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화
질병과 치유의 마왕, 마르바스.
놈의 등장에 우리 모두가 깜짝 놀랐다. 다른 녀석들과는 다르게 단독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정말 아무런 부하도 끌고 오지 않았다.
거대한 오라를 뿜는 사자 한 마리가 가시로 도배된 검은 갑주를 입고 등장했다.
랜스 형태의 무기로 보아 찌르기에 특화되어 있는 것 같은데.
“…… 마정우, 저 녀석은 좀 상대하기 껄끄러울 것 같은데.”
“혼자서 쳐들어올 줄은 전혀 몰랐네.”
“그리고 언제 저기까지 온 거냐? 진짜 전혀 몰랐다.”
놈이 모습을 드러낸 이후에야.
[시스템 메시지]
[‘제 4 마왕, 마르바스’가 폐허가 된 마을을 찾아옵니다.]
시스템 메시지가 나타났다.
“정우야, 아무래도 동시에 덤벼야 할 것 같다.”
“……”
“소라 씨! 마이클을 데려와 주세요.”
유소라가 고개를 끄덕이더니 서쪽으로 향했다. 대강 전력을 비교해 보아도 우리 전부와 같은 힘을 내는 것으로 보인다.
앞서 상대한 마왕들은 약점이라도 있었는데, 이 녀석은 어떻게 상대해야 할지 감조차 오지 않는다.
부하를 데려오지 않았으니 소환을 사용할 수도 없고, 미리 만들어놓은 소환수도 녀석을 단독으로 상대하기에는 넉넉하지 않은 상태.
지군이 내 옆으로 바짝 붙더니 작게 속삭였다.
“질병과 치유를 사용한다고 했는데, 장비를 보니 기사 타입이야.”
“…… 그래서?”
“아무래도 형 능력으로는 상대하기 제일 까다로운 타입인 것 같아.”
지군의 말이 맞다.
전사 형태인데 치유 능력과 질병을 사용한다고 했으니, 악의 힘만을 사용하는 내게는 상성이 굉장히 안 좋다.
어떤 스킬을 사용하는지는 아직 못 보았지만, 대충 어느 정도 힘을 쓰는지는 예상이 된다.
“마이클이 오면 동시에 덤벼들자. 그 방법밖에 없을 것 같아.”
“…… 오케이. 그럼 내가 메타트론의 창에 모든 오라를 소모할 테니 틈을 만들어줘.”
“알았어. 정우와 내가 놈의 발을 묶고, 마이클과 유소라가 뒤에서 받쳐주면 어느 정도 시간을 버텨낼 수 있을 거야.”
“아니, 뭐 하러 그렇게 해? 그냥 형이랑 소라 씨가 시간을 끌고. 그동안 리나 씨가 녀석에게 봉인 주문을 건 후에, 정우형이랑 내가 모든 오라를 쏟아서 공격하면 되잖아.”
제일 정답에 가까운 전투를 생각해보자면 지군의 말이 맞다. 그편이 효율이 제일 높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의 말에 동의할 수가 없었다.
우리의 대화를 듣고 있는 정우의 눈동자가 크게 흔들렸다.
“…… 아니, 이번에는 리나의 봉인 주문을 사용하지 않을 거야.”
“뭐? 왜냐능!”
“녀석에게 통할지 안 통할지 모르잖아.”
“그건 해보면 알 거 아니냐능?”
“실패하면 그 리스크를 전방에서 싸우는 소라 씨와 내가 짊어져야 해.”
“……”
“확실하지 않은 스킬은 배제하고 움직이도록 한다. 오케이?”
지군이 마지못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 오카이. 엘프와 드워프를 미리 투입할까?”
“아니.”
“그럼 다른 방향을 막고 있는 플레이어들은? 메카니아의 기계 전력들이나.”
“전부 안 돼. 전부 루시퍼를 막기 위한 전력이야.”
“…… 후우.”
대화를 듣던 리나가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꺼내었다.
