되어 뼈로 된 장벽을 만듭니다.]

스켈레톤 병사들의 뼈가 분해되어 땅에 쏟아져 내렸다.

이어 분해 된 뼈가 날아와 마르바스의 등을 강타하기 시작했다.

쿵! 쿠구구궁!

누군가에게는 단순히 벽을 만드는 스킬이겠지만, 이 게임에 대한 이해도가 높은 내게는 전혀 다른 사용방법이 있었다.

지금까지 아무에게도 보여주지 않았던 네크로맨서의 비기 중 하나.

쿠구구궁!

계속해서 날아온 뼈들이 마르바스의 등을 흠씬 두드렸다.

공격이 초 단위로 수십, 수백 발씩 쏟아지자 마르바스도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오라를 중구난방으로 흘렸다.

“크아아아악! 피, 피의 투기장!”

[‘제 4 마왕, 마르바스’의 스킬이 봉인 주문에 막혀 취소됩니다.]

리나가 마르바스를 향해 두 손을 뻗고 주문을 외우며 입꼬리를 올렸다.

“어딜.”

덕분에 정우와 지군이 녀석의 오라에서 벗어나, 다시 날붙이를 깊게 박아 넣었다.

마르바스의 생명력 게이지가 빠른 속도로 깎여 나가기 시작한다.

내 공격은 한방의 위력이 신의 무기만큼은 아니지만, 그래도 시간당 대미지로 비교해보자면 근사한 피해를 입히고 있었다.

이게 바로 내가 신의 무기를 사용하지 않아도 되는 이유.

오히려 지금의 전투 방식이 더 손에 익다. 익숙하니 실수할 일도 적어지고 말이다.

“천재 킴!”

마이클이 지팡이로 마르바스의 왼쪽 어깨를 내리치고.

팍!

유소라가 그 반대편인 오른쪽 어깨를 지팡이로 내리쳤다.

팍!

마르바스가 그대로 무릎을 꿇었다.

한둘씩 모여들기 시작한 뼈들이 녀석의 등에 달라붙어 벽을 만들기 시작했다.

강철로 만들어져서 그런지 무게가 높은데다가, 전류까지 흐르고 있어 미미하지만 대미지를 줄 수 있었다.

마르바스가 고통에 몸부림치며 무릎을 펴보려 했지만, 쏟아지는 공격과 등에 달린 강철 때문에 중심을 잡지 못했다.

* * * * *

“마지막이다.”

[‘죽음의 낫’ 발동, 체력이 15% 미만인 적의 생명력을 단숨에 앗아갑니다.]

부웅-

콰드득!

내 낫이 마르바스의 목을 베어냈다. 너무나도 단단하여 단번에 잘라내지 못했다.

첫 격은 날붙이가 목에 반쯤 박혔고, 두 번째 일격에는 그대로 잘라낼 수 있었다.

털썩.

놈의 목이 떨어짐과 동시에 승리의 메시지가 우리 앞에 나타났다.

[시스템 메시지]

[현 시간부로 ‘제 4 마왕, 마르바스’가 사망했습니다.]

[보상으로 악마의 정수가 지급됩니다.]

녀석의 몸이 점점 회색으로 변하더니 가루가 되어 바람을 타고 사라졌다.

우리의 전투를 지켜보던 플레이어들이 환호했다.

-오오오오오! 역시 김천재!

-이번에는 정말 다 같이 뒤지는 줄 알았는데, 와…. 아까 그 사자 녀석, 눈만 살짝 봤는데 오줌 지릴 뻔했어.

-나는 이 게임 안에 마왕이라는 존재가 있는지도 몰랐다. 히야…!

정우와 지군은 다리에 힘이 풀렸는지 기진맥진한 얼굴로 털썩 쓰러졌다.

“하아…. 천재야, 나는 더 이상 못하겠다.”

“처, 천재 형님. 이번에는 정말 위험했다능.”

내가 둘을 보며 히죽 웃었다.

“겨우 이거 가지고 힘든 척하면 어떻게 해? 좀 있으면 루시퍼가 올 텐데.”

내 대답에 둘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언제가 될지 모르겠지만 머지않아 루시퍼가 올 것이다.

그때까지 모두 체력을 회복시켜놔야 할 텐데….

“처…. 천재, 천재 씨.”

털썩!

나를 향해 걸어오던 리나가 크게 쓰러졌다. 모두가 걱정되어 달려가 그녀를 보았다.

염려하던 일이 벌어졌다.

내게 숨기고 있던 마나 고리의 제약이 그녀의 몸을 덮고 있다. 이번에는 사슬의 크기가 너무 큰데다가 덮고 있는 면적이 넓어 온몸이 붉게 변했다.

“…… 리나, 리나! 리나!!”

내가 그녀의 뺨을 쳐서 깨우길 시도해 보았으나 실패했다. 정신을 차릴 수도 없을 정도로 극심한 고통.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정우가 달려와 그녀의 상체를 일으켜 세우며 소리쳤다.

“리나 씨! 리나 씨! 리나 씨이!!! 야, 천재야. 이거 어떻게 하냐!”

나도 모르겠다.

그녀 덕분에 마왕을 제압하기는 했는데, 이렇게 제약이 크게 돌아올지 몰랐다.

리스크가 이렇게 클 줄이야.

우리는 그녀를 걱정하며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마이클이 성스러운 주문을 전부 사용해보고. 유소라가 영혼 물고기를 사용해 마나 고리를 먹어보기도 했다.

물론 전부 실패했다.

제약이 걸린 주문은 이렇게 쉽게 없앨 수 있는 것이 아니니까.

“제길!”

쿵-.

정우의 주먹이 땅을 강하게 쳤다.

악마 새끼들은 눈치도 없는지 이런 상황에서도 마을을 향해 몰려왔다.

“마정우, 우선 리나 씨를 저택으로 데리고 가.”

“…… 알았어.”

“지군, 너도 따라가서 휴식하고 있고.”

지군이 리나를 들쳐 엎었다.

“알았어. 정우 형은 손을 많이 다쳤으니, 우선 리나 씨는 내가 옮기겠다능.”

정우가 그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우리 먼저 가 있는다.”

“여기는 내가 알아서 할 테니 빨리 가. 마이클하고 소라 씨는 서쪽에서 교대하면서 쉬고 있도록 하세요.”

내 말이 끝나기 무섭게 마이클과 유소라가 서쪽으로 자리를 옮겼다.

“레카, 잠시 이곳을 부탁한다.”

휴식을 마친 레카가 자리로 돌아왔다. 아까 잘려나갔던 팔도 금세 회복해있었다.

플레이어였으면 불구로 살아야 했을 텐데, 소환수라서 다행이다.

“주군의 명을 받듭니다.”

대답은 잘한다.

아까는 내 명을 무시하고 마음대로 움직이더니.

쉬이이이이익-

갑자기 발밑에서 그림자 하나가 빠르게 다가왔다. 깜짝 놀라 낫을 휘두르려고 하니 그 안에서 손이 튀어나오며 내게 인사했다.

“나다! 공격을 멈춰.”

고티의 목소리다.

“…… 고티, 돌아온 건가?”

고티가 그림자 밖으로 튀어나와 내게 대답했다.

“그래.”

“정보는?”

“모았다. 네가 원하는 자료까지 전부.”

“…… 좋아.”

그는 지금까지 루시퍼를 감시하며 얻은 정보를 내게 말해주기 시작했다.

기존 스토리와는 다르게 그가 과거의 마왕을 부활시킨 이유부터 앞으로의 계획까지.

그가 하는 이야기는 허무맹랑할 만큼 믿기 힘들었다.

하지만 믿을 수밖에 없었다.

그게 이 게임 내에서 고티의 존재 이유니까.

내가 고개를 끄덕이며 그에게 물었다.

“결국, 우리를 이용했다는 말이네?”

“…… 그렇지.”

“하아-. 우리는 그것도 모르고 이렇게 열심히 싸운 거고?”

“어차피 녀석들이 부활했다면. 언젠가는 싸워야 할 일이었다.”

“…… 그렇긴 하지.”

“너무 부정적으로 생각하지는 말도록. 다가올 일을 미리 맞았다고 생각하면 되니까.”

내가 어깨를 으쓱거렸다.

“알았어, 알았다고요.”

“그래서, 마왕들은 전부 잘 처리했나?”

그의 질문에 내가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전부 처리하기는 했는데, 큰 문제가 생겼어.”

“큰 문제?”

“어, 아주 큰 문제.”

“…… 그게 뭐지?”

나는 낫의 손잡이로 땅을 그어 사슬 문양을 그렸다.

“봉인 주문, 이제 다시는 사용하지 못할 것 같아.”

* * * * *

가고일 한 마리가 날아와 사탄의 귀에 작게 속삭였다. 이야기를 들은 사탄은 화들짝 놀라며 손짓하더니 동굴의 안을 향해 걸었다.

터벅. 터벅. 터벅. 터벅.

얼마나 서두르는 걸음이었는지 그의 발소리가 동굴 안에 울릴 정도다.

동굴의 끝에 도착한 사탄이 왕좌에 앉아있는 루시퍼를 향해 정중히 말을 뱉었다.

“루시퍼 님.”

루시퍼가 천천히 눈을 뜨며 그를 바라보았다.

“…… 말해.”

“마왕…. 제 4 마왕인 마르바스가…. 당한 것 같습니다.”

사탄의 보고를 들은 루시퍼가 작게 고개를 까딱거렸다.

“또 김천재인가?”

“…… 예.”

루시퍼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인지, 마왕이 당했다는 소리를 듣고 미소를 지었다.

“마르바스도 결국 그릇이 그것밖에 안 되었던 건가.”

“……”

“사탄.”

“예.”

“지옥에 있는 마왕의 알은 어떻게 돼가고 있지?”

사탄이 손을 크게 휘둘러 지옥과 연결되어 있는 공간을 보여주었다.

“곧 있으면 깨어날 것 같습니다.”

“…… 좋아. 모든 것이 순조롭게 흘러가고 있어.”

“마왕들이 전부 쓰러졌는데, 괜찮습니까?”

“괜찮다. 내가 원하던 그림이야.”

“…… 예?”

“전부 내가 계획한 대로 되어가고 있으니 걱정하지 마라.”

사탄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세 마왕의 패배도 루시퍼님의 계획에 있던 것입니까?”

루시퍼가 왕좌에서 일어나 허리를 틀며 몸을 풀었다.

뿌드득- 뿌드드득-.

“그래, 내가 녀석들을 전부 상대하려면 체력이 너무 많이 소비되거든.”

“…… 일부러 마왕들을 없애려 하신 겁니까?”

“그렇지, 내 목표는 녀석들의 정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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