“천재 씨, 봉인 주문을 한 번 사용해보는 게 낫지 않을까요? 혹시라도 잘못돼서 사망자가 나오면….”
정우의 표정이 굳었다.
나는 고개를 좌우로 저으며 대답했다.
“아니에요. 정말 사용해야 할 때가 오면 따로 말씀드릴게요.”
“……”
“저는 뭐든지 확실하게 하는 걸 좋아하거든요.”
내 대답에 정우의 얼굴이 활짝 폈다.
“알겠습니다.”
“그럼…. 마정우! 너도 지금부터 무기에 오라 담기를 준비하도록 해.”
정우가 엄지를 치켜들었다.
“알아쓰!”
* * * * *
마을 앞에 도착한 마르바스가 초토화되어 있는 주변을 보며 한숨을 쉬었다.
그는 앞서 이곳에 찾아온 형제들의 기운을 느꼈는지 바닥을 둘러보았다.
“…… 정말이군.”
나는 두 개의 악마의 정수를 목걸이로 만들어 목에 걸고, 녀석의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여- 어.”
마르바스가 나를 보더니 이를 갈았다.
“네 녀석이군.”
“뭐가?”
“…… 내 형제의 영혼을 가지고 있는 빌어먹을 인간 말이다.”
내가 어깨를 으쓱거렸다.
“그런가?”
마르바스가 나를 향해 걸어온다. 그저 걸음걸이에서 엄청난 기운이 느껴졌다. 앞서 왔던 두 마왕을 보았을 때는 이길 수 있다는 확신이 들었는데.
이 녀석은 좀 다르다.
조금만 방심해도 내 목이 땅에 떨어질 것만 같은, 날카로운 살기가 피부를 찌르듯이 느껴진다.
나는 마르바스를 향해 아이언 메이든 스킬을 사용했다.
“아이언 메이든!”
[‘아이언 메이든’ 스킬을 시전합니다.]
[‘제 4 마왕, 마르바스’ 님의 주문 저항에 의해서 주문이 취소됩니다.]
‘역시 안 통하는구나.’
거리가 어느 정도 가까워지자 내 스켈레톤 병사들이 전방을 향해 달렸다.
오백에 가까워 보이는 녀석들인데, 마르바스가 허공을 향해 랜스를 찌르자,
콰광!
바람이 터지며 스켈레톤 병사 절반을 쓰러뜨렸다. 전투 불가의 상태라고는 말하기 힘들지만, 그래도 박살 난 부위들이 큰 것으로 보아 굉장한 위력이다.
겨우 찌르기 한 번에 이런 타격을 주다니.
‘…… 미쳤네.’
한방에 스켈레톤 병사 절반을 잃었다.
이 모습을 본 지군이 입을 떡 벌리고 헛웃음을 내뱉었다.
“허…. 혀, 형.”
“…… 내가 죽기 전에 준비하도록 해.”
“아, 알겠다능.”
유소라가 우리 모두에게 주사를 놔주었다. 그러곤 신의 지팡이를 사용하여 커다란 영혼 물고기 떼를 만들었다.
“소라 씨, 영혼 물고기들이 제 주위를 맴돌도록 해주세요.”
“알겠습니다!”
영혼 물고기 생성을 마친 유소라가 바위 뒤로 몸을 숨겼다.
나는 영혼 물고기와 함께 마르바스의 앞으로 걸어갔다. 싸워서는 절대로 이기지 못할 상대다.
나도 알고 있고, 적도 알고 있다.
이 사실을 모르는 자는 아무도 없을 것이다.
시체라도 있으면 어떻게 시간을 길게 끌어볼 만한데, 스켈레톤 병사만을 가지고 있으니….
내가 고개를 들어 상공에 있는 본 드래곤을 보았다. 녀석의 힘을 빌리면 그래도 꽤 괜찮은 싸움을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 아니다.’
지금은 사용할 때가 아니다.
“레카!”
전장의 귀신, 레카가 검은 털을 흩날리며 달려왔다.
“부르셨습니까.”
“앞으로 저 녀석과 싸우도록 한다. 전력을 다해서, 최대한 시간을 끌도록 해.”
레카가 머리를 푹 숙이며 대답했다.
“알겠습니다, 주군.”
내 명이 떨어지자마자 레카가 마르바스를 향해 뛰었다. 적과의 거리가 가까워질수록 레카의 오라가 점점 커졌다.
어디까지 커질지 예상이 되지 않을 정도로 오라가 늘어난다.
레카의 저 검붉은 오라는 하늘에라도 닿을 생각인가? 끝을 모르고 치솟아 오른다.
‘내가 레카를 너무 얕봤나?’
하긴 만든 후에 지금까지 전력을 다해 싸우게는 해보지 않았으니.
쉬이이익-
마르바스가 또다시 랜스를 휘둘렀다. 레카가 공격을 맞받아치려 창을 휘둘렀다.
위험함을 직감한 나는 피하라고 소리쳤으나,
“피해!”
레카는 그저 웃어 보였다.
“맡겨주십시오.”
불카누스의 유전자가 섞인 게 맞구나.
쾅!
두 개의 무기에 둘러싸여 있는 오라가 뒤엉켜 폭발을 일으켰다. 잠시지만 모래 폭풍이 일어 앞이 보이지 않았다.
본 드래곤이 크게 날갯짓을 하여 모래 폭풍을 단숨에 없앴다.
나는 전장에 남아있는 둘의 모습을 보았다.
‘…… 이 정도인가.’
레카의 창이 마르바스의 찌르기를 막아냈다. 이 모습을 본 모두가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겨우 소환수 주제에 마왕과 격을 나누다니, 이 얼마나 대단한 일인가? 게임으로 치자면 끝판왕에 가까운 존재인데 말이다.
모두가 혀를 찼다.
나는 레카를 보며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괜찮나?!”
레카가 랜스를 튕겨내더니 뒤로 물러나며 대답했다.
“예.”
생명력 게이지가 주먹 한 개 정도 내려간 것으로 보아, 아무런 충격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그래도 이 정도면 시간을 끌기에는 충분한 힘.
마르바스가 석연찮은 표정으로 땅에 침을 뱉었다.
퇘엑!
“소환수 주제에 꽤 하는군.”
* * * * *
레카와 내가 동시에 뛰었다.
마르바스가 눈을 굴려 우리 둘의 움직임을 확인하더니 땅을 향해 랜스를 찍어 내렸다.
쾅!
[제 4 마왕, 마르바스 님이 ‘피의 투기장’을 시전 합니다.]
갑자기 사방에서 절벽이 튀어 오르며 원형의 투기장이 생성되었다.
그 안으로 레카와 마르바스만이 남게 되었다. 벽을 부수고 들어가 보려 했지만 결계로 막혀 있어 불가능했다.
쿵! 쿵! 쿵!
내 주먹이 튕겨 나간다.
“제길, 이때를 기다리고 있었나.”
치유와 질병 스킬을 사용한다더니, 전투 방법이 완전 검투사에 가깝다.
“레카!”
내 외침에 대답이 들려오지 않았다. 저 안과 밖은 완벽하게 다른 공간으로 나누어져 있나 보다.
“그래 봤자지. 리콜, 레카.”
[‘리콜’ 주문을 시전합니다.]
[소환수 ‘레카’를 김천재 플레이어의 앞으로 불러옵니다.]
쉬익!
레카가 투기장 밖으로 나와, 내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크윽….”
그 잠깐 사이에 한쪽 팔이 잘려나갔다. 회복이 가능한 부분이라 다행이기는 한데, 그래도 전투 중에 이런 부상을 입게 된 것은 치명상.
“수고했어, 이제 뒤로 가서 회복하고 있어.”
“아, 아닙니다.”
“됐으니까 회복하고 있으라고. 앞으로 또 싸우려면 지금은 네가 뒤로 빠져줘야 해.”
내가 등을 떠밀자 레카 녀석이 마을을 향해 걸었다.
“…… 알겠습니다.”
레카가 사라지자 투기장의 절벽이 내려오며 마르바스가 모습을 드러냈다.
“이 쥐새끼 같은 녀석, 어떻게 도망간 거지?”
내가 앞으로 한 걸음 나오며 녀석에게 대답했다.
“직접 알아보셔.”
“…… 건방짐이 하늘을 찌르는구나.”
“지하까지 파고들걸?”
당당하게 대답하지만, 나의 두 다리는 떨리고 있었다. 유소라의 영혼 물고기들이 어느 정도 녀석의 공격을 막아줄 것이라 생각하기는 하는데….
‘마정우, 지군…. 서둘러 이 새끼들아.’
“리턴 언데드!”
[제 4 마왕, 마르바스 님이 ‘리턴 언데드’ 스킬을 사용합니다.]
[두 가지의 바이러스가 공기를 타고 전방 3km 내에 전파됩니다.]
드디어 질병 스킬을 사용하는 건가.
‘과연.’
과연 어느 정도의 위력을 가진 스킬일까? 어차피 지금의 우리 힘으로는 막을 수 없겠지만.
그래도 피해를 최소화해야 한다.
쿠구구궁! 천둥 치는 소리와 함께 하늘의 구름이 휘몰아치기 시작하더니, 마르바스의 몸에서 나오는 작은 가루들이 바람을 타고 사방으로 흩어지기 시작했다.
말차 수준으로 미세한 녹색 가루들이 흩날린다. 벚꽃 잎을 말려서 간 것처럼 분홍 가루도 뒤섞여 있다.
익숙한 냄새다.
“…… Z 바이러스!”
내 외침에 모두가 정신을 번쩍 차렸다. 우리는 이미 게임 초반에 백신을 맞은 상태라 아무런 문제도 없지만.
이대로 바이러스가 퍼지면 김준철의 군인들은 빠르게 감염될 것이다.
-키에에에엑!
벌써 주변에 숨어 있는 동물들이 감염되어 반응하기 시작했다.
암석 뒤에 숨어 있던 사막여우와 땅 밑에 있던 전갈이 바이러스에 감염되어 크게 요동쳤다.
놈들이 마르바스의 부하가 되어 나를 향해 덤벼왔다.
나는 낫을 크게 휘둘러 놈들을 단번에 박살낸 후, 마이클을 향해 크게 소리쳤다.
“마이클, 결계!”
마이클이 지팡이를 크게 휘두르며 마을에 결계를 쳤다. 황금색 빛이 돔 형태로 마을을 둘러막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르바스의 바이러스 가루들은 결계를 뚫고 지나갔다.
바이러스는 악(惡)으로 분류되지 않는다는 말인가.
“처, 천재 킴! 군인들이, 군인들이!”
-쿠워어어억! 쿠웍!
마을 내에 있는 군인들이 기이한 소리를 내며 좀비화 되어 간다. 이렇게 되면 돌이킬 수가 없다.
백신을 구하지 못한 플레이어들도 몸이 초록색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악몽이 시작된다.
“마이클! 천사의 찬가!”
마이클이 하늘을 향해 유탄을 발사해 성스러운 주문을 터트렸다.
쾅!
천사들이 쏟아져 내리며 악한 기운을 잡아먹기 시작했다.
치직, 치지지직!
이미 바이러스에 감염된 군인들은 큰 피해를 입고 땅에 뒹굴었다.
-캬아악!
‘제길, 미리 손을 썼어야 했는데.’
그때 리나가 땅을 박차고 나와 크게 소리쳤다.
“혼돈의 주인, 모든 존재의 왕. 티아마트의 이름으로 네게 명한다, 백사봉인(百事封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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